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229화 (229/303)

229화 #40 – 그녀들의 의도 (7)

“형, 어제 방송 봤어?”

아침에 김 실장을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질문을 던졌다.

내 말에 김 실장 역시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토요일의 수다, 시청률 대박 났어.”

“그래? 나는 시청률은 못 봤는데, 인터넷에 반응이 꽤 좋더라고.”

김 실장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희성이 너 말솜씨 좋던데?”

“에이, 아니야. 편집이 잘된 거지.”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편집도 뭐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너 인터뷰했던 것들 짤로 인터넷에 엄청 돌아다니더라. 무명 시절부터 너에 대한 이야기들이랑….”

김 실장은 신이 난 듯 휴대 전화에 미리 저장해둔 내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고.

“그래서 지금 9월 11일 영화 기대하고 있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아주 난리도 아니야.”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영화 ‘9월 11일’의 홍보를 위해 나갔던 예능 프로그램이니까.

그 영화에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성공한 것이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흔들었다.

“…됐다.”

아직 개봉 전이고, 대중들의 평가를 듣고 본 것은 아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영화를 보기만 한다면,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만큼 대본도, 연출도 좋은 작품이었고.

사람들을 극장까지만 오게 한다면, 분명 흥행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어떻게 극장까지 부르느냐가 문제였던 것이지.

그때.

“김 실장, 잠깐 나 좀 보게!”

한 본부장이 김 실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네, 본부장님.”

김 실장은 곧장 대답하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기다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저 멀리에 서 있는 한 본부장을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녀와, 형.”

“연습실이나 내 자리에서 기다릴래?”

“그럴게.”

김 실장이 떠난 후.

나는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젯밤 방영한 예능의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혹시나 내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대중들이 안 좋은 평가나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은 없는지에 대해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실장이 서둘러 연습실로 다가왔고.

쿵-.

벌컥 문을 열며 나를 불렀다.

“희성아!”

“형, 왔어?”

“어, 지금 바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고.

“우리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하자.”

좁은 연습실이었기에, 우리는 서둘러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본 우리.

그는 다이어리를 펴고 펜대를 굴리며 내게 말했다.

“희성아, 우리 당장 이번 주부터 영화 시사회 시작이야.”

나는 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개봉이니까 시사회 시작하겠지. 그게 왜?”

너무나 당연한 것을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 실장이 미소를 보내며 내게 말했다.

“너도 시사회 가야 해.”

“뭐?”

나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내 몸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도 시사회에 참여한다고?”

“응, 방금 본부장님이랑 이야기하고 온 거야. 어제 할리우드 측에서 전달받았거든.”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내가 시사회에 갈 줄은 몰랐는데… 그럼 이번 주에 LA로 다시 가는 거야?”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LA가 먼저 아니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김 실장의 말을 잘라내며 말했다.

“먼저…? 그럼 나 여러 군데 시사회 가는 거야?”

“어, 전 세계 누비며 시사회 무대 인사한다고 하더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고.

그는 넋을 놓은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할리우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진짜 여러 국가 다 가더라.”

“형, 근데 나는 조연인데, 그 시사회에 모두 참석하는 거야?”

내 말에 그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희성아, 너 비중이 보통 조연이라고 할 수가 없잖아. 시사회 전부 참석하래!”

나는 그의 말에 입을 틀어막았다.

“…대박.”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사회라고 하면, 서울에서부터 시작해 부산과 광주.

큰 지역들을 오가며 극장에 가서 관객들과 인사를 주고받고는 했다.

그마저도 스케일이 크지 않은 영화라면, 서울에서 시사회를 하는 것에 그쳤지.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찍으니.

LA, 뉴욕 등 미국 전역에서 시사회를 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며 무대 인사를 한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그런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이 무대 인사에 모두 참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지.

하지만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이번에 무대 인사 다녀오면, 조금 실감이 나려나?”

멍한 표정으로 말하는 내게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응, 그러지 않을까? 잘할 수 있어, 희성아.”

내게 힘을 주는 김 실장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나보다 더 얼어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무대 인사를 온 나라는 한국은 당연히 아니었고.

몇 달 살았던 미국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대 인사의 스타트를 끊게 된 국가는 바로, 이곳 인도였다.

낯선 곳에 도착한 우리는 미국에서 오고 있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직 제프리 감독과 다른 배우들을 만나지 못했고.

나와 김 실장은 그저 공항에 앉아 있었기에, 이방인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제프리 감독이 공항에 도착했다.

“희성 씨!”

이들과 따로 온 배우는 나뿐이었다.

다들 미국에 있었고, 나 홀로 한국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

작품이 끝나고 몇 달 만에 만난 우리는 마치 몇 년을 못 본 사람처럼 반가워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찰스, 잘 지냈어요?”

“희성 씨, 너무 그리웠어요.”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배우 리암.

하지만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인지, 그와 나는 가장 그리워한 사람처럼 서로를 반겼다.

“리암!”

“오우, 이게 얼마 만인지….”

그와 나는 어깨동무를 한 채 준비된 차로 이동했고.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가 않았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저는 한국에서 프로그램도 찍고, 휴식도 취하고 그랬죠. 리암은요?”

그는 나를 보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저도 쉬었죠. 쉬는 동안 희성 씨 작품 다 봤어요.”

리암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다 봤다고요?”

“네, 워낙 K-드라마가 유명하다 보니, 찾는 게 어렵지도 않았어요. 희성 씨가 나온 드라마, 영화,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더라고요.”

리암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다 봤다니, 진짜 대단한데요? 하하.”

우리의 대화를 듣던 제프리 감독이 뒤돌아 리암에게 소리쳤다.

“하핫, 리암이 희성 씨한테 푹 빠졌나 보네.”

그의 말에 리암은 찡그리기는커녕,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네, 아무래도 저 희성 씨한테 스며든 거 같죠?”

그렇게 우리는 근황과 함께 촬영장의 추억을 소환하며, 극장으로 이동했다.

다 함께 앉아 보는 ‘9월 11일’ 영화.

제프리 감독,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

그리고 관객들까지.

다 같이 한곳에 어우러져 보는 영화였기에, 신경이 온통 스크린이 아닌 관객들에게 향해 있었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시사회도 처음이었기에.

이 분위기 자체가 낯설었고, 그래서 더더욱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물론 같은 사람이지만, 나라별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테니까.

사람들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영화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까지.

걱정했던 걸 훌훌 털어버릴 만큼,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환호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관객들이 동시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첫 번째 시사회, 무대 인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첫날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 함께 호텔 라운지로 모였다.

그렇게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제프리 감독, 리암, 찰스, 에블린, 브루노, 그리고 그들의 매니저와 일부 스태프.

그리고 나까지.

시사회에 오는 인원은 주연과 주연급 조연까지였으니까.

우리는 라운지에 모여 가볍게 술잔을 부딪쳤다.

“9월 11일의 성공적인 시작을 위하여!”

“위하여!”

기분 좋게 시작한 우리만의 작은 파티.

제프리 감독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는 걱정과 근심이 자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주면 개봉할 영화.

제임스 감독의 ‘테러’와 같은 날 개봉을 하니까 말이다.

아직은 시사회 중이기에 이렇다 할 비교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 업계의 관심은 ‘제프리 vs 제임스’의 구도에 있었다.

항상 라이벌로 불리는 두 감독.

이렇게 같은 소재의 영화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같은 날의 개봉, 정면 승부를 하는 것 또한 처음이라고 한다.

출연하는 우리 배우들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제임스 감독 작품의 반응을 몰래 살피고 있는데.

제프리 감독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신경을 안 쓰지는 않을 터.

그는 애써 밝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인도에서 아주 좋은 스타트를 한 것 같아요. 이제 미국, 중국, 동남아를 시작으로 마지막에는 한국을 찍을 예정입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합창하듯 소리쳤다.

“네.”

“마지막은 우리 진희성 배우의 나라에서 시사회 마무리를 하고, 바로 개봉할 겁니다. 우리 한번 열심히 달려봅시다.”

“파이팅!”

우리는 각자 다짐을 가슴에 새긴 채 술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편히 각자의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맞아요. 인도는 처음이고, 이렇게 해외에서 시사회를 하는 것도 난생처음이라….”

나는 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때 에블린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좁은 테이블.

그래서 한 테이블에 두 명에서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 테이블에는 나와 찰스만이 자리하고 있었고.

에블린의 말에 나와 찰스는 눈을 맞춘 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이내 에블린은 술잔을 든 채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영화가 꼭 잘되어야만 해요. 제임스 감독님의 영화도 좋기는 하지만, 우리 작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찰스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에블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내가 선택한 영화니까요. 우리가 분명 훨씬 흥행할 거예요.”

우리 셋은 확신의 미소를 지으며 술을 마셨고.

“찰스!”

옆 테이블에 있던 리암이 손을 흔들며 찰스를 불렀다.

그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건, 에블린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찰스를 부르며 말했다.

“찰스, 저기 리암이 부르는데, 어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 네, 저 그럼 잠시.”

찰스는 나를 바라보며 눈썹을 들썩였고.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네.”

그리고 테이블에 남은 나와 에블린.

그녀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이내 술잔을 내려놓은 에블린이 주변을 쓰윽 둘러보며,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겼다.

“희성 씨.”

“네?”

그윽한 그녀의 눈빛.

분명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음에도, 에블린은 살짝 풀린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마시고 뭐 해요?”

“음… 이거 마시면, 이제 방으로 가서 쉬어야죠. 오늘 오랜 비행도 했고….”

그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고.

탁-.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블린을 향해 물었다.

“이게 뭐예요?”

그러자 에블린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속삭였다.

“저는 이만 올라가려고요. 그리고 이거….”

에블린이 손을 조금 더 밀어 내 몸 앞까지 다가왔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라운지를 빠져나갔다.

뭐지…?

의미심장한 표정과 말투.

멀어져가는 에블린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 뒤.

시선을 다시 테이블로 옮겼다.

그제야 보이는 테이블 위의 물건.

그녀가 내게 주고 간 것이었다.

‘1702’

호실 번호가 적힌 카드.

“어…? 이건….”

내 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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