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55 – 진정한 친구 (1)
촬영장 숙소인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박 실장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현장에 도착해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한 뒤, 바라본 건물.
폐병원.
이곳은 처음 현장에 왔을 때부터, 그리고 며칠을 촬영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었다.
스산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
주변 상권이 아예 없는, 산중에 하나 지어진 병원 건물이었다.
흰색의 병원 건물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색이 잿빛으로 바래있었고.
그 탓에 병원에서 풍기는 이 음산한 느낌은 배가되는 듯 보였다.
그때, 내게로 다가오는 스태프.
“희성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 신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려고요.”
스태프는 늘 그랬듯 내게 대본을 보여주며, 오늘 할 촬영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앞에 몇 신 촬영하고 나서 희성 씨 들어가실 건데, 앞에 촬영이 좀 딜레이돼서. 오늘 하실 신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대본을 펼쳤다.
“예, 오늘 잠입해서 살피는 그 신 먼저 하는 거죠?”
“네, 안에 마약 제조하는 거 잠입해서 살피시는 거고.”
그는 손을 뻗어 내가 촬영할 장소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마약 제조하는 거 만드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처음 현장에 왔을 땐, 저기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 말에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에 그동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맞아요. 건물이 워낙 오래 방치된 곳이라, 현장 꾸리는 분들이 고생 좀 하셨죠.”
“그러게요. 근데 이 건물은 원래 있던 거죠? 이번에 세트장 지으신 게 아니라?”
내 말에 그는 건물을 쓰윽 바라보며 답했다.
“예, 실제로 영업하던 병원이에요. 운영 멈춘 지는 한참 됐다고 하더라고요.”
스태프의 말에 나는 주변을 훑어보며 물었다.
“너무 덩그러니 이 병원만 있어서, 저는 혹시나 이번에 지으신 건물인 줄 알았어요. 근데 워낙 오래된 건물 같아서 혹시나 싶어 여쭤봤습니다.”
“이 건물 지으려면… 제작비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하긴.”
그는 내게로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3층짜리 병원인데, 병원 운영할 당시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 하더라고요.”
스태프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정말요?”
“네, 의사가 완전 또라이였다고 들었어요. 자신이 신약을 개발했다고, 환자들한테 먹이고. 또 실험하고….”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에이,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어떻게 있어요. 저 놀리시는 거죠?”
내 웃음에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요. 진짜로 있었던 일이에요.”
“정말요? 근데 그런 이야기는 기사로도 못 본 것 같은데.”
그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일부러 불치병인 환자들을 모아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병원에 온 거죠.”
“그럼, 그런 환자들한테 신약 개발해서 병을 고쳐주려고 했으면, 좋은 의사 아닙니까?”
내 말에 그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래서 나았으면 좋은 의사였겠죠. 문제는, 알고 보니 그쪽 관련 지식은 하나도 없고. 불치병 환자들 데려와서 신약 핑계로 돈만 왕창 뜯어낸 사람이라 하더라고요.”
“…….”
놀라움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런 건 보험도 안 되잖아요. 불치병인 환자들이 혹시나 하는 희망에 자신의 목숨을 맡긴 거죠. 근데 낫지도 않고, 돈은 돈대로 뜯기고….”
“와아, 무슨 그런 사람이…. 돈도 돈인데, 사람 목숨 가지고 그렇게 하는 건 진짜 악질이네요.”
“그러니까요. 그 일도 벌써 15년인가… 지났다고 들었어요.”
스태프의 말에 나는 스산한 건물을 보는 시선이 조금 더 달라졌다.
“그럼 그때부터 병원이 폐업한 거래요?”
“이 건물도 그때 뭐, 부인한테 넘어갔는데. 이번에 부인도 무슨 사고로 죽어서, 경매로 나왔다고 들었어요.”
“하아… 여기 무서운 건물이었네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더 중요한 건요, 여기에 귀신이 많이 출몰한대요.”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소름을 쓸어내렸다.
스태프의 말에 나는 실소를 보이며 답했다.
“에이, 너무 가신다.”
“진짜예요. 워낙 많은 사람이 죽은 건물이잖아요. 특히나 병원….”
그의 말에 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괜히 그 말을 해주시니까, 건물이 더 음침한 것처럼 보이네요.”
“맞아요. 저도 항상 다른 스태프들이랑 같이 출근해요. 혼자 오기는 좀… 건물이 워낙 을씨년스러운 느낌이라.”
스태프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럼 저 촬영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이따가 촬영 전에 다시 안내해 드릴게요.”
“넵.”
스태프는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갔고, 나는 옆에 있는 박 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건물 때문에 괜히 소름 돋네요.”
내 말에 그 역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게요. 음침하네요, 여기.”
박 실장이 손뼉을 부딪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이번 주에 서울 올라가실 거예요?”
“음… 이번 주에 촬영 쉬는 날 있나요?”
“네, 주말에 쉰다고 들었어요. 일정 알려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박 실장의 말에 나는 휴대 전화를 열어 달력을 확인했다.
서울에 올라가서 할 일이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송유나는 해외 로테이션이라 한국에 없기에, 굳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해서 딱히 할 일은 없었다.
휴식도 호텔에 혼자 머물고 있었기에, 이곳에서 쉬는 것으로 충분했지.
더군다나 두통이 심한 요즘, 오히려 서울과 촬영장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았다.
“박 실장님 괜찮으시면, 저는 그냥 여기에 남아 있고 싶어요. 딱히 서울에 올라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 * *
며칠간 이어진 촬영.
금요일 마지막 신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서울로 휴식 또는 업무를 보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촬영 지역에 남아 회식을 하는 사람들.
지방 촬영에서는 회식이 잦은 편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각자 숙소로 가서 쉬는 일 말고는 없었기에, 친목도 다질 겸 밥이나 술을 마시는 일이 왕왕 있었지.
이번 촬영 역시 그러했다.
첫 번째 금요일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식이 잡혔고.
첫 회식인 만큼 대부분의 배우와 스태프들은 서울에 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했다.
평소라면 나 또한 회식에 당연히 참석했을 테지만, 자꾸 지끈거리는 두통에 나는 호텔로 향했다.
“하아… 힘들다.”
텅 빈 방 안.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 깜깜해야 할 시각.
하지만 살짝 열린 커튼 틈으로 밝은 빛이 보였다.
“뭐지, 왜 이렇게 밝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고.
밖은 해가 옅게 떠 있는 것처럼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태양 빛이 아직 남아 있어 박명의 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흐릿한 빛은 나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오히려 스산한 느낌이 드는 거리.
“뭐야, 거리가 왜 이렇게 음침한 거야….”
딩동-
그때, 울리는 휴대 전화.
작품을 함께하는 배우들이 있는 단톡방이었다.
-저희 펜션에서 2차 하기로 했어요. 오실 수 있는 분들 오세요!
-맞아요. 희성 선배님, 호텔에서 심심하시면 놀러 오세요~
배우들의 톡이었고, 그 톡과 동시에 박 실장이 내 방으로 찾아왔다.
“어? 실장님.”
박 실장은 내게 자신의 휴대 전화를 보여주며 물었다.
“희성 씨, 지금 펜션에서 2차 한다고 하는데, 가실 건가 해서요.”
나는 평소라면 가지 않겠다고 했을 테지만.
오늘은 괜스레… 이 호텔을 벗어나고 싶었다.
“음… 오늘은 한 번 갈까 봐요.”
창밖으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과 거기에 언뜻언뜻 보이는 폐병원 때문에 자꾸만 스태프의 이야기가 맴돌았으니까.
“오오, 정말요?”
“네, 여기 오늘 좀 무섭… 아니, 펜션 회식에 갈까 해요.”
내 말에 박 실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물었다.
“여기서 폐병원 보이니까 좀 무섭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호텔에서 조용히 있었더니 좀 심심해서. 이제는 북적북적한 펜션도 가볼까 싶어서요.”
박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무서운 건 아니시고.”
“그럼요.”
그는 웃음을 참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혹시 펜션으로 아예 숙소도 옮겨 드릴까요? 호텔에서만 생활하시면 지겨우시잖아요.”
박 실장의 말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럼?”
사실, 자꾸만 보이는 폐병원 탓에 이곳이 조금 무섭기는 했으니까.
* * *
펜션에서 펼쳐진 회식.
시끌시끌하고 북적거리는 이곳.
오랜만에 정신없는 회식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장준우는 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었다.
“선배님, 여기 한잔 받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에게 한잔을 받은 나는 그에게도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준우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내 물음에 그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선배님이랑 동갑입니다. 하하.”
“오오, 정말요? 업계에서 동갑 만나는 일이 별로 없는데, 반갑네요.”
그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술병이 쌓여가고, 시간이 한참 흘러 자정에 가까워질 즈음.
우리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과 어색함이 풀리며 편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준우 씨는 항상 그 목걸이 하네?”
한 스태프가 장준우를 바라보며 물었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목걸이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예쁘죠?”
“그러네. 펜던트가 엄청나게 특이하다.”
나 역시 그의 목걸이를 바라보자, 장준우는 자신에 손에 있던 목걸이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펜던트가 정말 특이하네요. 느낌이 굉장히 고풍스러운데요?”
내 말에 장준우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진짜 좋아하는 목걸이라, 매일 착용하고 있어요.”
흔하지 않은 디자인에 나는 그 목걸이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준우는 내게 목걸이를 건네주며 답했다.
“편하게 보셔도 돼요.”
“아, 그럴게요.”
목걸이 펜던트의 무게가 꽤 있는 편이었고, 나는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살펴보았다.
장준우의 앞에 있던 배우가 목걸이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그 목걸이 오래된 거예요?”
“네, 사실… 저희 아버지가 유품으로….”
그때.
턱-
내 뒤를 지나가던 스태프가 좁은 곳을 지나가려다 내 등을 실수로 쳤다.
“어… 어?”
순간 손에 들린 목걸이가 떨어져, 앞에 놓인 음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황급히 음식이 담긴 그릇을 뒤집어 목걸이를 건져냈고.
서둘러 티슈로 목걸이를 닦으며 말했다.
“준우 씨, 정말 죄송해요. 실수로….”
그에게 사과를 건네면서도 손으로는 빠르게 목걸이를 닦아냈다.
수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모두 장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목걸이도 아니고,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말했었으니까.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해요. 이걸 어떻게 사과드리고, 보상해 드려야 하는지….”
섣불리 그에게 변상하겠다는 말만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이 목걸이를, 지금 쉽게 구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모습에 장준우는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답했다.
“괜찮아요.”
오히려 덤덤한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네?”
“정말 괜찮아요. 목걸이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음식이 묻은 거니까 닦으면 그만이에요.”
“그래도….”
“진짜 괜찮아요. 제가 괜히 보시라고 드려서 당황하셨겠다.”
이 상황에 되레 나를 걱정하는 그에게 목걸이를 건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이거 제가 세척하는 곳 알아보고 깨끗하게 원상 복구해 드릴게요.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제가 어떻게든 바로 보상해 드리고 싶은데… 그런 물건도 아니고….”
내 말에 장준우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제가 물로 세척하면 돼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언제든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화가 날 상황인데도 내게 전혀 꼬투리도 잡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미안함이 더해졌다.
“여기 제 번호예요. 미안해서 그러니까 세척이든 수리든 필요하면 꼭 저한테 말해줘요.”
나는 그의 휴대 전화에 내 번호를 찍었고.
그런 우리의 모습에 지나가는 스태프가 우리를 향해 물었다.
“오오, 뭐야. 희성 씨랑 준우 씨, 친해졌나 보네. 동갑이라고 친구 먹은 거야?”
그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었고, 그가 우리 앞으로 다가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재차 말했다.
“아니면, 저번에 준우 씨가 희성 씨 구해줘서 이미 정든 사이인가?”
그러자 스태프의 말에 장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이, 친구라니요. 제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선배님이죠.”
“근데 나이는 둘이 동갑이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갑입니다.”
“이야… 이 바닥에 배우들이 워낙 많아도, 동갑은 한 작품에서 만나기 힘든데. 잘됐네.”
스태프의 말에 나와 장준우는 눈이 마주쳤고.
그는 들뜬 분위기에 맞춰 내게 장난스레 말했다.
“선배님이랑 나중에는 친구 해도 될까요?”
“아… 그럼요. 하하.”
장준우가 후배인데, 내게 친구를 하자는 말에 반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후배, 선배 상관없이 동갑이면 친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가 내게 첫 만남부터 살갑게, 그리고 너무 잘해주는 모습에 오히려 의심부터 들었다.
솔직히 말해 친구라는 명목으로 접근해 다른 작품에 넣어달라는 일이 많았으니까 말이지.
나는 이후 이 자리에서 급히 장준우와 적당한 선을 그어버렸다.
이전에 인맥으로 작품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을 워낙 많이 봤으니, 이럴 수밖에.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회.
그러니까 내게는 연예계에서 만나는 사람들.
송유나는 연인이라 제외하고, 매니저인 김 대표는 이제 너무 바빠지기도 했으며, 비즈니스로 엮인 사이라 패스.
최서빈은 가깝지만, 선배라 친구한테 대하는 것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내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짜 친구’.
그런 사람을 정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곁눈질로 장준우를 흘긋 바라본 뒤, 쓰디쓴 술을 한잔 털어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