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42 – 남게 될 사람 (1)
몽롱한 정신.
뿌연 시야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울음소리.
절규 가득한 소리와 뒤엉켜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그 와중에 멀쩡한 목소리의 남성이 소리치고 있었다.
“간호사… 간호사!”
뭐지…?
병원인 건가?
삐이…!
그때, 일정한 기계음이 삐 소리를 냈고.
그와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희성아!”
“희성아, 죽으면….”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게 꿈이라는 것을…!
침대 위에서 눈을 스르르 감고 누워 있는 모습.
그 주변에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김 실장까지 나를 감싸고 눈물을 절절 흘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누워 죽음을 맞이한 나는 이상하게도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지금 저 자리에서 언제 죽음을 맞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슬퍼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희성아….”
“희성아, 네가 이렇게 가면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흑흑… 희성아….”
부모님과 김 실장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의사는 그들의 옆에 서서 내 사망 선고를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어머니…!”
“희성 엄마!”
생명을 잃은 나를 보고 슬픔을 온전히 맞이한 어머니가 결국,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쓰러짐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를 향한 작은 위로조차.
팟-!
나는 눈을 번뜩 뜨며 가쁜 숨을 내쉬었고.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싶은 마음에 손으로 몸을 쓸어내리며 확인했다.
“하아… 무슨 이런 꿈이….”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
꿈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여전히 창밖은 해가 뜨기도 전인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다.
나는 검은 하늘을 보며,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휘이-.
잿빛의 하늘.
거센 바람에 날리며 내리는 비.
그럼에도 비옷을 입은 사람들 무리가 한데 모여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오빠… 보고 싶어요.”
“진희성의 죽음에 대해 밝혀내라!”
“밝혀내라, 밝혀내라!”
“희성 오빠!”
그들의 맨 앞에 보이는 플래카드.
-별이 된 진희성.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별로 남아줘.
-진희성,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진희성의 죽음? 투명하게 밝혀내라!
-‘진희성수기’는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편히 쉬세요.
내가 죽음을 맞이한 후.
내 팬들이 소속사 앞에서 울며, 애도의 물결이 이어져 있었고.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라며 울부짖는 소리가 빗속을 뚫고 울리는 중이었다.
팬들의 눈물은 빗물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가슴이 턱 막힌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팟-!
“하아… 하아….”
다시 눈을 뜨자 천장에 보이는 하얀 벽지.
현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꿈이야.”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하늘은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기대앉았다.
다시는 이 꿈을 이어서 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사람들이 사라진 나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모습.
죽고 나서 남겨진 이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꿈이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의 꿈들은 내가 겪었던 전생에 대해 보여주었다.
그런데 방금 꾼 꿈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 같은 내용이었다.
왜냐, 나는 지금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쓰윽 털어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이게 몇 번째야….”
사실 이런 꿈을 꾼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악몽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꿈.
그때부터 나는 지금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잠들 때마다 이런 꿈을 꾸고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두세 번씩은 꾼 것 같은데?”
밤은 길었고.
꿈은 그 밤에 최소 두 번, 많게는 다섯 번도 꾸고는 했다.
평균 세 번의 꿈을 꾸는 매일 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사라진 후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꿈.
그걸 매일같이 꾼다면, 생각보다 현실을 사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하게 꿈을 꾸고 일어나 아침이 되면 자연스레 잊는 꿈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선명히,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기억에 박혀 있었고.
지금 잠깐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주마등처럼 그들이 울부짖듯 소리치는 목소리와 표정이 그려졌다.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이뤄놓은 모든 게 사라지는 장면들까지.
1만 년의 삶.
그 벌이 진정한 고통의 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건 내가 1만 년의 삶을 살면서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고통이 하루면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반복되다 보니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자꾸만 고통이 피어올랐으니까.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한숨 쉬듯 말을 쏟아냈다.
“이제 정말… 1년 남짓 남았어. 선택의 순간이….”
1년 뒤.
이번 생을 끝낼지, 다시 윤회할지에 대해 선택해야만 한다.
1만 년의 삶에서 나는 수없이 생을 끝내고, 다른 이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1만 년의 삶의 마지막 생이었고.
이번에 생을 끝낸다면, 나는 정말 무(無)로 돌아갈 것이고.
윤회를 선택한다면 다시 1만 년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단순히 1만 년을 또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 또 살게 될 것이고.
그리고 신이 내리는 벌이기에, 내 뜻대로 살아갈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다.
“…모르겠다, 정말.”
도무지 하나의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나은 선택이 어떤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눈앞의 삶에 충실하자….”
***
“희성아, 대본 그만 보고 눈 좀 붙여.”
김 실장은 앉아 있는 날 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이번에는 주연으로 가는 거니까, 더 연습하게 되네.”
“이해는 하지만, 너 기내식 먹는 시간 빼고는 지금 계속 대본만 보고 있잖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가 하고 싶다던 그 작품의 감독과 미팅을 하러 떠나는 비행기 안이었다.
이번에도 할리우드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은 조연이 아닌, 주연이었고.
떨리는 마음과 설렘으로 나는 잠은커녕, 연습하기에 바빴다.
이 작품, 배역을 너무나 따내고 싶었으니까.
나는 대본을 빤히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형, 내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두 번째 작품에 주연을 할 수도 있다는 게 믿겨져?”
내 환한 미소를 본 김 실장 역시 웃으며 내게 답했다.
“네가 잘될 거라는 건, 당연히 잘 알고 있었지. 그러니까 내가 널 믿고 매니저를 하는 거잖아? 하하.”
“역시 형은 선견지명이 있었네. 하하하.”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LA를 향해 날아갔고.
다시금 대본에 시선을 옮겨 집중했다.
한국에서부터 수없이 읽고 연습해온 이 대본.
그럼에도 ‘할리우드 주연’이라는 그 엄청난 역할이 주는 설렘과 들뜸은 나를 계속 연습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10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
그 비행시간 내내 기내식을 먹을 때, 화장실을 갈 때 외에는 대본에만 시선을 고정했고.
그러던 중 긴 비행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대본에 힘이 풀렸고.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말았다.
또다시 귓가에 가득 들려오는 울음.
정신을 놓은 채 우는 소리에 나는 다시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젠장….
또 꿈인가?
역시나 이곳은 내 꿈속이었다.
내 시야에 들어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넋을 놓은 사람….
그녀는 송유나였다.
송유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그녀는 배우로서 스케줄 촬영도, 아니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힘들어 보였다.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법이 어디 있어… 진희성….”
송유나는 자신의 집 한가운데 주저앉아 가슴을 쿵쿵 내려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꽤나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그저 내 꿈속이니까.
“아악…!”
송유나가 집이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고.
그때.
팟-!
“하아… 하악….”
나는 눈을 번뜩 뜨며 몸을 일으켰다.
꽉 조여진 비행기 안전벨트가 내 몸을 붙잡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는 내 모습에 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괜찮아?”
“…어.”
“악몽이라도 꾼 거야?”
그는 서둘러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잡았고.
“저 물 한 잔만 부탁드릴게요.”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빠르게 물을 가져온 승무원.
김 실장이 내 어깨를 붙잡고 물을 건네며 말했다.
“천천히 마시고, 진정해. 할 수 있겠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수를 들이켰다.
“고마워, 형.”
“무슨 꿈이기에 이러는 거야?”
김 실장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
LA에 도착해 하루가 흘렀다.
16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차에 도착하자마자 미팅을 할 수 없었기에.
LA에 도착해 곧장 호텔로 이동해 잠부터 청했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절하듯 잠에 취했지만.
또다시 내가 죽은 후,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는 꿈을 꾸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몸이 피폐해짐을 느껴갔다.
잠을 자기만 하면 꾸는 고통스러운 꿈에, 잠을 자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잠에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잠을 자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테니까.
미팅을 위해 김 실장과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내게 섣불리 말을 걸지 않았다.
퀭해진 얼굴.
내 몸 근처에서는 어둠이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마치 흑화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흐르고 있는 듯했으니까.
“희성아, 오늘 컨디션 많이 안 좋아?”
“괜찮아.”
짧고 간결한 대답.
그렇게 끊어져버린 대화에 김 실장은 내가 평소와 다름을 재차 확인한 듯 보였다.
그가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너 오늘 시차 적응이 안 돼서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다고 적당히 둘러댈 테니까, 감독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해. 내가 나머지는 다 대화할게.”
“응.”
잠시 뒤.
데이빗 감독과 한 시간가량 이어진 미팅.
대부분의 미팅을 이끄는 건, 데이빗 감독과 김 실장이었다.
김 실장은 내가 처음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회화 실력을 쌓았다.
그는 일정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 대신 데이빗 감독과 주고받았고.
나는 그들의 대화에 경청하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사실 아낀 것보다는 그저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기에, 혹여나 실수를 할까 싶은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한참 대화가 이어지다가, 데이빗 감독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희성 씨가 출연한 제프리 감독 ‘9월 11일’ 작품을 너무 인상 깊게 봤어요. 저는 그 작품에서도 진희성 씨의 연기가 빛났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희성 씨의 한국 작품까지 모조리 찾아보게 됐지요. 당신의 연기는 꽤 흥미롭더군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마력을 가진 연기랄까?”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이번 작품을 꼭 희성 씨가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데이빗 감독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아 흔들며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열심히 촬영에 임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악수를 하며, 작품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