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40 – 그녀들의 의도 (2)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
빨간색 국물을 보는 순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내 불판 위에 오르는 두툼한 삼겹살.
치익-.
지글지글한 소리에도 김 실장과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지!”
“크으… 소리만 들어도 미치겠다.”
우리는 연신 흐르는 침을 삼키며, 찌개를 한 술 크게 떴고.
“와아… 형, 그래 여기가 한국이다.”
내 말에 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진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봐. 하하.”
“그러게. 진짜 맛있다.”
삼겹살은 뜨거운 숯불 위에서 빠르게 익어갔고.
우리는 술 대신 음료와 함께 몇 달 만에 돌아온 한국의 저녁을 만끽했다.
몇십 분간 우리는 대화 없이 음식을 흡입했고.
몇 달간 먹었던 미국 음식을 한식이 밀어낼 때쯤.
나는 가득 채워진 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와아, 진짜 배부르다.”
김 실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 먹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휴대 전화를 들었고.
때마침 나를 기다렸다는 듯 휴대 전화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연속해서 울리는 톡 알람 소리.
몇 년의 배우 생활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나와 관련된 기사가 나온 것이라는 걸.
빠르게 휴대 전화를 열어 연예계 기사가 올라오는 페이지를 클릭했고.
새롭게 올라온 기사들을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할리우드를 제패하고 온 배우 ‘진희성’의 당찬 발걸음!]
[왕의 귀환… ‘진희성’ 오늘 한국 들어왔어요….]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로…! 배우 ‘진희성’의 할리우드 진출….]
[‘진희성’ 할리우드를 휩쓸고 온 연기의 신.]
[할리우드로 진출한 K-배우의 주역, ‘진희성’ 그의 힘찬 모습.]
몇 시간 전, 공항에서 찍혔던 사진들.
그리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담긴 기사들.
나는 그 기사의 제목을 바라보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헐… 형.”
내 표정에 그가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형, 이것 좀 봐….”
나는 휴대 전화를 그에게 내밀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진 잘 나왔는데?”
김 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사 제목 좀 봐.”
그는 내 말에 기사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왕의 귀환… 할리우드에서 온 당찬 발걸음….”
나는 김 실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어휴… 형, 그만.”
“왜 기사도 완전 좋게 써주셨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 너무 좋게 써주셨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작게 읊조렸다.
“나 할리우드 주연도 아니고, 조연이고. 이제 막 할리우드 진출한 건데, 기사 제목들이 너무 거창해서….”
기사들은 온통 내 칭찬으로 가득했다.
마치 할리우드를 제패하고 온 대한민국의 최고 배우처럼.
하지만 나는 그런 수식어와 기사들에 민망할 따름이었다.
이제 막 할리우드로 발을 내민 내게, 기대감을 조성하는 제목들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작품은 완성되지도 않았고, 그 작품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그리고 흥행을 할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흥행할 거라는 확신으로 작품을 찍었지만, 아직 이렇게 엄청난 부흥 속에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민망할 따름이었다.
나는 이제 막 할리우드에 첫걸음을 뗀 것이니까.
“그래도 나쁜 기사가 아니니까, 대중들에게 알리기도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시작한 건데, 너무 띄우는 기사들이 나오니까 좀 그래서…. 회사에다가 이야기 좀 해줄 수 있어?”
김 실장은 내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너무 과대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해 둘게.”
“고마워.”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기사 제목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 기사들처럼 올라가면 되는 거야….”
***
지이잉.
지이잉.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은 채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잠긴 목소리로 차분히 전화를 받았지만.
내 귓가로 다짜고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뭐예요?
“…….”
심통이 난 듯한 목소리.
그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고.
눈을 비비며 발신인을 다시 확인했다.
‘발신인: 송유나’
송유나인 것을 확인한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진희성 씨, 대체 뭐냐고요!
“네? 그게 무슨….”
그녀는 한숨을 삼켜내며 내게 말했다.
-아니, 희성 씨가 한국에 오면 밥 먹자고 했잖아요.
“아… 그랬죠.”
-그러니까요. 한국 와놓고, 왜 연락도 안 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묻는 말이 밥 먹자는 말이라니.
딱 송유나다운 대화였다.
나는 웃음을 여전히 머금은 채 그녀에게 답했다.
“저 어제 한국 왔거든요? 하하.”
내 웃음소리에 그녀는 짧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아요. 그러니까 왜 연락을 안 해요. 빨리 밥 먹어요.
“알겠어요. 우리 밥 먹기로 했으니까.”
-그냥 밥 말고, 엄청나게 비싼 거로 사줘요.
“네? 제가 밥 사는 거예요?”
장난기 섞인 내 말에 그녀는 다시금 심술 난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한 거 아녜요?
“왜요?”
-내가 누구 때문에 스캔들까지 났는데. 당연히 희성 씨가 사야죠. 그러니까 제일, 가장 비싼 거로 사요!
송유나의 말에 나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럼 다음 주에 볼까요?”
-뭐야, 오자마자 바빠요?
“저 바로 본가 좀 다녀오려고요. 가서 부모님이랑 좀 쉬다가 올 건데, 서울 오면 다음 주에 바로 봐요.”
-음… 그래요, 그러면.
“네, 저 다음 주에 서울 오면 연락할게요.”
그녀는 언제 내게 심술을 부렸냐는 듯 차분한 말투와 함께 전화를 끊었고.
나는 끊어진 휴대 전화에 뜬 ‘송유나’ 이름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한국에 오자마자 전화 온 첫 지인이 송유나라니.
좀… 반갑네?
***
할리우드에서 돌아와 이제야 비운 캐리어.
하지만 그 캐리어는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내 짐으로 가득 채워졌다.
평소 바빴던 탓에 본가에 길어야 하루, 이틀을 보내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됐다.”
가득 찬 캐리어를 겨우 꾹꾹 눌러 잠그고 집을 나서려던 그때.
딩동.
초인종과 함께 문 앞에 서 있는 김 실장의 모습.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다.
“형, 뭐야. 왜 여기에 있어?”
내 물음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너 데려다주려고.”
“나?”
“응, 오늘 본가 간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나 혼자 가면 돼.”
평소 스케줄은 항상 김 실장이 픽업을 도맡아 해주었다.
그게 매니저의 업무이기도 했지만, 그는 내 개인적인 스케줄이 있을 때도 시간이 맞으면 나를 배려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본가까지 데려다준 적은 없었지.
물론 그때도 늘 데려다주겠다는 말은 했지만, 내가 그를 기어코 거절해왔다.
너무나 개인적인 스케줄이었으니까.
늘 거절했던 터라 오늘 김 실장은 전화가 아닌, 직접 나를 데리러 왔고.
그 모습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형, 나 정말 혼자 가도 괜찮아.”
그러나 김 실장은 내 말을 전혀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니야. 오늘은 내가 정말 데려다주고 싶어서 그래.”
“형도 몇 달 만에 서울 온 건데, 좀 쉬어도 돼.”
“괜찮아, 인마.”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 손에 들린 캐리어를 낚아챘고.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형….”
“내가 한번 너 본가에 데려다주고 싶었어. 다음에 또 데려다 달라고 해도 안 갈 거니까, 그때 태워달라는 이야기나 하지 마라?”
김 실장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 고마워, 형.”
차는 본가를 향해 출발했고.
꽉 막힌 도로였지만, 부모님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은 들떠 있었다.
핸들을 쥐고 있는 김 실장이 나를 쓰윽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희성아, 우리 작품 3개월 정도 뒤에 나올 것 같대.”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렇게 빨리?”
보통 영화 작품의 촬영은 못 해도 몇 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촬영본을 편집해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기간은 더욱 길기도 하지.
그런데 이제 막 촬영이 끝난 작품의 완성이 되기까지 고작 3개월 뒤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 실장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리우드가 워낙 분업 시스템이 철저하잖아.”
“하긴, 그래서 제작비도 어마어마하잖아.”
“응, 그래서 이번 작품이 촬영과 동시에 편집이 진행됐었대.”
그의 말에 나는 다시금 할리우드의 스케일에 입을 떡 벌렸다.
“와아… 진짜 대단하다.”
“어, 나도 정말 놀랐어.”
김 실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근데 할리우드치고도 이건 좀 빠른 편이래.”
“왜?”
“제임스 감독 때문에.”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제임스 감독 작품 촬영은 더 일찍 끝났다 하더라고.”
“그럼 편집도 더 빨리 끝나겠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응, 그래서 제임스 감독 작품과 개봉 맞추려고, 제프리 감독이 편집을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하더라.”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제임스 감독과 제프리 감독은 서로의 라이벌이었고.
이번 두 작품 전부 9·11테러와 관련된 내용이었으니까.
“하긴, 몇 년 텀을 두고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소재 작품이 몇 달 차이로 개봉하면 애매하기는 하겠네.”
“응, 그래서 개봉도 거의 같은 날짜에 할 것 같더라.”
그제야 제프리 감독의 빠른 진행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진짜 정면 승부네.”
“서로 자존심 싸움하느라, 누구 하나 절대 안 물러나니까. 결국 같은 소재로, 같은 날 개봉하는 것 같더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제프리 감독과 손을 잡기 전.
제임스 감독의 9·11테러 소재 작품의 배역을 맡을 뻔했고.
그래서 더욱 이번 두 감독의 작품 흥행이 내게도 관건이었다.
제임스 감독의 작품을 놓아버리고, 제프리 감독에게 온 것이 잘된 일인지가 곧바로 드러날 테니까.
몇 시간 뒤.
차는 본가에 거의 도착했고, 그건 집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에 부모님이 나와 계셨으니까.
미리 매니저의 차로 온다는 이야기를 전달했기에.
부모님은 집 안이 아닌,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나는 부모님을 보자마자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엄마, 아빠!”
내 부름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아들!”
어머니는 나를 와락 품에 안은 채, 손으로 내 어깨와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들, 외국에서 촬영은 안 힘들었어? 다친 곳은 없고?”
그리고 품에 안은 나와 내 눈을 바라보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얼굴 홀쭉해진 것 좀 봐. 거기서 밥도 잘 못 먹은 거야? 배고프지, 얼른 올라가서 밥 먹자. 엄마가 밥 차려놨어.”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엄마는 아들만 보면 왜 맨날 밥 이야기야?”
내 말에 점잖게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네 엄마, 너 오늘 온다고 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계속 주방에만 있더라.”
“어휴, 대충 차려줘도 되는데.”
아버지는 나를 빠르게 훑어보며 말했다.
“외국에서 별일은 없었어? 가면 고생한다던데….”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죠, 있었으면 내가 다 혼내줬지. 내가 누구 아들인데. 하하.”
김 실장과 인사를 건넨 후, 내 짐을 받아드는 아버지의 모습.
나는 그런 부모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한국에 온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