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설득의 과정 (1)
[- 서인수 님의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Hint!]
[-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모습과능력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데 성공하면 ‘사이다’ 지수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무능하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사이다가 후두둑 까인다는 뜻이겠지.
‘사람이 어떻게 내내 잘나가는 모습만 보여 주고 사는데….’
불평이 먼저 떠올랐지만 당장 나부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긴, 영화도 무슨 끝나기 10분 전까지 개고생만 하다가 갑자기 급전개를 틀어서 해피 엔딩이라고 하면 누가 재밌다고 봐.’
윽… 나는 영화관에서 거의 자다시피 본 작품에 별점 1점을 하나 추가하며 했던 악평을 떠올리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잘 만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을 한번 떠올려 봤다. 그 이야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만 가득했었나?
‘그럴 리가 없지.’
그래서야 이야기에 기대감이 생길 리가 없다. 다양한 굴곡을 통해 기대감을 갖게 하고, 종장에서는 그 기대감을 있는 힘껏 만족시켜 줘야겠지.
거기에 중간중간 소소한 만족감도 줘야 할 거고.
‘그게 쉽나….’
내 지난 14년이 노잼, 노 어그로, 노 개연성, 노 사이다였는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단 수락부터 하자.’
튜토리얼을 패스할 수는 없으니 수락 버튼을 누르자 케이 피디가 언제든 상담해 달라는 듯 덧붙였다.
[튜토리얼 진행 중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호출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당장은 나 스스로 아무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도움부터 받고 싶진 않았다.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사이다… 내 능력, 내 매력… 여러모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로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은….’
겟 데뷔 위드 미, 일명 겟데뷔를 어떤 신분으로 나갈 건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아직 NO엔터 소속. 내가 희망하기만 하면 NO엔터 소속으로서 대형 소속사의 이점을 쥔 채 참가할 수 있었다.
‘음….’
그러면 당연히 NO엔터 소속으로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 낫겠지만.
‘그러면 나중에 데뷔를 한다고 해도 또 내가 데뷔조를 나온 이유 같은 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NO엔터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절하는 것이 나았다. 단순한 자존심 문제라기보다는, 앞선 경험에서 신뢰가 무너진 탓이 컸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데뷔 못 하고 방황한 기간이 길다지만 출연이 그렇게까지 거절된 건… NO엔터 입김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지.’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팬들을 속이지 않았다고 나간 연습생 앞길이나 막아 대는 놈들과 다시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아직 NO엔터 출신 타이틀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때니 부르는 곳이야 많았다.
실제로도 내가 이번 보이 그룹 프로젝트의 주축 멤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빼 가기 위해 시도했던 기획사도 있었다.
‘자기네 쪽으로 넘어오면 회사의 사활을 걸고 밀어주겠다나 뭐라나….’
나도 겟데뷔 제작사이자 유통사인 KMB에 좀 입김을 세게 작용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옮기는 게 나으려나….
‘음… 아냐.’
데뷔에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개인 연습생 신분이 아니면 걸리는 것들이 많았다.
데뷔 후 스타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하면 일단 몸값이 뛴다. 프로젝트 그룹으로서 활동하기 전과 후의 네임 밸류가 다를 텐데 계약 조건은 아마 출연을 결정할 때 그대로일 거란 말이지.
때문에 출신 소속사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기느라 소송전을 불사하는 아이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개인 연습생으로 참가하는 게 편할 것 같긴 한데.’
내 기량이면 소속사의 푸시 없이도 1차 동영상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거기에 NO엔터 공개 연습생으로 나름 인지도까지 쌓은, 심지어 ‘가능성까지 갖춘’ 내가 회사를 나와 개인 신분으로 참가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덩굴째 굴러 들어온 기회였다.
‘그러면 역시 무소속이 나으려나….’
개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나 소속사 소속일 때의 이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계약 조건은 좀 꼬일 수 있어도 혹 데뷔가 불발됐을 때 돌아갈 곳이 있으니 든든하긴 하지.
서바이벌에서 상위권에 드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팬덤 몰이에 성공한 연습생은 데뷔조 1순위에 알 박기 할 수 있었다.
‘당장 프로그램 방영 끝나자마자 두 달도 안 돼서 데뷔할 수 있게 모든 판을 다 짜 놓겠지.’
그때는 프로듀싱으로 이름만 올리라는 제안을 거절해도 함부로 불이익을 주진 못할 것이다.
‘음….’
잠시 침대에 다시 드러누워서 고민하던 찰나, 방문 바깥에서 박박박박 뭔가 긁는 소리가 들렸다.
‘진순이군.’
아마 양어머니와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내가 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잘 다녀왔어?”
방문을 안쪽으로 열어 주며 진순이를 반기자 30kg에 달하는 거대한 털 뭉치가 내게로 날아올랐다.
“으악, 잠깐만! 진순아!”
헥헥헥헥, 막 끝내주는 산책을 마친 진순이가 내 얼굴에 뜨거운 콧김과 침을 뿜어 댔다.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도 뵙고 의지도 다지고 좋은 건 좋은데….
‘빨리 자취방으로 가자.’
이래서는 하루 종일 진순이에게 시달리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잠시 후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자 생각이 좀 더 분명해졌다.
아무리 이점이 있어도 NO로는 안 간다. 더럽고 치사해서 NO랑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각오를 하자마자 혹시 이것도 사이다에 해당하지는 않으려나 옅은 기대를 품었으나….
“…….”
시스템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암요, 그렇죠. 이런 걸로 사이다라고 느끼실 리가 없죠.
나는 냉혹한 평가의 세계에 눈물을 삼키며 NO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작별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계약서상으로는 연습생 기간이 만료된, 일종의 프리 상태였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다음 데뷔조 합류가 확정되어 있는 만큼 내가 아티스트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면 그것대로 소속사로선 날벼락 같은 이야기일 터였다.
‘어떻게 해야 NO가 나를 순순히 보내 주게 할 수 있지?’
지금부터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
“인수야, 진짜 너무 아쉽다. 형이 너 많이 아낀 거 알지?”
나는 세상 서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기획팀장님을 보며 하하,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알죠.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야 뭐… 어디 가서도 잘할 녀석이니까 걱정은 안 되긴 하는데… 혹시라도 잘 안되면 연락해. 형이 대표님 잘 설득해 볼게.”
많이 아끼긴 개뿔. 내가 프로듀서로 이름 안 올리겠다고 했을 때 니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군다고 최선을 다해서 후려쳤던 인간이.
마음 같아서는 개소리하지 마세요, 면전에 대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눌러 참으며 좋게 마무리를 지었다.
“아녜요. 제가 한 선택이니까 책임지고 해 봐야죠. 말씀은 감사드려요.”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NO와 싸우지 않고 나오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솔로병’이었다.
NO엔터는 그룹 명문이라 불릴 만큼 단체 활동에 집착하는 회사였고 그 어떤 히트 그룹도 솔로 데뷔를 시켜 준 이력이 없었다. 다 계약 만료 후 나가서 냈지.
개인이 OST 작업 같은 개인 곡을 발매하는 일은 있어도 아예 솔로 음반을 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회사에서 솔로 아니면 데뷔 안 할 거라고 조건을 내걸었으니 반려 당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진을 핑계 중 하나로 삼았다. 아진이 그동안 연습생으로 지내며 했던 온갖 일탈 행동들을 고발하자 팀장도 할 말을 잃었다.
데뷔 예정이었던 연습생이 일개 꼴찌 연습생 때문에 생활이 너무 불편했다는데, 할 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걔가 그랬어?’
아진은 내 미팅이 진행되는 중간 관리 쌤들에게 불려가 호되게 지적을 당했다.
‘흥….’
미팅을 마무리 짓고 나오다 마주친 아진의 울먹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불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될 놈이면 저러고도 잘되겠지.’
이제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계약 기간이라도 남았으면 어떻게든 붙잡았겠지만 나는 장기 연습생이라 계약이 이미 끝나 버린 것도 있어서 결국 보내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근 여섯 시간을 네가 여기 나간다고 솔로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냐 설득을 위한 후려치기를 해 대더니.
어떻게 해도 강제로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자 체념하고 놓아주는 꼴이 가증스러웠다.
‘다신 쳐다도 안 본다, 개자식들아.’
NO와의 관계를 청산한 나는 곧바로 KMB의 개인 연습생 참가 신청 창구에 오디션 영상을 보냈다.
간만에 삼각대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내 앳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삼 과거로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스물한 살의 나는 정말 어렸구나.
이때만 해도 내 인생이 그렇게까지 꼬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회한에 잠기기도 잠시,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1차 동영상 오디션을 통과하는 데는 내 이름 석 자면 충분하겠지만 그 이상의 임팩트가 필요했다.
“흠흠.”
나는 짧게 헛기침을 한 다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개인 연습생 서인수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오래 함께했던 소속사를 떠나 홀로 독립했습니다. 짧게 준비한 보컬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작년 연말 평가 때 불렀던 유명 OST 곡의 커버를 불렀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애절한 감정선이 돋보이면서 기교도 자랑할 수 있는 곡이었다.
[너를 너무 그리워한 게 죄라면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내 짧은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너만을 사랑하게 해 줘-]
아직 목을 많이 쓰기 전이어서 그런가. 회귀하기 전보다 음정 찍는 흐름이 상당히 매끄러웠다.
‘젊다는 건 좋은 거구나….’
또래들은 아직 흉내도 못 낼 감정선을 덧붙여서 보컬 시연을 끝낸 나는 한마디 쐐기를 덧붙이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겟데뷔를 시즌 2, 시즌 3까지 나올 수 있는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성공시켜 드리겠습니다.”
아직 데뷔도 못 한 주제에 이게 무슨 자신감이냐 웃겨 보이겠지만 진심이었다. 이게 안 되면 나도 같이 망하는 길이었으니까.
이 자신만만함이 독인지 약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왔다!”
영상을 보내고 1시간, 생각보다 빠르게 입질이 왔다.
[010-XXXX-XXXX]
[안녕하세요, 서인수 연습생님. KMB 예능국 우정연 작가입니다. 겟데뷔 출연 신청 관련하여 통화 가능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