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뭐가 또 자꾸 (1)
곧이어 순위별로 나눠서 향한 세트장은 첫날 보여 준 피라미드 의자의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수천, 수만 개의 반투명한 삼각형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세트장은 미리 예고한 대로 구획별로 단차가 컸다.
‘아래층은 정말 풀샷 잡을 때 말고는 보이지도 않겠군.’
하위권에 설 연습생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자, 각자 정위치로 서 주세요!”
스태프들의 지시에 따라 가운데로 놓인 계단을 올라 앞순위부터 차근차근 자리를 찾아갔다.
‘내 자리는….’
맨 중앙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꼭대기 자리였다.
‘높이는 어쨌거나 저놈이랑 같은 높이인가.’
나는 슥, 다른 곳을 보는 척 당당한 표정의 아진을 확인하고는 쯧, 시선을 돌렸다.
결국 메인 센터는 아진의 차지였다. 서브 센터도 높이 차이는 없다지만 대형상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지금은 그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뭐….’
계속 그러고 살든가. 나는 우쭐한 표정의 아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스테이지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각자 지정된 자리에 선 것이 확인되자 팟, 천장의 조명등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이번은 제대로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이 세트장이 연출을 버틸 수 있는지만 확인하는 건데도.
여기저기 바쁘게 쏘다니는 조명 감독을 비롯하여 온갖 스태프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
그리고 그건 연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높이와 위치에 상관없이 다들 원하는 목표가 있어서 참가했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카메라에 잡혀 보고자 까치발을 들며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리의 무게가 느껴졌다.
‘보여 줘야지.’
내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다는 것을.
녹음은 후에 다시 할 예정이지만 각자 핸드 마이크를 쥐고 있는 만큼 입 모양과 표정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여기서 세기의 열창을 하는 것처럼 보여 봐야 비웃음만 살 뿐이다. 나는 MR에 맞춰 자연스럽게 빨간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깨달았다.
‘나… 너무 많이 찍히는 거 아닌가…?’
아니, 물론 지금은 아직 리허설이기도 하고, 본촬영이 아니긴 한데.
지미 집 너무 내 앞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아무리 카메라 앞에 서려고 준비만 10년을 넘게 했다지만.
사방에서 찍어 대는 카메라에 일일이 표정을 지어 주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 그만….’
이 정도는 나도 부담스러웠다. 편집을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몰아치는 카메라 샤워에 나도 모르게 잠시 몰입이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몰입이 깨진 순간.
‘…….’
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
그럴 만했네.
연습 시간이 짧긴 했지만. 하루 만에 무대 촬영을 끝내려니 아무래도 댄스 트레이닝에 익숙하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수준이 이 꼴인 건 심각한 거 아냐?’
D 등급 이하는 동작을 따라가는 게 급급해서 박자가 번번이 밀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연습생 연차가 좀 쌓여 있는 B 등급부터는 크게 눈에 띄는 뚝딱이는 없었다.
‘한 명 빼고.’
나는 애써 지원이 있는 방향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지원을 보고야 말았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네.
물기가 초롱초롱한 눈이 간절히 외치고 있었으나 나도 방법이 없었다.
‘반성해…. 남들이랑 똑같이 연습했는데 못 따라가는 건 나도 구제할 길이 없으니까….’
어떻게 열심히 해서 박자는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중간중간 디테일을 헨젤과 그레텔마냥 줄줄 흘리면서 그때마다 아차 아차 놀라는 모습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저걸… 데리고 가, 말아….’
그나마 다행인 건 애 자체가 좀 맹하고 귀여워서 저러는 것도 그런대로 매력으로 퉁칠 수 있는 점일까.
귀엽긴 귀여운데….
‘저거 무섭게 물어뜯기겠지.’
나는 지원에게 달릴 경쟁 픽들의 악플을 벌써부터 다섯 개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 유지원은 무슨 무대마다 발전이 없냐ㅋㅋㅋㅋㅋㅋ]
[- 너는 진짜 안 보이게 잘 수납해 준 △△한테 진짜 고마워해라ㅋㅋㅋㅋ]
[- 작지도 않은데 화면 한가운데에서 뚝딱거리니까 거 ㅈㄴ 거슬리네ㅋㅋ]
그만 예상하자.
유지원은 후에 스타로 대성하는 미래에도 딱히 춤으로 유명하진 않았다.
애초에 데뷔를 솔로 가수로 했으니까. 댄스 가수가 아니라 그냥 가수로.
‘음색이 너무 좋아서 춤에서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본인도 최선을 다하기는 하는데 어쩔 수 없이 5%쯤 모자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자리에서 저긴 너무 멀어.’
리허설 이후 별도의 쉬는 시간 없이 본촬영이 진행될 예정인지라, 뭔가 도움을 주려면 지금뿐인데 물리적으로 방법이 없었다.
“야, 표영인.”
나는 잠깐 고민한 끝에 지원보다 조금 더 가까운 단에 서 있는 영인에게 말을 걸었다.
리허설이고, 촬영용이라 핸드 마이크를 써서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
신나서 잔뜩 흥분한 표정의 영인이 얼핏 들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출처가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외쳤다.
“와! 형 봤어요? 아까 카메라가 저 3초 이상 잡는 거?”
실력이 군계일학이더라도 소속사에서 제공하는 트레이닝을 받은 적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지겹도록 잡혔어.’
하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으나 나는 얌전히 입술을 다물고 본론을 꺼냈다.
“봤어. 지금 찍히는 것도 언제 어떻게 편집돼서 나갈지 모르니까 알아서 주의하고.”
나는 동선을 살짝 옮겨 영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한층 더 작아진 목소리로 영인에게 물었다.
“너 자리에서 지원이한테 말 걸 수 있어?”
그러자 영인이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나를 한번 슥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될 거 같은데요?”
나는 영인이 지원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좀… 지적을 하든 응원을 하든 해 봐. 저거 저대로 방송 나가면 욕먹을 거 같아서 그래.”
물론 영인처럼 어그로가 붙어도 ‘아ㅋㅋ ㄱㅊㄱㅊ 저는 딴 거 잘함 ㅇㅇ’ 할 수 있는 강심장들은 괜찮겠지.
오히려 악플도 관심이라고 꿋꿋하게 노력하고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줘서 내가 졌다, 성장을 하긴 하네, 하고 이미지를 쇄신해 자기편으로 끌어당길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쟤는 아니야.’
지원은 초장부터 쏟아지는 악플 폭격을 견뎌 낼 멘탈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은 아직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수하는 시스템이 정착하기 전이었다.
이 이후에 다른 서바이벌에서 연습생이 내부 정보를 SNS에 유출하는 바람에 모조리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가 생겼으니까.
지금은 핸드폰은 공식 일정이 끝나고 기숙사에서 개인 시간에 자율적으로 사용하되 방영되지 않은 내용의 스포일러는 금지, 정도였다.
‘아직은 출연 사실도 유출하면 안 되는 시점이고.’
본격적으로 티저 격 영상인 단체 미션 MV와 연습생 소개 영상이 뜨면 그때부터는 반응이 올 테니까.
그 반응이라는 게 결코 말랑할 리가 없었다.
‘다들 여기 나오는 애들 수준이 어떤지 내가 친히 평가해 주마, 이런 마인드로 볼 테니까.’
보증된 것 없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 준 이른바 찍먹 집단에게 찍히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KMB 신규 서바 수준 봐라ㅋㅋ]
하고 SNS에 거나하게 공유되어 악플 폭격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은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이것도 혼자 힘으로 제대로 못 넘기는 놈까지 신경 쓸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여전히 울먹거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원을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삼켰다.
‘너는 나중에 내가 뜯어먹을 거 있을 때 아주 양말 한 짝까지 벗겨 먹을 테니까, 각오해라.’
그러자 영인이 알았다는 듯 나를 향해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곤 별로 믿음직하진 않지만 손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슬금슬금 동선을 이동한 영인이 어느덧 지원의 가까운 곳에 섰다.
“지원아!”
“힉!”
야, 그렇게 크게 부르면 어떻게 해.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란 지원이 간신히 동작을 이어 가며 영인을 돌아봤다.
‘뭐 하는 거야.’
지금이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단층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긴 영인에게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미치겠네.’
괜히 부탁했다. 아찔하기도 잠시, 영인의 속닥거리는 귓속말을 듣는 지원이 뭔가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한 건데?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효과는 만점이었다. 내내 울상이었던 지원이 겨우 기운을 회복하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후 영인에게 뭔 짓을 한 거냐고 말릴 새도 없이 지원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건데.’
그대로 본촬영이 시작되는 바람에 영인을 붙들고 물어볼 새도 없이 집중해야 했다.
리허설 백번 완벽해도 슛 들어갔을 때 엉망이면 끝이니까.
못 봐줄 수준의 리허설을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다들 어느 정도 봐줄 만해지긴 한 걸까.
처음 카메라 리허설 때보다 확실히 나를 잡는 빈도수가 줄었다.
‘이럴 줄 알긴 했다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가 정통으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턴하며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안무 동작에 맞춰서 손짓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긴장이 역력한 다른 연습생들과 달리 여유가 묻어나는 완벽한 시선 처리와 제스처까지.
내가 안정적으로 잘 찍혔으리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터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곧바로 모니터링이 이어졌다. 최종 편집본은 메인 카메라 외에 서브 카메라로 찍은 영상들까지 합치겠지만.
대충 내가 화면에 얼마나 어떻게 비쳤는지 정도는 확인할 지표가 되었다.
중앙에 설치된 대형 패널로 송출해 주는 영상은 다소 적나라했다.
‘예상은 했지만 씁쓸한걸.’
카메라는 내내 상위권 연습생들을 골라서 비췄다. KMB와 좀 더 친밀하다고 평가받는 소속사 연습생들이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하여간….’
아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인 센터니까 당연하긴 한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브 센터인 나도 분량이 아진 못지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놈은 소속사빨이었고 나는 아니라는 거지.
“와….”
“야…. 진짜 대박이다.”
내가 원샷으로 제대로 잡힌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천장에서부터 쏘는 조명에 속눈썹이 반짝이며 눈웃음과 함께 화면을 향해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저 표정을 연출하려고 내가 NO 사옥 지하 연습실에서 거울을 몇 년을 봤는지 다들 모르겠지.
알 필요도 없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될 것 같고.’
영인에 이어 하연도 화면을 괜찮게 받았고, 하연에게 1+1으로 달려 있는 듯한 은찬도 특유의 하얀 피부가 굉장히 돋보이게 잘 나왔다.
‘이제 문제는….’
이쯤이면 지원이 한 번은 화면에 나올 때가 됐는데.
긴장한 순간 화면 끝에 지원이 입은 반팔과 조끼, 체크 배색 바지가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