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42 – 남게 될 사람 (2)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받은 대본.
회사 회의실에 앉아 김 실장과 함께 새로 나온 대본을 바라보았다.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
대본을 빤히 보며, 김 실장에게 물었다.
“제목이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 내용이랑 잘 어울린다. 대본 내용도 바뀐 게 있나?”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살짝. 전체적인 틀은 크게 바뀐 게 없다고 들었어.”
곧바로 첫 장을 넘기자 크게 적힌 내 이름.
-주연: 진희성.
그 글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크으, 할리우드 작품 주연에 내 이름이 써져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내 말에 김 실장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근데 그런 것치고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 거 같은데?”
평소 내 모습을 잘 아는 김 실장이었기에.
요즘 내 다운된 모습을 단번에 알아차린 듯했다.
“…뭐. 잠을 좀 못 자서 그런가 봐.”
그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그렇다고 이야기해서 이해해줄 내용도 아니었기에.
대충 에둘러 답한 뒤, 서둘러 대본을 펼쳤다.
이 작품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는 일반 인간이 아니었다.
악역, 그러니까 나쁜 걸 넘어선 못된 놈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맞는 표현 같았다.
정신병에 걸린 수준의 미친놈.
이 캐릭터가 못되게 변할 수밖에 없는 데는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나는, 그러니까 이 캐릭터는 정부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닌 그저 생명체일 뿐이지.
강제로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었으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
머리가 상상 그 이상으로 뛰어난 건 당연했고.
생김새, 몸매, 키, 모든 것이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너무나 완벽한 사람.
모자랄 것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실패하고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 만든 사람이 나니까.
김 실장은 대본을 읽으며 입을 열었다.
“희성아, 네 캐릭터 진짜 완벽하다. 외모도 머리도, 말투랑 모든 능력이 세상 최고잖아.”
그의 말에 나 역시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그렇긴 한데, 결국은 흑화되는 인물이잖아.”
“뭐, 내가 만약에 저 캐릭터였다고 해도… 정부에서 지속된 실험을 계속하면 흑화될 수밖에 없겠더라.”
김 실장과 나는 대본에 집중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하긴, 같은 걸 미친 듯이 반복한다는 게……. 특히나 안 좋은 걸 반복하면 미칠 수밖에 없지. 흑화되는 게 당연해.”
순간 떠오른 반복되는 꿈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김 실장은 여전히 대본에 몰입한 채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래서 캐릭터가 정부와 시민들에게 복수를 시작하잖아.”
그는 흥미진진한 표정과 말투로 계속해서 대본을 넘겨갔다.
한 시간이 흐른 후.
대본을 읽던 김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희성아, 우리 할리우드 가는 거 자료 보내야 해서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응.”
그렇게 김 실장이 떠나고 홀로 남은 회의실.
계속해서 수정된 대본을 분석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이 역할을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오래도록 가져왔던 꿈과 목표.
최고의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배우가 꿈꾸는 최고의 배우라는 건 각자 갖기 나름이겠지만.
보통 모든 배우들이 생각하는 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배우가 할리우드 배우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할리우드 진출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톱을 찍고 싶었다.
이번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톱을 찍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최대한 그 꿈에 다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매일같이 꾸는 고통스러운 꿈에 예전과 같은 몸 상태가 아니었다.
늘 체력을 비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잠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닦고,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지쳐 다시 잠들게 되면, 또다시 악몽의 시작이었다.
이러니 몸도 마음도 온전하지 못할 수밖에.
그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나머지 시간은 내 꿈을 위해 투자했다.
대본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꿈의 기억.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모든 기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몇 번이고 꿈에서 보았던 송유나의 우는 모습.
가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준 사람 중 하나가 송유나였다.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절절하게 우는 사람 중 그녀가 있었고.
나 역시 이전의 생에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와 같은 좌절에 빠졌었다.
그 모든 것이 겹쳐 입술을 잘근 깨물고 한숨을 내쉬던 그때.
똑똑.
거짓말처럼 송유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희성 씨!”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송유나는 나를 바라보며 퉁명스레 물었다.
“뭐야, 할리우드 또 간다면서요?”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벌써 전해 들었어요?”
“당연하죠.”
송유나는 자연스레 내 앞의 빈자리에 앉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헐, 희성 씨. 살은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살이 쭉쭉 빠질 수밖에.
“뭐… 요즘 연습도 하고 바빠서 그랬나 봐요.”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와요.”
“네?”
“살찌우러 밥 먹으러 가자고요.”
송유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불러 세웠고.
재촉하듯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대본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요?”
“이제 할리우드로 갈 거 아니에요. 가면 못 보니까, 있을 때 밥 사준다고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갑자기 유나 씨가 밥을 왜….”
송유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허공에 손을 휘이 저었다.
“저번에 미국 갔을 때도 계속 집밥 타령했잖아요. 이번에도 미국 가면 계속 집밥, 집밥 할 거 뻔하니까 한국에 있을 때, 내가 한식 사준다고요.”
“…….”
퉁명스레 쏘아붙이듯 말하는 송유나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는 그녀가 퉁명스레 이야기해도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할리우드로 한참 떠나는 날 위해 한국에서 한식을 챙겨주고 싶어 하는 그녀의 태도라는 것을.
내가 멍하니 있자, 송유나가 나를 다그치듯 재차 입을 열었다.
“뭐 해요, 얼른 나와요!”
***
할리우드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되는 긴 시간이 주어졌고.
보통 그 기간에는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대본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면, 미국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기에.
한국에서 개인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지.
하지만 나는 빌어먹을 꿈 때문에 개인 생활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적이 언제인지.
마음 놓고 웃어본 적이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루 내내 회사에서 대본을 보며 연습했고.
연습하는 그 순간순간에도 꿈에서 봤던 사람들과 장면들이 선명히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어둠이 가득해질 때쯤 집에 들어갔고.
그렇게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면, 또다시 악몽이 시작됐다.
덕분에 작품 ‘다시 살아온 생명체들’의 배역인 히스테릭한 주인공에 점점 맞춰져가고 있었다.
깊은 어둠의 바닥과 같은 인물.
그 인물과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듯했다.
몸도 마음도.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김 실장이 한숨을 삼켜내며 내게 물었다.
“희성아, 요즘 몸은 좀 괜찮아?”
그의 질문은 궁금한 듯 묻고 있었지만.
이미 내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아차린 듯싶었다.
“응.”
짧은 내 말에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재차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의 물음에 나는 섣불리 답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이렇게 된 원인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김 실장에게 더욱 말해줄 수가 없었지.
답을 하지 않는 내게 김 실장이 눈을 깜빡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생기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차갑게 답했다.
“괜찮아. 작품 몰입 중이라서 그런 거니까.”
내 말에 그는 잠시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하려던 말을 삼키는 듯 보였다.
***
“본부장님, 부르셨습니까?”
한 본부장이 문 앞에 서 있는 김 실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응, 앉게.”
“네.”
자리에 마주 선 두 사람.
한 본부장은 김 실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할리우드 촬영 시작은 한 달 정도 남았지?”
“예, 맞습니다.”
“준비는 잘되어가고?”
그의 말에 김 실장이 잠시 답을 망설였다.
“준비… 잘되어 가고는 있는데, 음….”
말을 온전히 잇지 못하는 김 실장을 보며, 한 본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김 실장이 한 본부장의 눈을 피하며 한숨을 꾹 참아냈다.
“본부장님.”
“응, 말해.”
“사실 요즘 희성이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의 말에 한 본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봐.”
“쉽게 말하자면, 희성이가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김 실장의 말에 그는 몸을 앞으로 당겼다.
“어떻게?”
“희성이의 상태가 맛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요. 희성이를 아끼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 작품을 취소하고 싶었습니다.”
김 실장이 진희성을 떠올리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근데 얘가 작품에 너무 진심인 게 눈에 보여서, 그런 이야기는 차마 꺼낼 수도 없겠더라고요.”
한 본부장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뱉은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물었다.
“그래서 상태가 어떤데?”
“이번 작품에서 희성이가 맡은 역할이 빌런, 나쁘고 못된. 완전 흑화 그 자체인 인물인 거 아시죠?”
“알지.”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그 캐릭터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노력하려는 건 알지만, 그 노력이 너무 극단적이라 심히 걱정이 됩니다.”
김 실장은 자세를 고쳐 잡아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배역처럼 갇혀 있는 심리를 느끼고 싶다고, 일주일 동안 단칸방을 빌려서 거기서만 매번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버티더라고요.”
그의 말에 한 본부장이 눈을 동그렇게 뜨며 물었다.
“그렇게까지 노력한다고? 대단한 거 아닌가?”
“예, 당연히 대단하죠. 근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있어?”
김 실장은 눈썹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또 일주일은 일부러 정신 병원에 수감되기도 했잖습니까.”
“맞네. 그때 그 이야기 듣고 놀라긴 했는데, 준비성이 그만큼 투철한 배우는 또 없다고 윗선에서도 좋아하셨지.”
정신 병원 수감 같은 경우는 자칫하면, 기사로 퍼질 수 있고.
또 진희성의 정신 이상을 다룬 기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회사와 협의를 통해 진희성은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거 아닐까?”
한 본부장은 오히려 진희성의 연기 열정에 박수를 치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진희성의 가족이나 다름없었고.
진희성이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듯 보였다.
“예전에는 삶이 있었는데, 이제 희성이를 보면 ‘배우’, ‘작품’. 딱 이 두 가지만 남은 사람 같아 보여서요.”
그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한 본부장은 턱을 어루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그가 생각해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흠… 김 실장이 조금 더 진희성 옆에 붙어서 상태 좀 잘 살펴. 이상 있으면, 심리 상담 좀 받아보게 하고.”
“네, 알겠습니다.”
김 실장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진희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희성이…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