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43 – 내가 할 수 있는 건 (4)
“컷, 오케이!”
데이빗 감독의 사인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둘러 현장을 벗어난 나는 그대로 트레일러로 향했다.
평소 답답한 마음에 트레일러 앞을 서성였지만, 촬영을 하며 온갖 힘을 쏟아낸 탓에 온몸에 힘이 쫙 풀려버렸고.
어딘가에 기대 몸을 누이고 싶었다.
“희성아, 고생했어.”
나를 반기는 김 실장은 따뜻한 음료를 건네며 말했고.
“응.”
나는 그 음료를 받으며 짧은 답을 보냈다.
그러고는 이내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하아….”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 밖으로는 계속해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촬영에 지친 것인지, 끝을 알 수 없는 꿈에 지친 것인지.
이제는 분간조차 되지 않을 정도.
“희성아, 다음 촬영은 3시간 뒤에나 할 것 같아.”
김 실장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알겠어.”
최대한 다정하게 답을 한다고 했지만.
“혹시 쉬는데 방해되면 나, 나가 있을까?”
그가 받아들이기에 나는 따뜻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냥 형 편하게 쉬어. 나 신경 쓰지 말고.”
“…응.”
김 실장에게 눈치를 준 적은 없었다.
단지 내게 어둠이 가득한 것이지, 최대한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변한 것 같은 나를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애써 밝은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밝은 척을 한다고 해서 밝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척’하는 티가 나는 것이, 오히려 김 실장에게는 더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실장이 휴대 전화를 흔들며 내게 말했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알겠어.”
쾅-.
김 실장이 트레일러를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이곳.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도 청하지 않은 채.
그저 눈을 스르르 감았다.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잠들 수도 없었다.
잠이 든다면 재차 악몽을 꿀 수도 있으니까.
아니, 악몽을 꾸는 것은 분명했다.
단 하루도,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었지.
그래서 더욱 잠들기가 싫었다.
현장에서 지칠 때 할 수 있는 건,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
그뿐이었다.
눈을 감자, 떠오르는 이름.
송유나였다.
얼마 전부터 문득문득 송유나가 떠올랐다.
그녀의 이름.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퉁명스럽고 차가운 말투.
커다란 눈망울과 오뚝한 콧대.
이상하리만큼 송유나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현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자꾸만 생각나는 그녀 때문에 눈을 감았지만.
이렇게 눈을 감아도 그녀가 내 눈앞에 어지러이 떠다녔다.
“왜 자꾸 송유나가….”
이렇게 송유나가 떠오르는 건 비단 꿈 때문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해지한 휴대 전화.
그 이후 모든 사람과의 연락은 자연스레 두절되었다.
당연했다.
번호를 해지한 이상, 내게 연락하고 답변을 받을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단 한 명.
송유나 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내가 휴대 전화를 해지하는 순간.
그 직전까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잘 지내냐는 물음, 괜찮냐는 말,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문자.
그렇게 휴대 전화가 해지된 후에는 그 문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문자가 오지를 못했으니까.
하지만 송유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내 SNS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물론 이전과 같이 상냥한 말투의 문자는 아니었다.
-뭐예요? 왜 문자 답장 안 해요? 어이없어.
-뭐야, 오늘도 답장 없네. 진짜 무슨 일 있어요? 걱정하는 거 아니고, 문자 씹히니까 기분 나쁘잖아요.
-진희성 씨, 일부러 이러는 건가? 같은 회사 식구라 문자 한 번 보낸 건데, 답장 없으니까 진짜 화나네요. 이건 밥 사는 거로 안 끝날 거 같은데?
SNS 메시지로 매일 연락이 오는 건 아니었지만, 며칠에 한 번씩 문득문득 메시지가 오고는 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모든 인연을 끝내고자 굳게 마음먹고 휴대 전화까지 해지한 것이니까.
송유나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의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어서였다.
꿈에서도 보는 송유나였고.
꿈에서 깨면 그녀에게 자꾸만 연락이 왔으니까.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녀가 떠올랐고, 어느새 내 머릿속은 온통 송유나로 가득 차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딩동.
다시금 SNS의 알람이 울리고.
그 알람을 클릭해 확인했다.
-진희성 씨, 나 촬영 있어서 미국 왔어요.
***
“레디, 액션!”
데이빗 감독이 미간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그리고 진희성은 그 소리에 맞춰 눈빛이 돌변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의 섬뜩한 목소리와 말투.
진희성은 무서운 말과는 달리 한쪽 입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오히려 그 미소가 섬뜩함을 몇 배로 부풀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애초에 내가 말했잖아. 그냥 날 죽이라고.”
진희성의 목소리에는 크게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게 아니었….”
“아니,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제는 그냥 네가 죽어 줘야겠어.”
진희성은 총을 겨눈 채 목을 한 바퀴 돌리며 지겹다는 듯 한 손으로 귀를 후볐다.
“마지막 말은 굳이 듣지 않을게. 듣고 싶지도, 누가 듣지도 않을 테니까.”
“사… 살려… 악!”
탕-!
외마디 비명과 함께 쏘아진 탄성.
타앗-.
진희성의 얼굴에 튄 붉은 피.
그는 바닥에 쓰러진 남성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쓰윽 닦아냈다.
진희성은 피를 닦아낸 손수건을 미련 없이 그의 얼굴에 던졌다.
뒤를 돌아 현장을 빠져나가며, 진희성의 입꼬리는 다시금 길게 휘어졌다.
그 미소는 마치 악마를 연상시켰다.
씨익-.
카메라가 진희성의 미소를 온전히 담아냈고.
“컷, 오케이!”
데이빗 감독의 사인에 현장은 다시금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진희성이 연기만 했다 하면, 현장에는 배우들이 득실거렸다.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였지.
압도적인 연기력.
진희성은 그 환호에 크게 놀라거나, 호응을 하지도 않았다.
얼굴에 튄 가짜 피를 손으로 다시금 닦아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곤 이내 자신의 트레일러로 향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데이빗 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진희성… 저 친구 연기에는 흠이 없어. 저런 배우는 태어나서 처음이야.”
데이빗 감독 옆에 있던 배우들은 그런 진희성을 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진희성, 저 배우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동양인들이 연기를 다 잘하는 건가?”
“아니야. 내가 본 한국 영화에 모든 배우는 저렇지 않았어. 그러니까, 다들 할리우드로 오고 싶어 하겠지.”
“하긴, 근데 저 배우는 대체 뭐야. 살인이라도 저질러본 사람 같잖아.”
그들의 말에 조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마치 연쇄 살인마의 삶을 살았던 사람처럼 저 잔인한 미소가 너무 자연스러워….”
***
“꺄아!”
외마디의 비명.
진희성은 여성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자루.
그 끝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베일 듯했다.
“사…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라도 다 할게요… 제발.”
몸 곳곳이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는 여성.
하지만 살려달라는 외침에도 진희성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여성은 입을 꾹 다문 진희성을 간절하게 바라보았고.
턱-.
힘겹게 팔을 뻗어 진희성의 발목을 붙잡았다.
“제발… 살려주….”
그는 그런 모습에도 감정의 동요 따위는 전혀 없는 듯 보였다.
“더러워.”
오히려 자신의 발을 붙잡은 여성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발을 털었고.
그녀의 손은 힘없이 나뒹굴었다.
이내 진희성은 칼자루를 뽑아 잔인하게 그녀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악!”
몇 번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
이내 칼을 찔린 여성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끝내 숨은 멎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씨익 꺾는 진희성의 모습.
진희성은 피를 흘리는 여성을 빤히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 미소는 섬뜩하다 못해 잔인했다.
진희성은 오늘도 한 명의 여성을 살인했다.
1만 년이라는 무한 윤회라는 걸 깨달은 그는 얼마 전부터 살인을 시작했다.
자신에게 죽음은 없었고.
매일 지옥 같은 악몽을 꾸며,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깨달은 뒤.
진희성은 꿈보다 현실이 더 악몽 같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까지 미쳐가던 그는 어느 날부터 칼을 잡았고.
무작위로 길거리의 사람들을 살인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에게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일 뿐.
“하아… 다 더러워.”
영국의 밤 길거리는 어느새 진희성의 등장으로 모두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1880년대인 지금.
이런 어마어마한 살인을 하고 다니는 진희성을 잡을 수 있는 기술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진희성은 오늘도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어둠 속에서 발길을 빠르게 움직였다.
팟-!
“하아… 하아….”
꿈에서 깨 정신을 차리자마자 옥죄이는 숨통에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생생한 꿈.
아니,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1888년,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의 나는 영국의 한 신사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느 사람과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남성이었지.
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1만 년의 삶이라는 벌을 받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1만 년의 삶 중.
한 삶이 끝나가고 있을 때쯤이었지.
물론 지금은 진희성이라는 삶의 끝과 함께, 1만 년의 시간도 끝이 나는 시점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1만 년의 벌이 끝나려면… 그 끝을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욱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 잔인한 벌.
그 한가운데 놓인 당시의 나는 결국, 연쇄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 판단했고, 살인을 하며 사이코패스로 미쳐 갔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런던에서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기억만은 너무나 뚜렷하게 생생했다.
나를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의 목소리.
고통스럽게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모든 게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어느새 내 두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참회의 눈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당시의 내가 나조차 이해되지 않으니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해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내 기억은 아주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잊으려고 할수록 선명해지는 듯했다.
“하아… 너무 괴로워….”
이 눈물은 나의 지난 과거와 함께 흐르고 있는 고통의 눈물일 뿐.
지금의 내 생각, 내 가치관과 너무나도 다른 그 당시의 나 때문에.
과거를 떠올리면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번 작품 연기를 하면서 그때의 모습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저 상상만으로 몰입해 사람을 죽이고.
그렇게 잔인한 미소를 섬뜩하게 지을 수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