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303화 (303/303)

303화 #55 – 진정한 친구 (3)

똑똑.

오늘도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준우야?”

그리고 나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이 박 실장이 아닌, 장준우라고 확신했다.

“어, 희성아. 나야.”

장준우는 오늘도 내 문을 두드렸다.

“뭐야, 오늘은 시간 맞춰서 앞에서 보자니까. 일찍 왔네?”

“어. 일찍 준비했더니 할 게 없어서. 앞에서 커피나 마시고 촬영 가자고 하려고.”

“부지런하다, 진짜. 안 피곤했어?”

“응, 너야 우리 영화 주연 배우님이시니까 하루 내내 촬영하겠지만, 나는 몇 신 없잖아. 하하.”

그의 말에 나는 시무룩하거나 미안해하기보다, 이제는 그의 농담에 웃음을 터트릴 정도의 친분을 갖게 되었다.

“참나. 예, 저는 주연 배우님이라 피곤합니다. 장준우 배우님.”

내 말에 장준우가 피식 웃으며 내 팔을 끌었다.

“어차피 너 첫 촬영이라, 일찍 나가야 한다며. 커피 한잔하면서 촬영장에 가자. 괜찮지?”

“당연히 괜찮지. 가자!”

장준우와 나는 나란히 방에서 나와 펜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카페로 향했다.

커피 주문과 함께 시작된 대화.

“촬영은 좀 어때?”

내 물음에 장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야, 주어진 촬영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너는 어때?”

“나도 똑같아.”

장준우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였다.

“너 정도여도 다 소중해?”

“그럼. 나라고 뭐 모든 작품. 모든 배역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도 다 소중하지.”

내 상황을 떠올리며 재차 읊조렸다.

“아니, 배우업계에서 내 위치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간절해지는 것 같아.”

“왜?”

우리는 어느새 손에 커피 한 잔씩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감독님, 스태프, 동료 배우들. 그리고 대중들까지. 내게 기대하는 게 더 커지잖아. 그걸 충족시켜 줘야 하기도 하고… 나도 내가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장준우는 내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주연 배우 되고, 희성이 너처럼 톱스타가 되면 그런 생각은 안 할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

“아니야, 대단하긴. 그리고 내가 무슨 톱스타야. 하하.”

“에이, 희성이 네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톱스타냐?”

이제 술 대신 커피로도 대화를 자연스럽고 끊이지 않게 나눌 만큼, 장준우와 나 사이는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그가 일명 ‘빨래 도둑’으로 내가 쓰려던 누명을 벗겨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그날이었지.

장준우와 친구 사이가 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막아선 마음.

티를 내며 그에게 선을 그었지만 장준우는 그렇지 않았고, 그런 그의 태도에 나는 장준우를 향한 섣부른 오해를 한순간에 사그라뜨렸다.

그래서인지 장준우와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자식, 준우 너도 금방 주연 배우 할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고맙다. 아, 이제 슬슬 촬영장으로 가자. 희성이 너 가서 준비해야지.”

그는 시계를 확인하며 내 촬영을 챙겼고, 우리는 자리를 정리한 뒤,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현장.

시야에 들어온 폐병원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는 그렇게 많이 와도 올 때마다 음산해.”

내 말에 장준우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괜히 소름 돋는 건물이야.”

“어, 스산한 기운이 맴돈다니까. 너도 여기 병원 이야기 들었지?”

“당연하지. 그래서 더 무서워.”

그때, 우리의 옆으로 걸어가던 스태프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무전기를 든 채 입을 열었다.

“여기 귀신도 나온대요.”

스태프의 말에 나와 장준우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장준우가 손을 휘이 저으며 말했다.

“에이, 요즘에 귀신이 어디 있어요.”

“진짜예요. 스태프들 사이에 지금 여기 귀신 나온다는 이야기가 엄청 돌고 있었는데, 모르셨어요?”

그녀의 말에 나와 장준우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설마요.”

“믿지는 않는데, 괜히 이야기 들으니까 섬뜩한데요?”

“정말 귀신 나온대요. 으… 생각만 해도 소름.”

그녀는 자신의 말에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쓸어내리며 현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스태프가 떠난 후.

앞에 보이는 폐병원을 향해 가는 우리.

“귀신이 어디 있어. 하하.”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웃음으로 그 기분을 털어냈다.

* * *

첫 신 준비가 한창인 지금.

옷을 갈아입고 나와 대본을 바라보며 빠르게 배역에 몰입했다.

그리고 대사를 복기하던 그때, 박 감독이 내게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희성 씨.”

“네, 감독님.”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펜대로 내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신, 진짜 중요하니까 잘해줘야 해.”

“알겠습니다.”

“뭐, 희성 씨 연기야 당연히 잘할 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 신에 내가 기대가 커.”

박 감독의 말에 나는 어깨에 부담감을 하나 얹었고.

그는 자신의 열정을 표출하듯 촬영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 신은 희성 씨가 마약을 한 거야. 태어나서 처음 마약을 한 거라, 그게 감당이 안 되겠지?”

박 감독은 내 배역이 펼칠 연기에 대해 나를 이해시키듯 입을 열었다.

“네, 그렇죠.”

“그런데 여기 마약범들한테 그런 모습을 들키면 안 되잖아. 그래서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힘겹게 복도를 지나가는 거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저 안쪽 방으로 가는 거죠?”

나는 우리가 서 있는 반대편.

끝에 있는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는 완전 작은 방인데….”

박 감독이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데려갔다.

그의 말대로 사방이 막힌 공간.

창문도, 그 어떤 가구나 짐도 없었다.

하얀 천장과 하얀 바닥, 벽.

병원이었다는 게 실감이 나는 느낌.

시간이 오래된 터라 하얀색보다는 빛이 바랜 색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괜스레 소름이 돋는 텅 빈 공간이었다.

“여기서 몸을 못 가누고 힘겨운 연기를 하면 돼. 마약에 취하지만, 취하지 않으려 버티는… 그런 연기.”

“네, 해보겠습니다.”

“앞쪽 복도에서 카메라 감독이 레일 장비를 타고 이 문 앞까지 같이 이동할 거야.”

나는 문밖으로 보이는 바닥에 깔린 레일을 흘긋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방으로 희성 씨가 들어오면 돼.”

박 감독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여기 카메라 감독님도 같이 들어오시는 건가요?”

“아니. 여기 공간이 너무 좁기도 하고. 희성 씨 연기하는데 방해될까 봐, 여기는 카메라 한 대만 넣어둘 거야.”

혼신의 힘을 들여 펼쳐야 하는 마약 연기.

박 감독은 나를 위한 배려와 함께 화면 구도를 위해, 나와 카메라 한 대만을 두겠다고 했다.

나는 방 한가운데 놓인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카메라 한 대가 이거죠?”

“응, 이건 원격으로 무빙이 되는 카메라야. 밖에서 우리가 조종할 거니까, 카메라 움직이는 거에 놀라지 말고.”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저도 무빙 카메라로 연기해봤죠, 감독님. 하하.”

“하긴, 그럼 여기서 방 안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한번 제대로 보여줘.”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박 감독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방.

고개를 들어 방을 쓰윽 훑어보았다.

사방이 막힌 좁은 방.

카메라는 원격으로 조종하고 있어 한 바퀴를 빙 돌고 있었다.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에 마른침을 삼키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방 안에 카메라 원격 준비 다 됐어?”

박 감독이 자리에 앉아 메가폰을 쥐고 소리쳤다.

“네, 준비 끝났습니다!”

“오케이. 그럼 다들 자리에서 준비하시고.”

그의 말에 현장의 모든 소음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 스태프, 카메라를 기다리는 진희성까지.

다들 박 감독의 사인만을 기다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레디, 액션!”

박 감독의 슛 사인과 함께 시작된 촬영.

진희성은 바로 직전에 마약을 흡입한 사람처럼 동공을 풀어버렸다.

“으윽… 흡….”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진희성의 모습.

그는 서서히 풀려가는 동공을 표현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 진희성을 찍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입을 떡 벌렸다.

“하아… 하아….”

진희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빠르게 확인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걸리면… 안 되는… 데….”

정확한 발음도 구현하기 힘든 혀.

그런 상태에서 진희성이 똑바로 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빠른 판단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었고.

턱-

벽에 손을 댄 진희성은 풀리는 다리를 겨우 일으켜 앞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 끝에 닿은 작은 방.

“저기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진희성은 끝에 있는 방을 확인하자, 있는 힘껏 내달렸다.

자신이 언제 정신을 잃을지, 쓰러질지 모르니까.

힘겹게 달리는 진희성을 찍기 위해 카메라는 레일을 따라 흔들림 없이 움직였고.

이내 방 앞에 도착한 진희성.

그는 흐리게 뜬 눈으로 숨을 가쁘게 내쉬며 방문을 당겼다.

쾅-

방문이 닫히자, 연기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빛이 없는 이곳은 조금 전, 박 감독과 함께 보았던 하얀 벽의 느낌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들리는 건 내 숨소리와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는 카메라의 움직이는 소리뿐.

덕분에 두려움에 떠는 연기가 자연스레 터져 나왔다.

“으윽…!”

* * *

박 감독을 비롯해, 현장의 모든 카메라 감독과 스태프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꽉 닫힌 방 안에서 진희성이 펼치고 있는 연기를 말이다.

작은 모니터로 보이는 진희성의 모습.

“으윽… 수… 숨이 안 쉬어져!”

진희성은 온몸에 마약이 퍼진 사람처럼 자신의 옷깃을 잡고 움직였다.

숨이 막히는지 자신의 가슴팍을 퍽퍽 때리고, 옷이 찢어지라 잡아당기는 모습.

그의 연기에 현장의 스태프는 입으로 새어 나오는 탄성을 막기 위해 입을 손으로 감쌌다.

동공이 완전히 풀려 버린 진희성의 눈빛.

그에게 초점은 사라진 지 오래.

멍한 눈빛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진희성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허어… 허억….”

진희성의 팔다리가 뒤로 꺾이듯 젖혀졌고,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몸.

진희성은 바닥에 쓰러져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듯 보였다.

“아아… 아악!”

마약이 점점 그의 뇌를 지배하는 듯, 정신이 나간 듯했고.

살기 위해, 마약에 취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진희성은 컷 소리를 들을 때까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컷 소리가 들리지 않자 진희성은 감정을 고조시켰고.

그의 몸은 더욱 격하게 움직였다.

허리가 꺾이고 눈이 뒤집힌 모습은 실제로 마약을 한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작은 화면으로 보아도 진희성의 연기는 압도적이었고.

박 감독이 심각한 얼굴로 진희성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연기가 흡족하다는 건 숨길 수 없는 듯 보였다.

옅게 올라간 입술.

박 감독은 잠시 진희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컷, 오케이!”

그 신호와 동시에 진희성은 잔뜩 꺾여 있던 몸을 풀어냈고.

스태프는 서둘러 방으로 달려가 진희성을 일으켰다.

“고생하셨습니다.”

진희성은 스태프의 부축에 참았던 숨을 내쉬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진희성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스태프에게 몸을 맡긴 채 조심스레 방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터지는 환호와 박수.

짝짝-

“와아!”

“고생하셨습니다.”

“희성 씨 연기… 진짜 미쳤어요!”

그를 향한 이들의 표정은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 드는 듯 보였다.

박 감독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반응으로 진희성에게 걸어와 엄지를 치켜들었다.

“희성 씨… 진짜….”

말문이 막혀버린 박 감독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기를 이렇게 잘해도 된다고? 나 진짜 희성 씨 연기에 소름 돋았어.”

“감사합니다, 감독님.”

“내 감독 생활 통틀어서 이렇게 현장에서 빨려들어 갈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희성 씨가 처음이야.”

박 감독은 극찬을 쏟아냈고, 그의 말과 함께 현장의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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