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43 – 내가 할 수 있는 건 (5)
탕-!
총성이 주변에 울려 퍼지고.
내 주변은 뜨거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건물은 새빨간 불로 뒤덮이고, 그 뜨거운 불길은 건물 앞에 서 있는 내 얼굴까지 느껴질 정도.
그리고 이내 커다란 건물은 검은 잿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쾅-.
검게 타던 건물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꺄아아!”
“살려주세요….”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나는 그저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말리거나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 내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말 테니까.
“드디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고.
이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듯 꺾었다.
그리고 눈은 카메라를 응시한 채, 한쪽 입꼬리를 길게 씨익 찢어 올렸다.
“다… 끝났다.”
내 손에 들린 총.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뒹구는 마지막 하나의 총알.
그 총알을 꺼내, 총 안에 집어넣었고.
한 알의 총알이 든 총을 내 머리에 겨눴다.
“이제야 행복하네.”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내 얼굴 위로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탕-!
끝내 내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겼다.
엄청난 총성과 함께 내 몸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졌다.
털썩…!
피를 흘리며 누운 나는 끝내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섬뜩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숨을 멈췄다.
“컷, 오케이!”
데이빗 감독의 사인에 김 실장이 내게로 달려왔고.
짝짝짝-.
“와아!”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그렇게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희성아, 고생했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게 손을 내미는 김 실장의 모습.
턱-.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고.
“고마워, 형.”
김 실장은 미소로 내게 답했다.
“희성 씨.”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
데이빗 감독이었다.
“네, 감독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감독님이 고생하셨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데이빗 감독이 내게 손을 내밀자, 우리는 손을 맞잡아 흔들며 미소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현장은 빠르게 마무리 정리를 시작했다.
스태프들, 배우들은 자신의 짐을 챙기며 서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지만.
곧바로 이어질 뒤풀이 회식이 있기에, 긴 인사는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스태프는 일일이 트레일러를 돌며 배우들을 찾아가 물었다.
“오늘 마지막 파티, 저녁에 하는데 참석하시는 거죠?”
그 질문은 내게로도 이어졌고.
나는 늘 그렇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는 참석 못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오늘은 마지막 파티인데….”
그의 말에 나는 별다른 변명 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가능하시면, 저한테 편히 연락주세요.”
“그럴게요.”
나는 그렇게 영화 촬영과 함께 이들과도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현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
챙-!
“다들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마음 놓고 즐겨봅시다!”
데이빗 감독의 선창으로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잔을 높이 들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쾅쾅 울리는 음악.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먹는 음식과 다양한 종류의 술.
시상식 뒤풀이를 방불케 하는 파티였다.
파티에 참석한 배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는 인물은 모두 같은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혹시 오늘도 진희성 배우는 안 온 거래요?”
할리는 와인을 들고 에디에게로 향해 물었고.
에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네, 오늘도 불참이요.”
“와아, 진짜 대단하다. 한국에는 이런 파티 문화가 없는 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리를 보며 제이슨이 재빨리 답했다.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한국도 파티 문화가 많다고 들었어요. 촬영하는 중간중간에도 끝나면 회식도 자주 하고요.”
“맞아요. 한국도 흥의 나라잖아요. 정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나라라서 우리처럼 이렇게 자주 술도 마시고 할걸요?”
그들의 말에 할리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대체 희성 씨는 왜 한 번도 참석 안 하는 걸까요?”
에디는 눈썹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어디 좋은 데라도 가는 건가?”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같이 모일 법도 한데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희성 씨랑 한 번도 모인 적 없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없죠. 자기 나라도 아니라서 만날 사람도 없을 텐데, 대체 매일 촬영 끝나고 어디를 가는 건지 궁금하네요.”
“도대체 희성 씨는 뭘 하면서 지낼까요?”
진희성이 빠진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의 파티.
주연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그가 없는 자리에서 모든 이들의 대화 중심에는 진희성이 있었다.
***
“희성아, 오늘도 회식 안 갈 거야?”
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차.
김 실장이 차에서 내리며 내게 물었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형은 가고 싶으면 가도 돼.”
“그래도 너 없는데 어떻게 가. 마지막인데 안 가도 되겠어, 정말?”
김 실장은 가고 싶은 눈치였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나는 안 가려고. 형은 가도 괜찮아. 어차피 난 호텔에 없을 건데, 형 할 일 없으면 가서 놀고 와.”
내 말에 김 실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이제 곧 한국에 들어갈 건데, 나도 그냥 LA 구경하면서 마무리하려고.”
“그래.”
우리는 함께 호텔 안으로 향했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도 거기 갈 거야?”
김 실장의 물음에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바로 나갈 거야.”
“오늘은 같이 가줄까?”
“아니, 혼자 갈래.”
그는 내 말에 입술을 꾹 다문 채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내게 차 키를 건네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겠어.”
몇십 분 뒤.
나는 다시 호텔 주차장으로 향했다.
분장을 지워야 했기에,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차에 올라탔다.
이제는 주소를 찍지 않아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이 길.
창문을 열고, 액셀을 밟았다.
“하아….”
차디찬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와 코에 닿았고.
그제야 나는 참았던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노래도 흘러나오지 않는 차 안.
굳이 신나는 노래나 슬픈 노래, 아무런 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운전에 집중하며 바람을 맞을 뿐.
그렇게 한참을 달린 차는 내가 매일같이 찾아오는 곳에 도착했다.
쏴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오늘.
그 탓에 파도도 높이 치고 있었다.
“…살 것 같다.”
매일 앉는 그 자리로 걸어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바위 앞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 곳.
이번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온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 찾아왔다.
놀 거리가 있는 것도,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곳에 왔는지도 모른다.
어둑해지는 하늘.
철썩이는 파도.
내가 보려는 건 단지 이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내 눈에 보이는 건, 어둠과 파도였고.
들리는 건 바람 소리와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뿐.
이 자체가 내게는 유일한 힐링의 요소였다.
왠지 이곳에 와 앉아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1만 년에 대한 생각도.
이제 곧 다가올 마지막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남은 이들의 걱정도.
그리고 송유나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까지.
이곳에만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머리가 깨끗하게 비워져 근심과 고민을 떨칠 수 있는 곳이었지.
그래서 매일 이곳을 찾아왔다.
촬영이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김 실장 없이 운전해서 찾아온 이곳.
나는 할리우드에 온 이후 그냥 이렇게 지냈다.
“오늘 바람 좋네….”
좋다는 느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내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고통을 잊기 위해.
그저 살기 위해 찾아올 뿐이었지.
오늘도 이렇게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을 수 있게 이곳에서 몇 시간 동안 철썩이는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조금 더 쉬다가 편집하시지, 어제 촬영 끝났는데 벌써 오신 겁니까?”
편집실에 앉아 있던 스태프가 이곳에 들어온 데이빗 감독을 향해 물었다.
“응, 빨리 영상이 보고 싶어서 못 참겠더라고.”
“아이고, 감독님도 정말 열정은 못 말리겠습니다. 하하.”
데이빗 감독이 입꼬리를 올리며, 의자를 당겨 모니터 앞으로 다가왔다.
“얼른 영상 좀 보자고. 내가 어제 이거 보려고 술도 많이 안 마셨어.”
그의 성화에 스태프는 취합해둔 영상을 재생시켰다.
“아직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고, 순서대로 이어만 놨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나오는 첫 영상.
진희성의 얼굴로 시작된 화면.
데이빗 감독의 얼굴은 어느새 미소가 사라지고, 미간에 힘을 준 채 진희성의 연기를 살폈다.
“다음으로 넘겨봐.”
“네.”
데이빗 감독은 현장에서보다 더 집중한 얼굴로 화면 속 진희성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그의 입가에는 미소 대신 심각함이 묻어나왔다.
“하아….”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
스태프는 그런 데이빗 감독의 시선을 살피며 계속해서 영상을 넘겨갔다.
그렇게 데이빗 감독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 흐르도록 움직이지 않았고.
점점 심각해지듯 얼굴이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데이빗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일시 정지를 클릭했고.
커다란 화면 가득 메운 진희성의 얼굴.
한쪽 눈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빛.
그리고 길게 휘어진 진희성의 한쪽 입꼬리가 화면을 바라보는 데이빗 감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미쳤어, 이건.”
데이빗 감독은 진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듯 당겼고.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소름이 돋은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진희성… 이 배우는 장담컨대 신이 내린 배우야.”
데이빗 감독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스태프는 넋을 놓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감독님. 저 소름 돋았어요.”
“나도. 그리고 당장 제작사분들과 회의 좀 잡아줘.”
그의 말에 스태프는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당장이요?”
“어, 급하게 회의를 해야겠어.”
데이빗 감독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떤 것 때문에 회의를 한다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스태프의 말에 데이빗 감독은 화면 속 진희성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영화 제목 때문이라고 해.”
스태프는 그의 답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제작사에 연락을 취했다.
한 시간 뒤.
편집실에 모인 제작사 대표.
데이빗 감독은 구구절절 대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며, 그를 향해 다짜고짜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데이빗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이 모두 나온 후.
데이빗 감독은 제작사 대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정한 시나리오를 넘어섰습니다. 이번 영화는 제가 지금까지 찍은 모든 영화를 통틀어, 아니 제 생애 역작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제작사 대표와 옆에 있던 스태프가 놀라 입을 떡 벌렸지만.
이내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빗 감독은 마지막 진희성이 짓던 섬뜩한 미소가 나온 화면을 재생시키며 말했다.
“이 장면 좀 보세요. 이건 그냥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닙니다. 저도 수백, 아니 수천 편의 영화를 봤지만 이렇게 연기하는 배우는 난생처음입니다.”
제작사 대표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이 장면은 다시 봐도 소름이 돋네요. 이 배우가 왜 이제야 빛을 보게 되는 걸까요….”
그들은 몇십 분 동안 진희성에 대한 극찬으로 대화를 이어갔고.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데이빗 감독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찍고, 또 찍는다고 해도 이렇게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수준으로 잘 나왔습니다. 이 모든 건, 정말 진희성 배우. 그 한 사람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그의 말에 제작사 대표는 이견이 없다는 듯 화면 속 진희성을 바라보았고.
데이빗 감독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제목을 좀 바꾸고 싶어서요.”
“제목이라면… 지금 제목이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 아닙니까?”
“네, 대작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는 이 작품의 제목은… 결코 단순하게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입술을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