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재시작
내게 패인이 있다면 재능과 노력이었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끝까지 스스로를 믿고 버티면 된다. 재능 있는 사람은 언젠가 세상이 알아보게 되어 있다.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 후발 주자를 망치기 위해 해 놓은 개소리였다. 대형에서 8년, 소형에서 3년. 군대를 다녀온 후, 안 하느니만 못한 솔로 데뷔까지 총 14년.
학교 예술제에서 캐스팅된 게 열넷이었는데, 지금 나는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한심한 20대 후반이 되어 버렸다.
‘넌 꼭 성공할 줄 알았는데, 진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구나.’
길었던 무대의 꿈은 허무하게 끝났고 나는 장래가 유망했던 연습생에서 관계자 A가 되었다.
***
“인수 씨, 고생했어~ 나중에 또 일 있으면 연락할게.”
환히 웃으며 OK 사인을 내린 프로듀서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녹음실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스물여덟. 재주라고는 노래 부르는 것뿐. 전공도 실음과 졸업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작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수로서 성공한 것도 아닌, 노래 부르는 재능만 있는 사람은 무대가 아닌 무대 주변에서 일을 한다.
축가 가수, 가이드 싱어, 보컬 트레이너. 어느 하나라도 보란 듯이 자리를 잡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나는 어느 쪽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 볼게요.”
그나마 연습생 시절의 인연으로 입에 풀칠은 간신히 하고 사는, 별 볼 일 없는 전(前) 지망생, 현(現) 관계자.
‘그나마 음악 관련 일을 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데뷔하지 못한 옛 인연들은 거진 다른 분야에서라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와중, 나는 아직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방황 중이었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난 진짜 너 월말 평가 때 보고 솔로로라도 대박 날 줄 알았는데.’
전역 후 들어간 소속사에서 낸 솔로 음반은 처참할 만큼 망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소속사 4대장 중 하나인 NO엔터테인먼트의 공개 연습생인 NO뉴페이스로 알려진 것만 6년.
솔로 데뷔까지 걸린 시간은 12년, 그 긴 세월 동안 일개 연습생을 기다려 줄 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망할 게 있나.’
솔로 데뷔를 추진해 준 소속사가 워낙 영세한 규모이긴 했지만, NO에서 손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연이은 출연 거절에 나는 인생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홍보를 위해 길거리 버스킹까지 뛰었으나 남은 것은 남의 채널에 올라간 조회수 400만짜리 화질구지의 기록뿐.
[- NO엔터 나가더니 솔로로 데뷔했구나… 여전히 잘 부르긴 하는데 아이돌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쉽다]
[- 진짜 노래 잘하는데 왜 안 뜨지ㅜㅜ 나만 알기 아까운 가수 1위]
[- NO뉴페로 처음 공개됐던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 ㄷㄷ 연생 공개 영상 때도 잘 부른다 싶었는데 여전히 실력 하나만큼은 개탄탄하다]
적지 않은 조회 수에 잠시 근황 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며 드디어 흥하나 싶었지만… 관심은 아주 잠깐이었다.
내 이름 [서인수] 세 글자가 박혀서 올라간 음원은 단 한 번도 차트 인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혀 버렸다.
버스킹 영상의 조회 수는 꾸준히 올랐지만 저예산으로 촬영해 내 얼굴만 4분 동안 나오는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는 8만에서 오를 줄을 몰랐다.
음원을 역주행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조작 브로커가 연락해 왔을 때, 그것만큼은 싫다고 고개를 저었던 내게 소속사 대표가 말했다.
‘넌 아직 간절하지가 않은 거야.’
네가 진짜 노래 아니면 죽을 만큼 간절했으면 이거라도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같은 말을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성공하고 싶진 않아요.’
오기였다. 내가 그런 짓이나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솔로 데뷔를 도와준 소속사로부터도 방출당했다.
넌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망한 거라고.
솔로 데뷔까지 완패하고 나니 더 이상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
거기다 짧은 솔로 활동 때, 열악한 환경의 지방 행사에 내몰린 여파로 목 상태도 전 같지 않았다.
‘음 올리는 게… 전처럼 편하지가 않아.’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인정해야 했다. 연습생 서인수는 망했다. 그것도 얼굴 들고 살기 쪽팔릴 정도로 처참하게 망했다.
망했어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끝끝내 무대의 꿈은 놓지 못했기에, 그 주변을 맴도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아 알음알음 생활한 지도 반년.
오늘 나를 가이드 싱어로 불러 준 프로듀서는 NO뉴페이스 시절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래, 잘 들어가고.”
프로듀서의 배웅을 받아, 내가 연습생이었던 시절에는 발도 디디지 못했던 으리으리한 신사옥의 복도로 나온 나는 불쑥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바짝 세웠다.
“피곤해 죽겠어. 빨리 물 좀 줘.”
신경질이 잔뜩 묻어나는 날카로운 목소리. 보통의 업무 관계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불손한 태도였고,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뭐 해? 나 계속 손 들고 있잖아.”
본명은 이준상. 데뷔 예명은 아진. 놈은 내가 빠진 빈자리를 채워 최단 연습 기간을 기록하며 데뷔한 행운아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사 왔어요!”
막내 매니저로 보이는 스태프가 허둥거리며 생수를 따서 내밀었다.
매니저를 향해 시선조차 주지 않던 아진이 물병이 손에 닿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앗, 차가워…. 이 씨, 지금 장난해? 이렇게 차가운 걸 지금 나 마시라고 가져온 거야?”
아진이 트집이라도 잡듯 신경질을 부리자 옆에 있던 다른 스태프가 아진을 달랬다.
“아진아, 지금 상온에 보관된 생수가 없어서 편의점에서 사 와서 그래. 다음부터 미리 준비해 둘게.”
주위에 있는 모든 스태프가 단 한 명의 탑스타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이 아주 기가 막혔다.
아진이 처음 데뷔했을 때 들었던 평가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듯, 운이 좋은 연습생. NO엔터테인먼트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입사한 것도 모자라 핵심 데뷔 멤버로 손꼽히던 서인수가 빠진 자리를 냉큼 차지한 굴러 들어온 돌.
숨만 쉬어도 까이던 것도 3년 차까지지. 소속 그룹이 1군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런 비아냥도 쏙 들어갔다.
‘하필 저놈이….’
데뷔해서 잘 활동하고 있는 녀석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마주치기 거북하다만, 이놈은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 보기 싫은 인물이었다.
‘뒤쪽으로 피해서 나가자.’
슬슬 조용히 뒷걸음질을 쳐 비상계단 쪽으로 향하려던 그때, 하필 녹음실에서 나온 프로듀서와 부딪히며 작은 소란이 일고 말았다.
“으앗, 깜짝이야. 인수 씨 아직 안 갔어?”
“아, 지금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하필 운도 없지. 프로듀서가 또박또박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휴게 공간 소파에 앉아 있었던 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수 형?”
‘하….’
나는 뭐 이렇게 되는 게 하나 없냐.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와, 진짜. 인수 형이네. 회사 나간 지가 언젠데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여기 아무나 못 들어오는데.”
그냥 가수도 아니고 가이드 녹음차 왔다는 소리를 차마 내 입으로 하긴 싫어 망설이던 그때 프로듀서가 눈치도 없이 지껄였다.
“아아, 내가 녹음 좀 도와 달라고 했거든. 아마 너네한테도 샘플 갈 거야. 너네도 이미지 잘 맞는 것 같아서.”
프로듀서의 말에 푸핫, 아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가이드? 하긴, 뭐 아무나 못 들어오는 데라도 일 있으면 들어오는 거지, 뭐.”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풋, 아진의 비웃음과 함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형이 나한테 그랬잖아. 뭐든 기본이 중요한 거다, 아이돌도 가수다, 보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나 처음 들어와서 월말 평가 꼴찌 했을 때 형이 수석이었는데.”
아진이 굳이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뻔했다. 추억? 그럴 리가.
“그랬던 내가 형 가이드곡도 다 받아 보고~ 세상 참~”
날 조롱하고 싶은 거다.
자신이 연습을 도망칠 때, 혹은 걸 그룹 연습생들과 시시덕거릴 때, 툭하면 자신을 혼내던 내가 이렇게 망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소하고 즐거워서.
“뭐, 어쩌겠어. 이 판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이잖아. 아무튼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반갑네.”
아진이 반가워하는 것이 그냥 ‘서인수’가 아니라 ‘비참하게 망한 서인수’인 것을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을까. 프로듀서가 황급히 끼어들어 아진을 말렸다.
“에이, 옛날얘기를 뭐 하러 해. 아무튼 인수 씨, 오늘 고마웠고 다음에 또 봐.”
프로듀서의 의미 없는 중재를 뒤로하고 사옥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넌 아직 간절하지가 않은 거야.’
지금의 나는 몰라도, 6년 전의 나는 분명히 그랬다. 내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자체가 없었으니까.
열네 살에 입사한 후로 연습생 계약이 종료된 후 퇴사할 때까지, 80번이 좀 넘는 월말 평가 내내 나는 수석이 아니었던 적이 손에 꼽았다.
내가 열여덟일 때 데뷔한 그룹은 전 멤버가 22살 이상의, 야성적인 섹시 퍼포먼스를 내세운 그룹이라 자연히 후보에서 제외. 하지만 그다음에 추진된 보이 그룹은 아예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룹이었다.
내 데뷔로 주가가 요동칠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나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게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최종 데뷔조도 모두 구성되었고 이제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만 남겨 둔 그때.
나는 회사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요구를 받았다.
‘이거 어차피 저작권은 우리한테 있고 공동으로 작업한 거라서 정말 문제 될 거 없거든? 작곡자 명단에 네 이름만 넣는 거야.’
데뷔 멤버를 최종 선별하면서 셀프 프로듀싱을 담당할 연습생이 빠져 버렸고, 일단 누군가 그 ‘캐릭터성’은 가져가야 하니 주축인 네가 맡으라는 것이었다.
‘제가 작곡한 게 아닌데 거기에 왜 제 이름을 넣어요.’
‘아니, 일단 이름만 넣자는 거지. 다른 데도 다 그렇게 해. 너도 녹음할 때 아이디어 같은 거 내면 그게 참여한 거지. 막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심지어 그 곡은 퇴출당한 연습생이 중심이 되어 작곡한 곡이었다.
연습생 기간 동안의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대신, 그동안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는 각서를 남기고 떠난.
나는 거절했고 돌아온 건 회사의 차가운 보복이었다.
그렇게 치사한 짓 안 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NO엔터를 등진 나는 혈기가 넘쳤고 무서울 게 없었다.
나의 노력과 재능, 내 데뷔만을 수년씩 기다려 준 팬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내 스타성을 믿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망했다.’
그러고 들어간 중형 기획사가 데뷔 직전에 대표의 원정 도박과 사기 혐의로 파산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재수가 없어도 지지리도 없었다.
NO엔터 사옥에서 도망치듯 멀어진 나는 편의점에서 안주도 없이 팩 소주를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다.
6층짜리 건물의 옥탑방. 내가 벌어들이는 개미 눈물만 한 수입으로 서울에서 버티려면 이 집이 최선이었다.
바닥까지는 아득하고, 하늘까지 닿기에는 또 너무나도 납작한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나는 생각했다.
인간의 영혼을 대가로 거래해서 행운을 파는 악마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왜 내 거는 안 사는데?’
나처럼 열심히 산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남의 것도 사는 김에 내 것도 좀 같이 사 줬으면 좋겠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재능과 노력만큼만 돌아오는 게 있었으면 하는 건데. 모두에게 가능성이 넘치는 사람, 언젠가 성공할 사람, 성공하지 못한 게 너무도 안타까운 사람으로 남는 건 이제 지긋지긋했다.
“나도 판다니까? 왜 내 건 안 사는데!”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향해 외친 그때, 눈앞에 헛것인 양 이상한 빛무리가 떠올랐다.
[‘???’가 서인수 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뭐냐, 이건.
내 연습생 인생 2회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