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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87화 (287/303)

287화 #51 – 누구를 위한 배려 (5)

진희성이 맡은 캐릭터.

그러니까 영화 주연의 직업은 경찰이었다.

경찰의 신분으로 범죄자를 잡는 방법과 과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강도나 단순 범죄자를 잡는 경우가 아니라, 특수한 경우에는 경찰의 신분으로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특히 ‘마약’과 같은 경우는 말이지.

마약과 관련된 조직원은 쉽게 길거리에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마약범들이 길가를 쉽게 나다니지도 않을뿐더러.

다닌다고 하더라도, 경찰은 그들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워낙 비밀리에,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몽타주 자체도 알기가 어려운 것.

더군다나 경찰이 잡고 싶어 하는 건, 마약 운반책 혹은 그 아래 심부름꾼들이 아니었다.

탁-

“아니, 누가 마약 운반책을 잡아 오래?”

경찰서장이 결재판을 책상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읊조렸다.

“밑에 따까리들 말고, 대가리를 잡아 오란 말이야. 이것들 백날, 천날을 잡아봤자 소용없어. 이 새끼들 대가리 잡아 오라고!”

“…네, 그래도 이 자식들 털어서, 대가리 정보라도 얻어 보겠습니다. 저희가 얘들 머리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야, 이 새끼야. 쟤들이 지들 대가리를 입으로 술술 불겠어?”

경찰서장의 말에 팀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쟤들이 불 놈들도 아니고. 이 마약 조직 하나 가지고, 지금 경찰 몇 명이 몇 달을…!”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팀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잡을 필요 없어. 그냥 우리가 그 소굴로 들어가자고.”

“예? 그 말씀은….”

“대가리가 정체를 안 드러내시겠다면, 우리가 직접 마약을 해서 만나는 수밖에….”

그들의 대화를 끝으로, 결국 진희성은 경찰의 옷을 숨기기 시작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확실할 테니까.

진희성은 경찰의 신분을 숨긴 채 투자의 귀재로 새로 태어났다.

“아휴, 그럼요. 땅이면 땅, 건물이면 건물. 어디 그뿐입니까?”

그는 너풀거리는 옷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그들을 향해 외쳤다.

“주식에 코인까지. 제가 투자하지 않는 종목은 없습니다.”

진희성의 말에 상대는 눈썹을 들썩였다.

“어쩐지, 사장님 태에서 일반인스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하하.”

“뭐… 그러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진희성은 손을 휘이 저으며 웃었고, 이내 그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휘어졌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희성의 빈 잔을 채웠고.

“예, 한 잔 줘요.”

술잔을 받은 진희성은 그와 잔을 부딪칠 틈도 없이, 입 안 가득 털어 부었다.

“어떻게… 애들 좀 세팅할까요?”

시끌시끌한 술집.

그럼에도 그 음악 소리는 진희성이 앉아 있는 룸까지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워낙 안쪽에 자리 잡은 VIP 룸이었고.

VIP를 위해 주변 방들은 모두 비어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는 진희성의 경제력을 파악한 후, 고개를 조아리며 재차 물었다.

“오늘 새로 들어온 애들도 있는데, 사장님께 한 번 쫙 소개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진희성은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요. 술, 여자, 도박… 뭐 이런 건 언제든 할 수 있잖아?”

“아… 네, 그렇죠.”

“질렸어, 그런 건. 돈만 주면 할 수 있는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니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말이야….”

진희성은 테이블로 몸을 들이대며, 그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 손길에 얼굴이 붙잡힌 상대.

진희성은 그의 귓가에 읊조렸다.

“돈을 줘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걸로 가져와요. 아.무.나. 살 수 없는 거.”

진희성은 손에 쥐고 있던 그의 머리칼을 휘익 밀어 의자로 밀쳐냈다.

그는 그런 무례한 진희성의 행동에도 고개를 꾸벅 숙인 채 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몰라 뵙고… 당장 준비해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희성은 술집을 빠져나와 한쪽에 있던 차에 곧장 몸을 실었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아휴, 마약쟁이로 살아본 적이 있어야 연기를 하지.”

그의 말에 운전기사로 위장한 경찰 후임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전혀 티 안 나셨습니다.”

“인마, 당연하지. 티가 나면 되겠냐?”

진희성은 평소 입지 않는 옷, 맞지 않는 차림이 불편했는지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여기가 우리가 잡으려는 그놈, 마약 운반책 맞는 거 확실하지?”

운전석에 앉은 후임은 운전대를 잡은 채, 룸 미러를 통해 진희성에게 답했다.

“그럼요. 확실합니다. 그놈들이 선배님한테 마약만 가지고 오기 시작하면, 끝입니다.”

“응, 저 자식들, 내 돈 냄새 하나는 확실히 맡은 거 같고… 한번 잡아보자, 대가리.”

경찰들의 예상대로, 마약은 어렵지 않게 진희성의 손에 닿을 수 있었다.

“와아, 선배님.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리겠는데요?”

후배 녀석의 말에 진희성은 그와 달리,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이렇게 마약이 구하기 쉬운 거였나 싶어서….”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이 조직 애들한테 마약 받는 게 가장 어려운 단계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이야….”

진희성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움직이자. 이 개새끼들… 이대로 판치게 놔둘 수는 없지.”

생각보다 빠르게 얻어버린 마약에, 진희성은 각성하듯 눈을 희번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세상의 향락을 하나하나 쉽게 맛보고 즐기다 결국 마약에 손을 대고.

그렇게 불법적인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마약은 그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마약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뻗치는 그 악마의 손길도 수없이 많았지.

진희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마약 더미를 터질 듯 쥐었고.

분노에 차오른 상태로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고, 우리 사장님, 오셨습니까?”

진희성의 등장에 덩치가 큰 사내들이 그에게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진희성의 눈빛은 처음 이곳에 방문할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물건은?”

“오시자마자 물건부터 찾으시는 거 보니까, 많이 급하신가 보네요.”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이곳의 보스.

그는 더 이상 진희성에게 굽실거리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제 갑과 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약을 필요로 해, 얼마든 돈을 갖다 바칠 사람은 진희성이라고 생각했을 터.

그의 알량한 미소에 진희성은 눈을 뒤집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쿵-!

그러고는 보스 앞에 테이블을 세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내가 지금 네가 주는 핫바리 물건 가지고 놀 사람으로 보여?”

그의 태도에 놀랐는지, 보스는 눈을 깜빡였다.

“더 센 놈으로 가져오라고 했잖아. 돈은 얼마든지 준다고.”

보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벌써 내성이 생기셨나….”

진희성은 그의 말에도 흐릿한 눈으로 주머니 속 마약 한 묶음을 꺼내 던졌다.

“이딴 싸구려 말고. 강한 거, 높은 거로 당장 가져와.”

그리고 이내 진희성의 손은 보스의 멱살로 향했다.

그 제스처에 보스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섰고.

진희성 옆 역시, 그의 아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

보스는 손바닥을 뻗어 자신의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야, 너네는 나서지 마.”

그리고 진희성이 잡은 멱살을 뿌리치며 옷깃을 털었다.

“사장님, 많이 흥분하셨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위에 놈은 저도 회장님 통해서 받아야 합니다. 돈도 아주 많이 들고요.”

그의 말에 진희성의 입꼬리는 길게 찢어졌다.

“돈이야, 얼마든.”

“그럼 금방 연락드리죠.”

진희성이 소속된 마약 검거반 팀.

그들은 너풀거리는 옷 속으로 칼이나 총을 대비한 장비를 착용했다.

“드디어 대가리 얼굴 좀 보겠네요.”

“다들 조심해. 그놈… 소문으로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놈이니까.”

“네, 근데 과연 오늘 직접 자리에 나타날까요?”

진희성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분명 나타날 거야. 워낙 의심이 많은 놈이라, 곧바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진희성의 상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해. 그 물건 직접 들고 올 놈은… 그 자식뿐이니까.”

그러고는 진희성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조언하듯 말을 이어갔다.

“오늘이 이 역할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확실하게 속이자고. 절대… 경찰인 게, 거짓인 게 드러나서는 안 돼.”

그의 말에 진희성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오늘은 반드시 그놈 검거해야죠. 더 이상 마약이 세상에 퍼지지 않으려면….”

그날 저녁.

어둠을 헤치고, 진희성과 경찰들이 향한 곳은 경기도 외곽의 한 건물이었다.

으리으리한 건물 안으로 들어선 그들.

머지않아 진희성은 보스가 소개해주는 인물과 인사를 나눴다.

“아, 이분이 소문으로만 듣던 큰손이십니까?”

진희성은 특유의 건들거림으로 그를 맞이했다.

“큰손이라… 재밌군요. 저희 회장님은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워낙 VIP시라 오늘 직접 만나뵙고 싶다고, 이 자리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진희성은 그의 말에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평온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한 번 봬야죠. 이번 물건 받고, 제가 쓸 돈이….”

진희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는 가방 하나를 꺼내 진희성 앞으로 내밀었다.

“먼저 물건 확인하시죠. 그렇게 찾으시던, 센… 놈. 여기 있습니다.”

진희성은 눈으로 물건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아니요. 눈으로만 어떻게 아십니까, 직접 한 번 해보시죠.”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 곧장 마약을 세팅했다.

“저희가 VIP를 모시는 만큼, 그리고 VIP님에게 맞는 물건을 가져온 만큼. 직접 보여드리고, 앞으로 공급하고 싶습니다.”

이내 진희성의 앞에는 마약이 세팅되었고.

여기서 진희성이 마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네, 테스트는 해봐야죠. 제대로 된 물건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그의 뒤로 서 있는 진희성의 아랫사람들.

그러니까, 경찰 후배들이 지키고 있었고.

진희성은 그들을 믿고, 마약을 깊게 들이켰다.

그러자 앞에 있는 사람들은 진희성을 바라보는 의심이 거둬지는 듯 보였고.

동시에 문이 열리며, 회장이라는 작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그를 향해 일제히 인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희성은 마약이 빠르게 몸으로 번져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야!”

진희성을 둘러싼 경찰들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이렇게 해서 결국, 다 검거하는 거지.”

어느새 송유나는 내 어깨에서 머리를 일으켜, 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손뼉을 부딪쳤다.

“와아… 스토리 뭐야. 미쳤잖아!”

“그렇지. 대본 진짜 좋더라고. 감독님 연출 역시 이야기만 들어도 박진감 넘치고.”

송유나는 혀를 내두르며 내게 말했다.

“이거… 아니, 대본 괜찮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

“응, 이거 유나가 나한테 추천해준 거잖아.”

그녀는 쓰읍 소리를 내며 답했다.

“나는 트리트먼트랑 감독님, 작가님만 보고 추천해준 거지. 그걸로도 충분히 잘될 거라 확신했거든.”

송유나는 다소 흥분한 투로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근데 내용 들으니까, 이건 진짜 미쳤다. 흥행은 의심할 여지도 없겠는데?”

그녀의 눈빛과 말투까지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그녀는 작품에 대한, 그러니까 내가 펼칠 연기에 대한 열정이 피어올랐는지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빠, 아까 거기 설명했던 부분에서 연기할 때. 참고할 만한 작품이랑 연기가….”

송유나는 내 연기 선생님, 혹은 매니저가 된 듯 디렉팅과 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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