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이러려던 건 아닌데 (1)
[너~~를! 사랑! 하! 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네, 주변! 을~! 맴돌~~~아!]
표정 연기만큼은 천상 락 발라더 같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지르는 소리는 과장된 음치의 돼지 멱따는 소리다 보니 대기실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심사 위원들도 하나둘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등을 돌려 어깨를 떨었다.
[내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줘!]
[세상! 끄~~~읕까지! 영원할! 사랑을…!]
‘…….’
다들 포복절도하며 쓰러진 와중 오로지 나만이 정색한 채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 거기까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지원서로 얼굴을 가린 채 오열하던 심사 위원이 조항준을 멈춰 세우고 나서야 장내가 겨우 진정되었다.
‘이게 웃겨?’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한심했다. 본인한테는 여기 앞에 서서 연습생 흉내 좀 내는 게 대수롭지 않은 홍보 기회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프로그램에 투자한 투자사는 물론, 제작사와 PD, 작가, 그리고 방영을 결정한 방송사에게도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모든 사람들의 꿈과 노력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놓고서 웃음이 나와?
조금 전까지는 눈에 띄는 연습생이 또 없나 살피는 캐스팅 담당자의 마음이었으나 피가 한순간에 차게 식었다.
‘그냥은 못 넘어가지.’
나는 조항준이 당당히 합격 키트를 쥐고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순서로 내 번호가 불렸다.
“299번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드디어 내 차례였다.
자신만만하게 나 함부로 못 떨어트릴걸? 지껄여 놓은 게 있으니 실력은 확실히 보여 줄 생각이었지만 너무 모든 패를 까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마음이 싹 사라지네.’
조항준에 이어 내 번호가 불린 순간 승부욕이 치밀었다.
번호를 호명해 준 스태프를 따라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가자 약간 적대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심사 위원들이 보였다.
꼭 ‘얘가 걔야?’ 하고 얼굴에들 써 놓은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조항준 때문에 불이 붙은 마음에 기름이 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는 별개로 머리가 더욱 차게 식었다.
‘이쪽도 아무런 능력 없이 입바른 소리 하고 다녔던 게 아니라고.’
나에게 혼나던 아진의 얼굴이 괜히 기억을 한번 스쳤다.
나는 침착하게 단상 한가운데에 서서 웃으며 인사했다.
모두가 내가 증명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299번 개인 연습생 서인수입니다.]
짧은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대기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안쪽까지 넘어왔다.
당연했다. 지금까지 내가 NO뉴페이스로 했던 활동만 얼마인데. 조금 전 영인이 팬이라고 했던 걸 그룹 뮤비의 첫사랑 남아 역으로 출연한 게 나였다.
그것뿐인가? 연말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공개하는 연습생 무대 영상 등에도 가장 자주 얼굴을 비췄었다.
차세대 NO 핵심 멤버로 손꼽혔던 내가 개인 연습생으로 소개를 하는데 이런 반응이 아니면 그게 이상한 거였다.
심사위원 모두 어디 계속해 봐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희망 포지션은 메인 보컬, 올 라운더지만 보컬이 제일 자신 있습니다.]
처음 연습생으로 합류했을 때만 해도 보컬과 비주얼만이 강점이었지만, 사람이 연습생 생활을 10년을 넘게 하면 올 라운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랩도, 댄스도, 그쪽이 아예 강점인 천재 연습생에 비하면 아무래도 밀릴 수밖에 없지만, 웬만한 어중이떠중이 서브 댄서, 서브 래퍼보다는 내가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쪽은 10년을 연습실에서 보냈다고.’
전혀 자랑이 아니었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바로 이어서 반주를 요청했다.
[그럼 바로 준비해 온 심사 곡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내 얼굴 다 알고 내가 누군지도 알 텐데 더 긴 소개가 필요할 리 없었다.
스태프를 향해 흘긋 바라보며 미소 짓자 스태프가 음향 담당에게 손짓을 하고는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노래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연습생들의 발버둥 듣느라 고생했으니 귀 정화 한번 시켜 드려야지.’
나는 활짝 웃어 보이고는 마이크를 스탠드에서 꺼내 쥐었다.
내가 선택한 심사 곡은 강렬한 비트가 거칠게 끌고 가는 10인조 그룹의 댄스곡이었다.
음정은 전체적으로 그렇게 높지 않아서 부르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으면 이거 안 골랐다.’
그냥 부르는 것과 잘 부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내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One, two, 막을 올려, 지금.]
[판에 불을 붙여 fire, 주목받는 기분?]
매끄럽게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상태가 좋아.’
간단히 상태만 체크한 거 말고는 회귀 후 처음 제대로 잡아 본 마이크였다. 조금도 상하지 않은, 건강한 목에서 나오는 힘찬 음색은 내가 듣기에도 유연하게 내리꽂혔다.
첫 소절을 들은 심사 위원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게 변했다.
‘회귀 전보다 더 잘할 수 있겠어.’
자신감에 확신이 바짝 붙었다.
내 강점은 올 장르를 넘나드는 안정적인 보컬. 트로트는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팝 댄스부터 발라드, 락 어느 걸 불러도 완벽하게 소화할 자신이 있었다.
‘내가 팝이나 발라드, 락 잘 부르는 건 알지?’
그러니 지금 보여 줄 건 다른 패였다.
[나쁘지 않네. Swing it. 다 같이 흔들리는 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안정적으로 뻗는 고음, 불안감이라곤 없이 받쳐 주는 저음. 활용할 수 있는 음역 폭이 넓은 것은 물론 숨 쉴 빈틈이 없는 곡에서도 여유를 보이는 폐활량까지.
거기에 더해 모든 장르를 내 스타일대로 매끄럽게 녹여내는 능력이 있었다. 계속 듣고 싶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난 딱 중심을 잡아. 발을 딛고 서.]
[반짝이는 universe, 그 안에 진짜는 하나.]
여유 있는 표정으로 각각 다른 음역대를 가진 10명이 가까스로 소화하는 곡을 완창하자 장내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의심에서 시작해 놀라움으로 넘어갔던 심사 위원들의 표정은 어느덧 감탄에 가까워져 있었다.
낮게 깔리는 저음 싱잉 랩부터 고음 브리지까지. 어디 넣어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만능 보컬.
어느 파트를 부르게 해도 최고의 기량을 잃지 않는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밝게 웃어 보였다. 넋을 놓고 있던 심사 위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역할이 다시 떠올랐다는 듯 침묵 속에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할 말이라곤 칭찬밖에 없을 텐데도 애써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려 하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서인수 연습생.]
그렇게 무게 잡고 부르면 뭐 어쩔 건데. 나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대답했다.
[네.]
그러자 피식, 제작사 쪽 결정권자로 보이는 남자가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메인 보컬 말고 다른 포지션은 관심 없어요?]
있겠냐?
겟데뷔에 출연 신청한 전체 연습생은 물론이요 지금 데뷔한 현역 아이돌들과 비교해도 나보다 보컬 나은 애들이 없는데.
나를 메보로 안 세우면 누구를 세워? 메보를 나 말고 누구를 앉혀 놓든 서브보다 못한 메인이라고 조롱받게 하고 싶어서?
나는 마찬가지로 가볍게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없습니다.]
그러자 누구랑 무슨 기 싸움 하자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지지 않았다.
[메인 보컬 자리를 인수 군만 노리는 게 아닐 텐데.]
네가 이길 수 있겠느냐는 비웃음이었다. 여기서 도발에 넘어가면 안 된다. 이보다 더 X같은 상황도 겪어 봤으니 얼마든지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조금 더 들어 올린 다음 여유를 담아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제일 잘할 거라서요.]
자신감 넘치는, 그리고 그 자신감만큼이나 근거도 넘치는 말에 오디션장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던 연습들이 오오, 호응해 주었다.
300번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어서 나 같은 건 내쳐도 괜찮겠다 싶은 건가? 하지만 나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나 못 떨어트리지? 내가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듯 눈웃음을 치자, 다른 심사 위원이 내게 시비를 걸었던 심사 위원을 말렸다.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무대 기대할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주위가 온통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다시금 마이크를 쥐었다. 어차피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끌고 가려면 조항준과는 부딪혀야 했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확실하게 조항준을 내리누르고, 내가 있는 한 이 프로그램에서 조항준은 데뷔 못 합니다, 확실히 보여 주려면 지금부터 선전 포고를 해야 했다.
때마침 순서도 잘 걸렸겠다. 나는 후, 짧게 심호흡을 하고 웃었다.
“저는 희극인이 아니라 가수가 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실력으로 증명하겠습니다.”
노골적인 선언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다. 오오~ 띄워 주는 것 같은 호응이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대부분이 아까 같이 쪼개고 있더만. 모욕을 당하고도 당했는지도 모르는 놈들과 데뷔까지 함께 갈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가셔서 준비 키트 받아 가시면 됩니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심사 위원 중 한 명이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결과야 예상했던 대로 당연히 통과였다. 유유자적한 표정으로 준비 패키지를 들고 오디션장을 나서기 무섭게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덮쳤다.
“…!?”
뭐야? 화들짝 놀라 내게 느닷없이 어깨동무를 건 얼굴을 확인한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 진짜 잘 들었어요!”
조금 전 단상 위에서 화려한 응원 봉 조명으로 눈뽕 테러를 했던 장본인이었다.
“…?”
내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는 듯 주춤거리며 어깨동무에서 벗어나려 하자 녀석이 화들짝 손을 거두며 웃었다.
“아!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요! 근데 진짜 완전 멋있었어요. 역시 NO!”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린 채 영인을 훑어보았다가 정정했다.
“NO 아니에요, 출신이긴 하지만.”
그러자 영인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NO 출신이나 NO나 똑같죠!”
뭐가 똑같아. 전혀 같지 않았다.
“아뇨, 완전 달라요. 퇴사한 연습생이 계속 전 소속사 팔아먹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요.”
혹시라도 뭔가 문제가 될까 싶어서 정정하자 영인이 태평하게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그거나 그거나 같은데. 아무튼 존멋이었어요! 완전 사이다!”
외국에서 태어나서 쭉 외국에서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런 단어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일방적으로 쭉쭉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텐션에 피로를 느끼기도 잠시, 그렇잖아도 한 번 정도는 얘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합숙 시작까지는 아직 2주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사이에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영인은 가까이 지내서 크게 나쁠 것 없는 상대였다.
‘방송 때 입을 잘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
짧은 결론과 함께 영인을 바라보자 예의 산뜻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영인 씨? 라고 일단 부를게요.”
“엥, 영인 씨가 뭐예요. 그냥 야, 라고 하셔도 돼요. 말 편하게 해요!”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저쪽도 존댓말이 편한 거 같진 않았다.
“몇 살인데요?”
일단 나이는 알아 둬야지. 그러자 영인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 나이로 열아홉! 만으로 열여덟이요!”
‘…어리군.’
나는 산뜻하게 태도를 바꿔 웃어 보였다.
“그럼 우리 잠깐 카페 가서 얘기 좀 할까요?”
우선은 탐색전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