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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46화 (246/303)

246화 #45 – 1만 년의 삶 (1)

눈앞이 흐릿해지고, 고요하던 주변은 점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쟤 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웅성이던 대화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귓가에 들려오고.

뿌옇던 시야도 조금씩 초점을 맞춰가고 있었다.

타앗-!

순간 내 눈앞에 뚜렷하게 보이는 불빛 하나.

빨간빛이었다.

아주 커다랗게 보이는 빨간 불빛은 내 시야를 가득 메웠고.

“야!”

큰 고함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잃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자식 뭐 하는 놈이야!”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사람.

빨간 불빛을 내는 카메라 옆,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의 호통에 주변이 수군대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 배우 맞아?”

“카메라 울렁증인가?”

“왜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나는 등줄기에 흥건하게 땀이 흘렀고.

이내 허리를 깊게 접었다.

“죄… 죄송합니다.”

“야, 이 자식아. 당장 안 나와?”

감독은 잔뜩 화가 난 듯 나를 향해 소리쳤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은 장면, 짧은 한마디의 대사.

그걸 하나 소화하지 못해 이 장면을 벌써 열 번이나 찍었으니까.

감독의 ‘액션’ 소리에 통나무처럼 굳어버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카메라의 빨간 불빛만 보면 이상하리만큼 식은땀이 흐르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습하고 왔건만.

결국, 카메라 앞에서 연기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그 어떠한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카메라 울렁증으로 고생한 건, 비단 오늘이 처음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 울렁증은 고쳐지지 않았다.

“어?”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이게 대체 뭐야…?’

어지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내 눈앞에는 다른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나 씨…?”

송유나는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슛 들어가는데,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퉁명스러운 얼굴과 말투로 차갑게 나를 쏘아보았고.

“아… 네.”

“희성 씨가 내 어깨에 손 올리라는 거 못 들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송유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NG 내지 말고, 한 번에 가게요.”

“…네.”

“레디, 액션!”

감독의 외침에 나와 송유나는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눈빛을 보내며, 연기를 시작했다.

“사랑해요.”

송유나의 촉촉한 눈빛.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내게 속삭였고.

나는 그녀를 와락 품에 안으며 눈물을 삼켜냈다.

“떠나지 마.”

그렇게 나는 송유나를 끌어안은 채 눈을 스르륵 감았다.

품 안에 있던 송유나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감았던 눈을 뜨자, 앞에 보이는 부모님의 얼굴.

“희성아, 엄마 아빠는 그냥 네가 행복한 게 좋아.”

어머니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내가 건넨 선물이 아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힘들게 번 돈으로 우리한테 효도하지 말고, 희성이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살아도 돼.”

아버지 역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진심을 내뱉었다.

“엄마, 아빠….”

그들의 말에 나는 목이 메어왔다.

“나는 배우잖아. 항상 좋은 옷, 비싼 신발. 피부과부터 마사지까지…. 엄마 아빠가 나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이제는 좀 편하게 그리고 다 누리고 살아도 돼요.”

“우리는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어. 아들이 진희성인데? 하하.”

어머니의 말에 나는 눈물을 삼켜냈다.

“나 키우느라 힘드셨잖아. 이제 엄마, 아빠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도 돼요. 돈은 내가 벌게.”

그녀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힘들긴. 우리는 희성이 너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든 적 없어. 오히려 우리가 더 못 해줘서 미안하지. 지금 돌이켜보면,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하고 싶은 거 더 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후회해.”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아들 항상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못 해준 게 뭐 있다고. 나는 다 누리고 살았어요. 사랑 듬뿍 받으면서….”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고.

부모님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서둘러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고.

그제야 선명해진 시야.

“어?”

하지만 눈앞에는 조금 전 보이던 부모님이 아닌, 김 실장이 서 있었다.

“…형.”

“희성아, 바빠도 내가 챙겨준 비타민은 꼭 챙겨 먹으라니까?”

그는 바닥에 내려져 있는 비타민을 들어 내 손에 건넸다.

그러고는 생수를 열어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내가 항상 옆에서 챙겨주기는 할 거지만. 그래도 건강은 항상 잘 챙겨야 해.”

“알겠어.”

“뭐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아니다. 내가 알아서 다 챙겨줄게. 걱정 마, 하하.”

김 실장이 너스레를 떨며 재차 입을 열었다.

“크으, 진희성 옆에 나 김지훈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 진짜?”

그의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그러게. 나 진짜 형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하지만 그를 빤히 바라보는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팟-!

“하아… 하아….”

눈을 뜨자 보이는 호텔 천장.

“뭐야, 꿈이었네.”

가쁜 숨을 내쉬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갑자기 이게 무슨 꿈이지?”

꿈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꾸었다.

늘 지옥과 같은 꿈.

1만 년을 살며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꾸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꿈은 평소와는 너무도 달랐다.

1만 년의 수없는 여러 생 중, 진희성의 몸으로 살며 만났던 사람들.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는 부모님.

자신의 가족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김 실장.

그리고 송유나까지.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겪었던 카메라 울렁증의 순간부터.

내가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는 모습까지.

파노라마처럼 순간들이 빠르게 그려졌다.

이런 꿈은 그동안 꿨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늘 꿈을 꾸고 나면 두통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항상 지옥처럼 끔찍한 꿈들을 꿨으니까.

하지만 방금 꾼 꿈은 너무 달랐다.

그저 눈물만이 눈앞을 가려왔고.

조금 전 꿈에서 봤던 사람들이 죽도록 그리웠다.

“…보고 싶다. 엄마, 아빠…. 김 실장도.”

한국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들과 함께 행복하던 모든 순간이.

그리고 그중에서도 너무나도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한 사람.

송유나였다.

머릿속에서 가장 사라지지 않는 건, 송유나 그녀였다.

“진짜 보고 싶다… 송유나.”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계속 크게 날뛰는 것 같았다.

그녀를 떠올리면 그리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고.

함께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으니까.

손을 더듬거려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목소리라도 들을까?”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마음을 단념시켰다.

“아니지. 그러려고 LA에 남은 게 아니었잖아….”

겨우 그녀를 향한 마음을 삼켜냈고, 인터넷에 ‘송유나’를 검색해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던 내 얼굴에는 나도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미소가 점점 번져왔다.

“1만 년의 생에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송유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전선은 존재하지 않는 모니터.

그 앞을 둘러싼 많은 이들.

“이야… 마지막을 앞두니까 이제 사람들이 그리운가 보네.”

“그러게. 울었다가 웃었다가 딱 미치기 직전인데? 하하.”

그들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모니터에 나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희성의 모습.

그가 출연한 작품이 아닌.

LA 호텔에 머물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즉, 그를 언제 어디서나 비출 수 있는 모니터라는 것이지.

신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진희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혼란스러워하는 거 볼 때마다 내 예전 모습이 생각난다니까?”

“나도. 근데 나는 고작 천 년도 안 살았는데, 쟤는 1만 년이나 살았다며?”

“이야… 1만 년을 살았으면, 지금 받는 그 기억의 고통이 어마어마하겠네.”

신들은 혀를 끌끌 차며 진희성의 모습에 집중했고.

“근데 쟤는 1만 년 언제 끝나는 거랬지?”

한 신의 물음에 검은 망토를 둘러쓴 자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주일.”

“뭐?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

“진짜 끝이 보이는구만.”

중절모를 눌러쓴 신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많은 이들에게 물었다.

“다들 저자가 벌을 다 받는 마지막 날. 그러니까 일주일 뒤에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들 하시나?”

그의 말에 수많은 이들이 잠시 고민에 잠긴 듯 보였다.

“음… 당연히 무(無)로 돌아가겠지.”

“맞아. 죽음을 선택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잖아?”

“그럼. 지금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 좀 봐. 고민할 거리도 안 돼.”

하지만 그들과 반대의 의견도 존재했다.

“그런데 저렇게 절절 우는 모습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죽음을 거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쎄, 나는 그 사람보다도 나라면, 인간 세계에 있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들은 팽팽하게 자신들의 논쟁을 펼쳤고.

검은 망토의 신이 망토를 휘이, 휘두르며 말했다.

“우리 내기나 할까?”

“무슨 내기?”

“저자가 일주일 뒤,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야. 죽음을 택할지, 거부를 할지….”

그의 말에 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좋아, 내기하자고!”

“나는 죽음을 택한다에 한 표를 던지지.”

“나도!”

“당연히 죽음이지. 나도 내기에 참여하겠네.”

술렁이는 신들 사이.

끝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한 명의 신,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죽지 않는다에 내 한 표를 던지겠네.”

그 말에 나머지 신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죽는다’에 표가 수없이 던져졌고.

‘죽지 않는다’에는 딱 한 명의 표만 나왔으니까.

검은 망토의 신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일주일 뒤, 결과가 기다려지는데?”

***

알 수 없는 꿈에 몇 시간을 내리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은 부을 대로 퉁퉁 부어 있었고.

입맛이 없어 계속해서 음식을 먹지 않은 탓에 몰골은 봐주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힘없이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하아….”

그저 한숨으로 오늘도 입을 열었다.

그때.

지이잉.

[발신인: 김지훈 실장]

김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를 떠올리던 중에 걸려온 김 실장의 전화가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받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굳게 다짐하고 한국에 가지 않은 내 마음이 흔들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를 그리워하며 꾸었던 꿈이 다시 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고.

김 실장과 함께 웃고 떠들던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꽤나 혼란스러웠다.

지이잉.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를 보낸 것인지 재차 휴대 전화에 알람이 울렸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전화 좀 받아줘. 급한 일이야.

그의 문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 전화를 받아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은 많지만.

그럼 김 실장은 문자를 남기고, 몇 시간이나 다음 날 또 전화를 걸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의 문자에 망설이던 그때.

지이잉.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여보세요?”

-희성아!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답했다.

“무슨 일이야?”

-뭐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아니. 급한 일이라며. 뭔데?”

김 실장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 노미네이트가 희성이 너야!

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남우 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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