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제 인생이랑 거래할 거 있나요 (1)
이건 또 뭐야. 아직 팩 소주는 뜯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 뭐지?”
냅다 손등으로 눈을 비벼 보았지만 눈앞의 화상은 점점 또렷해질 뿐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내게 확인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반투명한 시스템창 아래에 수락 버튼이 생겨났다.
[‘???’가 서인수 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수락]
이게 대체 뭐지? 마땅히 거절 버튼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고 수락 버튼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래 신청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조금 전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을 향해 외쳤던 한탄이 떠올랐다.
‘나도 판다니까? 왜 내 건 안 사는데!’
설마 내가 방금 그런 소리를 해서 뭐 미지의 존재가 진짜 사겠다고 제안이라도 하는 건가?
그리고 곧바로 경고하듯 시스템창의 색이 붉게 물들었다.
[‘???’가 서인수 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수락]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 남의 노래를 훔치는 거나 스트리밍 조작 업체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나았… 아니, 낫나? 낫겠지.
나는 조금 전까지 나를 조롱하던 아진의 목소리가 떠올라 홧김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수락]
곧이어 다시 푸른빛을 찾은 시스템창을 중심으로 주위가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온통 순백의 페인트를 발라 놓은 것 같은 공간에는 넓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조금 전 나타났던 시스템창뿐이었다.
‘이건… 꼭 회의실 같은데….’
위화감을 느끼기도 잠시 새로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교환]
[받는 아이템]
- 데뷔 기회
[보내는 아이템]
- 인생
뭐야, 성공도 아니고 데뷔 기회랑 인생을 맞바꾸라고? 눈썹을 움찔거리기 무섭게 거래창 아래로 스크롤이 길게 늘어졌다.
[안녕하세요, 서인수 님!]
[처음 뵙겠습니다. 다소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서인수 씨께서 인생을 매도할 의향이 있다는 제안을 듣고 급하게 연락드렸습니다.]
내가 판다고 하기는 했는데. 일반 챗으로 한번 외친 헛소리에 느닷없이 거래 신청이 꽂히면 누구라도 놀라기 마련이었다.
이게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헷갈리는 와중 메시지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불쑥 연락드려 놀라셨을 줄 압니다. 다만 저희로서도 서인수 씨처럼 ‘가능성 있는’ 소재를 구하기는 무척 어려운지라 모쪼록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성 있는 소재라니 무슨 소리야? 나는 슬쩍 손을 들어 내 뺨을 꼬집어 보며 물었다.
“저, 저한테 하는 말씀이세요?”
메시지창에서 반짝거리는 이름 세글자는 분명히 내 이름이 맞았다. 그러나 ‘가능성 있는’ 만큼 지금의 내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는 또 없을 터였다.
연습생 생활을 14년을 하고도 제대로 데뷔한 적도 없는 전(前) 지망생, 현(現) 관계자. 그것이 지금 내 위치였다.
[네, 서인수 씨! 저희 KJG미디어에서는 가능성 있는 소재 투고를 상시 접수받고 있습니다. 서인수 씨께서 지원해 주신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인생’은 저희 시스템 편집부의 만장일치로 상품화를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소재 투고? 편집부? 노래 말고 다른 분야는 관심도 없었던 나지만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단어가 특정 직업군을 연상시킨다는 자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투고에 상품화라니. 무슨 소설 얘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내 의문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시스템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저희 KJG미디어에서는 투고받은 인생을 재편집하여 상품화 후 선별된 ‘독자’님들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품화에 채택되신 이후부터는 투고자분께서 직접 본인의 인생을 ‘재미’있고 ‘감동’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며 독자분들의 ‘연독률’을 이어 나가시면 됩니다.]
연독률이라니 무슨 소리야. 내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시스템을 바라보자 텍스트뿐이던 화면이 곧바로 도식화된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다.
[‘독자’님들이 흥미와 감동을 느낄 만한 인생을 살자!]
[독자님들의 선택을 꾸준히 받으면!?]
[특전으로 다양한 보상이 제공!]
[성공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냅다 어디 번역기에 돌린 것 같은 B급 감성의 이미지와 함께 나로 보이는 자그마한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송을 받고 있었다.
정말 내 인생을 소재라는 걸로 팔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걸까?
홀린 듯 이미지 속의 내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져 있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잠깐만요. 그쪽한테 제 인생을 팔아도 저는 아무 손해도 없는 건가요?”
물론 내가 지금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물어는 봐야지.
그러자 메시지가 순식간에 싹 지워지더니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모티콘과 함께 새로이 나타났다.
[네! 단 ‘독자’님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하락할 경우 연독률 상승을 위해 편집부에서 조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조정이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메시지가 친절히도 설명했다.
[‘독자’님들께서 좀 더 흥미롭게 지켜봐 주실 수 있도록 아주 약간의 도움을 드리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으음….”
여전히 아리송하고 짐짓 고민하는 척도 했지만, 사실 거절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뭐가 됐든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짓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였으니까.
‘넌 아직 간절하지가 않은 거야.’
내게 부정한 방향을 강요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누가 간절하지 않다는 거야.
내가 뭐 못 할 짓이라도 해야 간절한 건가? 열네 살에 캐스팅 담당자라는 스태프의 손에 이끌려 NO 본사로 향했던 후로 연습생 생활만 14년을 했다.
그중 군대에 가 있었던 2년은 빼야 한다고 치더라도 자그마치 12년이었다.
언젠가는 스타가 되어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또래들이 즐기는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산 것만 10년이 넘었다.
‘나한테 누가 노력을 안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남들 다 피우는 담배조차 입에 대 본 적 없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본 적 없었다.
더욱이 월말 평가는 이따금 컨디션에 따라 2위로 밀려날 때는 있었어도 연습생 기간 내내 연말 평가 1위는 당연히 내 차지였다.
내가 괜히 오기로 NO를 나온 게 아니었다.
난 정말 누구보다 필사적이었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 누구도 나의 성공을 의심한 적 없었다.
악마든, 편집부든, 뭐시기 미디어든 상관없었다.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럼, 저한테 어떻게 데뷔 기회를 주신다는 건데요?”
나는 침착하게 표정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내가 뻔뻔하게 나갈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럴수록 태도를 더 당당히 해야 했다. 괜히 얕잡아 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내가 잔뜩 긴장한 채 ‘시스템’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그 내용은 무척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서인수 씨를 7년 전으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곧장 눈을 의심했다. 7년 전으로 되돌려 준다니 무슨 소리야.
[7년 전 서인수 씨가 놓쳤던 기회가 하나 있을 겁니다. 기회를 놓쳐서 인생이 달라졌다면,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7년 전이라면… 내가 한창 NO엔터 소속으로 데뷔조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땐 퇴사하기 전이었는데? 7년짜리 연습생 계약은 끝이 났고 임시 연장 신분으로 데뷔 준비와 함께 아티스트 계약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내가 무슨 기회를 놓쳤지? 아직 본격적으로 데뷔곡 녹음이 시작되기 전이라 가짜로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리라고 압박을 받기 전이었을 텐데….’
기억을 더듬던 내게 시스템창이 벌써 방영한 지 한참 지난 오디션 프로그램의 로고를 보여 주었다.
[겟 데뷔 위드 미(Get debut with me)]
내가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게 기회였다고? 뭔 개소리야. 이건 진짜 헛소리라고 자신 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 프로그램은….
‘나보다 더 화끈하게 망했으니까.’
망해도 그냥 망한 게 아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은 못해도 중박은 친다.’는 통념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망작 중의 망작이었다.
나름 인지도 있던 케이블 채널인 KMB가 몰락하게 된 계기로 손꼽힐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거기서 데뷔한 게 최대의 악수였다고 할까.’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한 게, 데뷔조에 개그맨이 한 명 껴 있었다.
그냥 관용적인 표현으로 웃긴 맴버를 개그맨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개그맨이었다.
MBS 26기 최연소 합격자 조항준. 스물다섯의 무명 개그맨이었던 항준의 오디션 영상이 게시되자마자 화제가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쟤가 왜 나오냐, 나와 봤자 떨어지겠지. 갑론을박이 일었으나 모 익명 사이트에서 갑자기 ‘재미 삼아’ 조항준에게 몰표를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50만 네티즌을 등에 업고 조항준은 첫 번째 국민 매니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버렸다.
‘겟데뷔’는 그 전까지만 해도 우후죽순 나오는 지겨운 오디션 포맷이라는 소리나 듣던 프로그램에서 그냥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시청률이 보장되는 자극도 없었다. 제작사는 항준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말리지 못했다.
‘결국 프로그램 전체가 망하는 길이 되어 버렸지.’
본격적으로 연습생들이 매력을 어필하면서 하위권으로 내려가리라 예상했던 조항준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마지막 데뷔 멤버로 조항준이 불렸을 때 데뷔조에 먼저 뽑혔던 연습생들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드는 장면은 길이길이 ‘웃짤’로 쓰였다.
뒤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제작진 측에서 제발 사퇴해 달라고 몇 번이고 협상을 요구했으나 조항준 측에서 거절했다 했다.
역으로 이를 공론화하겠다고 맞서는 바람에 조항준은 정말 여덟 번째 멤버로 뻔뻔히 1년간의 활동을 마쳤다.
데뷔조로 활동했던 그룹 ‘에이스트리트’는 당연히 폭망했다.
희극인 그룹, 초등학생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그룹 같은 오명과 함께.
‘거기 나가는 게 어떻게 기회야?’
내가 생각 그대로의 표정을 짓자 새롭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서인수 님의 결정을 돕기 위해 거래를 승낙하실 경우 제공될 가이드 미션을 미리 열람시켜 드리겠습니다.]
[Mission!]
[내가 키운 우리 애들]
[- 데뷔조 8명(본인 포함)을 구성하여 최종 데뷔 선발전에서 우승하기]
뭔 소리야. ‘우리 애들’이라니. 데뷔조에 들기 위해 끝도 없이 경쟁만을 강요하는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가장 냉소적으로 반응하게 된 단어였다.
“네?”
[첫 번째 메인 미션을 진행하는 동안 시스템에 적응하실 수 있도록 세부 튜토리얼과 가이드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조항준을 데뷔조에서 밀어내서 원하는 멤버들만 데리고 데뷔하는 것 자체가 미션이다?
나보고 나머지 데뷔조 멤버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라는 건가.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난이도가 껑충 뛰었다.
“…….”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시스템이 메시지를 갱신하며 물었다.
[이쯤이면 충분히 설명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저희 KJG미디어는 계약자님의 서포트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부디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기엔 난이도가 너무… 라고 하기엔 이미 내 현생의 난이도도 지나치게 높았다.
오디션을 망쳐서 조롱거리가 되더라도 지금보다 나쁠 게 없었다. KJG미디어가 대체 뭐 하는 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다시 기회를 얻고 싶었다.
곧 나를 유혹하듯 반짝이는 [거래 완료] 버튼이 떠올랐다.
[거래 완료]
작은 버튼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몸이 휘청거리며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
어둠 속에서 조금 전까지 ‘서인수’가 발을 디디고 서 있었던 옥상을 비추던 화면이 흔들리며 모습을 감췄다.
“소재는 괜찮긴 한 거 같은데…. 요즘 이런 거 너무 많이 나와서 먹힐지 모르겠네.”
하단에 J PD라 쓰여 있는 화면이 일렁거리더니 우려의 말을 하자 다른 화면이 대답했다.
“일단 비주얼이 되잖아요. 여차하면 장르를 틀어서라도 쓸 만한 데는 많아 보이니까….”
“얼굴이 괜찮으니 정 안 되면 인방 BJ로라도 굴리면 될 것 같은데? 코인 회수는 되겠지.”
“K PD가 붙어서 당분간 보조해. 튜토리얼 동안 조회 수 얼마나 나오나 우선 지켜보고.”
스산한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모든 화면의 불이 꺼지며 온통 어둠으로 물들었다.
***
“헉!?”
주위가 빛으로 물든 것과 동시에 몸이 어디론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 방금 옥상에서 떨어진 건가? 이대로 이렇게 죽는다고!?
바닥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어스름한 방 안에서 눈을 떴다.
“…!!??”
익숙한 천장이 나를 반겼다.
“대체….”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2010년대의 정취가 방 안에 가득했다. 내가 20살 때부터 살았던 자취방이었다. 잠시 여운에 잠기기 무섭게 조금 전의 시스템창이 나타나 눈앞을 가렸다.
[안녕하세요, 서인수 님! 지금부터 시스템 적응을 위한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꿈을 꾸거나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나는 7년 전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