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44 – 무성한 소문 (2)
[‘더 빌런’, 역대 흥행 1위 도전?]
[‘진희성’이 주연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더 빌런’ 개봉과 동시에 흥행.]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 동시 개봉한 영화 ‘더 빌런’.
영화는 한국에서 선풍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난 ‘9월 11일’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따로 무대 인사는 없었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LA에서 조용히 그 개봉 소식을 듣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연일 기사가 몇십, 몇백 개가 쏟아지고.
나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은 떠들썩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김 실장은 하루에도 수십 번 내게 문자를 보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희성아, 지금 한국에서 영화 대박 터졌어!
-나 조금 전에 식당 갔는데, 다들 영화 이야기하더라? 뿌듯해서 내가 밥도 못 먹고 이야기만 몰래 듣다가 왔어ㅋㅋ.
-희성아, LA에 혼자 있는 거 안 심심해?
-귀 안 간지러워? 아주 주변에서 네 이야기뿐이다ㅋㅋ.
-나 방금 아내랑 ‘더 빌런’ 영화관에서 또 보고 왔어. 와이프도 본 거 또 봐도 재밌대ㅋㅋ.
김 실장은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에서 일어나는 주변 소식들도 전해주었고.
그래서 더욱 LA에서 홀로 있는 게 외롭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런 문자로 외로움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가고 싶어지거나,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곁에 있는 이들을 만나지 않는 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남은 이들의 슬픔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부모님도 김 실장도, 그리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
나의 팬들과 그리고… 송유나까지.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주어질 슬픔의 짐을 덜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십 건이나 쏟아지는 김 실장의 문자에도 모두 답을 보내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답장이 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개봉 후 며칠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오늘은 김 실장에게서 문자가 아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라면 전화를 거절했을 테지만.
받을 때까지 걸려오는 그의 전화에 결국 나는 수신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희성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그냥, 쉬고 있어서 못 받았어.”
-어휴,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럼. 푹 쉬고 있어.”
김 실장이 들뜬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오늘 영화 개봉한 지 12일 된 거 알아?
그의 말에 나는 탁상 달력을 바라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시간 진짜 빠르다.”
-희성아, 대박 터졌어.
“응?”
-‘더 빌런’ 지금 한국에서 난리 났다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형이 매일 소식 전해줬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명량대첩’ 영화 알지?
“당연하지.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게 12일에 1천만 찍었잖아.
김 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량대첩’.
한국에서 엄청난 열풍을 몰고 온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였다.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큰 영향을 미쳤다.
12일에 1천만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이룬 작품.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깨지지 못하고 있었다.
1천만의 관객이 넘는 영화는 많았지만, 12일이라는 어마어마한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못했지.
“응, 알지. 아직도 안 깨졌다며.”
-깨졌어.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헐, 나는 몰랐네. 무슨 영화가 그 기록을 깬 건데?”
내 물음에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네 영화가!
“뭐라고?”
-더 빌런. 11일에 1천만 관객을 기록했다고!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미친… 말도 안 돼.”
이건 형용할 수도 없는 벅참이었다.
한국 영화의 최단 흥행 기록을 갈아엎은 것이지.
그것도 내 생의 마지막 영화가 될 ‘더 빌런’, 이 작품이 말이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배우 생활을 모두 통틀어 가장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이라는 건 확실했다.
다만, 영화를 찍는 내내 행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만 년의 생을 마감하기 전,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 것이니까.
그저 암울한 상황 속에서 연기와 나.
이 두 가지로만 살아가며 열연을 펼친 것이지.
흥행할 거라는 기대감에 연기를 한 건 아니지만, 엄청난 기록에 순간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을 꿀꺽 삼켰다.
-희성아, 이제 진짜 끝났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배우 인생에서 힘든 일은 끝난 거라고. 하고 싶은 연기, 네가 보여주고 싶은 연기 하면서 평생 살 수 있어!
오늘따라 김 실장의 희망찬 말이 더욱 내 가슴에 아려왔다.
나한테… 앞으로는 없을 테니까.
***
[북미 박스오피스 ‘더 빌런’ 부동의 1위……!]
[‘진희성’ 주연의 ‘더 빌런’ 북미 박스 오피스 1위, 국내 팬들 떠들썩.]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올해의 배우… 예상을 뚫고 ‘진희성’이 차지.]
기사를 하나하나 캡처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한 사람.
진희성의 오랜 팬 박순희였다.
“어떡해. 우리 오빠 이러다가 올해는 할리우드에서 상 받는 거 아니야?”
그녀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감격에 젖었고.
진희성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켜냈다.
“이번 영화는 무대 인사도 없고, 오빠가 홍보한다고 나오는 예능이나 라디오도 없고….”
박순희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아쉬움을 내뱉었지만.
그럼에도 진희성이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왔다.
“그래. 오빠 얼굴 보러 갈 수는 없어도, 우리 오빠가 행복하기만 하면 그걸로 됐지.”
박순희는 진희성의 사진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 요즘 대체 뭐하길래, 이렇게 소식이 뜸하지?”
그녀가 직접적으로 진희성과 연락을 취한 적은 없었다.
다만, 진희성이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SNS 계정.
그걸 통해 자신의 근황을 늘 올렸는데, 몇 달 전부터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을 박순희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소식이 뜸해진 것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근데 희성 오빠는 요즘 뭐하길래 이렇게 소식이 없지?
-회사에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말고 올라오는 게 없던데.
-오늘 회사에 문의했는데, 답변이 계속 없더라고요.
-설마… 우리 오빠 이제 할리우드에서만 자리 잡는 건 아니겠죠?
└오빠가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입지 굳히면 좋은 거죠!
└대신 앞으로 오빠를 볼 수가 없잖아요 ㅠㅠ.
└어쨌든 오빠가 잘되는 건 좋은 일이죠. 뭐든 희성 오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솔직히 올해 아카데미에서는 진희성한테 상 줘야 한다.
└인정!
└당연하지. 한국에서 11일 만에 1천만 관객 넘기고,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저렇게 떡하니 했는데 안 주면 말이 안 됨.
└진희성 아카데미 시상식 가즈아!
-희성 오빠 아직 LA에 있다던데… 한국에 안 오는 건가?
└헐? 매니저님은 한국에 계신다던데, 오빠 혼자 LA에 있는 거래요?
진희성의 팬 카페는 그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와 궁금증으로 도배되고 있었고.
운영진인 박순희조차 진희성의 이야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 또한 진희성의 안부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희성 오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박순희는 진희성에 대한 걱정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고.
“대체 왜 이렇게 활동을 안 하지… 설마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녀는 연이어 한숨을 내쉬며, 진희성의 근황을 찾기 위해 검색을 이어갔다.
***
“와아… 희성 씨 이제 대박 났네.”
송유나의 매니저 최 실장은 휴대 전화로 진희성에 대한 기사를 바라보며 읊조렸고.
그의 말에 송유나는 최 실장의 휴대 전화 화면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최 실장이 화면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볼래?”
송유나는 서둘러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레 외쳤다.
“됐어. 내가 진희성 기사를 왜 봐.”
“그래도 같은 회사 식구니까….”
송유나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켜냈다.
“회사 식구는 무슨. 근데 진희성은 어디서 뭐 한대?”
그녀의 물음에 최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아직 LA에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김 실장님한테 물어봐줄까?”
그의 말에 송유나가 발끈하듯 소리쳤다.
“아니? 내가 진희성이 뭐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안 궁금한데 왜 물어봐. 어이없어.”
“나는 네가 궁금해하는 것 같길래….”
“오빠, 전혀 안 궁금해. 진희성이랑 나랑 친한 것도 아닌데.”
그녀의 말에도 최 실장은 크게 상처 받지 않았다.
송유나의 이런 까칠한 태도를 겪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확실한 건, 송유나가 진희성의 근황을 궁금해한다는 점이었다.
송유나를 가장 가까운 곁에서 오래 봐온 최 실장이기에.
그녀의 물음과 말투만 들어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경지였다.
“내가 궁금하니까, 다음에 김 실장님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러든가. 오빠가 궁금하면서 왜 내 핑계를 대.”
“알겠어.”
최 실장은 송유나가 보이지 않도록 피식 웃음을 참았고.
송유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휴대 전화로 진희성의 기사를 살폈다.
“유나야, 나 잠깐 밖에서 통화 좀 하고 올게.”
“응.”
최 실장이 나가고 홀로 남은 차 안.
송유나는 진희성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진희성 몸이 안 좋다던데, 사실인가?
-진희성 아파서 LA에서 있는 거 아님?
-하긴, 몇 년간 쉬지도 않고 일했으니까 몸이 망가질 만하지….
댓글들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추측성 글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송유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설마… 진희성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송유나의 눈에는 진희성에 대한 걱정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
“희성 아빠, 지금 희성이한테 전화하면 받겠지?”
진희성의 어머니는 늦은 밤, 시계를 바라보며 물었고.
“어, 지금 전화하면 미국은 오전이니까 받을 수 있겠다. 지금 걸어볼게.”
“그래요. 내내 아들에 대한 기사에, 뉴스가 나오는데. 우리 아들 너무 보고 싶네.”
진희성의 아버지는 곧장 진희성에게 전화를 걸었고.
신호가 얼마 울리지 않아,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들!”
-응, 엄마. 이 시간에 안 자고 전화했어?
“그럼. 이때 전화해야 아들이 일어나 있을 테니까. 일어나는 시간 기다렸다가 전화했지.”
-피곤할 텐데, 내가 밤에 전화하면 되는데….
“괜찮아. 아들 밥은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
-어, 잘 지내고 있지. 엄마, 아빠도 잘 지내고 계시고요?
“우리야 잘 있지. 요즘 TV만 틀면 우리 아들 얘기밖에 안 나와. 하하.”
신이 난 부모님의 목소리와는 달리, 진희성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희성아, 잘 있지?”
진희성의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서 큰 소리로 말했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자주 연락 좀 하고 지내자. 바빠도 네 엄마가 많이 걱정해.”
-그럴게. 근데 여기서 할 일도 많고, 좀 바빠서 연락을 자주 못 했어.
“어휴, 희성 아빠도 참. 애 바쁘다는데, 엄마는 괜찮아. 바쁠 때일수록 밥도 잘 챙겨 먹고, 잠도 푹 자야 해. 몸 상한다.”
-응, 엄마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근데 아들, 한국은 언제 들어와?”
-아… 한참 못 들어갈 것 같아. 요즘 일이 좀 많네. 아들이 잘나가니까, 여기저기서 가만히 놔두지를 않아. 하하.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항상 네 몸이 첫 번째니까, 힘들면 쉬엄쉬엄해야 한다. 몸 상하지 않게, 밥 잘 먹고!”
-알겠어. 엄마는 맨날 밥 이야기만 하네.
“그럼. 아들 밥은 잘 챙겨 먹나, 잠은 잘 자는 건가. 항상 그 생각뿐이지.”
-엄마, 아빠. 내가 또 연락할게. 지금 바빠서….
“아이고, 그래. 바쁜데 너무 오래 잡았다. 얼른 일하고, 연락 또 하자.”
-네.
전화는 이내 끊어졌고.
통화가 끊긴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희성 아빠, 희성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 잘 지내고 있다는데, 목소리가 영 아닌 것 같네.”
“응, 걱정되네. 우리 아들… 괜찮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