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64화 (264/303)

264화 #48 – 내가 선택한 것 (1)

한적한 마을.

송유나는 장을 보러 간 진희성을 기다리며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송유나는 몸을 들썩거리며 창밖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거 같은데?”

그녀는 답답했는지 차 뒷자리에 있던 모자를 꺼내 쓰고, 차 밖으로 나섰다.

“우와, 하늘에 별 진짜 많잖아?”

송유나는 하늘에 뜬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그러곤 곧장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꺼내 하늘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렇게 그녀는 이곳이 흥미로운 듯 발길을 움직였다.

그때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

킁킁-

그녀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끌리듯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이거 완전 시장 떡볶이 냄새인데?”

늘 촬영 탓에 조절해야 했던 식단.

그녀가 평소 멀리하고 있던 음식인 떡볶이 냄새가 그녀를 유혹했고.

송유나는 군침이 도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뭐, 지나가면서 슬쩍 냄새만 맡을 거니까.”

입꼬리를 씨익 올린 그녀는 근처에 있는 마트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성 오빠가 떡볶이 좋아할 수도 있고. 바로 앞이니까 잠깐만 가봐야지.”

진희성이 간 마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

그녀는 모퉁이만 돌면 나올 것 같은 떡볶이 집을 향해 걸었고, 환한 얼굴로 모퉁이를 돌았을 때,

“……!”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

송유나는 재빠르게 쓰고 있던 모자를 꾹 눌러썼지만.

“어? 송유나… 유나 씨!”

그들이 이미 그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송유나는 한숨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쩐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방송일 줄이야….’

그녀에게로 달려오는 많은 사람들.

송유나는 짜증을 내거나 도망칠 수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으니까.

“와아, 여러분. 저희가 서울도 아닌, 이곳에서 배우 송유나 씨를 만났습니다!”

개그맨 임주호는 그녀를 손으로 떠받들 듯 모시며 카메라를 향해 외쳤고.

옆에 있는 개그맨 조인수는 그녀에게로 슬며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게 라이브로 하는 거라, 이미 유나 씨가 담겨서요. 잠깐 이야기 괜찮으실까요?”

송유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녹화 방송이 아닌, 라이브로 생중계되는 인터넷 방송.

임주호가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들에게 그녀를 소개하기 전.

이미 그녀의 모습이 앵글에 담겼으니까.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간단하게만 인사하고 가겠습니다.”

그녀의 답에 조인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야, 여러분. 우리 큐튜브 예능 ‘어디든 간다’에 무려 송유나 배우님이 나와 주셨습니다!”

요즘 TV보다 많이 본다는 큐튜브.

큐튜브 예능 ‘어디든 간다’는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채널 중 하나였다.

즉,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조회 수 역시 뛰어난 채널이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송유나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녀의 인사에 실시간 채팅창은 불이 난 듯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엥? 강원도에서도 저 산골까지 들어간 곳에 송유나 실화냐?

-와, 송유나 미모 미쳤다.

-유나 언니, 사랑해요!!

-송유나가 어디든 간다에 나왔다니, 미쳤네.

-방송사에서 섭외한 게스트 아님?ㅋㅋ

-언니, 예뻐요!

-송유나 실물 미쳤다던데, 인수 형 송유나 실물 어때요?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에 임주호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유나 씨가 저희 방송에 얼굴만 비춰 주셨는데도 우리 구독자 여러분들 반응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조인수는 올라가는 댓글을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예, 여러분. 유나 씬 방송으로도 예쁘신데, 실물은 더 최곱니다!”

그들의 말에 송유나는 쭈뼛거리며 미소를 지었고.

임주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나 씨, 근데 여기는 대체 어쩐 일이세요?”

“아… 제가 지금 휴식기라, 쉬려고 놀러 왔어요.”

“그러시구나. 어디 가시는 길이셨을 텐데, 저희가 또 오래 잡고 있을 수가 없죠.”

그의 말에 송유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에 초대해 주시면, 그때는 함께 오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가던 곳이 있어서….”

송유나는 이곳에서 인사를 하자마자 빠져나가기 위해 주변을 곁눈질로 쓰윽 살폈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진희성의 모습.

자신을 발견한 진희성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이곳에 진희성까지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계를 의심할 것이기에.

송유나는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눈빛으로 진희성에게 신호를 주었다.

‘오지 마. 오지 마…!’

그런 그녀의 눈빛을 읽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진희성은 송유나의 간절한 눈빛을 받자마자 오히려 양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고.

결국, 송유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럼 다음에 저희 ‘어디든 간다’에 꼭 한번 출연해 주세요. 앞으로도 유나 씨를 응원하겠습니다.”

그때.

“거기, 뭐 하는 겁니까!”

잔뜩 찡그린 얼굴과 부풀어진 몸으로 다가오는 진희성의 모습.

그 소리는 라이브로 생중계되고 있는 카메라 오디오에 생생하게 담겼고.

화면에 모습을 보이고 있던 송유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당황한 그녀의 얼굴이 큐튜브로 생중계됐고.

댓글 창은 또다시 모터를 단 듯 빠르게 올라갔다.

-뭐야, 누구야?

-누구길래 송유나 표정이 저렇게 놀랐어?

-뭐야뭐야뭐야.

-송유나 진짜 예쁘다.

-어떻게 놀란 표정이 저래. 너무 예쁘잖아.

-뭔데, 오늘 생방송 보러 오길 잘했다ㅋㅋ

-또 누구야ㅋㅋ

-오늘 이거 막방인가요?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ㅋㅋ

진희성은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씩씩거리며 송유나를 둘러싸고 있는 남성들을 손으로 밀어냈다.

그제야 그의 시야에 송유나가 제대로 들어왔다.

“유나 씨, 여기서 뭐…!”

그리고 나서야 파악된 상황.

진희성은 모퉁이 탓에 카메라는 한 대도 볼 수가 없었고.

불량배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전부 방송 관계자였다.

출연진과 방송 관계자들이 모두 같은 검은 패딩을 맞춰 입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모습에 진희성은 검은 옷을 입은 덩치가 큰 사람들이 그녀를 에워싼 것에 놀랐던 모양이다.

진희성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 터라,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가득 담겼고.

오히려 출연진인 임주호와 조인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희성… 배우님….”

이 상황을 처음 본 사람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희성과 송유나의 사이를.

오자마자 송유나를 끌고 가기 위해 잡았던 손.

그 맞잡은 손으로 둘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보였지.

-꺄아!

-대박….

-송유나랑 진희성이랑 사귄다고?

-설마… 아니야. 둘이 같이 촬영차 왔을 수도 있으니까. 우선 가마니!!

-빼박이쥬? 들켰쥬?

-이미 송유나가 휴식하러 강원도 놀러왔다고 말함ㅋㅋ

-헐, 미친. 둘이 진짜 사귄다고?

-대박이다. 이걸 이렇게 큐튜브 방송에서 걸린다고? 실화냐.

-송유나 나왔다길래 생방송 들어왔는데, 너무 좋은 선택이었네요ㅋㅋ

-희성 오빠… 활동 쉰다더니, 연애하고 있던 거였어요?

-송유나 씨, 줄은 제가 먼저 섰는데. 희성 오빠 이렇게 낚아채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실시간 댓글 창은 그야말로 대폭발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진희성은 자신이 나오고 있는 화면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 이거, 방송이었군요?”

당황한 듯 입을 연 진희성에게 임주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희성 씨, 저희 ‘어디든 간다’ 라이브로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시청해주고 계시는 분들께 인사라도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하핫.”

늘 물 흐르듯 진행하던 임주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연예인으로서 진희성과 송유나가 당황한 모습에 말을 더듬으며 물었고.

그의 질문에 진희성은 입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배우 진희성입니다. 갑작스레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진희성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하… 젠장, 안 들키려고 집 데이트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걸리다니….’

그는 속마음을 들킬세라 연신 웃고 있었고.

임주호와 조인수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며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이 어떻게 여기에….”

“예, 그러니까. 다 같이 놀러 오신 겁니까?”

그들은 이 상황을 수습해주기 위해 질문을 던졌고, 송유나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그게 저희가… 그러니까 둘이 온 게… 음….”

횡설수설한 그녀의 답은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확신을 심어주었다.

다른 이들도 함께 왔다면, 송유나가 진희성과 함께 카메라에 비추는 이 모습을 당혹스러워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가 어버버하며 답하는 그때, 진희성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 저희 만나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인정해 버린 그의 말에 채팅창은 물론.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까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고.

그는 임주호와 조인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다 말씀드렸는데, 그럼 저흰 이만 가봐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당황한 조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터주었고.

임주호는 그런 진희성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저희 오늘 뒤풀이하는데, 와주실 거죠?”

그의 한마디에 채팅창은 진희성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여기 시청자 여러분도, 팬분들도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는 진희성을 설득하듯 말했고.

“아… 네, 알겠습니다.”

진희성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야 진희성과 송유나는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송유나를 태운 차가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긴 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 소리에 옆에 앉은 송유나 역시 따라 숨을 내쉬었다.

“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우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펜션에 들어섰고.

잔뜩 장을 봐온 물건을 옆으로 밀어둔 채 함께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녀는 내 사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뭐가.”

“이렇게 밝힐 생각은 없었는데. 거기서 아니라고 하는 건, 더 아닌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밝혔잖아. 우리 관계.”

내 말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긴 한데. 이미 내 표정과 말투에서 우리 만나고 있는 거 다 티 났을걸?”

송유나의 말에 나도 결국 웃음을 보였다.

“맞아. 그러긴 했지.”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그저 이 상황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현실을 외면하고 있던 그때.

송유나가 앞에 놓인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걱정이 되는 듯 입을 열었다.

“괜찮… 겠지?”

그녀의 말에 나는 미소로 그녀를 안심시키며 답했다.

“내가 확인 좀 해볼게.”

송유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재빨리 휴대 전화를 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보이는 수많은 기사들.

[송유나♥진희성, 큐튜브 ‘어디든 간다’ 생방송 중 공개된….]

[진희성, 송유나의 손을 잡은 채 “저희 만나고 있습니다.” 고백.]

[송유나♥진희성, 한솥밥 먹는 식구에서… 연인으로.]

[WG 엔터 - “배우들의 사생활에는 관여하지 않아….”.]

[진희성♥송유나 – 진희성 매니저는 ‘사실이라면 축하’.]

[진희성, 송유나. 두 배우의 열애설에 영화계 들썩….]

엄청난 기사들과 함께 그녀와 내 휴대 전화는 불이 난 듯 전화와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웃으며 상황을 넘기려던 송유나는 내가 보여준 기사들을 보며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평소라면 나는 지금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회사에 연락해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차분했다.

“뭐… 사람이 연애할 수도 있는 거지. 연예인도 사람이니까.”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의 연애가 공개된 것.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 이런 일이 터진다면, 엄청 골치 아프고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 터.

그러나 새롭게 다잡은 마음 탓인지, 이상하게도 이 상황이 내겐 홀가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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