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7화 (7/224)

#007. 이런 누추한 곳에 (1)

“인수 군, 지금 이게 뭐 대단히 불합리하거나 특혜 같은 게 아니니까요. 원래 센터는 사전에 다 협의하는 거예요.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PD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하지만 어림없지. 아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여기서 타협할 거면 내 실력으로 이겨 보이겠다는 다짐이 모두 의미가 없는 허풍이 되는 셈이었다.

“아뇨. 기껏 좋은 제안 주셨는데 긍정적인 답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제가 열심히 제 팬분들 시청자로 끌어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할게요.”

내가 완강히 버티자 이럴 줄은 예상 못 했다는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 NO에서 갑자기 나왔으니 데뷔조에서 짤려서 방출된 줄 알았나 보지? 기회만 주신다면 뭐든 감사합니다 넙죽 사인할 줄 예상했던 것이 빗나가 다들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인수 군, 지금 뭔가 오해가 있어서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네가 뭐라고 말해도 설득당할 생각이 없어요~ 하고 얼굴에 써 놓은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저보고 단체 미션 센터 보장하는 대신 데뷔했을 때 정산 수수료 더 내라는 말씀이신 거잖아요? 제가 혹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까요? 여기 ‘갑은 을에게 99인 단체 무대의 중앙 1열 배치를 보장….”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가가 허둥거리며 내 입을 틀어막았다. 겨우 침착한 내색을 되찾은 피디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진땀을 흘렸다.

“인수 군, 우리도 인수 군을 생각해서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그렇게 뭐 우리가 순위 조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펄쩍 뛰면 우리도 좀 곤란해. 인수 군이랑 같이 일하기 힘들 수도 있어. 잘 생각해.”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는 파들거리려 하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눈웃음을 치고 웃었다.

“아뇨, 그렇게 못 하실걸요?”

내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갈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 4대 가수 기획사, NO, KSD, 연성, 피아체. 일명 대형 4사에서 연습생이 단 한 명도 참가하지 않은 걸 뻔히 확인했으니까.

그나마 NO 데뷔조 출신이라는 딱지라도 있어야지, 아, 좀 실력 있는 연습생들이 있나 보다 기대라도 하지.

대중들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중소 소속사의 미공개 연습생들 98명보다 대형 출신 한 명의 홍보 효과가 더 클 터였다.

“저 꼭 필요하시잖아요. 대형 출신 저 말고 아무도 지원 안 한 거로 아는데.”

나는 싱긋 웃으며 계약서에서 별첨만 따로 설명하는 페이지를 똑 뜯어 내밀었다.

“현명하게 생각하세요, 어느 쪽이 프로그램에 더 도움이 될지. 저는 결정을 내렸으니까 판단은 PD님이 직접 하시면 되세요.”

***

잠시 후 회의실을 빠져나온 나는, 건물 밖을 나서자마자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안 먹힐까 봐 잠깐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하게 나간 것이 정답이었는지 별첨 조항은 없던 일로 마무리되었다.

‘인수 군 진짜 무섭다, 무서워.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안 봤으니 나를 호구로 알고 휘두르려 들었겠지. 겉보기에는 내게 특혜를 주는 대신 수수료 장사를 하려는구나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1년 동안의 활동 계약을 담당하는 건 다른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방송사와 제휴한 중형 소속사일 테지.

1년간의 활동이 끝나면 개인 연습생 신분의 멤버들은 이적 문제로 여러 분란에 휩싸일 터였다.

‘그때 얌전히 놓아주면 좋겠지만.’

온갖 추잡한 소송전에 휘말리면 이런 계약서가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쪽에서도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조작 논란으로 번질 수 있어 쉽게 공론화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상대가 잃을 것이 없는 상태로 오직 나 하나 흠집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약점을 만들어 둘 필요가 없었다.

‘그때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다 떠나서 이런 치졸한 수를 쓸 거였으면 진작 NO에서 이름만 올리는 거 그깟 게 뭐라고 OK 하고 데뷔했지.

저쪽도 나를 함부로 내치진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세게 나가자 결국 제작사 측에서 먼저 백기를 들었다.

‘무섭고 지독한 건 그쪽들이겠지.’

나는 걸리는 조항 없이 깔끔한 출연 계약서에 서명을 마쳤다. 그리곤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던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오늘 있었던 제안은 저는 못 들었던 걸로 해 드릴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작진을 향해 흔들어 보인 화면에는 방송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줄곧 켜 놓았던 녹음기가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 저….’

그 모습을 본 PD가 뒷목을 잡자마자 나는 더 말이 나올라 재빨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미션 클리어!]

[튜토리얼 미션 ▷ 나여야만 하는 이유]

[사이다 지수가 (높음) 상태로 상승하였습니다.]

[첫 상승 보너스로 코인 1개가 지급됩니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다. 거기서 순순히 받아들였으면 아마 사이다가 후두둑 떨어져 나갔겠지.

독자들이 바라는 건 내가 여기저기서 들이닥치는 압력에 휘둘리는 모습이 아닐 테니까.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매번 이렇게 빠져나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답답해서 더는 못 지켜보겠다.’ 탈주하는 사태는 막아야 했다.

‘이런 데서 요령 있고 싶지 않았는데….’

NO를 나와 들어간 중소 기획사가 망한 이후,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에게서 말 바꾸기를 당한 탓에 대비가 철저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증거를 안 남겨 두면 딴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그걸 개인 차원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 기획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녹음까지 해서 증거를 남겨 두지 않았으면 나중에 진흙탕 싸움이 났을 때 이쪽에서 낼 패가 하나 줄어드는 셈이었을 터다. 저쪽에서 증거 있냐고 우기면 그만이었을 테니.

‘그럼 이제 남은 건….’

짧게 숨을 고르고 축하 메시지를 내리자 예상했던 대로 마지막 튜토리얼 미션 안내가 나타났다.

[튜토리얼 미션]

[우리여야만 하는 이유]

[- 독자님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한 동료를 한 명 이상 만들기]

이게 어그로겠구나. 확신이 서는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

지금의 나는 우리는 무슨 당장 잘 보여도 모자랄 제작진들에게 협박이나 하고 나온 참이었다.

[이번 미션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2차 현장 오디션 때까지 잠시 유보됩니다.]

[현장 오디션까지 남은 기간 동안 실전에서의 어필을 위해 개인 역량을 충분히 다듬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개인 역량을 다듬으라고 해도…. 나는 얌전히 거울 앞에 서서 지금의 내 상태를 확인했다.

‘비주얼 이만하면 괜찮고, 목 상태도 좋고…. 지금 한창 어릴 때라 관리 같은 거 안 받아도 뽀얗고 이쁘기만 한데….’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무섭게, 창문이 꽁꽁 닫혀 있는데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웃옷이 펄럭였다.

“윽.”

시기상 그렇게 열심히 관리를 한 시점은 아니었기에, 군살은 없지만 영 심심한 배가 훌렁 드러났다.

[개인 역량이 정말 페이스와 보컬에만 한정된 단어일까요?]

알았다, 알았어. 내가 눈치 보여서라도 간다, 가. 나는 투덜투덜 튀어나오려는 불평을 삼킨 채 오늘은 산이 아닌 근처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

그렇게 운동으로 보낸 2주일이 지나고, 2차 현장 오디션 날짜가 발표되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인원은 최종 선발 연습생인 99명의 약 3배수. 300명이 이틀에 걸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 오디션을 진행한다고 했다.

요컨대 ‘어, 얘 잘될 것 같은데?’ 판단하고 동료로 섭외하려고 들어 봤자 3분의 2 확률로 현장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 눈에 괜찮아 보일 정도면 현장 오디션 정도는 어렵지 않게 통과하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너무 매의 눈으로 한 명 한 명 살필 필요는 없다. 나는 최대한 마음가짐을 가볍게 가지기 위해 노력하며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오디션장은 모 대학교 체육관이었다. 수백 명을 가뿐히 수용할 수 있는 강당 안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연습생들이 저마다 입구에서 배부받은 번호를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번호가… 접수 순서대로 부여된다고 했었나.’

나는 거의 마감 직전에 연락을 넣었기 때문에 299번이었다. 거의 끝 번호를 받은 것도 예상은 했던 동시에 놀라운데, 그보다 더 놀란 건 내 뒤에도 합격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만큼 화제가 될 연습생이 또 있었다고?’

마감 직전쯤 접수되는 메일들은 담당자 성격에 따라 기회도 잡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정말 절실한 녀석이면 진작 신청하고도 남았지, 같은 삐딱한 편견을 바닥에 깐 채 심사를 받았는데도 붙은 거면 실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인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오늘은 홀수 번 참가자가 집합하는 날이었다.

‘짝수 번이라 확인을 할 수가 없네.’

첫 번째 등급 심사 때에나 보게 될 예정이었다. 겟데뷔에 그 정도로 눈에 띄는 연습생이 있었던가?

솔직히 이만큼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누구인지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기다려 보면 알게 되겠지.’

대기 의자가 줄지어 늘어져 있는 내부에 도착한 나는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연습생들을 둘러보았다.

“음….”

같은 소속사에서 온 듯한 고만고만한 나이대의 연습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어차피 오디션은 안쪽 심사장에서 보니까 떠들어도 상관없다 이거지? 개중에는 긴장을 쫓아내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놈들도 섞여 있었다.

‘3배수를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은 거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망스러운 수준에 한숨을 삼키기도 잠시, 근처에서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말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거 바꿔 주는 게 엄청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아무도 모른다니까?”

또 뭔 일이야?

“여기까지 와서 짜증 나게 굴지 마. 대표님 말씀 기억 안 나?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더 가망성 있는 사람이 붙어야지. 왜 고집을 부려?”

애들끼리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소란스러운 방향을 바라본 순간,

‘어?’

눈이 번쩍 뜨였다.

‘얼굴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번호 아래에 붙어 있는 소속사명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XYZ엔터…? 처음 듣는 곳인데.’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커다랗고 동그란 눈동자, 아직 덜 빠진 젖살에 유약해 보이는 하얀 피부까지.

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곱상한 얼굴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뒤지기를 잠시.

‘아!’

유레카를 외치는 과학자의 심정이 되며 눈이 번쩍 뜨였다.

‘유지원?’

누구를 동료로 끌어들여야 할지 시작부터 치트 키가 나와 버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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