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38 – 똑같은 사람 (3)
“안 돼…!”
나는 온몸을 던져 리암을 덮쳤다.
파지직-.
불꽃을 튀던 전선은 리암이 서 있던 자리 위로 떨어졌고.
퍽-!
리암과 나는 동시에 바닥에 널브러졌다.
“꺄아!”
“괜찮아?”
“어떡해….”
주변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순식간에 나와 리암에게로 달려왔고.
비를 맞으며 넘어진 나와 리암 위에 우산을 씌웠다.
“리암, 괜찮아요?”
“희성 씨, 안 다쳤어요?”
그들은 걱정 가득한 얼굴과 말투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내 아래에 넘어진 리암의 모습.
“아아….”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기에, 땅을 짚고 있던 손.
그 욱신거리는 손을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누워 있는 리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리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내 말에도 리암은 넋을 놓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내가 아닌 허공.
그러니까 스파크가 튀었던 전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암?”
나는 재차 그를 불렀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놀란 모양이다.
결국, 나는 몸을 숙여 리암의 팔을 붙잡았다.
“리암,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얼른 일어나요.”
내 말에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내게 몸을 맡긴 채 스르르 일어났다.
“아….”
내 손길에 자리에서 일어난 리암에게 달려오는 그의 매니저.
“리암, 괜찮아? 정신이 들어?”
그제야 내가 잡고 있던 리암의 팔을 그의 매니저에게 건넸고.
제프리 감독은 내게로 다가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희성 씨, 다친 곳은 없어요?”
그의 말에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과 무릎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혹시 모르니까 병원이라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다음 촬영해야 하는데, 옷이 망가져 버려서… 얼른 옷 좀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여전히 눈썹을 늘어뜨린 채 나를 바라보는 제프리 감독.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멀쩡하다는 제스처를 다시 한번 취했고.
서둘러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빠져나왔다.
***
“하아… 희성 씨도 놀랐을 텐데.”
진희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으러 떠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프리는 한숨을 삼키며 읊조렸다.
그러고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는 리암에게 다가갔다.
“리암, 괜찮아요?”
제프리 감독의 말에 리암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 네… 네. 괜찮습니다.”
리암은 전선이 자신을 향해 튀는 것도 보지 못했던 터라.
진희성이 갑자기 몸을 던져 자신을 막아선 것에 여전히 놀라 멍한 듯 보였다.
제프리 감독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스태프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선 여기 현장 수습 좀 하고. 잠시 쉬었다 가죠.”
그의 말에 리암의 매니저는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감독님, 다음 촬영은 그럼 언제쯤….”
바로 다음 촬영 역시 리암이 출연하는 것이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리암을 보며 물었고.
제프리 감독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그에게 답했다.
“음… 우선 다음 신은 다른 촬영부터 진행할게요. 트레일러로 가서 쉬다가 진정되면 말해줄래요?”
그의 말에 리암의 매니저는 고개를 깊게 접었다.
“감사합니다. 리암이 진정되면 말씀드릴게요.”
매니저는 리암의 팔을 당겨 부축하며 자리를 이동했고.
그들의 모습을 본 스태프와 배우들은 그제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요?”
“그러니까요. 비 오는데, 전선에 스파크라니….”
“진짜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봤어요? 리암 얼굴로 전선이 떨어질 뻔했던 거.”
“저 촬영 때, 리암 배우만 보고 있어서 전선에 불꽃 튀던 거 봤어요.”
“어머, 정말요?”
“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건데, 거기서 희성 씨가 몸을 던질 줄이야.”
그들은 진희성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자기도 위험할 수 있는데, 어쩜 그렇게 몸을 던져서 리암을 구할 수 있는 거죠?”
“맞아요. 희성 씨 아니었으면, 리암은 큰 부상을 입었을걸요?”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그게 얼굴 쪽으로 떨어지는 거라,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휴,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요.”
배우의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난다면, 다음 촬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 신에서 멀쩡하던 얼굴에 상처가 나게 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리둥절할 테니까.
그래서 분장으로라도 그 상처를 가릴 터.
하지만 조금 전 진희성이 몸을 던져 리암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건 결코 작은 얼굴의 상처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리암의 얼굴은 엄청난 화상을 입었을 겁니다.”
제프리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배우들이 떠드는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맞아요. 리암의 얼굴에 화상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아마 그렇게 화상을 입었다면, 촬영 중단은 물론이고. 한동안 카메라 앞에도 못 섰을걸요?”
찰스 역시 리암 옆.
가장 가까이에서 이 현장을 목격했기에.
그도 넋을 놓은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찰스는 괜찮아요?”
그런 찰스에게 배우들은 질문을 던졌고.
찰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네, 저는 그저 놀랐을 뿐이에요. 배우는 얼굴과 몸이 생명인데, 진짜 다행이네요.”
그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진희성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같은 시각.
리암의 트레일러.
“너 정말 괜찮아?”
리암의 매니저는 그를 향해 물었고.
“다친 곳은 전혀 없어?”
재차 묻는 그를 향해 리암이 입을 열었다.
“어, 몸은 안 다쳤어.”
그의 말에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몸은 안 다쳤으면… 혹시 얼굴에 뭐라도 튄 거야?”
리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하나도 다친 곳 없어. 그냥 너무 놀랐을 뿐이야.”
그의 말에 매니저는 가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매니저는 리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어. 저기서 전선의 불꽃이 얼굴에 조금이라도 튀었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소름 돋아.”
“그랬겠지.”
리암의 말에 매니저는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배우로서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었다고. 놀랐겠지만, 항상 몸조심해야 해.”
“…알겠어.”
“진희성이 거기에 없었다면… 아니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말자.”
“…….”
매니저는 리암의 어깨를 토닥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랐을 텐데, 잠깐만 여기 있어. 내가 가서 따뜻한 마실 것 좀 가져올게.”
“고마워.”
리암은 트레일러에 혼자 남게 되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진희성의 트레일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아… 그렇게 무시했는데. 이제 진희성 얼굴을 어떻게 보나….”
촤르르-.
그는 서둘러 진희성의 트레일러가 보이는 시야를 커튼으로 완벽히 차단해 버렸다.
***
탁-.
트레일러 문을 열자마자 나를 보며 똥그랗게 눈을 뜨고 소리치는 김 실장의 모습.
“야, 진희성! 너 꼴이 왜 이래?!”
조금 전 내가 리암을 현장에서 구할 때.
김 실장은 처리할 업무 때문에 홀로 트레일러에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리가 없었지.
나는 엉망이 된 옷에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게 사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는 내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한창 설명을 이어가던 중.
“그래서 다행히 리암도 나도 별일 없이 안 다치고, 마무리가 된 거고….”
“뭐?”
그는 내 말을 잘라내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을 정리하자면, 그렇게 위험한 순간에 네가 몸을 던져서 구했다는 거잖아.”
나는 김 실장이 걱정할세라 서둘러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 그러니까. 구하지 않았다면 위험했던 거지.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하아… 희성아, 너도 다칠 뻔했잖아.”
벌떡 자리를 박차며 일어난 김 실장이 내 몸을 손으로 더듬거렸고.
긴팔과 긴 바지를 걷어 올려 내 몸을 확인했다.
“너 정말 다친 곳은 없어?”
“응.”
“진짜 괜찮은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하나도 안 다쳤어.”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김 실장이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맞다. 그래서 네가 구한 사람이 리암이라고?”
“응, 리암.”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리암을 대체 왜?”
“그야 리암이 다칠 위기였으니까, 바로 리암에게 몸을 던진 거지.”
“그러니까. 찰스나 다른 배우도 아니고 리암이잖아.”
질문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리암을 왜 구했냐는 질문.
평소 리암은 동양인 비하.
그러니까 나를 늘 비하하고 무시해왔다.
갈릭 냄새가 난다는 둥.
동양인 배우가 할리우드에 온 것을 늘 무시하고 멸시했지.
오죽하면 이 작품의 감독인 제프리 감독에게까지 내 뒷담화를 하려고 했으니까.
그런 리암이 다칠 뻔한 위기에 처했는데.
구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나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놀랐을 터.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리암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리암이 엄청난 위기에 처한 거잖아. 그래서 재빨리 몸을 던진 거라고.”
김 실장은 내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였으면, 전선에서 스파크 튀는 걸 봤어도 절대 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하지 않았을 거야. 특히나 그게 리암이라면, 더더욱.”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를 불렀다.
“형.”
“응?”
“형이 만약에 지금 리암이라면 어떨 것 같아?”
그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라면?”
“어,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이 형의 목숨을 구한 거잖아.”
“음….”
“나를 무시하는 리암을 보면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나 나도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이게 맞았다고 봐.”
김 실장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쯤 리암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정신 차렸을 텐데, 아마 머리가 복잡할걸?”
내 말에 김 실장 역시 입술을 길게 휘며 답했다.
“그러네. 항상 욕하던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말이야. 고맙다고 표현하기도 민망하고, 안 하기도 뭣하고. 복잡하겠네.”
“그렇지.”
김 실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쓰윽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근데 그 상황에 그런 판단까지 하고 리암을 구한 거야?”
그의 말에 나는 호탕하게 웃음을 보였다.
“하하, 아니. 그냥 본능적으로 몸을 던진 거지. 그게 어떤 배우든, 어떤 스태프든 상관없이.”
“난 또. 그게 리암이라서,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구한 줄 알았지.”
“에이, 그 상황에 그런 거 신경 쓸 1초도 없었지.”
나는 리암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근데 구하고 나니까 오히려 재밌더라고. 이런 상황이.”
“리암은 뭐래?”
“구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고, 벙쪄 있더라. 아무 말도 안 했어.”
“고맙다고도 안 해?”
나는 머리를 흔들며 답했다.
“어, 엄청나게 놀랐겠지. 다칠 뻔한 것도 놀랐는데, 구한 사람이 나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암의 트레일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지. 여기서 또 나한테 헛소리하면, 진짜 리암은 상종 못 할 사람인 거고.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