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54 – 내게 주어진 건 연기뿐 (1)
크랭크인을 이틀 앞둔 날.
오늘도 쉬지 않고, 액션 스쿨로 향했다.
회복과 동시에 시작한 액션 연습.
비록 액션 신은 촬영 후반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액션 연습을 쉴 수는 없었다.
촬영장에 가서 액션 연습을 할 기회는 현저히 적을 테니까.
“코치님, 저 오늘은 와이어 연습해도 될까요?”
연습이 가장 덜 됐다고 생각한 게 와이어 연습이었고.
코치를 향해 물었지만,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어제와 같았다.
“아니요. 지금 그 몸으로 하는 건 무리가 있어요. 상처 회복에도 좋지 않고요.”
“아….”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탄식뿐.
이렇게 가다가는 현장에서 스턴트맨을 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 표정을 알아차린 코치가 코를 찡긋거리며 나를 위로했다.
“희성 씨 회복이 빠르기는 한데, 아직은 조금 무리예요. 연습은 할 수 있어도, 혹시나 배에 무리가 간다면 이후 액션 촬영이 아니라, 연기 촬영도 힘들 수 있어요.”
코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네, 그럼 촬영 시작하고, 중간에 서울 올 때, 그때 와이어 신 연습할게요.”
“예,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가볍게 몸 풀고, 지상에서 하는 액션 연습합시다.”
“옷 갈아입고 올게요.”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희성 씨, 다른 사람보다 회복력 좋아요. 금방 회복하고, 와이어 연습합시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후반에 와이어 신은 스턴트맨 없이 갈 수 있게, 제가 꼭 만들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코치님.”
나는 재빨리 환복 후.
오늘도 트레이닝복이 젖도록 액션 연습에 몰두했다.
연기 연습만큼이나 공을 들인 액션 신.
나는 이 상처로 인해, 작품에 피해가 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액션 신이 난무하는 영화인 ‘언더커버’.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상처임은 분명하지만.
고작 이런 일 하나로, 고작 그런 사람 하나 때문에.
내 앞길을, 연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습에 연습을 거쳐, 그렇게 크랭크인 날짜까지 꽉 채워 몰두해야만 했다.
* * *
평소보다 긴장되는 첫 촬영.
지방으로 가는 내내, 나는 한숨도 잠에 들지 못했다.
“희성아, 좀 자. 도착하면 바로 연기 시작할 텐데.”
운전대를 잡은 김 실장이 룸 미러로 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했고.
그런 그의 말에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잤다가 컨디션 더 안 좋아질까 봐. 연습이나 할래.”
나는 옆자리에 올려둔 대본을 가져와 연습을 시작했다.
분명 매일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태는 완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칼에 찔린 배의 상처는 때를 알 수 없게 쿡쿡 찔러댔고.
그 상처 때문에 나는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풀어낼 수가 없었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를 찌른 그 범죄자를 탓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원망보다는 빨리 이 상처와 고통을 털어내고 싶었다.
그를 탓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내 모든 시간이 소중했으니까.
몇 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현장.
나는 심호흡을 하며 상처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고는 눈에 힘을 주고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현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치며 인사를 한 사람은 박 감독이었다.
“어, 희성 씨 왔어?”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게로 다가와 손을 맞잡았고.
곧장 내 배로 시선이 향했다.
“네, 감독님.”
“희성 씨, 몸은 좀 어때?”
그의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괜찮습니다!”
괜찮다… 이 대답뿐.
“다행이네. 오늘 촬영 잘해봅시다.”
“네.”
현장은 여느 촬영과 다름없이 바삐 움직였다.
수많은 스태프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각자 최선을 다했고.
배우들 역시 자신이 맡은 역할의 연기에 충실했지.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다.
주연을 맡은 내가, 고작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 모든 이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테니까.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모두 마친 뒤.
첫 신을 찍기 위해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찾아온 통증.
“으윽….”
통증은 배에 생긴 상처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그 고통이 두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는 1만 년의 기억이 한 번에 들어왔던 그날.
그때처럼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기에, 현장으로 걸어가던 걸음을 멈췄고.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하아… 하아….”
하지만 첫날부터 촬영을 미룰 수는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과 별개로 이 고통으로 인해 연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움직여 현장으로 향했다.
박 감독은 카메라 앞에 선 나를 바라보며, 나와 눈을 맞췄고.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시작을 알렸다.
“레디, 액션!”
박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언제 고통에 시달렸냐는 듯 배역에 몰입했다.
“그럼 제가 위장하겠습니다.”
상대 배역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내게 말했다.
“경찰로만 살던 네가, 들키지 않고 할 수 있겠어?”
“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어떻게….”
그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나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잡아야죠, 그놈들. 더 이상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앞에 놓인 범죄자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죠. 제가 하겠습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갈 사람.”
카메라는 그대로 내 얼굴을 화면 가득 잡았고.
나는 박 감독의 컷 소리가 날 때까지, 눈빛을 매섭게 지은 채 사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메가폰 너머로 들려오는 박 감독의 목소리.
“컷, 오케이!”
그의 목소리와 함께 조용하던 현장에는 다시 소음이 가득해졌고.
박 감독은 나와 앞에 있는 배우를 향해 디렉팅을 던졌다.
“연기 좋았어요. 이번엔 바스트 신 갈 테니까, 방금처럼 다시 갑시다.”
그의 말에 우리는 합창하듯 소리쳤다.
“네.”
그렇게 카메라가 이동해 자리를 잡았고.
다시금 지끈거리는 머리에 주먹을 쥔 손으로 머리를 쿡쿡 치며 두통을 잠재웠다.
극심한 두통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마음속으로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써 미소 지으며, 상대 배우를 바라보았다.
‘아… 죽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두통을 잠재우던 순간.
다시금 박 감독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레디, 액션!”
또다시 내 눈빛은 매섭게 돌변했다.
* * *
촬영 중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급히 차에 올라타 몸을 뉘였다.
그 모습에 김 실장이 내게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희성아, 괜찮아?”
“응.”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김 실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그에게 답했다.
“형, 나 약 좀….”
“아, 약. 잠시만.”
김 실장은 내 말에 서둘러 가방을 뒤적여 약 봉투를 찾았고.
이내 물과 함께 약을 내밀었다.
약은 배에 난 상처로 인한 약이었지만.
진통제가 함유된 약이었기에, 서둘러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미미했지만, 지끈거리는 머리 탓에 약을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두통이 약으로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 두통….
그저 일반인이 느끼는 두통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연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약을 먹고 한숨 눈을 붙이는 것 말고는 없었지.
그렇게 몇십 분이 흘렀을까.
감았던 눈을 뜨자, 차 주변을 서성이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머리는 지끈거렸지만, 다음 촬영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만 했고.
나는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내게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사람.
조금 전까지 계속 내 차 주변을 배회하던 배우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는 조심스레 내 앞에 서서 말을 붙였다.
“저는 장준우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네, 저는 진희성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장준우가 내 손을 맞잡고 흔들며 답했다.
“당연히 선배님 너무 잘 알고 있죠.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저 다음 신 촬영, 선배님이랑 같이 찍어요.”
“아… 네, 같이 가요.”
그렇게 나는 장준우와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박 감독은 나와 장준우를 비롯한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시작했고.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배역에 몰입해 연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작된 촬영.
“끊지 않고, 쭉 이어가 볼게요. 레디, 액션!”
박 감독의 사인과 함께 내 눈빛은 돌변했다.
언제 아팠냐는 듯.
어디가 아팠었냐는 듯이 말이다.
내게 손을 얹는 상대 배우.
“야, 이번에 노랭이 출소했다는데. 알고 있냐?”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휴대 전화 속 일정을 확인했다.
“아… 그러네요. 노랭이 오늘 출소네.”
“집 조심히 들어가.”
“괜찮습니다. 노랭이 이번에 감방 가서 정신 차렸다는데.”
내 말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야, 이 자식이 경찰하면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
“네?”
“걔 그냥 범죄자 아니야. 그 새끼… 정신 못 차려. 아니, 안 차려.”
“…….”
그는 내 어깨를 잡아 돌려,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읊조렸다.
“명심해. 그 새끼는 인간 아니야.”
그리고 내게 호신용 무기를 손에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몸조심하라고. 너 당장 다음 달부터 마약 검거 들어간다며.”
“에이, 선배님. 저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마약 검거 안 할 거야?”
“하죠. 이런 거 없어도, 노랭이 나타나면 제가 잡을 수 있습니다.”
웃으며 말하자, 그는 내 등을 세게 쫙 때리며 외쳤다.
“네가 아무리 맨손으로 그 새끼를 잡을 수 있다고 해도. 미쳐서 눈 돌아간 새끼는 못 잡아.”
“아휴, 선배님. 오늘따라 제 걱정이 많으시네. 걱정 마십시오. 제 걱정도, 그리고 마약반 검거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에게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내일 서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넵.”
그는 뒤를 돌아 자신의 차로 향했고.
나는 어두운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던 순간.
“흐흐흐….”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웃음소리.
내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노리고 있는 범죄자, 노랭이라는 것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가며 그가 듣도록 소리쳤다.
“노랭아, 출소 축하한다. 근데 거기서 그렇게 썩다가 나왔는데, 또 들어가려고?”
내 말이 끝나자 음흉하게 웃던 웃음소리가 멈췄고.
나 역시 발길을 멈춰 세웠다.
“노랭아, 이제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너 또 감방 들어가면, 네 어머니는 어쩌려고.”
내 말에 골목에 있던 그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뭔데, 누구 어머니를 들먹거려?”
“오랜만이다, 노랭아.”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그딴 곳에 들어갈 일도 없었잖아.”
그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그에게 답했다.
“에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아니었으면? 너 나 아니어도 범죄자인 건 변하지 않잖아.”
“개XX….”
“너 나 아니어도, 감방 갔을 거야.”
“아니? 너 아니었으면, 내가 걸릴 일은 없었지. 아무도 몰랐어, 내가 그 짓을 벌인 거….”
그의 말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주눅 들 이유가 없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지 마.”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눈을 빤히 보고 읊조렸다.
“넌 그냥 범죄자야, 재활용도 안 되는 이 쓰레기 새끼야.”
내 말에 그의 눈은 파르르 떨렸고.
나는 등 뒤로 숨겨둔 그의 팔을 힐끔거렸다.
분명 그의 손에 흉기가 들려 있을 테니까.
그는 내 말에 치를 떨 듯 안면 근육을 떨었고.
그때.
“이 X발 새끼가…!”
등 뒤에 숨긴 흉기를 꺼내 내게 휘둘렀고.
나는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그가 내민 칼을 피했다.
하지만.
“으윽…”
등 뒤에 차갑게 꽂힌 칼.
젠장.
그 자식이 홀로 올 거라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등줄기에서 뜨거운 땀이 흘러내렸고.
이 뜨거운 게 땀인지, 피인지 구분이 안 갈 때쯤.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 뒤에서 칠 거라는 건, 예상 못 했나 봐?”
“나이스. 노랭아, 나 딱 맞게 나왔지?”
“어, 잘했어. 야, 경찰 나부랭이야. 여기 CCTV도 없어. 너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그들은 내 경찰복을 비웃듯 짓밟으며, 자리를 떠났고.
나는 주먹을 쥐고 발버둥을 치며 몸을 떨었다.
“으윽… 사람… 쉽게 안 죽어… 내 손으로… 너네 잡아 처넣어줄게….”
하지만 칼에 찔린 나는 눈이 뒤집혔고.
입술과 속눈썹까지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CCTV? 하, 너네 내 눈에 다 찍혔어. 개XX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