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99)화 (199/303)

199화 #35 – 위기를 기회로 (2)

돌돌 올려 묶은 머리.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을 쓴 박순희는 오늘도 어김없이 방문을 닫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리 희성 오빠는 뭐 하고 있으려나?”

그녀의 하루 중 즐거움이 된 진희성의 일상.

“혹시 SNS에 게시물 올렸으려나?”

박순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희성의 SNS를 클릭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오늘도 없네. 아직도 마지막 게시물이 ‘할리우드’잖아.”

박순희는 진희성의 일상이 업데이트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그 게시물의 댓글을 하나하나 살피며 탄식을 내뱉었다.

“거지 같은 악플러들. 이 악플러들 때문에 우리 오빠가 할리우드에서 즐기는 사진이 못 올라오는 거 아니야?”

화가 난 듯 씩씩대던 박순희는 많이 보이는 악플러 아이디를 캡처하며, 화면을 넘겼다.

“이거 다 모아뒀다가 나중에 신고해야지. 이런 것들은 고소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한참이나 악플을 캡처하며 진희성에 대해 찾던 그녀.

해가 질 무렵 시작한 컴퓨터.

한참이나 진희성에 대해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창밖으로는 아주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암….”

박순희는 하품을 쩌억 내뱉으며 졸린 눈을 비볐다.

“팬 카페에 오빠 사진 좀 업데이트하고 자야겠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졸음을 쫓아내고, 진희성의 새로운 사진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이건 내가 이미 올렸던 사진이고… 이거는 저번 오빠 작품에서 올라왔던 사진….”

팬 카페 운영진인 박순희가 보지 못한 진희성의 새로운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희성보다 그의 사진을 많이 본 사람이 아마 박순희일 테니까.

“음… 우리 오빠의 새로운 사진 좀 없나?”

박순희가 그렇게 진희성의 이름을 검색하며, 새로운 사진을 물색하던 순간.

“어? 이게 뭐야.”

그녀는 불과 몇십 분 전.

진희성에 대해 검색했을 때 보지 못했던 기사들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韓 배우 ‘진희성’, 美 감독 ‘제프리’와 손잡고 할리우드 진출….]

[진희성, 제프리 감독 작품 출연 확정… 할리우드의 첫발을 내딛은….]

[배우 진희성 할리우드 진출 확정! 그의 첫 할리우드 작품 감독인 ‘제프리’는 누구…?]

[할리우드 제프리 감독과 도장 찍은 ‘진희성’, 그의 연기의 끝은 어디인가.]

몇 분 전부터 쏟아진 기사들.

박순희는 얼떨떨한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았고.

“지금이 새벽이니까… 그러네. LA는 지금 오전이잖아!”

그녀는 마치 자신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듯.

자신의 일인 것처럼 눈물을 머금은 채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후… 우리 오빠 저번에 제임스 감독 작품 안 한다고 하더니, 결국 제프리 감독이랑 손잡았구나.”

박순희는 서둘러 제프리 감독에 대해 찾기 시작했고.

그의 지난 영화와 수상 기록을 본 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감독보다 제프리 감독이 낫네. 역시 우리 희성 오빠의 큰 그림이었던 거지!”

박순희는 파르르 입술을 떨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 피곤해서 하품을 했냐는 듯,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많은 기사들을 팬 카페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떡해. 우리 오빠 자랑스러워서 나 오늘 잠 다 잤다.”

박순희는 헤실대며 새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빠짐없이 읽었고.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살폈다.

-오? 진희성 진짜 할리우드 진출했네?

-도망간 줄 알았더니, 진희성의 빅 피처였네ㅋㅋ.

-제프리랑 제임스 라이벌인데, 두 감독한테 다 러브콜을 받았다는 건가?

└그런 듯? 그리고 진희성이 고른 감독이 제프리인 거지.

└첫 할리우드 진출이라 두 감독한테 다 섭외받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긴 함.

└ㅇㅇ. 둘이 세기의 라이벌이긴 하지.

-제프리 vs 제임스. 진희성을 가진 감독이 제프리니까, 제프리의 승리 아님?ㅋㅋ.

-와, 진희성 대단하다. 한국에서 정상 자리 차근차근 오르다가, 정석대로 할리우드 진출하네.

-국뽕에 취한다아~ 할리우드 최정상 두 감독한테 러브콜 받은 배우가 한국 배우라니!

댓글들은 진희성에 대한 칭찬으로 자자했다.

더군다나 제프리 감독과 제임스 감독이 라이벌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그들에게 언급되었던 배우가 진희성이었기에.

더욱 진희성의 가치가 대중들에게 높이 평가되고 있는 듯 보였다.

박순희는 그런 훈훈한 선플들을 보며, 연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우리 오빠, 이제 좋은 댓글들뿐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댓글을 살폈고.

하지만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악플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진희성이 제임스한테 까여서 도망간 게 제프리인 거 아님?

-라이벌 감독한테 중간에서 저울질한 거 아님? 진희성 인성 무엇?

└저울질한다는 자체가 거물급이라는 거 아님? 생각 왜 이렇게 꼬였냐, 일상생활 가능?ㅋㅋ.

└이제 막 할리우드 간 배우가 오디션에서 도망간 게 잘한 건 아니지ㅋㅋㅋ.

└그건 제임스 쪽에서 낸 기사잖아. 진희성 입장에서도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냐?

└네, 다음 진희성 팬이요~.

“얘는 대체 뭔데 우리 오빠를 모욕하는 거야?”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악플러와 반대 입장의 댓글이 팽팽하게 대립을 펼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우리 오빠가 할리우드 진출한 게 확정이니까, 너무 기분 좋다.”

박순희는 뿌듯한 얼굴로 진희성의 사진을 바라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우리 오빠 팬인 게, 너무 자랑스럽잖아!”

***

계약을 위한 미팅이 끝난 후.

우리는 계약 기념 만찬을 즐기기 위해 LA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렀다.

김 실장과 자축하며, 점심부터 거하게 한 끼를 먹은 뒤.

“이야, 우리가 이렇게 할리우드에서 계약을 하고, 이런 밥까지 먹다니.”

그는 레스토랑을 나오며 잔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았다.

“하하, 그러게. 너무 행복하다, 형.”

“나도. 희성아, 진짜 대견하다.”

나는 김 실장을 바라보고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뭐… 이제 시작이지?”

내 자신감 넘치는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진짜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고, 월드 스타 한번 해보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길게 휘었다.

김 실장과 나는 찢어질 듯 좋은 기분으로 한참을 배회하다가 호텔에 도착했다.

제프리 감독과의 계약에서 내심 긴장했던 나는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편안함에 몸이 축 늘어졌고.

“와아, 형. 들어오니까 확 피곤하다.”

“당연하지. 미팅하느라 신경 썼을 텐데. 좀 쉬어.”

“알겠어. 나 그럼 조금만 쉬고 있을게.”

나는 그에게 말한 뒤, 방으로 들어가 몸을 기대었고.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해 몇 시간 전 찍었던 도장.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 감회가 새로웠다.

“와… 내가 진짜 할리우드에서 연기를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늘 바라고 그려왔던 것이었기에.

이 벅찬 마음을 감춰낼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입으로 말아 넣은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속으로 내질렀다.

그때.

쾅-.

김 실장이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내게로 급히 달려왔다.

“희성아!”

그의 부름에 놀란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그에게 물었다.

“갑자기 뭐야, 무슨 일 있어?”

심각한 표정의 김 실장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뭔데?”

그러더니 이내 의뭉스럽게 입술을 움직였다.

“짠! 이거 봐.”

그는 가지고 있던 휴대 전화를 내게 내밀었다.

내가 그의 휴대 전화를 받아들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왕의 귀환!”

“이게 대체….”

김 실장이 내게 내민 화면은 한국에 올라온 수많은 기사들이었다.

내가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내용.

제프리와 손을 잡았다는 내용들의 기사가 셀 수 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언론이 돌아왔어. 다들 한국의 자랑이라고 난리야.”

김 실장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연신 소리쳤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영화가 흥행해야 진짜 성공이야.”

“맞지. 근데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김 실장은 내게 힘을 실어주었고.

나는 수많은 기사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무조건 증명해 보이고 말 거야….”

김 실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계획을 읊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 주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희성이 연기 연습도 다시 시작하고, 영어 회화도 더….”

나보다 더 내 계획에 진심인 김 실장은 진지한 얼굴로 한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한국에 도착한 지 불과 하루가 지났다.

LA와 16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차가 존재했지만.

그 시차를 천천히 여유롭게 적응해나갈 시간이 없었다.

도착해서 잠을 청한 뒤.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빠르게 한국 시간에 적응해 회사에 출근했다.

내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내 연기를 증명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습뿐일 테니까.

“형!”

김 실장이 잔뜩 부은 눈으로 나를 반겼다.

“희성아, 왔어?”

“응, 뭐야. 형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내 물음에 그는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회사에 일이 많아서 일찍 왔거든.”

“어제 한국 들어왔는데, 벌써 할 일이 많다고?”

“응, 여기저기서 휴대 전화가 불이 나도록 연락이 많이 왔거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선 우리 커피 좀 마시자. 너무 피곤하다.”

“그래.”

김 실장은 나를 이끌어 회사 내에 있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회사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였기에.

항상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북적거리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제격이었지.

우리는 금세 나온 따끈한 커피를 들이켰고.

김 실장은 그제야 피곤한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살겠다.”

“형,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눈 좀 붙이지. 시차 때문에 더 그런가?”

걱정스레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잠잘 시간이 없어.”

“무슨 말이야?”

내 말에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지금 내가 너 때문에 아주 바빠 죽겠다.”

바쁘다는 말을 너무나 행복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

나 때문에 바쁘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나 할리우드 진출해서 회사에서 이야기 나온 거야?”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당연하고. 어젯밤부터,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내 전화기가 불이 날 것 같다니까?”

김 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인터뷰에, 광고에 요청이 지금 끊이지가 않아.”

“정말?”

그때.

지이잉… 지이잉.

테이블에 놓인 김 실장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다.

“또 광고 전화인가 본데?”

그러더니 김 실장은 신이 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몇 분 뒤.

김 실장은 흡족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았다.

“봐, 또 광고 요청 전화야. 우리 희성이 대박 났어!”

그는 눈을 굴리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목록은 정리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안 찍는 게 나을 것 같기는 해.”

김 실장의 말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그렇게 생각….”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두 개 정도는 찍을까?”

그의 말에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직은 안 찍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광고도, 인터뷰도 말이야.”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그에게 말을 이었다.

“아직 할리우드에서 작품이 나온 것도 아니고,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 괜히 설레발치는 것보다는, 진짜로 성공해서 당당하게 앞에 서고 싶어.”

그는 내 의견을 존중하는 듯 곧장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당장 돈 들어오면 좋기야 하겠지만, 작품이 성공하고 난 이후에 광고 찍으면 광고비 단위 자체가 달라질 거야.”

김 실장은 나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고.

나는 얼굴에 미소가 아닌,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지금 이것저것 하기엔 김칫국 마시는 것 같아서. 그런 건 지양하고 싶어.”

김 실장은 내 말에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거나, 나를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알겠어. 희성이 네 의견 충분히 존중해.”

그의 말에 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열심히 연습해서 꼭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고, 그 뒤에 천천히 진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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