#024. 각자의 사연 (2)
그날 밤.
나는 모처럼 뒤척이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잠들 수 있었다.
‘갇힌 동안 하도 진땀을 빼서 그런가….’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자 별다른 이상 없이 안정적이었다.
‘유지원도… 상태 괜찮아 보이고.’
오히려 너무 괜찮아서 문제지. 어제 내가 이야기할 틈도 없이 사라져 버린 탓이었을까.
“…!”
식당에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남은 음식을 입에 와구와구 집어넣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으으읍, 으읍, 읍! 으으으읍!”
혹여 내용물이 나올까 입을 꾹 다문 채 내 쪽으로 달려오는 지원을 나는 재빨리 막아섰다.
“다 먹고 말해요, 다 먹고!”
그러자 지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격렬히 끄덕였다.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었던 뺨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젖살 때문에 기대만큼 작아지지 못한 통통한 볼이 눈에 띄었다.
“어, 어제 봤어요? 저,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럼 나라고 모니터링을 안 했겠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헛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잘했으니까 화면에 잡혔고, 그럴 만하니까 엔딩으로 픽됐겠죠. 앞으로도 열심히 해요.”
FM에 가까운 격려를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누가 뭐 노려보기라도….
고개를 돌려 뒤를 본 순간.
건너편 장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제현호가 휙 고개를 돌렸다.
‘나 참….’
무슨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뭐 저렇게….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지만 불평은 접어 두기로 했다.
어차피 놈의 목표가 데뷔가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얻은 셈이었으니까.
‘저러다 진짜 데뷔하면 그것도 그거대로 다른 멤버들한테 민폐 아닌가?’
잠깐 삐딱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걸 굳이 내가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모두 평생 갈 한 팀 칭구칭긔도 아니고 어차피 활동은 1년 계약이다.
1년 뒤면 각자의 길로 흩어질 짧고 짧은 인연.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윈윈으로 이끌면 그만인 사이. 서로의 발목만 잡지 않으면 된다.
나는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지원을 돌려보냈다.
“저, 더 열심히 할게요…!”
마지막까지도 날 무슨 생명의 은인 보듯 하는 지원의 시선에 나는 영인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미심쩍은 눈으로 영인을 들여다보자 영인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왜요?”
그 반질반질한 뻔뻔함에 나는 묘하게 열이 받았다. ‘킹받음’이란 표현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이놈이랑 똑같이 생겼을 게 분명했다.
“됐어. 가라.”
“아, 왜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안 하기는.”
단체 녹음부터 개별 녹음까지, 소화할 일정이 태산이었다. 낭비할 에너지 따위는 없었다.
***
잠시 후 시작된 녹음은 등급별 그룹으로 나뉘어 단체 녹음 후, 일부 대상자들만 별도로 파트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어제 촬영된 MV의 편집본에 맞춰서 믹싱된 단체 녹음 위로 해당 파트 원샷을 받은 연습생의 목소리를 덧씌워서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음원 편집을 마치고 최종 완성된 MV를 보니 이제 정말 시작이라는 실감이 났다.
‘이게 공개되면, 그때부터 또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이겠지.’
팬들의 투표로 데뷔가 결정되는 서바이벌.
여러분의 소중한 투표로 여러분의 소년을 데뷔시켜 주세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여론이라는 불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데뷔할 수 있다는 뜻이지.’
단순히 실력과 팬덤만으로는 데뷔를 거머쥘 수 없었다.
‘세상엔 견제 픽과 전략 픽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너무 압도적으로 잘나가도 곤란하다. 원하는 데뷔 픽이 여러 명인 시청자가 탈락 위기에 놓인 차애와 안정권인 최애 사이에서 차애를 선택했다가 최애가 데뷔권에서 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투표라는 건 거대한 눈치 싸움이니까.’
방송 내에서의 활동에 신경 쓰는 건 물론, 방송 외부에서의 활동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됐다.
진정한 스트레스는 방송 밖에서 온다고 봐도 무방했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나는 머릿속으로 내 데뷔 실패 및 솔로 실패에 대한 근황 글에 달렸던 악플을 떠올렸다.
[- 얘도 진짜 인생 구질구질하게 됐다 처음 공개 연생으로 떴을 때 진짜 대박 날 줄 알았는데.]
동정하는 건지 신나서 같이 비꼬는 건지.
회귀 전에 받았던 악플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연습생 서인수가 들을 수 있는 악플들은 달콤한 승리의 주문에 가까웠다.
‘그래, 뭐가 됐든 14년 연습하고 관계자 되다니 불쌍하다 소리보단 낫다!’
분명… 긍정적인 생각인데 왜 속이 쓰리지….
나는 위장이 아파 오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의지를 다졌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공개 일정에 그렇게 결연한 마음을 품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스태프가 앞으로의 일정 공지를 마치자 연습생 모두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게 느껴졌다.
‘티저가 공개된 지 2시간 정도 지났나….’
오늘 오후 6시에 짧은 예고 티저가 공개되고 자정에 연습생 프로필이 오픈될 예정이었다.
지금 시간이 8시니까 예고는 이미 공개됐을 거고.
티저 예고가 어떻게 나갔을지는 모르겠는데 편집에 따라 벌써부터 누가 나온 것 같더라 커뮤니티에서 소문이 돌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건 단 하나.
그래서 나에 대한 사람들의 피드백은 어떤데?
일정이 끝나는 건 오후 9시 30분.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어서 아주 다들 몸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형 출신이나 아역 출신 같은 기존 팬덤이 있는 게 아니면 너네 가족 말고는 아무도 못 알아볼 거다만….’
꿈꾸는 건 자유니까 기대감을 굳이 깨 줄 필요는 없었다.
알아서들 현실을 깨닫고 각자 자기 위치에서 뭘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능력이니.
나는 출연 오피셜이 뜨는 자정에 맞추어 개인 SNS 계정에 올릴 멘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큰 도움을 받아 왔던 회사를 떠나, 오늘 비로소 홀로서기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많은 응원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나?
괜히 심장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우연히 주어진 두 번째 삶. 그 진정한 시작이 코앞이었다.
***
겟 데뷔 위드 미의 촬영이 시작되기 반년 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어느 자취방에서는 누군가 가을밤처럼 차갑게 죽은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아무리 노력해 봐야 망신살 타고난 웃수저는 이길 수 없다.]
데뷔 8년 차 1군 아이돌 윤승재 군을 앓아 온 지도 5년째. ‘승재야 죽도록 사랑해’의 줄임말을 닉네임으로 써 온 아이돌 팬 승죽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SNS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너도 데뷔 8년 차에 20대 후반이니까 연애할 수 있어. 연애할 수 있지 그래.
거기까지는 뇌와 심장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연애 중이었다는 사실을 들킨 과정을 생각하면 피가 얼음장처럼 식었다.
“X발 X끼….”
최근에 화제가 된 대규모 마약 단속에서 그 문제의 여친이 검거된 것이다.
승재는 꼬리 자르듯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이에 분노한 여친이 승재를 공범으로 밝혔다.
공범으로 지목된 승재는 극구 부인했으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차라리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마약 사범으로도 모자라 제출용 모발과 소변을 바꿔치기하려 한 정황까지 있다면?
거기다 여친이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을 품고 있었던 것까지 밝혀진다면?
그 여친이 내가 서포트해 준 수백만 원대 명품 패딩을 입고 있을 확률은?
음주 운전이 차라리 나아 보일 수가 있는 거임? 아이돌도?
‘내가 언제 너한테 수도승처럼 살라고 했냐고….’
지금이라도 모든 게 다 꿈이었고 여친의 존재와 혼전 임신만이 진실이라고 하면 감동의 눈물이 한강처럼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가끔 좀 경솔하고 생각보다 말이 빠를 때가 제법 있었으나 멍청미도 나름의 매력이라 여겨 온 것이 큰 오산이었다.
[- 얘는 무슨 불효를 한 번에 몇 개를 같이 하는 거냐]
[- K-POP 역대급 불 속성 효자 레전드]
[- 내 본진 아니라서 그런지 이젠 뭐가 또 터질지 흥미진진해서 웃긴다]
[- 이거 커플 타투 맞았네ㅋㅋㅋㅋ 아니라고 그렇게 우기더니]
[- 오늘 승재가 8시간 만에 세운 기록
1. 마약 사범
2. 1년 반 만에 공개되는 신규 자컨 공개일 무기한 딜레이
3. 여친이랑 물귀신 진흙탕 개싸움
4. 선처 핑계로 “아버지가 될 예정” 등장
5. 전성기 남은 1군 한 방에 유부범죄돌로 보내 버리기 <- NEW & ING]
[- 그래서 승재는 결혼을 하는 거 안 하는 거? 여친이 고소했다는데]
승죽은 진동 벨처럼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생각했다.
그만 연락해, X발롬들아.
내 구(ex) 새끼가 사고 쳤지, 내가 초상났냐.
평소 아이돌엔 관심도 없던 동기들이 우르르 단톡방에 자신을 태그해 가며 <○○아, 이거 봤어?> 하고 속을 살살 긁어 대고 있었다.
너네가 본 걸 내가 못 봤겠어? 나를 바보로 알아?
“인터넷”이라는 게 지들 집에만 있는 줄 아나?
우리 집에도 “와이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기사가 터진 새벽 1시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단다.
<실시간 질문을 모집 중!> 태그가 붙어 있는 익명 메시지함은 이미 어그로로 초토화가 된 지 오래였다.
[- 승죽아 탈빠 하고 절이나 들어가라 너랑 같은 그룹 잡을까 봐 무섭다]
[- ㅉㅉ 현생 조져 가면서 하루 종일 승재 얘기만 하더니 안됐네여 승죽 님한테는 승재가 인생의 전부였을 텐데 승재는 여친이랑 갓생ㅋㅋ살고 있었네… 더 보기]
‘더 볼 것도 없이 그냥 폭파하는 게 낫다.’
상황이 이쯤 되면 다들 조용히 계정을 터트리고 구천을 떠도는 프로텍트 계정으로 돌아가도 누구도 원망치 않을 것이다.
승죽은 조용히 계정을 잠금으로 돌리고 게시글을 올렸다.
[- 안녕하세요. 한동안 현생이 바빠져서ㅠㅠ. 이쪽 계정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사담과 일상뿐인 계정이라도 괜찮으시다면 DM으로 찔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이 짧은 문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못 알아들을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의 팔로워도 없을 터다.
사실 일상계에 데려갈 지인들은 한참 전에 챙겨 둬서 24시간 쿨타임도 없이 떠들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혹시 모를 인연은 살뜰히 챙기기 위해 정리 글을 올리자 별로 교류해 본 적 없는 지인으로부터 DM 알림이 도착했다.
‘의미 없다, 진짜….’
승죽은 여전히 지워도 지워도 생겨나는 메시지 톡 알림을 옆으로 밀어 삭제한 다음 심호흡을 했다.
‘내가 진짜 탈케이팝 한다.’
[- ‘승재의 모든 것’ 계정을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내가 또 아카이빙 계정을 파면 개다, 개.’
쓰라린 상처를 안고 결심했건만, 승죽이 개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XOXO] 승죽 님 승죽 님 오전 1:45
평화로운 오전 1시, 발단은 구본진 지인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