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제 인생이랑 거래할 거 있나요 (2)
“이게 무슨….”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이 나가 있기도 잠시, 시스템창에 이어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저는 지금부터 서인수 님을 가장 가까운 곁에서 도와드릴 담당자 K PD입니다. 편하게 케이 님 아니면 피디님 정도로 지칭해 주시면 됩니다.]
조금 전과 미묘하게 다른 깍듯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한 시스템창은 곧바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부터 연재를 위해 유의하셔야 할 주요 사항들을 빠르게 안내드리겠습니다.]
[연재를 진행하실 때 참고하실 수 있도록 상태창의 ‘내 작품 현황’에서 주요 지표들의 현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짧은 설명과 함께 눈앞에 무슨 주식 차트 같은 화면이 나타났다.
[어그로] (보통)
[개연성] (보통)
[사이다] (보통)
[원활한 연재 진행을 위해 상기 지표를 참고하여 출판사 측의 편집 또는 도움이 제공될 수 있는 점, 언제나 양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그로, 개연성, 사이다? 나와는 생전 관련 없을 줄 알았던 단어들의 등장에 나는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곧바로 상세 설명이 이어졌다.
[어그로]
- 작품의 흡입력과 주목도를 결정하는 지표입니다. 다른 지표와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욕먹을 짓 해서 주목을 받아 봤자 득 될 거 없다는 뜻이었다.
너무 맹숭맹숭해서 관심을 못 받는 것도 문제지만 악평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 당연한 말이었다.
[개연성]
- 작품의 완성도 및 자연스러운 전개와 선후 관계의 영향을 받는 지표입니다. 개연성 지표가 낮음 상태로 오래 지속될 경우 다른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이다]
- 작품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결정짓는 지표입니다. 사이다 지표가 낮음 상태로 오래 지속될 경우 다른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있으면서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고 급발진해서 억지스러워서도 안 된다는 얘기였다.
‘마치 예습, 복습, 자습을 철저하게 하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 같은데.’
내가 유심히 설명을 노려보고 있으니 케이 피디가 끼어들었다.
[열 마디 설명보다 직접 경험하시는 게 낫겠죠! 바로 실전으로 체험하실 수 있도록 간단한 튜토리얼을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곧바로 조금 전의 거래 수락창과 같은 퀘스트창이 떴다.
[튜토리얼 미션]
[데뷔해야 하는 이유]
[- 초심으로 돌아가 데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어필하기]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덧붙여 있는 도움말을 보니 어떤 의도로 이걸 수행하라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Hint!]
[- 독자님들께 데뷔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할 경우 ‘개연성’ 지수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다수의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고, 나는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라.
지금까지 목표로 해 왔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예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실제 내가 어떤 사람이든,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나를 통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지와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다.
지금 내가 보여 줘야 하는 건 정체 모를 ‘독자’님들이 나를 응원하고 싶게끔 붙들어 놓는 모습이었다.
‘…마침 또 이런 쪽이라면 뒤지지 않을 사연이 있기도 하고.’
아이돌 데뷔가 무산된 후로는 그냥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무명 전(前) 연습생의 구질구질한 사연일 뿐이었는데.
특별히 비참한 유년기를 보낸 건 아니나 남들과는 다르다면 다른 배경에서 자라긴 했다. 이렇게라도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은 거겠지. 나는 흠, 결정을 내리고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수락]
“구체적으로 뭘 해서 어필할 건지는 제가 스스로 정해야 하는 부분인 거죠?”
반짝, 수락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가 사라진 시스템창에게 묻자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는 듯 케이 피디가 대답했다.
[넵, 맞습니다! 다만 지금은 튜토리얼 체험 중이므로 혹 진행 중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상의 부탁드립니다!]
어째 신참 매니저라도 되는 것처럼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것이 신뢰가 가기보다는 마땅치가 않았다.
K PD라는 거 보면 다른 PD들도 있나? 문득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현재 진행 중인 미션]
[▷데뷔해야 하는 이유]
나는 시스템창 상단에 뜬 문구를 확인하고는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는 핸드폰부터 찾았다.
그러고는 근 3년은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연락해 본 적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정이 없다거나 버르장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차마 고개를 들고 인사를 드릴 면목이 없어 전화조차 걸지 못했던 번호였다.
연결 대기음이 네 번쯤 울렸을 때 번호의 주인이 전화를 받았다.
- 응? 웬일이냐, 네가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익숙하면서도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
번호의 주인은 나를 친아버지처럼 키워 주신 양아버지였다.
“별일은요, 잘 지내고 있어요.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한번 찾아뵙고 싶어서요.”
- 어유, 좋지. 오늘이라도 괜찮은데. 연습 때문에 바쁘지? 시간 되는 날로 얘기해 줘. 우리가 맞춰 볼게.
“아,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제가 이따가 집으로 갈게요.”
짧은 대화 끝에 간만에 집에 들르기로 약속을 잡고 나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지막으로 본가에 간 게 언제였더라.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전날 찾아뵈었을 때였나.
근 13년 만의 데뷔라고, 드디어 빛 볼 일만 남은 거라고 응원해 주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낯을 뵐 면목이 없었다.
‘나라고 망하고 싶어서 망한 건 아니다만.’
그냥 망하기만 했으면 그래도 나만 쪽팔리고 말았을 텐데. 10년 넘게 고생하다 겨우 데뷔했다고 양부모님도 감동이 크셨던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망했어도 비참할 것을 양아버지가 아파트 입구에 광고비를 내고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경> 보람 아파트의 자랑 - NO엔터 출신 서인수 데뷔 <축>]
차트 인도 못 하고 쓸려 나갔는데 뭐가 자랑이에요. 게다가 출신이라니? 저러면 저기서 데뷔했던 것처럼 오인될 수 있어 문제가 될 우려가 있으니 내리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했다가 더 비참한 문구가 더해지고 말았다.
[<경> 보람 아파트의 자랑 - NO엔터 연습생 출신 서인수 데뷔 <축>]
엔터와 출신 사이의 그 좁은 공간에 까만 마커로 쓰인 손글씨가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차마 망한 주제에 내려 달라고 더 보채기도 쪽팔려서 그 이상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망하기만 한 자식 되기 vs 망한 주제에 데뷔라도 한 게 자랑스러워서 내건 현수막 박박 우겨서 내리게 하는 후레자식 되기.
‘당연히 전자지, X발….’
결국 현수막은 공고 기간을 다 채우고, 내가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할 때까지도 자리가 나가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양아버지의 응원 아닌 응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색 결과]
[서인수 - 되돌아온 너에게]
[블로그 검색 결과 5건]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님이 아드님 데뷔 앨범이라고 나눠 주셨어요! 발라드 싱글 앨범 같은데 아드님이 참 훈훈하게….]
내 싱글을 검색하면 나오는 한 자릿수의 결과물 모두 동네 동호회, 가게 등에서 내 앨범을 무료로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드린 건 한 장인데 대체 어디서 그렇게 사서 뿌리신 건지.
내 네 자리도 안 되는 앨범 판매 실적의 대부분이 양아버지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를 내 친부모 대신 길러 주신 분들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성공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유명해져서 친부모를 찾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묻겠지만.
‘그럴 리가 있겠냐.’
내 진짜 부모가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낳아 준 정과 길러 준 정은 별개라고, 나는 그 누구보다 양부모님을 위해 성공하고 싶었다.
두 분 사이에는 친자식이 없었다. 그런 두 분이 내 어린 시절 명절마다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 확실히 기억한다.
‘남의 집 애한테 그만 신경 쓰고 너희도 진짜 자식이 있어야지.’
그리고 그때마다 두 분이 하셨던 말씀 역시, 똑똑히 기억한다.
‘아휴. 인수가 우리한텐 진짜 자식이지, 뭐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 인수가 얼마나 든든한데.’
나는 양어머니 쪽의 친척이었다. 그 이상의 자세한 내막은 집안에서 언급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졌다.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던 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지금의 양부모님과 살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물론 양부모님 또한 부족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나는 운 좋게 어렸을 때부터 모자람 없는 지원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 양부모님께는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넘치도록 받은 만큼 꼭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
‘그게 뭐 이렇게 될 줄 나라고 알았나….’
입 안이 썼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러니 내가 꼭 데뷔해야만 하는 의지를 보여 줘야만 한다면 이것만 한 어필이 없었다.
‘거의 2년 만에 뵙는 거네….’
지금은 올해 설날에 방문했으니 근 3달 만에 뵙는 거지만. 오랜만에 그리웠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뭐라도 사 가야 하나. 너무 오랜만에 만져서 어색한 디자인의 구형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낡은 디자인의 은행 어플로 잔액을 확인하자 음… 쪼들리긴 해도 빈손으로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과일이라도 사서 가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까지 푹 눌러쓴 채 본가 근처 마트로 향하자 한창 딸기가 세일 중이었다.
제일 크고 싱싱해 보이는 걸로 한 박스 계산해서 아파트 입구에 서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14년 차 실패한 인생이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NO엔터에서 반강제로 방출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아직 소속사 전략상 데뷔할 때가 안 된 입장일 뿐이었다.
‘가자!’
첫인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속으로 예닐곱 번은 되뇐 다음 도어 록을 마주하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겨우 이거에 긴장하면 앞으로 어떻게 버티려고. 나는 살면서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떠올렸다.
남이 올린 버스킹 영상이 화제가 되어 회사 계정으로 공식 오피셜 채널을 만들었는데 3달이 지나도록 구독자 수가 140에서 늘어나지 않았을 때라든가….
회사와 계약 해지 후에도 채널이 폭파되지 않아 [얘도 듣보 다 됐네] 같은 악플이 1년째 방치되고 있는 걸 봤을 때라든가….
‘나 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거지?’
자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들며 눈앞이 조금 맑아졌다.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르자 안에서 타다다다다닥 뭔가 작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삑, 삐비빅.
도어 록이 열리고 문틈 사이가 벌어진 순간, 막을 새도 없이 거대한 무언가 나에게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