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2화 (12/224)

#012. 속인 자 없이 속은 자 (1)

[재화 설명]

[코인]

[현재 소지 개수: 3개]

[미션 수행 보상으로 습득 가능. 코인 1개를 소비하여 아이템 뽑기(유료)를 1회 가동할 수 있다.]

아이템 뽑기? 그건 또 뭐야.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용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즉시 새 설명 레이어가 떴다.

[아이템 뽑기]

[각종 상태 이상 및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아이템이 들어 있는 뽑기.]

첨부된 이미지를 보니 어렸을 때 문방구 앞에서 500원짜리를 넣으면 허접한 장난감 같은 게 나왔던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다.

‘비주얼은 그것보다 고급스러워 보이긴 한데….’

기계 이미지의 하단에 버튼을 보니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뽑기(유료)]

[뽑기(무료)]

두 개가 차이가 뭐야? 머릿속으로 의문을 떠올린 순간 설명창이 떴다.

[뽑기(유료)]

[미션 보상인 코인을 이용. B등급 이상의 아이템만 드롭됩니다.]

[뽑기(무료)]

[활동 보상인 스타를 이용. S~C등급의 아이템이 드롭됩니다.]

설명을 보아하니 B등급 이상의 아이템이어야 쓸 만한 효과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스타는 어떻게 모으는 재화예요?”

그러자 내내 설명으로 대화를 대신하던 케이 피디가 채팅창에 나타났다.

[스타는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행동, 그 외 수색 등 인수 씨의 모든 활동을 통해 랜덤으로 수집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시면 이해가 잘될 것 같은데요.”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것 외의 모든 활동이 스타 획득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조금 전 영인 군과의 대화 같은 상황에서도 앞으로는 랜덤으로 스타를 채]

그 순간 ‘채’가 사라지더니 뒤이어 바뀐 글씨가 나타났다.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방금 채굴이라고 말하려던 거 아냐? 한마디로 가만히 드러누워 있지 말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보면 나온다는 거지. 빈도수가 얼마나 될지는 겪어 봐야 알겠지만 그리 대단한 재화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우선 1회 무료 뽑기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직접 한번 진행해 보시죠.]

그렇지 않아도 내돈내산으로도 돌려 볼 생각이었는데, 대신 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나는 어느새 1회 무료 배지가 반짝이며 붙어 있는 뽑기(유료) 버튼을 눌렀다.

곧 뽑기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투출구가 열리며 동그란 캡슐이 하나 굴러 나왔다.

[눌러서 내용물을 확인해 주세요!]

정말 본격적으로 게임 같은 느낌인데…. 약간의 긴장과 함께 캡슐을 클릭하자 금빛 찬란한 휘광을 빛내며 캡슐이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틈 안에서 헤드셋 모양의 아이콘이 튀어나왔다.

‘뭐야?’

아이콘을 클릭하자 아이템의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진심의 통역기]

[등급] A

[5분 동안 지정한 대상의 진실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

별걸 다 주네. 기껏해야 어그로 수치 1단계 상승, 뭐 이런 걸 기대한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습득하신 ‘진심의 통역기’와 같이 현실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다양한 기능뿐만 아니라 페널티를 면제받거나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기능을 가진 아이템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꽤 괜찮은데? 제한 시간이라든가 지정 대상에 한해서, 같은 조건이 붙어 있으니 만능 치트 키는 아니겠지만.

이게 A등급이라면 S등급은 어느 정도일지 벌써 기대감이 부풀었다.

“한 번 더 돌려 볼게요.”

나는 곧장 다시 초기 화면으로 돌아온 뽑기 기계를 손으로 클릭해서 뽑기(유료)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조금 전과는 다른 은빛 광채와 함께 안경 아이콘이 튀어나왔다.

[호구 방지 안경]

[등급] B

[5분 동안 열람한 문장의 속내를 해석해 주는 안경. 계약서 등을 작성할 때 사용하자.]

오… 보아하니 캡슐이 열리기 전의 빛으로 아이템의 등급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아까 금빛일 때가 A였으니까, 은빛일 때가 B겠구나. A, B를 확인했으니 지금껏 본적 없는 화려한 색이 보이면 S급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내키는 김에 세 개 다 돌려 버리자.’

마음먹고 한 번 더 뽑기(유료) 버튼을 누른 그때, 생각지도 못한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인벤토리가 가득 찼습니다. 새로 뽑기를 진행하시려면 이전에 습득한 아이템을 처분해야 합니다.]

“…?”

내가 이게 뭔 소리야, 라고 얼굴에 써 놓은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케이 피디가 이어서 설명했다.

[현재 서인수 님께서 사용 가능한 저장 인벤토리는 총 2칸입니다. 새로 뽑기를 돌리시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 주셔야 합니다.]

[- 아이템 파기]

[- 아이템 양도]

파기는 알겠는데, 양도? 내가 이어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케이 피디가 마저 대답했다.

[‘아이템 양도’란? 서인수 님이 현재 소지 중인 아이템을 등장인물에 등록된 인물에 한해 1개 한도로 양도하실 수 있습니다.]

오… 임시로 양도해서 저장해 뒀다가 다시 뺏어 오는 것도 가능한 건가,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마치 소환 펫 가방처럼 생각하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케이 피디가 곧장 덧붙였다.

[한번 양도한 아이템은 다시 회수하실 수 없습니다. 더불어 일부 아이템의 경우 양도가 불가능하므로 아이템 특성을 확인 부탁드립니다.]

쳇. 그럼 머리를 잘 써야 되겠네.

슬쩍 지금까지 뽑은 아이템이 들어 있는 두 칸짜리 인벤토리를 보자 둘 다 설명 맨 아래에 (양도 불가)가 적혀 있었다.

그렇담 결국 양도 불가능한 아이템은 웬만해선 쟁여 두지 말고 그때그때 쓰는 게 좋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코인은 아이템으로 교환해 두기보다는 재화 상태로 들고 있는 게 낫고.

분명 굉장한 도움이긴 한데 제약이 주렁주렁 붙어 있으니 그렇게 와아 환호성이 나오지만은 않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묘하게 맥 빠지네….’

그래도 어쨌거나 도움은 도움. 당장 나온 아이템 두 개 모두 지금은 쓸 일이 없지만 효용이 아주 없지는 않을 듯했다.

“그거 말고 다른 제약은 없나요?”

나중에 가서 속느니 지금 미리 알아 두는 게 낫지. 꼼꼼하게 따져 묻기 위해 두 눈을 똑바로 뜨자 케이 피디가 한 가지를 더 실토했다.

[더불어 다른 연재 중인 소재 대상자는 등장인물 리스트에 수록되어 있더라도 양도하실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연재 중인 소재 대상자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소재 대상자가 나 말고도 또 있다고?

나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저 말고 다른 소재 대상자가 있어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묻자 케이 피디가 조금도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나요? 세계는 무궁무진하지 않습니다. 한 달에 쏟아지는 작품만 모든 장르를 합해 수백, 수천 종인데 세계관을 혼자 쓰다니 그런 이기적인 발상이 어디 있어요.]

“네?”

아니, 이건 ‘거, 세계 혼자 쓰나….’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거대한 연재물 안이라고 친다면, 여기에 ‘주인공’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뭐 요리왕일 수도 있고 방송왕일 수도 있고 천재 화가, 천재 피아니스트 등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는, 나와는 겹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혹시 가수나 아이돌을 꿈꾸는 주인공이 나 말고 또 있다면.’

그건 서로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는 거 아냐?

걔가 연예계 탑 먹고 나는 망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는 거 아냐?

나는 허둥거리며 생각을 정리해서 물었다.

“아니, 잠깐만요. 그럼 저 말고 다른 아이돌 지망생 주인공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쪽이 저희보다 먼저 성공하면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내가 최대한 침착하게 따져 묻자 돌아온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서인수 님.]

뭐, 그렇게 부르면 어쩔 건데. 내가 긴장한 기색을 숨기며 채팅창을 노려보자 케이 피디가 대답했다.

[왜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시죠?]

“뭐라고요?”

미리 안내 못 해서 죄송하다고 말은 못 할망정 그런 생각을 왜 하냐고?

[서인수 님은 지금 반년 이내로 ‘겟 데뷔 위드 미’를 성공시킬 생각으로 미션을 시작하신 것 아닌가요?]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겟데뷔’에서조차 성공할 자신이 없으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반짝, 빛을 발하며 올라온 채팅에 나는 곧바로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무슨 소리예요, 그건.”

[아니, 그렇잖아요. 이제 튜토리얼 겨우 끝내신 분이 벌써부터 다른 연재자들과의 경쟁에서 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

나는 어쩐지 케이 피디의 태도가 달라진 듯한 인상을 느끼며 등 뒤가 서늘해졌다.

[저희는 성공할 ‘기회’와 서인수 님의 인생을 교환했습니다. 저희가 보장한 건 ‘기회’지 성공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승리하고 기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건 서인수 님이 직접 수행하셔야 하는 과제입니다.]

“하….”

나는 쓴웃음과 함께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쩐지 X발. 나한테 이런 행운이 올 리가 없는데 너무 일이 잘 풀린다 했다.

‘나한테 준 건 기회뿐이라고.’

[서인수 님이 미션을 적절히 수행하시지 못할 경우 저희 측에서는 투자한 ‘기회’를 회수하기 위해 후속 대응에 나설 예정이오니 이 또한 유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대가로 넘긴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와닿았다.

그럼 그렇지. 세상일이 그렇게 쉽고 만만할 리가 없지.

회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 안전한 방식일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와서 거래를 무르실 수는 없습니다. 있다 한들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시잖아요.]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인생까지 팔아먹은 이상 더는 물러날 곳도, 방법도 없었다.

다른 연재자가 몇 명이든 이기는 건 무조건 나여야 했다.

[저희 쪽에서도 다른 회수 플랜을 가동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서인수 님을 서포트하겠습니다^^.]

하… 저 뒤의 갈매기 웃음을 보고 있으려니 열이 확 뻗쳤다. 그래, 이성적으로 냉정히 생각하자면 내가 속은 건 아무것도 없다.

경쟁자가 백이 존재하든 천이 존재하든, 나는 성공해야만 하고, 거래를 무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럼 메인 미션 시작에 앞서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연재 기록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상태창이 뷰어 모양으로 전환되며 긴 줄글이 나타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