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38 – 똑같은 사람 (1)
시끌벅적.
길가에는 많은 사람이 이 밤을 즐기듯 돌아다니며 떠들고 있었다.
짙게 깔린 어둠.
하지만 그 어둠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많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한 이곳.
그 한가운데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르게 이곳을 살폈다.
뭐지, 여기가 어디….
수많은 인파 사이에 있는 내 모습.
그와 동시에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이 내 꿈속이라는 것을.
그럼과 동시에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누군가.
“레오!”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곧장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오오, 라파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와 오래된 친구인 라파엘.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늦은 그를 탓하며 핀잔을 주었고.
그는 양손을 모으고 내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미안. 알잖아, 오늘 금요일인 거.”
“알지. 금요일이라 사람 많으니까, 더 일찍 출발했어야지.”
라파엘이 나를 툭 치고 눈썹을 들썩이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답했다.
“보통 금요일이 아니야.”
“뭐?”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이지!”
그는 스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내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13일의 금요일이라, 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는 거야?”
“에이, 일반 금요일도 아니고, 13일의 금요일이니까 사람이 그만큼 많아서 늦었다는 거지. 하하.”
13일의 금요일.
한 유명한 공포 영화의 스토리로, 13일의 금요일에 살인이 일어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보다 고유어처럼 쓰이는 말이자, 날짜였지.
그 탓에 평소 북적이는 파리 이 도시가.
13일이라는 특수함에 더욱 북적이고, 불타는 금요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휴, 내가 너 기다리느라 여기서 10분을 넘게 서 있었다고.”
그는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 얼른 가자. 이러다 공연 시간도 늦겠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답했다.
“알지? 나 오늘 너랑 공연 보러 온다고, 축구도 안 보고 온 거야.”
“네네, 알죠. 그럼요. 축구광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때문에, 음악 공연 보러 와주겠다고 한 거.”
나는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오늘 나를 형처럼 모셔!”
나와 라파엘은 장난기 가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나 원래 오늘 축구 경기 보러 갔어야 했는데, 너랑 오랜만에 만난다고 큰마음 먹은 거야.”
라파엘과 나는 서둘러 그가 가고 싶다던, 공연장을 찾았고.
입구에 들어서자 쿵쿵거리며 들려오는 음악 소리.
낮은 기타 베이스 소리에 심장이 함께 뛰는 듯한 드럼까지.
벌써부터 우리를 신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어두운 공연장이라 더욱 무대가 잘 보이는 듯했다.
“이야, 여기 분위기 좋다.”
내 말에 라파엘은 신이 난 얼굴로 내게 답했다.
“그치? 내가 그래서 여기 오고 싶다고 한 거야. 나 정말 오고 싶었거든.”
“그래, 오늘 열심히 놀고, 즐기며 마시자!”
“좋지.”
우리는 그렇게 넋을 놓은 채 무대에 집중했다.
“와아아아!”
화려한 조명이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반짝였고.
이곳은 그야말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나와 라파엘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힘껏 뛰며 춤을 췄다.
심장 소리보다 더 강한 BPM의 음악.
이 음악은 이 공연장에 있는 모든 이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공연장 2층에 서 있던 우리는 아래 무대에 있는 공연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분들 열정 장난 아닌데?”
내 말에 라파엘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근데 1층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장난 아니야. 저것 봐.”
그의 말에 나는 1층에서 뛰고 노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고.
“누구 하나 춤을 안 추고 있는 사람이 없네?”
다들 음악과 하나가 되어 불타는 금요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들을 보며, 다시금 땅에서 발을 떼어냈다.
“뛰어!”
다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그때.
너무나 열정적으로 놀던 터라, 마른 목을 잡으며 라파엘에게 물었다.
“라파엘, 근데 몇 시야?”
“곧 10시 되어가. 지금 9시 50분. 아직 나가려면 멀었는데?”
그 순간.
탕-!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격 소리.
그 소리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분명 총소리가 난 것 같은데….
너무 크게 울리는 음악 소리와 환호하며 소리치는 사람들 덕에, 그 소리가 묻힐 정도.
“뭐지?”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다시 한번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고.
탕-!
탕탕-.
연이은 총소리에 이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꺄아!”
“아악!”
탕-.
탕탕-.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총소리.
대체 이게 무슨….
난데없는 총격에 혼란스러운 것과 동시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아래로 숙여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곳은 어디에 숨을 곳도, 테이블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아악…!”
모두 한 무대를 바라보며 자리에 서서.
그러니까 한데 모여 다 같이 뛰어놀던 이곳.
여기에 사람들끼리 부딪치며 주저앉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지.
그렇게 연이은 총사 난격이 시작되었고.
하지만 누가 이 총을 쏘는지.
왜 난데없이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것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노래를 하던 가수, 베이스를 치던 사람, 드러머, 관객,
너 나 할 것 없이 총격을 피해 숨고 피하기에 바빴지만.
무자비한 총격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들이 바닥에 즐비했다.
탕탕-.
“살려주세… 윽!”
“안 돼!”
“도망가.”
“꺄아.”
나와 라파엘 역시 이 테러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숙여 움직였고.
이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역시 차마 말을 잇지 못할 정도.
1층에는 피를 흥건하게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셀 수도 없었고.
그 모습을 보며 충격에 휩싸여 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들을 애도할 시간도, 범인을 찾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 나부터 살고 봐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울부짖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 안은 채, 도망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다들 행복한 금요일을 즐기기 위해 찾은 이 공연장.
불과 1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얼싸안고 춤을 추며 놀았는데.
한순간에 들이닥친 테러범.
그들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게 무너지는 현장에서.
모든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맞서 싸우지도, 대들지도 못하는 지금.
무기력함에 사람들은 도망가다가 자리에 주저앉기도 하였고.
그저 눈물과 두려움으로 이곳은 피바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팟-!
순간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너무나 생생한 꿈의 장면들.
누워 있던 나는 손으로 얼굴과 몸이 멀쩡한가부터 확인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정신을 차리기에 급급했다.
“꿈에서 본 장면….”
다시금 꿈을 떠올렸고.
곧장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프랑스 파리 테러 현장!”
그때 그 순간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떠올리니, 2015년.
당시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물론 그때는 진희성의 몸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너무나 끔찍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때를 떠올리며 아찔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읊조렸다.
“근데 갑자기 파리의 테러 꿈은 왜 꾼 거지?”
항상 작품과 연관된 꿈을 꾸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찍고 있는 작품은 미국의 9·11테러 내용이었고.
파리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작품이었지.
뭐지?
파리 테러가 9·11처럼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테러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리 테러 꿈을 꾼 게 무슨 상관인 거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시금 꿈의 내용.
그러니까 파리 테러 현장을 떠올렸고.
그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 테러에서의 공포와 충격이 너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잠깐만….”
동시에 떠오르는 한 가지의 기억.
그 당시에 보았던 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분명 방금 꿈에서 깨기 전에 보았던 장면.
한 여자의 뒷모습을 내가 넋 놓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장면과 그 여자를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아악….”
지끈거리는 머리.
쿵 내려앉는 듯한 심장.
누군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여자의 뒷모습을 생각만 하더라도 아련한 느낌에 눈물이 핑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그 여자는 누구지?”
***
“하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품을 쩌억, 하며 김 실장을 향해 물었다.
“형, 우리 거의 다 도착한 건가?”
그는 내 말에 신이 난 듯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응, 이제 곧 도착이야.”
제프리 감독 작품의 촬영지.
항상 같은 촬영장에서 출퇴근하며 일을 했지만.
이번에는 실외 촬영을 위해, 네바다주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기존에도 LA 도심에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전 촬영지에서 네바다주까지는 차로 거의 9시간이나 걸려 이동하기 때문에.
출퇴근이 아닌, 이곳에 숙소를 구해주었다.
이내 차는 한 숙소에 멈춰 섰고.
이곳에서는 우리 차뿐 아니라 두 대, 세 대를 넘어 몇십 대의 차가 일렬로 주차를 시작했다.
촬영 버스, 스태프를 태운 버스까지.
나는 차에서 내려 일렬종대한 차들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고.
동시에 앞에 있는 호텔을 보며 다시금 눈을 크게 떴다.
“이야, 여기에서 다 자는 건가?”
내 물음에 김 실장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로 다 잡으셨대.”
“와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겠다.”
김 실장은 주변을 살피며 내게 조용히 읊조렸다.
“인원수대로 빌린 게 아니라, 여기 호텔을 통째로 빌렸다고 하더라.”
다시금 할리우드 스케일에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할리우드는 다르긴 하다. 이런 고급 5성급 호텔을 전체로 빌리다니.”
그리고 이내 내 고개는 호텔이 아닌, 하늘로 향했다.
우중충한 날씨.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쓰읍, 소리를 냈다.
“날씨가 심상치 않은데…?”
그때, 내게 다가오는 누군가.
“희성 씨, 오느라 고생했어요.”
배우 찰스였다.
“찰스도 힘들었죠?”
“네, 네바다주는 너무 멀어요.”
그 역시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날씨가 이상하네요.”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는 가는 목소리.
우리 영화의 여배우 에블린이었다.
“아무래도 촬영 내내 비가 올 것 같더라고요. 오는 길에 날씨 예보 찾아봤어요.”
그녀의 말에 나와 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늘이 잠깐 소나기가 내릴 날씨는 아닌 것 같아요.”
찰스는 휴대 전화를 열어 날씨를 찾아보며,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 비가 오다니. 감기라도 안 걸리게, 옷 잘 챙겨 입어야겠네요.”
그는 몸이 으슬으슬한지, 자신의 팔을 쓸어내리며 매니저에게로 향했고.
에블린은 나를 흘긋 바라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희성 씨도 몸 잘 챙겨요. 야외 촬영이라, 비 오면 힘들 거예요.”
“네, 고마워요. 에블린.”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단순히 우중충한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하늘.
그리고 싸한 이 기분.
“네바다주…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