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제 인생이랑 거래할 거 있나요 (3)
“왕-! 왕, 왕왕-!”
성견이 된 후로는 얼굴도 잘 보지 못했는데 나를 볼 때마다 황송할 정도로 반겨주는 진순이었다.
“윽, 잠깐, 잠깐만!”
내가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기도 전에 진순이가 내 배를 향해 주둥이를 들이밀며 돌진했다.
“악-!”
단단한 주둥이가 배를 찌르는 순간 정말 눈물이 날 만큼 아팠다. 진순이는 30kg나 나가는 수컷 믹스견이었다.
여자애도 아닌데 왜 진순이냐는 물음에 양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 같은 때에 남자 이름, 여자 이름 같은 게 어디 있어?’
심지어 진순이는 진돗개도 아니었다.
귀가 곱게 접혀 있는 것으로 보아 시고르자브종 중 풍산개가 제일 많이 섞여 있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었다.
아무튼 30kg이나 되는 개가 단단한 앞발로 사정없이 패는데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진순이에게 애원하며 뒷걸음질 쳤다.
“진순아, 제발, 조금만 진정하자. 한 번만 봐주라.”
내가 거의 흐느끼듯 진순이의 앞발을 붙들자 나를 냅다 뒤로 자빠트리고 얼굴을 침 범벅으로 만든 진순이가 만족스럽게 짖었다.
“왕-!”
그 뒤로 아버지가 허허,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웃었다.
“오랜만에 형 봐서 좋다잖냐. 앞으로 자주자주 좀 다녀. 곧 데뷔하면 얼굴 보기 더 힘들어질 텐데.”
윽… 머리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양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한 번 내상을 입고 말았다.
아무렴 지금의 나는 데뷔해 마땅할 시기이긴 한데… 면목이 없었다.
“네, 으음….”
진순이의 어택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나니 어색한 기류에 진땀이 흘렀다.
원래 집에 가면 내가 뭐라고 했더라?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오래 고생했으면서 제대로 빛 한번 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왕래를 못 했더니 머릿속이 잠시 새하얘졌다.
내가 멈칫거리고 있으니 진순이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경쾌하게 짖었다.
“왕!”
“하하, 진순이가 많이 신났나 보구나. 얼른 안으로 들어와라. 저녁 해 놨다.”
“…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자연스럽게. 나는 진순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실내로 들어갔다.
거실 한복판에 걸려 있는 내가 중학생일 때 찍은 가족사진, 초등학생 때부터 썼던 낡은 전시장, 익숙한 무늬의 벽지까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져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진순이가 나를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끼잉?”
“아무것도 아냐.”
나는 진순이의 머리를 다시금 빡빡 쓰다듬어 준 다음 손을 씻고 식탁으로 갔다. 양부모님이 함께 준비해 주신 식사가 따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살짝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내가 수저를 든 것과 동시에 진순이를 포함한 세 쌍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처음에는 간만에 집에 돌아온 내가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이 보고 싶으신 건가 싶었다.
“……?”
하지만 몇 술을 떠도 두 사람과 한 마리 분의 시선은 내게서 자연스럽게 떨어지지를 못했다.
체… 체할 것 같아.
왜, 뭐, 뭐지? 나 혹시 과거에서 돌아온 거 티 나나? 나는 필사적으로 고민을 숨기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흠…. 크흠….”
그렇게 식사를 이어 나가길 잠시, 양아버지가 본격적으로 뭔가 신경 쓰이는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듯했다.
다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그러자 양아버지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화색을 띠며 호응했다.
“어어, 그래. 말해 봐라. 듣고 있으니까.”
이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 나는 숟가락을 식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물었다.
“저한테 뭐 부탁이나… 하실 말씀 있으세요?”
간은 이미 두 분이 충분히 보셨으니 돌려서 말할 것도 없이 직구를 꽂았다.
양어머니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부탁은 무슨! 우리는 그저, 그….”
“인수야.”
양어머니가 머뭇거리기를 잠시, 양아버지가 바통을 받았다.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으면 속 편히 이야기하고. 우리는 네가 반드시 성공할 사람이라고 믿는단다.”
“네?”
예상치 못한 말에 살짝 얼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아니, 인수 네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애가 아닌데…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돼서….”
“아….”
그렇구나.
새삼 긴 시간 두 분을 제대로 뵙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어유, 그걸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어떡해!”
“참, 인수도 벌써 눈치 다 챈 것 같은데 뭘 그래요? 우리가 말 안 한다고 속일 수가 있나.”
아아…. 두 분의 반응을 보니 혹 내가 또 데뷔조에서 밀렸거나 해서 뭔가 충격받은 일이 있어서 집에 오겠다고 한 줄 아신 듯했다.
‘미래의 일을 말하자면 그렇게 되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NO엔터에서 데뷔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일단 양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 보였다. 항상 나를 누구보다도 응원해 주는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내가 그만큼 더 잘됐어야 했는데….’
퍼뜩 오늘 온 김에 해야 하는 말은 부모님이 듣기엔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히 대형 기획사 소속으로 데뷔만 기다리면 되는 놈이 갑자기 서바이벌을 나간다고 하면….
‘미쳤나 싶겠지.’
과거의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출연을 고사했으니까. 애초에 소속사에서도 진지하게 권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기회가 있어서 우리 소속사 애들도 몇 명 제안을 받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정도였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고, 회사도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받아들였다.
지금은 그걸 가야 한다고 하는 입장인 거지, 내가.
‘…….’
생각만으로도 일단 한숨이 나왔다. 내 표정이 잠시 어둡게 물들자 양부모님도 ‘거봐, 무슨 일 있는 거 맞나 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할 거라면 그냥 지금 말해 두는 게 낫겠다. 나는 짧은 고민을 마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별일… 은 아니긴 한데요.”
내가 운을 떼자 두 분이 어서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 보려고요. 그 요즘 케이블에서 많이 하는 거 아시죠? 연습생들 모아 놓고 데뷔조 뽑아서 데뷔시키는 거요.”
“어어, 알지….”
양아버지가 우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 근데 그걸 왜 네가 나가니? 너 이번에는 꼭 데뷔조 넣어 준다고 한 거 아니었어?”
윽. 정곡이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네네, 데뷔조 확정은 맞는데. 이번에 제안이 들어와서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소속사 데뷔조로 안정적으로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음…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서바이벌로 나가면 홍보도 될 수 있고 개인 팬들도 모을 수 있으니까….”
“개인 팬이라면 지금도 많지 않니?”
걱정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이렇게 놀라실 줄은 몰라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불쑥 튀어 나간 건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본심이었다.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요.”
뭘? 속으로 답을 내기도 전에 답이 먼저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제가 제 실력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요.”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제대로 된 기회가 없어서 발견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정말 이 길이 맞지 않는 무재능이었던 건지.
이 바닥이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판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난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내 착각이었다면? 내 압도적인 장기라고 생각했던 실력이 사실은 그냥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자만이었다면?
그러면 두 번째 기회인 이번에도 망하기나 하겠지.
‘아니라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나를 십여 년간 믿어 주신 분들께 보답하고 싶었다.
나를 친자식처럼 거둬 준, 그리고 내 재능을 믿어 준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넌 간절하지가 않은 거야.’
그놈의 간절! 누가 안 간절하대. 성공할 수만 있으면 그깟 연습생들 100명 틈바귀에 섞여 몇 번이고 더 경쟁해 줄 수 있었다.
그 순간 팟,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미션 클리어!]
[튜토리얼 미션 ▷ 데뷔해야 하는 이유]
[개연성 지수가 (높음) 상태로 상승하였습니다.]
[첫 상승 보너스로 코인 1개가 지급됩니다.]
[코인은 튜토리얼 종료 이후 개방되는 아이템 랜덤 뽑기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
코인이 앞으로 뭐에 쓸 수 있는 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요컨대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에게 영화를 보여 주는 것처럼 재미도 있고 전개도 납득이 가는 ‘좋은’ 이야기를 보여 주면 되는 거구나.
개연성이 이런 식으로 상승하는 거라면 어그로는 마찬가지로 계속 나를 지켜볼 만한 기대를 가질 만한 모습을 보여 주면 되는 거고.
사이다는 계속해서 내가 성장하고 실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 주면 될 터였다.
‘말이야 쉽지….’
조금 전 내린 결론처럼 정말 교과서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같은 말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정체 모를 존재와 계약까지 한 마당에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나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양부모님을 보며 웃어 보였다.
“제가 정말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나 스스로를 계속 믿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에게도 증명이 필요했다.
***
“후….”
식사를 마치고 배를 꺼트릴 겸 진순이의 목줄을 쥐고 근처 공원으로 나온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순이가 무슨 일이야? 묻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냐.”
나는 진순이의 둥근 이마를 슥슥 쓰다듬어 준 다음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첫 번째 튜토리얼 미션 종료를 축하한 시스템은 내일 중으로 두 번째 튜토리얼 미션이 시작될 예정이니 잠시 대기해 달라고 통지했다.
그러니 지금은 7년 전으로 돌아간 상황에 적응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도 사람이 대비를 많이 해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회사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출연은 NO 소속으로 나가야 하나? 곰곰 고민하던 그때.
“푸드드득-”
풀밭에서 비둘기가 퍼드덕 날아올랐다. 그리고 진순이가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왕-! 컹-! 그르르릉-! 왕, 왕-!”
아악. 진순이에게 거의 날아가듯 리드 줄을 쥔 채로 끌려가며 나는 애원했다.
“진순아, 잠깐만. 진순아! 형 한 번만 봐주자, 진순아!”
진순이와 형이 매치가 안 되는지 주위에서 산책 중이던 시민들이 한 번씩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하….’
나 진짜 괜찮나? 복잡한 마음과 함께 수년 만에 본가에서 지낸 밤이 지났다.
***
다음 날 아침.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눈이 저절로 뜨였다.
‘확실히 어린 게 좋아.’
그래 봤자 28살에서 21살이 된 거면서 유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20대 초반의 체력은 소중했다.
‘그나저나 의도치 않게 걱정을 끼친 모양인데….’
지난밤 양부모님이 내가 자러 들어간 후로 두 분이 조용히 나누던 이야기가 얼핏 귀에 들렸다.
‘인수 말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한테 말해 볼까? 도와줄 수 있는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려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걸 한시 빨리 증명해야 했다.
어쩐지 향수가 느껴지는 침구를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휴식은 끝났다는 듯 두 번째 튜토리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인수 님! 회귀 후 첫 번째 날은 잘 보내셨을까요? 두 번째 튜토리얼도 어제의 기세를 이어 쭉쭉 진행해 봅시다!]
[튜토리얼 미션]
[나여야만 하는 이유]
‘흠….’
나는 상당히 철학적인 미션 제목 아래의 설명을 주의 깊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