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48 – 내가 선택한 것 (2)
몇 시간 동안 휴대 전화는 울리다 못해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였다.
나는 뜨거워진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와아, 연예인 연애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거였네.”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원래 스캔들 한 번 터지면, 며칠은 그래. 근데 이번에는 단순한 스캔들 해프닝이 아니고, 당사자들이 인정했으니까… 한참 갈걸?”
그녀는 자신의 휴대 전화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엎어버렸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옆에 놓인 상자를 바라보았다.
“나… 배고파.”
송유나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네. 우리 아직 저녁도 못 먹었어. 얼른 먹자.”
모든 걱정과 근심을 미뤄둔 채, 우리는 이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와 나.
오롯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어두운 밤.
조명이라고는 펜션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앞에 놓인 불밖에 없었다.
찬 바람이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시원스럽고 기분 좋게 감쌌고.
우리는 타오르는 불 위에서 구운 고기와 음식들을 먹었다.
“진짜 맛있다!”
송유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호호 불며 뜨거운 고기를 입에 넣었고.
우리에게 바깥세상 소식은 잊은 지 오래였다.
한참 그녀와 식사를 한 뒤.
그제야 차가워진 몸을 따듯하게 녹이기 위해 들어온 방 안.
지이잉.
여전히 내 휴대 전화의 진동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확인한 휴대 전화에서는 열애 사실 유무에 관한 연락이 아닌.
조금 전 만났던 ‘어디든 간다’ 팀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았고.
귓가에는 임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성 씨, 저 임주호입니다.
“아, 네.”
-지금 잠깐 쉬는 시간이라, 바로 연락드렸습니다. 잘 들어가셨나요?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제 뒤풀이를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장소랑 시간 말씀드리려고요.
“네?”
-아까 뒤풀이 참석해 주신다고….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뜨며 몇 시간 전을 회상했다.
그리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얼떨결에 뱉었던 약속.
모든 게 떠오르자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아….”
임주호는 내 답에 멋쩍은 웃음과 함께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아까 생방송에 담긴 터라, 다들 희성 씨가 뒤풀이에 오신다고 알고 있거든요. 카메라를 켜놓고 하는 생방송 뒤풀이라서….
“유나 씨도 함께 가야 하나요?”
-와주시면 저희야 너무 감사한데, 희성 씨한테도 제가 무조건 와주셔야 한다… 이런 건 아니고. 의견을 여쭙고자 전화드렸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방송에서 내뱉은 이야기를 이제 와 무를 수도 없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적어도 그중엔 내 팬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송유나와 함께 온 여행에서 뒤풀이를 가는 것도 선뜻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잠시 생각을 좀 해보고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옆에서 통화를 들은 송유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했다.
“뒤풀이 다녀와.”
“유나도 갈 거야?”
“아니. 나는 가서 아무 말도 못할 거 같아….”
그녀는 잔뜩 웅크린 몸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가야… 겠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양쪽 상황.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오빠만 괜찮으면 다녀와. 대신, 너무 늦게 오진 말고!”
송유나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금방 다녀올게.”
“응, 내가 방송에서 다 이야기 못할 거 같으니까, 오빠가 우리 이야기 좀 잘하고 와.”
* * *
“배우 진희성 님과 함께 뒤풀이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임주호는 손뼉을 부딪치며 나를 환영했고.
“다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배우 진희성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카메라가 함께하는 방송 뒤풀이.
이마저도 실시간으로 올라가다 보니, 동시 접속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송유나와 내 관계에 대한 기사들은 몇 시간 전.
‘만나고 있습니다’라는 내 한마디로만 올라간 기사들이었고.
다들 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들과 짧은 근황 토크를 이어간 후, 임주호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유나 씨… 이야기에 대해 질문드려도 될까요?”
모두가 기다렸던 이야기일 터.
굳이 이 상황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내 입으로 밝혀진 열애설이니,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루머가 생성되기 마련일 테니까.
차라리 내 입으로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거짓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그럼요.”
흔쾌히 끄덕이는 내게 조인수가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몇 시간 전에 저희 방송에서 유나 씨와 만나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열애설을 인정… 하시는 거죠?”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임주호와 조인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오오, 그렇다면 두 분이 대체 언제부터 연애를 하셨는지도 여쭤봐도 될까요?”
“맞아요. 언제부터 이 엄청난 커플이 탄생한 겁니까?”
그들의 물음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사실… 정말 얼마 안 됐습니다.”
오래 만났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여러분… 제가 유나 씨랑 어렵사리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일주일 됐어요.”
“네?”
“헐, 정말요?”
나는 그들이 놀란 듯 묻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예, 그러니 사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이고, 그럼 아까 놀라셨겠네요.”
조인수의 말에 나는 몸을 들썩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다마다요. 저는 사실 여러분들이 유나 씨를 협박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고, 부리나케 달려간 겁니다.”
“하하, 저희가요?”
“맞네. 저희가 남자들이 가득한 데다 다 함께 검은 옷 입고 있어서 그래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들의 말에 나는 시무룩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래서 심각하게 양손 걷어붙이고 달려갔는데… 웬걸. 카메라가 이렇게 많을 줄도, 시청자 여러분께서 다 함께 보고 계실 줄은… 몰랐죠. 하핫.”
내 말에 채팅창을 도배하는 웃음.
-아니ㅋㅋ 희성이 형 억울해하는 표정ㅋㅋ
-와, 일주일밖에 안 됐으면 억울할 만하다ㅋㅋ
-진희성 뭔데ㅋㅋ 개그캐였어?
-저 표정이랑 말투, 찰떡이네.
-오빠 안 돼, 가지 마ㅠㅠ
-하긴 진희성 예전에 예능 나온 것도 진짜 다 웃겼음ㅋㅋ
-심각한 연애 공개 방송일 줄 알고 봤는데, 개웃김ㅋㅋ
-우리 유나 빼앗아가서 욕하려고 했는데, 급호감이네ㅋㅋ
* * *
며칠 뒤.
여전히 인터넷과 SNS에는 나와 송유나의 열애설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열애설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당사자가 인정하는 인터뷰까지 올라갔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나와 송유나가 얼떨결에 출연하게 된 큐튜브 예능.
‘어디든 간다’의 해당 회차는 역대급 조회 수를 찍었다고 한다.
이미 큐튜브에서 오래 자리를 잡은 방송이었기에.
매 회차 조회 수는 평균적으로 100만 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출연했던 그 생방송이 편집되어 큐튜브에 올라오자.
단 하루 만에 조회 수가 100만 회를 넘어갔고.
고작 이틀이 지나자마자 그 조회 수는 500만 회를 돌파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영상의 조회 수는 실시간으로 쭉쭉 오르고 있었지.
송유나와의 만남이 대중들에게 밝혀지는 순간을 담은 영상.
마치 짜려야 짤 수도 없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이후 방송 뒤풀이에서 내가 뱉었던 말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회자되고 있었다.
나는 댓글들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와아… 잘하려고 애썼을 때보다 부담감을 다 내려놓고 방송하니까, 훨씬 반응이 좋네.”
우리의 열애설뿐 아니라, 사람들은 내 입담에 관한 이야기로도 댓글이 줄을 이뤘다.
-진희성 말하는 거 왜 이렇게 웃기냐ㅋㅋ
-진희성 개호감이네.
-WG 엔터 뭐 하냐, 진희성 예능 좀 시켜줘라.
-연기력에 감춰졌던 진희성 예능감.
-송유나는 진희성이랑 사귀면 재밌겠다ㅋㅋ
-얼굴도 잘생겨, 연기도 잘해. 그럼 재치는 없어도 되는 거 아니었냐고ㅠㅠ 왜 웃기기까지 해요, 오빠ㅋㅋ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지만, 나 또한 화면에 담긴 내 모습을 보며 미소가 번졌다.
예능 촬영을 처음 한 것은 아니었다.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그때마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걱정을 안고 있었다.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등의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부담감들은 오히려 내가 예능을 피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지.
그래서 나는 연기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꺼려졌다.
홍보차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했고.
그때마다 부담감을 숨긴 채 노력했지.
가끔 웃기다거나 재밌다는 반응이 있지만.
내가 예능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마음은 비단 예능에만 적용되었던 건 아니다.
나를 옭아매는 ‘부담감’이라는 이 감정.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직업.
결과물이 어마어마해야만 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
열심히 결과물을 만들어 냈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영화를, 드라마를 얼마나 많은 관객이 보느냐.
흥행을 했느냐가 중요했기에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며, 항상 불안과 부담감 속에 살았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지.
하지만 이 감정을 떨쳐내려 애쓰다 보니 우습게도 이 일이, 배우라는 직업이 다시 흥미로워졌다.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
“재미있네…?”
한참 화면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던 나는 다시금 마음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연기… 다시 해볼까?”
이내 휴대 전화를 들어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뭐 해?”
-나 회사지. 무슨 일 있어?
“나… 연기 다시 해볼까 해서.”
내 말에 김 실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란 말투로 물었다.
-정말? 다시 연기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동시에 그의 목소리에서는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는 듯한 반가움이 느껴졌다.
“응, 오래 쉬었더니, 이제 연기하고 싶어서.”
내 말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정도면 오래 쉰 것도 아니야. 하긴, 희성이 네가 지금까지 작품 끝나고 너무 짧은 휴식 가졌던 거 생각하면 이번에는 오래 쉬었지. 하하.
“그러네.”
-희성아, 그럼 재계약은….
“해야지. 대신 조건이 있는데, 작품 진행에 관해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아유, 당연하지. 내가 위에 이야기해 보고, 연락 줄게. 다들 오케이하실 거야. 희성이 네 위치면 충분히 네가 선택해서 할 수 있어. 그 정도 안목도 탁월하고.
“고마워. 형이 이야기해 보고, 알려주면 그때 회사로 갈게.”
-그래, 그리고 그동안 새로 쌓인 대본들 있는데, 미리 한 번 보내줄게.
“알겠어.”
* * *
일주일 후.
결국 WG 엔터와의 재계약이 성사되었다.
재계약 도장을 찍음과 동시에, 나는 김 실장에게 대본을 내밀었다.
“형, 저번에 보내줬던 대본 중에 나 이 작품 하려고.”
내 말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 대본들을 벌써 다 봤어?”
“응. 여기, 대본.”
그는 감탄을 쏟아내며 혀를 내둘렀다.
“일 시작한다고 또 쉬지도 않고 대본 봤구나. 대단하다, 역시.”
김 실장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가 내민 대본을 확인했다.
잠시 대본을 보고, 그 작품의 정보를 확인하던 김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희성아, 이거 블랙 코미디… 작품인데. 네가 골랐다는 게 이거 맞아?”
당황한 듯 묻는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블랙 코미디. 이 작품으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