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53 – 오해는 오해를 낳는다 (2)
대기실 복도까지 들려오는 웅성거림.
그 쉼 없이 울리는 소리에 내 심장도 함께 뛰고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두드려지는 문.
똑똑.
“희성아.”
김 실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꽃바구니 몇 개 더 왔어.”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어디서?”
내 물음에 김 실장은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주었다.
“이건 박 감독님이 보내주셨고, 이거는 IBH 투자사에서 보냈나 봐.”
“와아… 감사하네.”
“응, 그리고 저거는 유나 씨가 보냈대.”
“정말?”
그가 가리키는 꽃바구니 하나.
압도적으로 커다란 크기였다.
“어, 진짜 유나 씨 스케일은… 장난이 아니네. 하하.”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아까 온 것들은 전부 팬분들이 보내주신 거랬지?”
“응, 그거랑 도시락이랑 케이크랑 선물이랑….”
내가 광고했던 브랜드들.
그리고 작품을 함께했던 스태프, 앞으로 함께할 스태프와 회사.
거기에 송유나와 팬들까지.
넓던 대기실은 어느새 꽃과 선물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진짜 다들 감사하다. 이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처음 하는 팬 미팅이라, 축하해주고 싶으셨나 봐.”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말했다.
“앞으로 다 갚아나가야 할 감사함들이다. 열심히 살면서 다 갚아야지.”
김 실장은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삼십 분도 안 남았는데. 떨려?”
“당연하지. 형, 나 심장 터질 것 같아. 이렇게 떨리는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하긴.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너는 오죽하겠어?”
“후우….”
그는 내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하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나 나가서 대기하는 팬분들 보고 왔는데, 항상 현장에 와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 다 오셨더라. 그분들은 많이 뵀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늘 뵀던 분들이라도 떨리네. 시간도 쓰고, 돈도 쓰면서 나 보러 와주신 팬들이니까. 최대한 많은 거 보여드리고, 만족시켜 드리고 싶어서.”
“준비한 거 다 보여드리고. 실수해도 괜찮아. 그런 게 팬 미팅의 묘미지.”
그의 말에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실수만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꾹 눌러내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삼십여 분이 흐르고.
드디어 시작되는 팬 미팅.
팟-
번쩍이는 핀 조명이 나를 비췄고.
나는 그 조명을 뚫고 관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진희성입니다!”
내 목소리가 나가자마자 이곳은 환호 속에 파묻혔다.
“꺄아아!”
“와아!”
“희성 오빠!”
“사랑해요, 진희성!”
“아아악!”
팬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나는 그 소리에 인사 다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짝짝짝-
“와아…!”
팬들의 함성과 함께 쿵쾅거리는 심장.
심장 박동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느낌이었다.
환호에 온몸의 신경이 간질거리고, 세포들이 모든 곳에서 터질 듯 팽창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아….”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 알 수 없는 이 감정에 휩싸여 탄성을 내질렀다.
아직 인사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위해 소리치고 환호하는 팬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빠, 사랑해요!”
“진희성! 진희성!”
팬들은 내 이름을 연신 외쳤고.
내가 제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자, 결국 진행을 맡은 박세현이 나오며 소리쳤다.
“반갑습니다. 오늘 배우 진희성 님의 팬 미팅 진행을 맡은 박세현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나는 마치 술래에게 ‘땡’을 받은 듯,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진희성의, 그러니까 내 팬 미팅이 시작되었다.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준비한 노래를 이어갔다.
그리고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터진 박수.
“와아!”
“오빠, 대박.”
“노래, 미쳤어요!”
팬들은 내 노래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손뼉을 부딪치며 내게 다가오는 박세현의 모습.
“이야… 희성 씨,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노래까지 잘하시는 건 반칙 아닙니까?”
그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오늘 팬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어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이건 연습으로도 되는 실력이 아닌데요. 그렇죠, 여러분?”
그의 말에 팬들은 열광했다.
“네!”
“오빠, 가수해요!”
“앨범 내주세요.”
팬들의 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앨범까지는 무리고.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노래 들려드릴게요.”
내 말에 박세현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 희성 씨. 오늘 노래 말고도 춤도 준비하셨다고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대단한 춤은 아니고요. 요즘 보이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조금 준비해 봤습니다.”
“이야… 여기서 춤까지 잘 추시면, 정말 저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완벽하시면,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라고요.”
“하하,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잘 봐주세요.”
나는 곧장 몸을 풀며 준비한 자세를 취했고.
이내 조명이 꺼지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음악이 흘러나오자마자 비트에 몸을 맡겼다.
워낙 열심히 연습한 터라, 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작 하나 틀리지 않았다.
춤 동작 하나하나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에 몸을 흔들었고.
어느새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입 밖으로 터지는 거친 숨소리.
그럼에도 나는 동작에 힘을 빼지 않고, 열정적으로 관절을 꺾었다.
“꺄아아!”
내가 몸을 꺾고, 웨이브를 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팬들의 환호성.
그 소리에 입꼬리를 올리며 격렬하게 몸을 더 움직였다.
그렇게 노래가 끝이 나고.
“하아… 하아….”
나는 숨을 몰아쉬며, 팬들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내게 들려오는 박세현의 발소리.
“와아… 여러분, 우리 희성 씨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셨어요. 큰 박수 다시 보내주세요!”
짝짝-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박세현은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역시 신은 공평하네요.”
“네?”
“희성 씨, 춤까지 완벽했다면 저 정말 서러울 뻔했어요. 하하.”
그의 장난스러운 농담.
박세현의 말에 팬들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보냈다.
꺄르르 웃으며 손뼉을 부딪치는 팬들.
그들의 반응과 박세현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근데 여러분, 저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보이 그룹 같지는 않아도, 비슷하지 않았나요?”
내 말에 팬들과 박세현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희성 씨가 진지해서.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하셔서 사랑받으시는 것 같아요. 저도 오늘 희성 씨 팬 카페, 진희성수기 가입하고 싶습니다!”
팬들은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과 어설픈 춤 실력에 더욱 환호를 보내는 듯했다.
* * *
2시간이 넘는 팬 미팅이 마무리되었다.
박세현은 관객석에 앉은 팬들을 바라보며 허리를 깊게 접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열렸던 배우 진희성 님의 팬 미팅은 이렇게 마무리….”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듯 소리쳤다.
“안 돼…!”
“가지 마!”
“끝내지 마요.”
팬들의 아우성에 나는 함께 입술을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너무 아쉬워요.”
내 말에 팬들은 환호했고, 나는 무대 아래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장님, 저 팬분들이랑 조금 더 이야기 나눠도 되나요?”
내 물음에 김 실장은 시간을 체크하며,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와아아아!”
팬들은 그의 제스처에 소리쳤고.
그렇게 보너스 타임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앙코르 소통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실 팬들이 원한다면, 팬 미팅 정규 시간이 끝나도 이런 시간을 만들고자 했기에.
박세현은 미리 합을 맞춘 대로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오늘 준비한 건 모두 끝이 났으니까. 그럼 지금은 팬분들 중에 추첨을 통해, 무대로 모셔볼까 봐요. 사진도 찍고, 어떠세요?”
그의 말에 팬들은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소리쳤다.
“꺄아, 좋아요!”
무대에 나와서 나를 가까이서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는 말에 흥분한 팬들.
박세현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첫 번째 팬분은 희성 씨께서 질문해 주세요. 어떤 팬이 올라왔으면 하는지.”
“음… 여기 오신 분들이 모두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니까. 그럼 내가 진희성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하시는 분 있으실까요?”
내 질문에 관객석의 팬들은 모두 손을 뻗어 흔들었고.
박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한 사람을 가리켰다.
“어? 혹시 저 끝에 계신 남자분, 혼자 오신 건가요?”
* * *
양옆, 앞뒤로 빼곡하게 앉은 사람들.
그들은 안경을 낀 이 남성을 한 번씩 흘긋거렸다.
그녀들의 시선에 남성은 코를 쓰윽 문지르며 읊조렸다.
“흠, 흠… 이 사람들이 다 진희성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네.”
남성은 습기가 찬 듯한 안경이 콧대에서 흘러내리자, 추켜올리며 코끝을 비볐다.
그의 이름은 황한범.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무대 위에서 활짝 웃고 있는 진희성을 쏘아보았다.
황한범은 손에 들린 휴대 전화 배경 화면 속 송유나에게로 시선을 옮겨왔다.
그가 송유나의 팬이 된 건, 아주 오래전이었다.
송유나의 작품이란 작품, 광고면 광고, 그녀의 모든 활동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황한범은 송유나에게 어마어마한 배신감에 휩싸였다.
송유나와 진희성의 열애설이 터진 그날.
황한범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느낌에 집 밖을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황한범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배신’이었다.
자신과 같은 팬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한 생각은 조금씩 더 삐뚤어져만 갔고.
이제 그의 생각은 끝내… 뒤틀려진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유나는 잘못도, 문제도 없어. 이 모든 건… 저 자식, 진희성이 우리 유나를 타락시킨 거야.”
황한범은 옆에서 진희성을 향해 환호하는 팬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X들도 진희성… 저 새끼가 타락시키고 말 거야….”
그는 팬 미팅을 이어가는 내내 중얼거렸다.
하지만 워낙 시끄러운 이곳.
그리고 입에서만 웅얼거리는 그 소리는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곧 끝나기만 하면….”
진희성을 노려보며 몸을 움찔거리던 순간.
사람들은 진희성의 말에 손을 번쩍 들기 시작했고.
주변을 살피며 눈치 보던 황한범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끝까지 뻗었다.
“어? 혹시 저 끝에 계신 남자분, 혼자 오신 건가요?”
진행하던 박세현의 물음이 닿은 건, 다름 아닌 황한범이었다.
사람들은 부러운 듯 황한범을 바라보았고.
그는 갑자기 주목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네, 혼자… 왔어요….”
“우와, 남자 배우 팬 미팅에, 남자 팬분이 혼자 오시는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희성 씨, 괜찮으시다면 저 팬분을 무대로 모셔서 인사 나눌까요?”
그의 물음에 진희성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죠.”
잠시 뒤.
무대에 오른 황한범은 쭈뼛거리며 진희성의 옆으로 다가갔다.
진희성의 옆에 착 달라붙은 그에게 박세현은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진희성 배우님의 팬이 되셨어요?”
그의 질문에 진희성도 관심 있게 그를 바라보았고.
황한범은 진희성의 눈을 바라보지 않은 채 작게 읊조렸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진희성 씨 팬이에요….”
“아….”
조금은 이상한 답변.
혼자 팬 미팅을 왔다는 사람치고는 아이러니한 답변에, 진희성이 그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누군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의 질문에 황한범이 음흉하게 입꼬리를 찢으며 답했다.
“송유나.”
순간.
현장의 그 많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진희성의 팬 미팅 자리였기에, ‘송유나’라는 이름.
‘연애’라는 단어 자체가 암묵적인 금기어였으니까.
황한범의 말에 무대 아래에 있던 김 실장은 위험인물임을 감지했고.
서둘러 경호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진희성은 이런 분위기를 풀기 위해, 어색한 웃음과 함께 화제를 전환시켰다.
“아… 그래도 오늘 저 보러 와주셔서 감사….”
황한범은 그의 말을 잘라버린 채, 마이크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댔다.
“제가 원래 송유나 씨 팬이거든요. 아주 오래된….”
몸을 움찔거리던 황한범이 고개를 돌려 진희성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네가 송유나를 알기 훨씬 전부터!”
그러고는 소매 안에 품고 있던 칼을 꺼내, 그대로 진희성에게 달려들었고.
바닥에 넘어진 진희성의 몸 위로 황한범이 올라타며 포효했다.
쿵-
“죽어! 죽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