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98화 (298/303)

298화 #54 – 내게 주어진 건 연기뿐 (2)

“레디, 액션!”

박 감독은 메가폰 너머로 슛을 외친 후.

곧장 자신의 자리에 앉아, 카메라에 담기는 배우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로 모니터 속에 보이는 진희성의 연기를 바라보았고.

진희성의 연기에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다.

“오오….”

박 감독은 진희성의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을 보이며 감탄했고.

그렇게 진희성은 호흡을 함께 맞추는 배우와 미리 맞춰둔 동선대로 이동하며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연기를 이어가던 도중.

박 감독의 등은 어느새 의자에 기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 신의 하이라이트에 가까워지고 있었지.

박 감독은 대본과 진희성의 연기를 바라보며, 디렉팅할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쿵-

진희성에게 날아든 배우.

흉기로 진희성의 등허리를 찌른 배우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있었다.

진희성은 그의 몸짓에 무릎을 꿇었고.

카메라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진희성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담아냈다.

진희성은 자신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카메라는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꿋꿋하게 연기를 이어갔다.

“으윽… 사람… 쉽게 안 죽어….”

진희성의 끊어지는 말들.

거친 숨소리.

실제 흉기에 찔린 사람인 것만 같았다.

연기라는 것을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그 연기에 놀라 진희성을 바라볼 정도였다.

의자에 기대고 있던 박 감독도 어느새 몸을 일으켜, 모니터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고.

진희성은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심각해지는 얼굴로 대사를 내뱉었다.

“내 손으로… 너네 잡아 처넣어줄게….”

화면 가득 담긴 진희성의 얼굴.

그 덕에 진희성이 말을 내뱉고 있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모습에 박 감독은 입을 떡 벌리고 읊조렸다.

“…미친.”

진희성의 연기에 혀를 내두르는 그의 모습.

박 감독은 어느새 대본이 아닌, 진희성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진희성은 곧 쓰러져버릴 사람처럼 눈꺼풀을 아주 무겁게 감았다 뜨고 있었다.

거기에 한 올 한 올 떨리는 속눈썹까지.

곧 눈을 감고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진희성의 모습에 박 감독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화면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진희성을 바라보았고.

진희성은 끊어져 가는 숨통을 겨우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듯 보였다.

박 감독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떡 벌렸다.

“저게 연기라고?”

그는 혀를 내두르며 바닥에 널브러진 진희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연기가 아니라, 진짜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박 감독의 눈에는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과 걱정의 눈물이 차올랐고.

그런 모습은 비단 박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진희성의 등에 흉기를 꽂은 배우.

그는 진희성을 보고 비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밖으로 몸을 빠져나왔고.

아직 화면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진희성을 보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품인 가짜 흉기.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진희성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실제 흉기를 휘둘렀나 싶을 정도였다.

진희성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카메라 감독.

주변 스태프들까지, 온통 진희성의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은 이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고 있었으니까.

박 감독은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문 나머지 피가 고인 듯 보였다.

“대본 리딩 때보다 연기가 어떻게 더 늘 수가 있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읊조렸다.

“진희성… 대체 포텐 끝이 어디야, 대체?”

* * *

“내 손으로… 너네 잡아 처넣어줄게….”

나는 흉기에 찔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연기를 이어갔다.

불과 얼마 전.

실제로 흉기에 찔렸던 적이 있는 터라.

더욱 그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다.

아니,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지금이었다.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다 보니,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 눈물은 결코 뺨을 타고 흘러내리지 않았다.

내 시선은 멀어져 가는 범죄자, 일명 노랭이라 불리는 그를 향해 있었고.

헐떡이는 숨을 겨우 삼켜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점 감겨오는 두 눈꺼풀.

무거워지는 눈을 감지 않기 위해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박 감독의 사인을 기다렸다.

신이 끝나는 그 사인을.

대본에 있는 대사가 끝이 났음에도, 외치지 않는 박 감독의 ‘컷’ 사인.

뭐지…?

아직 박 감독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기에.

내가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시선을 그에게 옮길 수는 없었다.

카메라 밖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지.

여기서 내가 움직이거나 돌발 행동을 한다면, ‘NG’가 될 터.

내가 다음 대사를 잊었나?

그럴 리는 없었다.

수없이 연습하고, 신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대사를 읊었으니까.

분명 끝인데….

나는 이 신이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드리브로 대사를 이어갔다.

내 대사가 편집될지,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에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를 이어가는 것뿐이다.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맞춰 숨을 헐떡였고.

꼴딱꼴딱 숨을 넘겨가며 읊조렸다.

“CCTV? 하, 너네 내 눈에 다 찍혔어. 개XX들아….”

그리고 이내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컷, 오케이!”

드디어 떨어진 박 감독의 컷 사인.

뒤늦게 외친 그의 오케이 사인에,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현장의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박 감독까지.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게 박수를 쏟아부었다.

짝짝-

“와아…!”

“미쳤다.”

“진짜 이게 연기라고?”

고요하던 현장은 그들의 감탄 소리로 가득했고.

박 감독은 내게 달려와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희성… 괜찮아?”

“네, 감독님.”

“나 희성 씨 진짜 칼에 찔린 줄 알았어.”

그는 정말 내가 흉기에 맞기라도 한 줄 아는 듯, 내 허리에 꽂힌 소품 흉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말요?”

“어, 와아… 이건 진짜….”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는 감독님께서 컷 사인 안 해주셔서, 제가 실수했나. 다음 대사를 잊은 건가 했습니다.”

“놀라서, 컷을 외치는 것도 까먹었어.”

박 감독은 고개를 휘이 저으며 넋이 나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애드리브까지 살려야겠다. 그 대사도 너무 좋았어. 눈에 다 찍혔다는 말… 애드리브까지 짜서 온 거야?”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컷 소리가 안 나길래, 급히 해봤습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너무 좋다. 앞으로 이런 대사 나오려면, 내가 컷 사인 안 줘야겠는데? 하하.”

박 감독의 너스레에 나는 활짝 웃으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감독님. 하하.”

“연기 진짜 좋았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박 감독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음 신 준비를 위해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현장을 걸어 나오는 길에 나를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방금 촬영한 신에서 내 임팩트가 꽤 강했던 모양이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그들은 내가 실제로 다친 것도 아닌데, 내 안부를 묻듯 질문을 던졌다.

“희성 씨, 괜찮으세요?”

“네, 그럼요.”

그들을 향해 답하자, 그들은 같은 반응을 내게 보였다.

“연기 진짜….”

엄지를 높이 들고 흔드는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다음 촬영을 위해 휴식을 취하러 차로 향하는 길.

스태프들과 멀어져 혼자 걸어가는 이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 하나.

‘두통’.

그랬다.

분명 촬영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두통에 몸부림을 쳤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상하다. 분명 머리가 깨질 것 같았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에 올라탔고.

그러자 보이는 약봉지에 쓰읍 소리를 내며 읊조렸다.

“약 때문인가?”

약을 먹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늘 두통에 시달리는 내가 약을 먹어본 적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약으로 두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약 때문은 아니고… 왜 갑자기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진 거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살 만했다.

괴로움에 힘겨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다음 촬영까지 한참이나 남은 시간.

나는 온 힘을 쏟아냈던 조금 전 촬영에 지쳐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으윽….”

고통은 삽시간에 퍼져 괴로워졌고.

휴식에 빠지기도 전에,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대본.

대본을 보며 연습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휴식 후 대본 연습을 하려고 했었기에, 나는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대본을 펼쳤다.

다음 촬영 대본 페이지를 펼쳐 대사를 읽으려는 그 순간.

“…….”

나는 알 수 없는 이 감정과 몸 상태에 말문이 막혔다.

대사를 되뇌자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두통.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결국…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게, 연기…인 건가?”

나는 대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 * *

열흘이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진 촬영.

그러던 중.

며칠간 내리는 비 소식에, 강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의 휴식이었지만.

내게는 이 며칠의 휴식이 너무나 소중했다.

눈을 뜨고, 감기 전까지.

모든 시간을 연습에만 할애했다.

연기 연습부터 후반부에 시작될 액션 연습까지.

병원에 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액션 스쿨의 연습량을 따라가려면, 이 짧은 며칠만으로도 부족할 정도.

작품에 미친 듯이 빠져들다 보니, 두통에 시달릴 시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액션 스쿨에서도 액션 연습에 몰두하면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근 며칠간은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았다.

“코치님, 그럼 저 오늘은 와이어 연습할 수 있는 거죠?”

내 말에 그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대신 한 번 연습하고, 쉬었다가 또 하는 거로 해요. 아직 상처 완전히 아문 건 아니니까.”

“네, 그럴게요.”

나는 그의 코칭에 와이어에 몸을 매달았고.

영화에서 펼칠 허공에 매달린 신을 연습했다.

손을 뻗어 몸을 날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코치가 힘을 실어주듯 소리쳤다.

“그렇지, 좋아요. 앞으로 조금 더…!”

한참 이어진 연습.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향했다.

휴대 전화를 바라보자 시간은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시간을 확인한 뒤 곧장 땀에 젖은 몸을 씻어냈다.

샤워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대본과 액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 생각을 하면 고민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두통까지 사라졌으니까.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난 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툴툴 털며 바라본 휴대 전화.

아무런 알림도 없는 휴대 전화를 보니, 송유나가 떠올랐다.

병원에 입원한 날.

그녀가 내게 온 이후, 그녀를 보지 못했었다.

물론 그날의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스케줄 때문이었지.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전보다 조금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소홀해진 이유는 확실하게 있었다.

WG 엔터의 서규리….

어쭙잖은 오해였지만, 그와 더불어 바빠진 서로의 시간.

그게 우리를 멀게만 만들고 있었지.

그리고 또다시 지끈거리는 머리.

“안 되겠다… 빨리 대본 연습하자.”

나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송유나에게 연락이 아닌 대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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