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50 – 책임감 (2)
김 실장의 한숨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혼 이후, 아빠가 됐다는 경사와 함께 하는 말이 직업 걱정이라니.
어떤 의미의 걱정인지 알지 못해 나는 그를 향해 되물었다.
“그게 왜?”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답을 보냈다.
“돈 때문이지, 뭐.”
“아….”
한 아이의 아빠.
가장이 된다는 게, 물론 기쁜 일이지만.
당연히 그로 인한 책임감은 막중해질 터였다.
그 책임감의 무게 중 ‘돈’이라는 게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당연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건강, 행복 등 중요한 게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돈이 건강과 행복, 가족 등 모든 것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없다면 최소한의 것들을 갖기가 힘든 게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홀로 세상을 살아갈 때와 가정을 이뤘을 때.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경제적의 필요성은 배가된다고 생각한다.
진희성의 몸에서 결혼도, 아이의 부모도 되어본 적이 없지만.
1만 년의 삶을 살아오며 수없이 보고 또 보았다.
‘돈’의 중요성을.
김 실장은 코끝을 찡긋거리며 술잔을 들이켰다.
“솔직히 매니저라는 직업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잖아.”
그의 말에 나는 명쾌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의 연봉과 한 달에 김 실장에게 들어가는 급여를.
정확하게 끝자리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대충 이 바닥의 연봉은 알고 있었지.
그나마 WG 엔터가 연예계 기획사 중 대기업에 속하기도 하고.
김 실장은 경력도 있기에, 다른 매니저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이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사실상 일반 대기업 회사의 연봉급은 아니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돈을 못 벌어 쫄쫄 굶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작품이 터지고 스타덤에 오르면, 일반 회사 직장인들이 평생 벌어야 할 돈을 1년 안에 단숨에 벌기도 한다.
물론 나는 아직 스타덤에 오르려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김 실장의 연봉을 알기에, 틈틈이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매달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급여가 필요할 터.
나 역시 그런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진희성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나름 풍족한 편이지.
1만 년의 생 중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해 허덕거리며 배를 곯던 시절도 있었다.
뭐, 그 또한 이겨내고 잘 살아갔지만.
김 실장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의 근심 걱정을 너무나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당장 코앞의 삶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하는 직업이잖아. 장기전인 거지.”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지. 로드 매니저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올라가야 하니까.”
로드 매니저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다.
담당 연예인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당연히 출퇴근 시간이 유동적인 것이지.
특히 배우는 지방에서 연달아 며칠, 몇 주를 있기도 하고.
밤을 지새우는 촬영도 많기에 연예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 매니저도 덩달아 외근하는 구조였다.
밤낮도 없고, 지방 출장이 생활화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로드 매니저로 경력을 쌓고, 승진하게 되면.
팀장급 이상 되어야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가능해진다.
왜냐, 그때부터는 연예인의 매니저가 아닌 회사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게 될 테니까.
그런 김 실장을 위로할 말이라고는 ‘승진’뿐이었다.
승진을 해서 팀장급이 된다면, 당연히 연봉도 오를 테고.
출퇴근도 정해진, 편안한 삶을 살 테니까 말이다.
“형, 그래도 승진을 바라보면서 조금만 버텨.”
내 말에 그는 아무런 답 없이 술잔을 들었다.
챙-
우리의 잔이 부딪치며 술이 넘실거렸고.
술을 들이켜 마신 김 실장이 알코올 가득한 숨을 내뱉었다.
“근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승진이 쉬운 건 아니잖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WG 엔터는 업계 대기업인 만큼, 이미 팀장급의 매니저가 꽤 많았다.
더군다나 직원들 복지도 좋은 편에 연봉이 높아지니, 퇴직률이 저조했지.
즉, 김 실장 같은 로드 매니저가 팀장급으로 승진해야 하는데, 티오가 잘 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니저 승진에 꽤 인색한 편이었다.
나는 김 실장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형, 그래도 내가 급이 올라가면, 진희성 매니저 경력으로 승진 요건 좀 괜찮지 않을까?”
내 말에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희성아, 네가 은퇴를 해야 내가 네 매니저를 그만두고 승진하지.”
“아… 맞네. 형은 나랑 계속 같이 있어야지?”
“그럼.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인마. 하하.”
그의 너스레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고.
그렇게 우리의 술병은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런 김 실장을 바라보며 나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술과 함께 삼켜냈다.
김 실장의 고충이 깊은 것을 너무나 잘 이해했지만.
그의 농담처럼, 나는 김 실장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친형 같은, 아니 그 이상이 된 사람.
김 실장과 함께 이 연예계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근심과 걱정에 내 고민도 비례하여 깊어져만 갔다.
혹시나 김 실장이 경제적인 부분과 시간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사표를 던질 수도 있으니까.
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더라도.
당장 현실에 부딪쳐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남편이자 아빠였으니까.
윤회를 택하기 전.
그때도 김 실장에 대한 애정은 두터웠다.
하지만 그땐 김 실장이라는 사람 자체가 좋았어도 그와의 미래를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어찌 됐든 나는 진희성의 몸에서 10년만 살다가 사라질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진희성의 생이 끝나는 날.
그러니까 진희성이 죽을 때까지 나는 이 몸에서 살아야 하니까….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이제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삶이 되었다.
* * *
몇 날 며칠을 생각했지만.
홀로 김 실장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많은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에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니 나보다 연예계 경험도 많고, 매니저와의 일도 많았던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당장 해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김 실장에게 도움이 되는 연예인이자 동생이 되고 싶었다.
그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차고 넘쳤으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한 연예계 선배는 여자 친구이자 스타덤에 이미 오른 송유나였다.
“뭔데,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송유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치켜세우며 내게 말했고.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보이며 그녀에게 답했다.
“네, 대선배님. 제가 연예계 생활에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내 너스레에 그녀는 웃음을 꾹 참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한껏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입을 열었다.
“그래, 잘나가는 선배가 또 알려줘야지. 뭔데?”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매니저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 물음에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말고, 매니저의 미래?”
“응, 보통 로드 매니저에서 시작해서 팀장으로 진급하면,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급여도 오르잖아.”
내 말에 송유나는 팔짱과 꼬았던 다리를 풀고, 내 말에 집중했다.
“그렇지. 근데 대신 팀장 진급이 쉽지가 않지. 특히 우리 회사는 승진이 더 힘들기도 하고.”
내가 아는 대로였다.
즉, 김 실장이 팀장으로 승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그럼 매니저들은 평생 그렇게 로드 매니저만 하는 거야? 급여도 풍족하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힘든 게 사실이니까.”
송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래 매니저란 직업이 내부에서 본부장급으로 승진하는 걸 노리지 않는 이상… 별 소득은 없다고 봐야지.”
“하아….”
나는 김 실장 생각에 한숨을 내뱉었고.
그녀는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말했다.
“아니면, 독립!”
“응?”
“다들 알고 있는 루트지만, 아무나 쉽게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해. 회사를 나가서 독립하는 거.”
“아… 독립. 나가서 자기 회사 차린다는 게 진짜 쉽지가 않지. 특히나 대형 엔터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가서 살아남기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게 말했다.
“근데 나는 그게 가장 좋은 루트라고 봐. 로드 매니저로 일하면서 인맥을 많이 쌓아서 자체 엔터 세우는 거.”
“당연히 좋은 루트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나 역시 1만 년의 삶 중 매니저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김 실장의 삶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물론 지금의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옛날이기에 그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 경제적인 부분에서 허덕이거나 지치지는 않았었다.
급여가 풍족해서?
그건 결코 아니었다.
다만, 내게는 10년의 유효 기간이 존재했기에 그저 로드 매니저로 여러 연예인을 뺑뺑이 돌다가 끝이 났었지.
연예인이 회사를 옮기거나, 매니저 교체를 요구할 시.
매니저는 담당 연예인이 바뀌게 된다.
즉, 내가 김 실장과 일하지 못하겠다, 매니저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혹은 엔터를 옮겨야 김 실장이 다른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와중에 내가 회사와 트러블이 있는 상태로 나가게 된다면?
김 실장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 화살은 매니저였던 김 실장에게 꽂힐 게 분명했다.
그럼 김 실장은 내가 회사에 없더라도 승진이 쉽지는 않겠지.
“왜, 김 실장님 무슨 일 있으셔?”
내 어두운 표정과 지금까지의 질문으로 보아, 김 실장에게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그녀.
송유나의 물음에 나는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일이 생긴 건 아닌데. 내가 형이 걱정되는 게….”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쏟아내자, 송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맞아. 사실 그게 매니저의 평생 고민거리기는 해.”
“응, 나는 형이 진짜 잘됐으면 좋겠거든. 굳이 내 매니저가 아니라도….”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근데 오빠, 김 실장님 없으면 안 되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야. 형이랑 지금껏 합을 맞춰온 세월이 있으니까.”
송유나는 팔짱을 낀 채 허공을 응시했다.
김 실장의 고민이었지만, 내 고민과 마찬가지인 이 걱정거리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한참 입술을 잘근 깨물며 생각하던 그녀는 번쩍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응?”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이게 가장 좋은 방법 같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송유나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어떤 방법인데?”
“내가 아까 이야기했던 가장 좋은 루트!”
“독립?”
“어. 김 실장님이 새로운 기획사를 차리는 거지.”
그녀의 말에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답을 망설였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 건 아는데… 형이 당장 나가서 독립하는 게 가능할까. 형이 오래 일하긴 했지만, 아직 인맥도….”
송유나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김 실장님이 독립해서 엔터 차리고, 그 회사에 오빠가 계약하면 되잖아. 소속 연예인으로!”
그러자 나 역시 불현듯 모든 생각의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