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42 – 남게 될 사람 (3)
팟-!
눈을 뜨자마자 나는 두 뺨을 적시고 있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수건을 당겨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았다.
“하아… 지친다, 진짜.”
정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는 꿈.
이제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넘어섰다.
숨통이 턱턱 막히고, 잠드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하아….”
그렇다고 잠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루는 잠을 자지 않고 버틴 적이 있었다.
잠을 자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뜬눈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보냈다.
하지만 인간은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느꼈다.
회의실, 연습실 할 것 없이 꾸벅꾸벅 졸 듯 잠에 들었고.
그러한 매 순간마다 나는 꿈을 꾸었다.
오히려 더한 고통이 펼쳐졌다.
삼십 분, 한 시간. 짧게 드는 잠에서도 악몽은 어김없이 이어졌으니까.
그렇게 몇 번 잠을 자지 않으려는 노력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거라곤, 비슷한 고통의 불면증이었다.
이제는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잠을 자지 않으려 발버둥도 쳤다.
그러나 반면, 그렇게 잠들고 싶어도 쉽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물론 그러다 지쳐 잠이 들면, 또다시 악몽을 꾸는 건 같았지만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컨디션은 매일 난조가 이어졌다.
잠을 자면 깨어났을 때 너무나도 힘들었고.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컨디션이 온통 망가질 바에는, 그냥 잠을 자고 악몽을 꾸기로 한 것이다.
그 악몽 후에 고통스럽고 괴로움이 느껴지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잠을 이뤘다는 그것 하나, 체력만이라도 정상인으로 있기 위함이었다.
“젠장, 또 송유나잖아….”
근데 문제는 송유나였다.
내가 꾸는 꿈은 늘 같은 패턴이었다.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남은 이들이 떠안게 되는 내 빈자리의 고통.
그 슬픔을 내가 지켜보는 것이었지.
그래서 매번 꿈에는 부모님, 김 실장, 나를 사랑해주는 팬들, 최서빈과 같이 함께했던 배우들, 주변의 지인들이었다.
많은 사람 중 내가 1만 년의 삶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
송유나도 꿈에 종종 등장하고는 했다.
그런데 요즘은 송유나만이 꿈에 나왔다.
반복적으로 송유나의 꿈을 꾸고, 이제는 송유나의 생김새를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을 정도.
내가 진희성의 몸으로 송유나를 본 것보다 요즘 꿈에서 송유나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방금 역시 송유나의 꿈을 꾸었으니까.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송유나였으니까. 그래서 자꾸 송유나가 꿈에 나오는 건가…?”
그녀를 떠올리자,
“아악….”
갑자기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두통약을 급히 집어삼켰고.
이 과정이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이제는 정말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
“…송유나.”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고.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생에는 더 이상 송유나와 가까이하면 안 되겠어. 그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
할리우드로 떠나기 전, 이제는 딱 한 달이라는 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는 악몽을 꾸는 것 또한 익숙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작품의 배역을 위해서도 집에서 벗어나 꽉 막힌 원룸.
그리고 정신 병원에까지 수감되어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그 캐릭터에 몰입만 됐을 뿐, 꿈을 꾸지 않는 날은 없었지.
그래서 나는 이제 악몽을 꾸는 게 당연해졌다.
하루의 루틴처럼 말이다.
다만, 그 꿈을 꾸는 것이 행복해지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날은 없었다.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을 뿐.
그 꿈들로 내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당장 한 달 뒤에 나는 할리우드에서 작품 촬영을 시작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다.
“안녕하십니까.”
이제는 반가움으로 나를 반기는 사람.
액션 스쿨의 감독이었다.
“희성 씨, 왔어요?”
“네.”
“오늘 와이어 타야 하니까, 그 전에 몸 먼저 풀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나는 서둘러 체육복으로 환복한 후.
스트레칭과 배운 기본 동작을 반복했다.
몇십 분 뒤.
“오오, 좋아, 좋은데. 거기서 다리를 조금 더 찢어야 해요.”
무술 감독은 와이어에 매달려 움직이는 나를 보며, 한껏 집중한 얼굴로 소리쳤고.
“네, 다시 해 보겠습니다.”
나는 피곤함을 휘이 털어낸 채 현재에 집중했다.
내 꿈을 향해 달려가려면, 잠시도 주춤해서는 안 된다.
와이어가 빳빳하게 당겨지는 그때.
저 멀리 보이는 김 실장의 모습.
김 실장은 액션 스쿨까지 오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곁을 지키듯 찾아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연습 시간에 찾아와 몇 시간 동안 나를 살펴보았다.
오늘 역시 그는 항상 앉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연습에 매진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앗-!
최선을 다해 발을 뻗었고.
그 모습에 흡족한 듯 손뼉을 부딪치는 무술 감독.
짝짝-.
“오오, 좋아요. 그렇게 다시 한번 연습하고, 쉬었다가 다음 동작으로 가볼게요.”
“네.”
그때.
김 실장이 휴대 전화를 가지고 내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이기 전, 그가 소리쳤다.
“희성아, 이거 SNS에 찍어서 올릴게.”
나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동그라미 표시를 취했고.
서둘러 동작을 펼쳤다.
내 모습에 김 실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와이어에서 천천히 내려오자, 김 실장이 빠르게 물병을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고생했어.”
“아니야, 고생은 무슨.”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나를 당겨 함께 벤치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내게 조금 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거 대박이지?”
김 실장은 내 모습을 재연하듯 다리를 뻗었고.
그 모습에 나는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이거 회사 SNS에 올리려고?”
“응, 요즘 너 개인 SNS 잘 안 하잖아. 그래서 회사 SNS 계정으로 너 근황도 올리려고.”
“그래.”
나는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댔고.
김 실장은 휴대 전화 SNS를 열어 촬영한 내 영상과 함께 멘트를 적어 내려갔다.
그러곤 내 동영상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팬들이 이거 보고 완전 쓰러지겠다. 하하.”
김 실장은 업로드 버튼을 누른 뒤, 실시간으로 빠르게 달리는 댓글을 확인했다.
***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송유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그러고는 휴대 전화를 들어 SNS를 클릭했다.
“이제 진희성 곧 할리우드 가서 몇 달 동안 한국에 없겠네?”
그녀의 손은 진희성을 계속해서 타이핑했고.
이내 뜬 진희성의 SNS 계정 페이지.
“뭐야, 몇 달 동안 왜 업로드도 없어?”
그녀는 걱정하던 마음이 언제 있었냐는 듯 이내 뾰로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팬들을 위해서 소통해야 하는 연예인이 뭐 이렇게 몇 달이나 글을 안 올리는 거야. 진짜 이해 안 되는 사람이라니까?”
송유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희성의 계정을 빤히 바라보았고.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맞다, WG 엔터 계정이 있었지?”
그녀는 서둘러 회사 계정에 들어갔고.
그 계정에는 진희성을 포함한 최서빈, 송유나 자신의 사진과 영상들도 셀 수 없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송유나는 자신의 사진을 클릭하며 미소 지었다.
“이거 예쁘게 나왔네? 저장해야지.”
그녀는 자신의 사진들을 보며 저장하기에 바빴고.
그러던 중 최근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뭐야, 이거 진희성이었잖아?”
작게 찍힌 사람이라 진희성인 줄 몰랐던 송유나는 몇 번이고 영상을 보며 읊조렸다.
“헐,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거야?”
그 모습이 진희성임을 확인한 그녀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거 진짜 힘든데… 진희성 고생하고 있었네.”
한참 영상을 반복 재생하던 송유나는 진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저거 지난번 작품 때문에 했는데, 잘하고 있나 전화나 해봐야겠다.”
신호음이 송유나의 주변에 울렸고.
이내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아직도 연습하고 있는 건가?”
송유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상이 올라왔던 시간을 확인했다.
“SNS에 올라온 지 4시간도 넘었는데. 그럼 연습 진작 끝났을 텐데…. 바쁜가?”
그녀는 진희성의 콜백을 기다리며 휴대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내 전화를 들어 진희성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희성 씨, 전화 안 받아서 문자 보내요.
우연히 회사 SNS 보다가 희성 씨 액션 스쿨에서 와이어 타는 거 봤는데….
……
그러니까 그게 체력 소모가 엄청나요.
까딱하다가는 몸 상할 수도 있으니까, 진짜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요.
희성 씨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같은 WG 엔터 사람이잖아요.
같은 WG 엔터니까, 희성 씨가 건강하게 할리우드 가서 촬영해야 우리 회사도 잘되고.
그럼 저도 자연스레 더 잘될 거고….
그녀는 장문의 문자를 남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문자를 보내고 난 뒤.
송유나는 집 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송유나는 휴대 전화를 흘긋 바라보았지만, 새로 뜨는 알람은 없었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진희성. 진짜 많이 바쁜가?”
송유나는 팔짱을 낀 채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튕기는 건 아닐 테고… 왜 씹는 거야. 어이없어…!”
***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도착한 집.
넓은 집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집에 들어와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 집에서 푹 쉬려고 해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 수가 없었다.
편히 쉬다가 잠이라도 들게 되면, 같은 꿈이 반복됐고.
송유나의 모습이 나타났으니까.
자꾸만 떠오르는 송유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털어냈다.
그때.
지이잉.
[발신인: 송유나]
송유나를 떠올리던 그 순간,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
나는 그 글자에 황급히 휴대 전화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차마 그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꿈 영향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송유나를 피하게 되는 이유가 넘쳐났다.
최근에 그녀를 너무 자주 본 것도 그렇고.
꿈, 과거 모든 것이 더해져서 그런 것인지.
나도 모르게 송유나를 향한 호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송유나를 떠올리면 최근 잃었던 웃음이 가끔 피어오르기도 했다.
분명했다.
내가 지금 송유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좋은 감정이라는 것.
과거에 그녀를 사랑했다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고, 그 호감의 정도가 점점 커져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멀리해야만 했다.
나는 1년 정도가 지나면, 생을 마감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
그리고 내가 사라지고 났을 때, 그녀가 너무나 힘들게 울고 지쳐가는 모습을 꿈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본 나였기에.
그녀를 가까이하는 건 내가 이기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송유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우리는 더욱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
서로에게 애틋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녀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판단에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리고 이후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나도 내 감정을 부정하며, 그녀를 밀어내야만 하는 것이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지이잉.
재차 진동이 울리며, 이번에는 전화가 아닌 그녀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는 문자를 열어 그녀가 보낸 내용을 확인했다.
“이렇게 길게 보냈다고, 송유나가?”
평소와 다른 그녀의 태도.
나를 걱정하는 듯이 보낸 장문의 문자.
내용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WG 엔터 회사를 위해 그리고 송유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이제 곧 할리우드로 떠나는, 그리고 힘들게 액션 스쿨에서 연습한 나를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 마음을 꾹 눌러내며.
그 장문의 문자에도 묵묵부답으로, 마음속으로 말했다.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작품에만 집중하자.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