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41 – 결실 (2)
할리우드에서의 첫 작품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그 결과로 내게는 어마어마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김 실장과 회의실에서 쌓인 영화와 드라마 대본을 보고 있던 그때.
“희성아, 나 잠깐 통화 좀.”
그는 울리는 휴대 전화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응, 나 대본 보고 있을게.”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고.
나는 그가 신경 쓰이지 않도록 대본에 집중했다.
“네, 진희성 매니저… 아, 맞습니다. 정말요? 예, 우선 메일로 보내주시면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그의 통화.
김 실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희성아!”
“응?”
그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소리쳤다.
“또 광고 섭외 들어왔어.”
“헐… 진짜로?”
나와 김 실장이 이렇게나 놀라고 기뻐하는 이유.
내게 광고가 들어온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찍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내게 섭외 연락이 오던 광고들.
그 광고를 모두 거절하기도 하고, 보류하며 몸값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이미 한껏 올라간 몸값이었기에, 영화 개봉 후 얼마나 더 오를 수나 있겠나 싶었던 내 걱정과는 달리.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하자, 김 실장의 휴대 전화는 불이 난 듯 섭외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내 몸값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르고, 또 오르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광고 전화 다섯 통째야.”
“진짜 대박이다.”
김 실장은 신이 난 목소리로 자신의 다이어리를 펼쳤다.
“우리 지금 쌓인 영화랑 드라마만 해도 언제 다 보나 싶은데. 우선 이거 놔두고, 광고부터 정해야 할 것 같아.”
그는 다이어리의 내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이따가 너 광고 때문에 회의할 거거든. 그때 들어보고 광고 정하면 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뭘 정하면 된다는 거야?”
내 말에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섭외 들어온 광고 중에 어떤 거 하고 싶은지 말이야. 그 광고를 할지, 말지 고르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중에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거야.”
“선택?”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같은 품목이면, 한 개의 브랜드 제품밖에 광고를 못 하게 되어 있거든. 지금 너한테 들어온 것 중에서 말하자면… 은행 광고만 해도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어.”
“…….”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떡 벌렸다.
“그 세 군데 은행이 서로 경쟁 업체다 보니, 세 개 중에 한 개의 은행만 골라서 광고를 할 수 있다는 거지.”
“하긴 그렇겠네. 내가 그 은행들을 전부 광고하면, 각자 은행들에서 반대할 테니까.”
“응, 광고 계약 조항 자체가 다들 그래. 커피 광고도 경쟁 업체를 다 광고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이제는 커피도, 은행도, 햄버거도. 그리고 항공사랑 의류 쪽 광고 들어온 것 목록 보고, 네가 하고 싶은 브랜드 선택해서 하면 돼.”
“이야…. 내가 광고 브랜드를 골라서 광고할 수 있는 거야, 이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김 실장 역시 미소를 띤 채로 머리를 끄덕였다.
“근데 희성아, 더 대박인 건 뭔 줄 알아?”
“뭔데?”
“광고비.”
그의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물었다.
“광고비가 대체 얼마인데?”
내 말에 김 실장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얼마냐면….”
***
‘9월 11일’ 작품은 영화관에서 막을 내린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품이 상영하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스케줄을 소화했다.
작품이 끝났음에도 내게는 일이 끊이지 않았지.
지난 두 달 동안 내가 찍은 광고만 해도 무려 20개에 달했으니까.
“희성아, 오늘 정산 날인 거 알지?”
김 실장이 룸 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럼 그동안 찍었던 광고비 오늘 다 정산인 건가?”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이번 주에 찍었던 건 아직이고, 그전까지는 전부 오늘 다 들어갈 거야.”
“와아, 얼마 들어올지 궁금하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눈동자를 굴렸다.
내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뛰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광고비가 올랐다는 걸 들은 이후 아직 정산이 된 적은 없었기에.
그것을 체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오늘 들어올 정산 금액에 기대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김 실장은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투로 내게 말했다.
“들어온 광고 진짜 많은데, 장르가 겹쳐버려서 못한 게 훨씬 많잖아. 그리고 스케줄 때문에 조금밖에 못 찍어서…. 다 했으면 돈이 어마어마했을 텐데.”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에이, 형. 나 거의 20개 찍었는데?”
“그래도 섭외 들어온 거 하면, 몇 배는 되잖아. 하하.”
“그건 맞지.”
김 실장이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또 너무 많이 광고 찍으면 홍보 효과가 떨어지니까, 그 정도가 마지노선이기는 했지만.”
“맞아. 언제쯤 들어오려나. 원래 정산이 이때쯤 되지 않….”
정산 시간을 묻던 그때.
딩동.
때마침 휴대 전화의 알람이 울렸고.
이 시간에 울릴 알람은 정산, 그러니까 입금 알람이 확실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면을 보는 순간, 심장이 적어도 두 배는 빨리 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말았다.
“와… 미친…!”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앉은 자리에서 다리에 툭 떨어트렸고.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얼마 전 들어왔던 할리우드 영화 출연료.
그리고 방금 들어온 그동안의 광고비.
이 모든 금액이 한 통장에 모여 있었고, 내 통장 잔액은 무려….
100억이 넘는 돈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휴대 전화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
끝내 말문이 막힌 채 눈을 질끈 감았고.
온몸에는 소름이 잔뜩 돋았다.
생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위의 돈.
이 돈이 내 통장에 꽂힐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물론 내가 엄청난 노력과 일을 해서 번 돈이지만, 돈의 단위가 너무나 커지다 보니 쉽사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침 신호에 걸린 차.
나는 김 실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형… 나 어떡하지?”
내 말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정산 엄청 많이 들어왔지?”
그의 말에 나는 넋을 놓은 채 고개를 끄덕였고.
김 실장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소리쳤다.
“진짜 고생 많았다, 희성아.”
“고마워. 형… 근데 나 이제 은퇴할까?”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됐어. 어차피 안 할 거잖아.”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김 실장의 대답.
우리는 차 안이 가득하도록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 형, 나 집에 가지 말고 우리 쇼핑하러 가자.”
***
김 실장과 백화점 문이 닫을 때까지 쇼핑을 했고.
내 손에 가득 들린 쇼핑백을 겨우 들고 와 집 소파에 내려놓았다.
하루 내내 한 쇼핑에 지쳐 몸을 소파에 뉘었다.
최근 너무나도 바쁜 스케줄에 몸은 굉장히 지쳐 있었지만.
널브러진 수많은 쇼핑백.
그리고 차에 꽉꽉 채워 보낸 김 실장의 옷과 신발 등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뿌듯했다.
나는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자리에 앉았고.
서둘러 입술을 잘근 깨물며 휴대 전화를 열었다.
은행 어플을 열어 내 통장 잔고를 확인했고.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잔액 10,927,936,928원.
잔액을 확인하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져왔고.
숫자를 빤히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야, 오늘 그렇게 쇼핑했는데 아직도 109억이나 있잖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
물론 비싼 옷과 신발을 사지는 않았기에, 백화점에서 쓴 돈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잔액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엄청난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하아… 예전에는 옷 하나 사는 거, 밥 한 끼 좋은 거 사먹는 거에 벌벌 떨었는데….”
감격스러움에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잔액을 계속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르고, 이 떨리고 설레는 감정을 겨우 삼켜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보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물론 돈은 쓰지 않고 저축해두는 게 좋기는 하지만.
현명한 소비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었기에,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준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게 소비하는 것 또한 좋은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노트와 펜을 들고 와 이 돈 중에 얼마를 쓰고, 또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음… 우선 이 일부는….”
그렇게 밤이 깊어갈 때까지 나는 앉은 자리 그대로 한참이나 돈을 쓸 방법에 대해 궁리를 이어나갔다.
***
“형, 왔어?”
외제 자동차 매장 앞.
저 멀리서 다가오는 김 실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응, 주차하고 오느라….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그는 내 뒤에 있는 매장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돈 많이 버니까, 바로 차부터 바꾸는 거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내가 차를 잘 모르잖아. 형이 차 좋아하니까, 형한테 도움 받아서 사려고.”
“그래. 내가 차 잘 아니까, 고르는 거 열심히 도와줄게.”
“고마워.”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고마우면 끝나고 밥이나 먹자.”
“아휴, 당연하지, 형.”
나는 뒤에 있는 매장으로 향하며, 그에게 말했다.
“형이 여기 브랜드 차 엄청나게 좋아하잖아.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여기서 차 사려고 마음먹었어. 하하.”
그는 내게 엄지를 치켜들며 답했다.
“그래, 차는 역시 여기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차 좀 보려고요.”
김 실장은 내 차를 골라 주면서도 신이 난 아이처럼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고.
그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혹시 보시는 차 있으실까요?”
직원의 물음에 김 실장이 나를 쓰윽 바라보았고.
나는 김 실장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형, 나 차 잘 모르잖아. 그냥 형이 좋은 거로 좀 말해서 보여주라고 하면 안 돼?”
내 말에 그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직원에게 답했다.
“음… 그럼 제가 보고 온 차가 있는데, 저기 저 차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삼십 분가량 차를 보고 난 후.
직원은 나와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는 말씀 주신대로 옵션 넣으면… 총 2억 5천만 원 정도 되고, 자세한 금액은 이렇게 됩니다.”
그는 앞에 놓인 서류의 금액을 보여주며 말했고.
나는 김 실장에게 물었다.
“형, 이 정도 옵션이면 괜찮은 건가?”
“그렇지. 옵션도 그렇고, 다 완전 좋은 거야. 이 차 타고 나가면… 크으….”
그는 차를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좋은지 탄성을 내질렀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직원을 향해 말했다.
“네, 좋습니다. 이거로 계약할게요.”
내 말에 직원이 허리를 깊게 접으며 답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바로 계약서 작성해서 출력해 오겠습니다. 잠시만요.”
“예.”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나는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형, 차 마음에 들어?”
“나는 당연히 마음에 들지. 다음에 나오면 나부터 꼭 시승시켜 줘야 된다?”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형이 나 시승식 해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형 차야.”
내 말에 김 실장은 매장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뭐?”
“형한테 차 선물해주고 싶어서 오늘 온 거야. 저거 형 드림 카잖아.”
김 실장이 입을 틀어막은 채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알지. 그래서 저 차로 선물해주고 싶었어. 옵션도 형이 넣고 싶은 대로 넣었으면 해서 오늘 같이 온 거고.”
“야… 희성아….”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형도 그동안 고생 많았어. 그리고 형 곧 결혼하잖아. 나 이거 결혼 선물까지 주는 거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희성아, 저거 2억 5천… 거의 3억 가까이 되는 차잖아. 나 못 받아.”
“아휴, 결혼하는데 혼수로 이 차도 가지고 가. 그래야 형수님한테 이쁨도 받지.”
“아니야. 나 이렇게 큰 거 너한테 못 받겠어.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받은 거로 할게.”
나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받은 거로 해. 그리고 나 이번에 광고도 많이 찍어서 돈 벌었잖아.”
“그건 네가 일해서 번 건데, 나한테 이렇게 쓰면 어떻게 해.”
그때.
직원이 계약서를 들고 우리 앞에 앉았고.
“계약서 확인하시고, 여기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김 실장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희 조금만 생각해보고 다음에 와서 계약해도 될까요?”
직원은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휴, 그럼요.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연락주시면….”
나는 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김 실장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형, 이거 안 받으면, 나 다른 매니저랑 일하고 그 매니저한테 이 차로 사준다?”
미간을 찌푸린 채 내 말에 집중하던 김 실장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직원을 향해 외쳤다.
“여기에 서명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