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각자의 사연 (1)
***
잠시 고개를 숙이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나는 드르륵, 문쪽에서 들리는 기척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어떡해. 현호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죠? 괜찮은 거예요?”
저만한 나이의 아들을 둔 어머니치고는 상당히 젊어 보이는 외형의 아주머니였다. 그 뒤로 스태프들이 따라 들어오며 설명했다.
“잠깐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0분쯤 전.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을 발견한 나는 창문 아래에 발 받침대로 쓸 만한 폐가구들을 잔뜩 쌓아 올려 탈출에 성공했다.
어디서 오만 먼지와 숯 검댕을 묻히고 나타난 나를 스태프들이 무슨 귀신이라도 보듯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지하에 연습생이 갇혔어요!’
평소 얘는 대체 언제까지 NO엔터 지하에 갇혀 있는 거냐, 소리를 들어 왔던 나다만….
‘진짜 지하에 갇히는 경험을 할 거라고는….’
환기용으로 뚫려 있는 좁디좁은 반 창문으로 탈출한 후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쓰러진 제현호를 옮기고 나니 소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그나마 이쪽이 다행인가.’
제현호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거길 왜 들어갔냐.’며 외려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을 텐데.
이놈이 기절해 버림으로써 문제의 책임이 제작진들에게 돌아갔다.
관리 소홀로 프로그램 참가자가 지하에 갇힌 것은 물론, 실질적인 피해까지 입힌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심지어 미성년자이기까지.
프로그램 감독용 의료진이 와서 상태를 확인한 결과 깊이 잠든 거지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가능한 조용히 넘어가려면 이 이상 문제 삼지는 않겠지.’
시설 관리 미흡으로 방영 전부터 논란이 되고 싶을 리가 없잖아. 별문제 없으면 없던 일로 넘어가자, 하는 게 그쪽에도 이득일 터였다.
보호자에게 금방 연락이 닿았는지 한달음에 달려온 아주머니는 한참 동안 제현호를 살핀 후 옆에 있던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학생이 아니었으면 계속 갇혀 있었을 텐데, 고마워요, 정말.”
뻔뻔하고 싸가지 없기 짝이 없었던 제현호의 태도와 아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뭔가… 10대 후반 아들이 있다기엔 너무 젊어 보이는데?’
집안에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 나는 감사 인사를 만류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에요. 혹시 무슨 일 있을까 봐 걱정돼서 따라 들어갔던 건데 저도 같이 갇히는 바람에….”
“정말 천만다행이지 뭐야. 현호가 폐소 공포증이 있거든요. 우리 시설로 오기 전에 일이 좀 있었어서…. 혹시 기억나요? ○○역 캐비닛 사건….”
시설? 어쩐지 부모님이라기엔 외모도 너무 다르고 나이대도 안 맞는다 했더니 가족이 아닌 모양이었다.
○○역 캐비닛이라면…. 언젠가 들어 본 것 같은 조합에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저걸 어디서 들었더라….
단번에 떠오르지 않아 미간을 좁힌 사이 아주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요, 유치원생이 자기 동생 캐비닛에 넣어 두고 간 사건.”
“아.”
나는 그제야 ○○역 캐비닛 사건이 무슨 일이었는지 생각났다.
21년 전, 그러니까… 7년 전으로 회귀한 지금 시점에는 14년 전에 일어난 화제의 유아 유기 사건이었다.
미취학 아동으로 추정되는 누나가 다섯 살짜리 동생을 역사 내의 대형 캐비닛에 가둔 채 사라진 일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했을 때가 아니라 자세한 내막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전국을 충격에 빠트리기에는 충분했다.
CCTV에 담긴 건 자기보다 작은 키의 남자아이를 캐비닛에 넣고 잠그는 여자아이의 모습뿐.
그들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어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이 남겨진 아이를 바탕으로 수사를 했는데도 결국 부모를 못 찾았다고 했지.’
인근 주택가를 뒤지듯 탐문했음에도 남매와 남매의 보호자에 대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고 발견된 아이는 시설로 보내졌다는 걸로 ‘썰’이 마무리된 걸로 아는데.
‘와, 걔가 벌써 열아홉…. 세월 진짜 빠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사건의 당사자가 이 녀석이라니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거군요.”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못 나간다고 하니까 식은땀을 뻘뻘 흘려서 왜 이러나 했는데.
의식을 잃은 채 중얼거리던 헛소리도 이해가 됐다.
“아무튼 고마워요. 학생 덕분에 살았어, 정말.”
특별히 칭찬을 바랄 행동이 아닌지라 괜한 머쓱함이 밀려왔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구든 그렇게 했겠지.
잠시 후 제작진이 아주머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의무실에는 나와 제현호만이 남았다.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그리고 그 순간 팟, 하고 미션창이 튀어나왔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도망자를 잡아라]
[잔여 제한 시간 0:19:58]
악.
제일 중요한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일단… 탈주는 막았으니까 어떻게 해결한 거로 쳐주면 안 되나.’
희미한 기대감을 품었으나 미션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
이대로 안 깨어나면 그냥 실패로 종료인가. 심란함에 머리를 괜히 쓸어 넘기는데.
흠칫.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고개를 들어 제현호가 누워 있는 침상을 확인하자 화들짝 놀란 제현호가 시선을 피했다.
“…….”
뭐라 말하냐. 사정은 알았다? 편히 쉬어라? 이놈 성격을 생각할 때 네가 오래전에 그 유명한 사건 주인공이라며? 했다가는 또 뛰쳐나가려 들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대로 미션을 실패할 수도 없고. 한참을 입꼬리만 움찔거리던 나는 동문서답을 택했다.
아니, 어쩌면 이게 핵심이었는지도 몰랐다.
“겟데뷔는 왜 나온 거예요?”
춤이 좋아서? 노래하는 게 좋아서? 무대를 즐기고 싶어서?
흔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엔 제현호는 튀는 구석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대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아.’
나를 포함해서 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고, 청중이 혼이 빠진 듯 넋이 나간 순간에야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찾는 사람들.
무대에서 더 반짝반짝 빛을 찾는 사람들을 흔히 무대 체질이라 부른다.
‘이런 타입들은 주목을 못 받으면 사람이 시들시들해지거든.’
그러나 제현호는 달랐다. 잘하긴 분명 잘하는데. 그냥 본인이 잘하니까 하는 거지.
무대를 즐긴다는 인상은 단 한 순간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을 무대에 계속 붙들어 두려면 확인해야만 한다.
‘대체 뭐 때문에 무대에 오르는 건지.’
내 질문에 제현호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복잡한 가정사랑 관련된 건가. 예상해 본 순간 제현호가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아야 해서요.”
역시.
아이돌로서의 데뷔 자체가 목표인 놈이 태도가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제야 제현호가 왜 모니터링 후에 하차하겠다며 뛰쳐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상위권이고 꽤 잘했는데도 한 번도 화면에 못 잡혔으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다른 애들이 괜히 방긋방긋 웃고 윙크하고 손 하트 하고 난리겠냐고.
화면에 잡히기 위해서는 팬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아무리 잘생기고 실력이 좋더라도 ‘나한테 기회를 줘! 널 좋아해!’ 외치는 곡에서 무표정인데 찍고 싶겠냐.
‘찍을 사람이 저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쥐고 한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목표가 데뷔가 아니라 TV에 나가는 거라는 말이죠?”
제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여간 이… 이… 하….
마음 같아서는 내다 버리고 싶은데.
목표가 확실하고 협조할 의사가 있다면 이만큼 이용하기 좋은 패도 없었다.
“그럼 나랑 협력해요. 3차 미션까지만 진출해도 아마 전국 10대부터 30대까지 전부 그쪽 얼굴 알기 싫어도 알게 될걸요.”
내가 툭 던진 미끼에 제현호가 곧바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빠르면 첫방 나간 다음 주부터 응원 광고 걸릴 거고, 못해도 4회차 때에는 100% 붙어요. 서울 주요 역사 한복판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대문짝만하게 광고 걸어 줄 텐데.”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제현호의 비주얼과 실력이었다.
저놈의 태도만 어떻게 해서 빠혐 논란이나 태도 논란만 안 붙으면 이건 무조건 되는 패다.
내가 던진 미끼가 이번엔 제법 달달했는지 제현호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하. 드디어.
나는 놈의 반질반질한 이마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약속해요. 내가 불가능한 걸 시키진 않을 테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군말 않고 하기로.”
그렇게만 하면.
“그러면 내가 홍대 한복판에 그쪽 얼굴 4미터 크기로 걸리게 해 줄게요.”
***
잠시 후.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저녁도 쫄쫄 굶은 채로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털썩 쓰러지듯 몸을 침대로 던졌다.
‘죽겠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초췌해져서 나타난 내 몰골을 보고 영인이 화들짝 놀랐다.
“…? 뭐예요? 누구랑 싸우고 왔어요?”
나는 얼굴을 시트에 박은 채 대충 손을 흔들었다.
“몰라. 내가 이겼어.”
“뭔데요. 사람 궁금하게.”
안타깝지만 내게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할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클리어!]
[도망자를 잡아라]
[보상 수령]
[등장인물 - 제현호]
[개연성 지수가 [높음]으로 상승했습니다.]
[100스타]
개연성 지수는 챙겼는데 나머지 보상은 솔직히 그리 대단치 않았다.
‘아…. 어쩐지 코인 지급 확정이란 소리를 안 하더라.’
왠지 속은 기분에 피디인지 뭔지가 내 아군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해졌다.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했다.
‘…열받네.’
어떻게 해야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까. 입술을 질근질근거리던 나는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 위해 씻고 나왔다.
어쨌거나 유력 동료 후보인 유지원은 무사히 엔딩을 장식했고, 제현호는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무단 이탈 건으로 제작진의 눈 밖에 나지도 않았다.
나보다는 제현호가 문제였으나 그놈이 기절함으로써 모든 책임이 제작진에게로 넘어갔다.
뭐, 결과적으로 잘된 거라고 봐야 하나.
‘그럼 이제 남은 건….’
내일 단체곡 녹음하는 것까지 다 찍으면 슬슬 확정된 출연진의 사전 홍보 영상이 공개될 차례였다.
‘연습생 99인 1분 스피치였나….’
99명분의 간단한 프로필과 함께 소개 영상이 오픈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정글이 따로 없었다.
더구나 SNS 홍보까지 가능하니 각 소속사부터 연습생 개인의 SNS까지 아주 소통의 장으로 불탈 터였다.
‘유출하면 안 되는 거 빼곤 다 해도 되는 거니까.’
소속사가 없는 나는 더더욱 개인 SNS의 역할이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공지했던 게 언제였더라….’
나는 회사를 나오자마자 개인 SNS에 인사부터 했다. 새 출발을 응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본격적으로 아는 얼굴들과 맞팔을 했다. 다들 데뷔한 아이돌부터 배우, 혹은 인플루언서 등 각지에서 활약 중이었다.
그게 홍보가 되었는지 금세 팔로워 수가 불어나 있었다.
‘최대한 활용해야지.’
그간 무대 뒤편에서 죽도록 굴러온 경험치가 빛을 발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