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49화 (249/303)

249화 #45 – 1만 년의 삶 (4)

시상식이 끝난 뒤.

배우 도미닉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뒤풀이 파티로 향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와 스태프, 감독, 그리고 많은 영화인들이 갈 수 있는 파티였지.

리암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희성, 오늘 고생했어요.”

그의 말에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도요.”

“나야 뭐. 내 마음속에 남우 주연상은 당신이에요. 많은 이들이 희성 씨의 연기를 보며 울고 웃었어요.”

리암의 위로 섞인 말에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고마워요. 하지만 도미닉이 받은 것 또한 당연한 일인데요.”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그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암은 내 손을 당기며 화제를 돌렸다.

“찰스랑 다 함께 파티에 갈 건데, 희성 씨도 바로 출발할 거죠?”

그의 말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저는 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왜요, 같이 가요!”

그때, 찰스가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회포도 풀 겸, 같이 파티에 가요. 아카데미 시상식 파티가 어마어마하다더라고요. 물론 저도 처음이지만요. 하하.”

찰스는 너스레를 떨며 나를 끌었고.

그럼에도 나는 두 손을 내밀어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다.

“말은 고맙지만, 저는 가볼 곳이 있어서요. 가서 제 몫까지 재미있게 놀고 오세요.”

내 말에 찰스와 리암은 재차 내게 권유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현장을 빠져나왔다.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건,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웃음을 잃고 산 지 오래인 내게.

파티까지 참석해 억지로 웃으며 사람들을 상대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나오고 싶었지만, 리암과 찰스와의 대화에 잠시 시상식에서 주춤했던 것뿐.

그들에게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하느라, 시간을 조금 허비했다.

애초에 파티 생각이 없었는데, 자칫하면 내가 남우 주연상을 받지 못해 파티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선약이 있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시상식을 빠져나왔다.

시상식에서 나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 매니저.

“희성 씨, 여기요!”

대기 중인 차에 서둘러 올라탔고.

그 역시 나를 위로하듯 입을 열었다.

“아쉽네요. 당연히 희성 씨가 남우 주연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지 않아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좋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런 곳에 참여해볼 수도 있었고….”

현지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마지막이라니요. 내년에 또 후보에 오르실 걸요?”

그는 룸 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년에는 꼭 받으실 겁니다. 제가 응원할게요.”

“아… 감사해요.”

나도 모르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내뱉었고.

지금 참석한 이 시상식이 내 생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절대 알 리가 없는 매니저의 미래 지향적인 답에, 나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몇십 분 뒤.

호텔에 도착했고.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다음에 또 봬요.”

“네.”

현지 매니저와 헤어진 후, 나는 터덜터덜 호텔 방 안으로 향했다.

시상식 마무리를 짓고, 여러 배우와 인사를 나눴으며.

호텔로 오는 시간까지 합치니 시상식이 끝난 지 벌써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오랜만에 스케줄을 소화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금세 심신이 지쳐버렸다.

“하아… 오늘 진짜 힘들었다.”

그리고 소파에 몸을 기대 누워 휴대 전화를 열었다.

인터넷을 들어가자마자 뜨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사들.

일 년 중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세계 최대의 연기 시상식이다 보니.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단연컨대 가장 많은 이슈를 몰고 있는 건, 역시나 남우 주연상이었다.

시상식 중 가장 큰 상이 남우 주연상이었고, 인터넷은 온통 도미닉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美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희성’을 떨어트리고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도미닉’… 대체 누구?]

[‘더 빌런’의 진희성이 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동양인 차별?]

[권위가 떨어진 ‘오스카상’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동양인 차별… ‘도미닉’의 작품에 대해 평론가들의….]

배우 도미닉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기사들.

도미닉이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냐는 것부터.

내가 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인종 차별’일 것이라는 확신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통을 자랑하는 시상식인 만큼.

번복이 없을 것은 당연했고, 오히려 그 논란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

괜히 불똥이 도미닉 배우에게 떨어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아무리 기사가 난다고 하더라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효과가 없을 것 또한 당연했지.

그저 한국의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올바르지 않게 표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한숨을 내쉬었고.

서둘러 미국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기사를 확인했다.

한국에서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상을 받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들로 기사가 흐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올해의 오스카상 남우 주연상의 주인공은 ‘도미닉’.]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한 ‘도미닉’…!]

[아카데미 – 남우 주연상 ‘도미닉’… 적절한 상이었나?]

[아카데미에서 떨어진 동양인 배우 ‘진희성’ 그의 연기력은 가히 최고라는 평론가들의….]

[한국 배우 ‘진희성’ 유력한 남우 주연상 후보… 하지만 수상하지 못한 건, ‘텃세’…?]

미국의 기사들은 도미닉에 대한 환호.

그리고 유력한 후보였다는 내가 수상하지 못한 건, ‘텃세’, ‘동양인’이라는 의견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그 기사들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나 또한 상을 받지 못한 건 아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게 드는 감정은 딱 ‘아쉬움’, 그뿐이었다.

상을 받지 못해 속상하거나, 화가 나는 마음은 단 1g도 없었지.

그런데 상을 받은 도미닉 배우에게 화살이 쏟아지는 것 같은 현실에 괜스레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받지 못한 건, 도미닉 배우 때문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그는 이미 상을 수상했고, 그 귀중한 상에 혹여나 내 이름이 얹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고.

이내 휴대 전화를 들어 SNS를 클릭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미국에 오기 훨씬 전부터 활동하지 않은 SNS였지만.

상에 대한 내 이야기를 펼치고 싶어, 결국 다시 SNS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내 의견을 SNS에 적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진희성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오늘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 때문입니다.

오늘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제게는 굉장히 벅차고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수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속상함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는 이미 수상한 배우에게 예상치도 못한 상처가 될까 걱정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남우 주연상’이라는 상이 배우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소중하고 배우가 꿈꾸는 상.

그 상에 권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 글을 게시했다.

배우 도미닉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더욱 올라오기 전에, 빠르게 내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SNS에 글이 올라가자, 빠르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내가 작성한 글로 기사가 새롭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진희성’, 결과에 승복. 상에 권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부탁….]

[美 배우 ‘도미닉’의 수상을 응원하는 ‘진희성’. 그의 넓은 아량에 쏟아지는….]

-헐… 희성 오빠, 왜 이렇게 오랜만에 글 올리는 거예요!

-희성 오빠, 잘 지내고 있죠?

-시상식에서라도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요ㅎㅎ.

-와, 같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진희성 진짜 멋있다.

-저기서 오히려 도미닉을 걱정한다고? 대인배네.

-인간적으로 도미닉보다 진희성 연기가 몇 배는 더 뛰어난데….

-도미닉 형도 상 받고 괜히 찔렸을 듯ㅋㅋ.

댓글과 기사들은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고.

도미닉을 향한 부정적인 평가들이 점점 사그라져 갔다.

나는 기사와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 못 받아도… 뭐 이제 끝이니까…. 미련 남길 것도 없지.”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이틀 남았네.”

1만 년의 기나긴 생이 끝나기 단 이틀 전.

여전히 괴로운 꿈에 시달렸고, 이제는 화는커녕 울음도 나지 않았다.

이틀만 지난다면 이제는 이 지옥 같은 악몽에서도.

고통스러웠던 긴 벌도 끝날 테니까.

그리고 생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결국 한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 곁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홀로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 일을 웃으며 할 자신이 없었다.

내 상황을 그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저 웃으며 평소처럼 이야기할 수도, 마주 보고 밥을 먹을 용기도 없었지.

“그래도 부모님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데….”

부모님 생각에 한숨을 삼키며 휴대 전화를 들어 연결을 시도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전화를 받는 부모님.

수화기 너머로 밝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너무나 환하게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엄마….”

-아이고, 우리가 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안 그래도 계속 네 아빠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딱 알고 전화를 했네?

“그래?”

-응, 밥은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럼. 엄마 아빠는 아픈 데 없고요?”

-우리야 항상 잘 있지. 우리 아들이 먼 나라에서 아플까 봐 걱정이네.

항상 내 걱정이 우선인 부모님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절대 울고 싶지가 않았다.

울먹이는 목소리조차 부모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요. 엄마 아빠 건강 검진도 꼭 잘 받고, 돈도 너무 모으지만 말고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사면서 행복하게 지내요.”

-하하, 그럼. 이제 우리 아들이 잘나가니까 그런 말도 다 하고, 말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행복해.

“말만 하지 말고, 진짜로 다 하고 지내요.”

-알겠어. 우리 아들도 항상 같이 행복하게 살자.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들었을 ‘행복하게 살자’는 말.

오늘따라 그 말이 내 가슴을 쿡쿡 찔러왔다.

“네, 그럼 나 일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알겠어, 바쁘면 어서 일 봐.

“응.”

부모님의 목소리에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겨우 전화를 종료했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모두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지만.

끝내 나는 부모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고.

이후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시간을 흘려보내던 그때.

지이잉.

김 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지 않아 끊어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무슨 일 생긴 건가?”

연속으로 다섯 통이나 오는 전화에 나는 결국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희성아!

“응?”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아… 뭐 좀 하느라. 왜?”

-야… 너 변호사….

“응?”

-너 담당 변호사 통해서 확인하고 연락한 거야. 유언이라니, 이거 대체 뭐야?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걸 김 실장이 어떻게 알았지?

내가 답이 없자, 그는 재차 소리치듯 말했다.

-너… 씨이… 무슨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는 거 아니지?

그의 말에 나는 서둘러 변명하며 입을 열었다.

“아휴, 아니야. 그냥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잖아. 그래서 그냥 써둔 거야.”

-그래도 갑자기 유언이 무슨….

“별거 아니야. 저번에 영화 보다가 나도 유언이라도 써놔야겠다 싶어서 한 거지. 의미 두고 쓴 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그에게 답했고.

김 실장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진짜 걱정했잖아. 별일 아니라는 거지?

“그럼. 형도 참….”

-알겠어. 그것 때문에 급하게 전화했지.

“나 씻으러 들어가려고 했는데,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응, 또 연락할게, 희성아.

김 실장에게 대충 둘러대며 전화를 끊었고.

나는 끊어진 통화를 확인한 뒤.

아예 휴대 전화 전원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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