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53 – 오해는 오해를 낳는다 (5)
팬 미팅이 끝난 후.
일주일이 넘게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팬 미팅이 끝난 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그 스케줄이 방송사에서 잡힌 일정들은 아니었지만.
당장 시작할 영화 ‘언더커버’에 관한 스케줄이었지.
액션 스쿨에 나가고, 연기 연습을 하는 것.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연기에 몰두하는 게 내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그 스케줄은 팬 미팅에서 내게 달려든 그 한 놈의 괴한으로 인해, 이 사달이 나버린 것.
아픈 배보다 그게 더욱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었다.
내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누워서 치료하는 데만 쓰게 됐다는 것 말이다.
진희성의 몸으로 일생을 살게 된 후.
나는 다시 1만 년이라는 시간을 윤회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진희성이라는 삶이 죽음까지 가는 이 모든 순간순간이.
그리고 1분 1초가 내게는 소중했다.
내가 하는 대로, 노력하는 대로 진희성이 변할 수 있으니까.
그 변화된 삶으로 10년이 아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팬’이라는 이름을 달고, ‘범죄자’라는 타이틀을 쓴 괴한.
그에게 칼에 찔렸을 당시, 나는 생사를 넘나들었다.
다행히 그가 찌른 칼이 한 번.
두 번을 찌르기 전에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다행이었고.
또 그 한 번의 칼부림이 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진희성의 몸으로 맞이하는 삶은 끝이 났을 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1만 년의 긴 시간의 윤회를 시작했을 테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
온 세상의 주목을 받아 병원 생활을 했기에, 의료진의 엄청난 노력과 회복에만 힘쓸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 덕에.
나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입원해 있다가, 드디어 병원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희성아.”
문을 열고 김 실장이 들어섰다.
“응, 형.”
“이제 퇴원해도 된대.”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나가면 되는 거야?”
“어, 옷 가져왔어. 갈아입고 있으면, 퇴원 수속하고 올게.”
“알겠어.”
김 실장은 내게 환자복이 아닌, 내 옷을 들고 와서 내밀었고.
나는 오랜만에 보는 내 옷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환복했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른 뒤.
퇴원 수속을 마친 김 실장이 병실로 돌아왔다.
“다 갈아입었어?”
“응, 이제 가자.”
“병원 앞에 기자들 있을 거야. 뒤로 해서 돌아….”
나는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자.”
“괜찮겠어?”
“응, 다들 걱정하실 거 아니야. 멀쩡하게 퇴원하는 거, 기사 나가야 다들 안심하실 것 같아.”
내 말에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럼 괜찮다는 것만 보여주고, 얼른 집으로 가자.”
“그럴게.”
김 실장과 병원 로비를 나서자, 그의 말대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병원 입구에 몰려 있었다.
소식이 어찌나 빠른지.
내가 퇴원하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 실장이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고.
팟-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셔터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희성 씨,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데, 이제 회복은 다 되신 겁니까?”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다음 작품은 그대로 진행이 되시는 겁니….”
기자들은 내게 질문할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물음을 쏟아냈고.
그들에게 답할 시간도 없이 나는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진희성입니다.”
내 인사에 기자가 아닌, 다른 이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오빠!”
“희성 오빠, 괜찮아요?”
“오빠….”
다름 아닌 ‘진희성수기’의 팬들이었다.
그녀들은 기자들 뒤에 뭉쳐서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코끝이 시큰거렸고.
겨우 표정을 숨기며 기자들과 팬들을 향해 내 상태를 말하기 시작했다.
“걱정해 주셔서 다들 감사드립니다. 지금 제 상태는 회복이 다 되어가고 있고, 퇴원 후….”
십여 분이 흐르고.
짧은 대답을 마치고, 차로 돌아온 뒤.
문을 닫자마자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내 숨소리에 김 실장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힘들었지?”
“아니야. 그래도 걱정하시니까, 이렇게 얼굴 보여드리고 말씀드리는 게 낫지.”
“고생했어. 얼른 가자.”
차는 그렇게 병원을 벗어났고.
나는 달리는 도로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형, 근데 팬 미팅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응?”
“중간에 그렇게 팬 미팅이 끝나 버렸잖아. 나 보겠다고 금액 지불하고 오신 건데, 그렇게 끝나버려서….”
내 말에 김 실장이 고개를 휘이 저으며 답했다.
“근데 그때가 정규 팬 미팅 시간이 다 끝난 후였잖아. 앙코르 개념으로 이뤄진… 그러니까 서비스처럼 이뤄진 시간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의 말이 맞지만, 끝맺음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그렇긴 한데…. 영 신경 쓰이네.”
김 실장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정규 팬 미팅이 끝난 거라, 환불 처리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원하시는 분들은 환불을 해드리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어. 원하시는 분들은 환불해 드리자. 근데 아마 거의 없을 거야.”
그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형, 나 감독님한테 전화 왔다, 잠깐만.”
“응, 편하게 받아.”
그는 내 말에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곧장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어, 희성 씨.
“네, 박 감독님.”
내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영화 ‘언더커버’의 박 감독이었다.
-통화 가능해?
“예, 그럼요.”
-퇴원은 잘 한 거야?
그의 말에 나는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퇴원 소식이 벌써 감독님께까지 전해진 겁니까?”
-아유, 그럼. 우리 스타님 퇴원하시는데, 기사가 쫙 났지.
“벌써 기사 올라왔습니까?”
-당연하지. 웃는 사진 보고, 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니까?
“하하, 벌써 제 사진도 보셨네요.”
-그럼, 그래서 진짜 몸은 좀 어떤 거야?
“걱정해주신 덕분에 빠르게 회복 중입니다.”
-아휴, 다행이야. 무슨 팬 미팅에서 그런 일이 다 있어.
“그러게요. 저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좀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제 통원 치료로 해도 된다고 해서, 바로 퇴원했습니다.”
나는 박 감독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퇴원하고 나면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를 주셨네요.”
-어, 퇴원했다는 기사 보자마자 연락했지.
“감사합니다. 곧 촬영인데, 얼른 회복해서 퇴원해야죠.”
내 말에 박 감독이 쓰읍 소리를 내며 내게 물었다.
-정말 몸은 괜찮아?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더 쉬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아닙니다. 이제 크랭크인이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크랭크인은 조금 미룰 수 있어. 편하게 이야기해줘.
“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몸 상태가 괜찮은 거야?
박 감독의 걱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로 인해 크랭크인이 미뤄진다면, 단순히 나 혼자만이 아닌.
모든 배우들과 수많은 스태프들의 일정이 틀어질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내 회복 하나로 미룰 수가 없었다.
“네, 촬영 전까지 열심히 회복해서 가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음… 알겠어. 절대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말해주고.
“예, 그러겠습니다.”
-초반에 액션 신 잡혔던 건, 뒤로 좀 미루고 조정할 테니까. 몸조리 잘하고.
“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그대로 촬영 날 보자고.
“예, 감독님.”
* * *
퇴원 후 며칠이 지나고.
내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잡아뒀던 액션 스쿨 스케줄은 모두 취소했지만.
촬영을 위해 연기 연습에 매진했다.
“형.”
회사에 도착하자 김 실장은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내게 달려왔다.
“아니, 회사에는 왜 왔어. 집에서 쉬라니까.”
“아니야. 자꾸 집에서만 쉬면, 몸이 더 안 좋은 거 같아서. 빨리 나와 적응해야지.”
“그래도….”
걱정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배를 문질렀다.
“이제 괜찮아. 당장 촬영도 시작할 텐데, 계속 집에서만 있는 버릇할 수도 없고.”
“촬영은 정말 그대로 괜찮겠어?”
“응, 박 감독님이 액션 신 일정은 뒤로 미뤄주셔서, 그때까지 회복하면서 촬영해야지.”
“알겠어. 그나저나 회사는 왜 왔어?”
“형이랑 밥이나 먹고, 이야기 좀 하려고.”
“무슨 이야기?”
김 실장은 회의실로 발길을 옮겼고.
그를 따라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 실장에게 물었다.
“그때 말했던 팬 미팅 환불.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팬 미팅 환불?”
“응, 걱정되더라고, 팬분들이 그렇게 오신 건데….”
내 말에 김 실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답했다.
“안 그래도 오신 분들한테 공지 보냈는데, 환불 요청이 5%도 안 돼.”
“그렇게 적다고?”
“응, 나도 놀랐어. 다들 환불 안 하시겠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읊조렸다.
“다행이다.”
환불을 많이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마음은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닌, 팬들의 마음이 다행이라는 것이지.
돈과 시간을 쓰고 나를 보겠다고 온 팬들.
비록 끝은 그렇게 끝나 버렸지만, 내 무대에 대해서는 실망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것일 테니까.
김 실장이 그런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나저나 배는 정말 괜찮은 거야?”
“응, 내일 병원 가서 한 번 더 체크해야지.”
“어, 내일 오전에 데리러 갈게.”
그는 내 배를 빤히 바라보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근데 정말 촬영 괜찮겠어?”
“괜찮지.”
“무리하다가 탈날까 봐 걱정되니까.”
“정말 괜찮아. 액션 스쿨 스케줄 취소한 거 그것도 내일 병원 가서 체크하고, 괜찮다고 하면 다시 스케줄 좀 잡아줘.”
그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김 실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으로 답했고.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물었다.
“맞다. 근데 너 퇴원하고 유나 씨는 만났어?”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올렸던 입꼬리를 내렸다.
“…아니.”
“요즘 유나 씨랑 좀 뜸한 것 같다?”
그의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러게. 그때 유나가 병원에 다녀간 이후로 좀… 그러네.”
“무슨 일 있었어?”
김 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아니, 뭐 서로 바쁘니까. 유나도 작품 들어갔고, 나도 이번 영화 준비하면서… 서로 시간이 안 맞잖아.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 뭐.”
“그래, 서로 바쁘니까 시간이 맞을 수가 없지.”
“응.”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때 너 다쳤을 때, 촬영 다 때려치우고 병원 왔다더라.”
“유나가 말했어?”
내 물음에 김 실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유나 씨 매니저한테 들었지. 그때 병원 주차장에서 만났거든.”
“아….”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촬영 도중에 오기가 쉽지 않은 거.”
그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뭔지는 몰라도, 유나 씨 잘 챙겨.”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고.
며칠째 울리지 않는 휴대 전화를 빤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