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34 – 할리우드 (4)
“이 악플러, 콩밥 좀 꼭 먹여주세요.”
나는 신민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흘기며 뒤를 돌았고.
경찰서를 빠져나가기 위해 문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뭐?”
신민영의 앙칼진 목소리가 내 귓가에 그대로 꽂혔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 내게 사과를 하던 말투와는 정반대였다.
까칠한 목소리로 경찰서가 떠나가라 소리친 그녀.
그 소리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향했고.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신민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몸 전체가 들썩이도록 씩씩대며 외쳤다.
“남자 새끼가 X나 쩨쩨하게 이랬다저랬다 해?”
그녀의 말에 나는 너무나 황당해 실소가 터져 나왔고.
“뭐라고요?”
내 말에 그녀는 발길을 옮겨 내게로 다가오며 재차 소리쳤다.
“맞잖아. 아까 전화로 사과하니까, 알겠다며.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또 고소 취하를 안 하겠대?”
“내가 전화 끊으려고 알겠다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죠?”
신민영은 턱을 높게 치켜들고 당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 걸음을 더 걸어왔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표정을 보면 마치 내가 가해자이고.
그녀가 피해자라고 할 정도 아닌가.
너무 당당하게 소리치는 그녀는 경찰서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미안하다고 하면, 같은 업계 사람이고, 같은 배우인데 좀 봐주고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신민영 씨, 진정하시고….”
경찰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가로막았지만.
신민영의 눈빛은 마치 뭐에 씐 것처럼 뒤집혀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나는 추태를 부리는 신민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형, 여기서 더 이상 우리가 할 게 없다. 고소 취하할 생각 없다고 했으니까, 이제 나가자.”
“어… 그러자.”
김 실장은 신민영의 저런 모습을 바라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당황한 김 실장의 눈빛은 그를 알고 난 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긴, 나 역시 신민영의 저런 면을 보며 충격적인데, 김 실장도 놀랄 수밖에.
“가긴 어딜 가!”
턱-.
그때 신민영이 문을 나서려는 내게 달려와 문을 반대로 당겼다.
“아악.”
그녀가 갑자기 내 문을 반대로 당겨버리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문에 손등을 찧었고.
내 비명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소리쳤다.
“희성 씨,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계속 미안하다고 하잖아, 봐 지금도. 미안해요, 미안하다니까?”
“하아… 신민영 씨 그만하시죠.”
“그만? 뭘 그만해. 내가 꼴랑 악플 몇 개 쓴 거? 그거 사과한다고. 내가 뭘 죽을죄를 지었어, 뭘 했어!”
신민영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처음엔 안쓰러운 그녀를 생각하며, 고소를 취하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
도저히 이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고소 취하가 문제가 아니네.”
나는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신민영의 눈을 쏘아보며 김 실장에게 외쳤다.
“형, 나 도저히 말 안 통하는 사람이랑 못 있겠다. 나가자.”
신민영은 벙찐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내 눈에서는 마치 수없이 욕이 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대로 신민영을 뒤로한 채 문을 박차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김 실장과 함께 차에 올라타자마자 가쁜 숨을 쏟아냈다.
“와아,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내 말에 김 실장은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나도 이 바닥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면서, 저런 사람 처음 봐. 미친 거 아니냐?”
김 실장과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입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김 실장을 불렀다.
“형,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거 공론화 안 하려고 했는데, 신민영은 고쳐 쓸 수가 없을 것 같아.”
내 말에 김 실장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사가 나가는 것.
팬들에게 나쁜 소식을 알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정말?”
“어, 형도 봤잖아. 신민영은 고소… 저거 하나로는 안 돼.”
“그런 것 같긴 해.”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기자 한 명만 소개시켜 줘. 당장 신민영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어.”
분노에 차오른 내 얼굴을 본 김 실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희성아. 내가 할게. 회사에 말하면 바로 기사 날 거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잠시 눈동자를 굴렸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그렇게 기사 내면, 괜히 소속사끼리 분쟁 날 수도 있잖아. 그냥 내가 독단적으로 기자한테 제보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
경찰서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아, 신민영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한 기자에게만 신민영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 기사가 나자마자 모든 기자가 이 이야기를 취재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지.
사람들은 이슈에.
특히나 연예인에 대한 이슈에 민감했으니까.
더군다나 좋은 소식이 아닌, 이러한 나쁜 소식에는 기자들이 더 부리나케 달려왔지.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S 배우, 알고 보니 그녀는 악플러?]
[S 배우… 승승장구하던 길에 악플이 웬 말?]
[S 배우의 발목을 잡는 건, 다름 아닌 악플!]
[악플로 시달리던 진희성, 그에게 악플을 단 정체는 동료였던 S 배우….]
기사에는 ‘S 배우’라며 이니셜로 익명을 보이는 듯했으나.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기사가 뜨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S 배우의 정체는 ‘신민영’이라는 것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
신민영은 자신이 S 배우라는 것이 밝혀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배우 신민영입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S 배우’는 제가 맞습니다.
먼저 팬 여러분을 놀라게 해드려….
.
.
.
너무 억울해서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이라면, 제가 진희성 배우와 촬영 당시 친분이 깊었다는 사실을 모르시지 않을 겁니다.
제 팬분이 아니라도, 당시 함께했던 스태프분들, 동료 배우들도 다 아실 겁니다.
그만큼 저희의 친분은 깊었으니까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저희는 서인우 배우와도 함께 ‘삼총사’라고 불릴 만큼 가까웠거든요.
그러던 중 제가 장난삼아 달았던 농담 섞인 댓글 하나.
그게 제 착오였습니다.
저는 그저 진희성 배우와 친분이 있기에, 댓글을 단 후 진희성 배우와 장난을 치려고 했던 것인데.
진희성 배우가 그 댓글을 오해하고, 악플이라며 고소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분명 저는 진희성 배우에게 사과를 했고, 그 또한 제 사과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제게 고소를….
“하아… 얘 진짜 미쳤네.”
나는 그녀의 SNS 게시물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펼쳐 놓았고.
이쯤 되면 그녀의 정신 상태까지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글은 빠르게 기사로 번졌고.
그 게시물에도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헐, 언니ㅠㅠ. 언니 입장 표명 언제 되나 기다렸어요. 언니 믿어요!
-진희성 미친 거 아님?
-진희성, 신민영 뒤통수치고 지 뜨려고 작정했네 ㅡㅡ.
-민영 언니ㅠㅠ 속상해하지 마요. 팬들은 다 알고 있어요.
댓글을 보며,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분명 경찰서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을 넘은 댓글들.
거기에 내게 부리는 행패까지.
너무나 화가 나 공론화까지 시켰건만.
신민영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대로 멈추고 있을 수만은 없었지.
어느새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나를 가해자로 몰고 있으니까.
나는 서둘러 기자에게 연락해 최후까지 남겨뒀던, 판결문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기자님, 전화로 말씀드린 판결문 메일 보냈습니다. 빠른 기사 부탁드립니다.
내 문자 한 통.
판결문 메일 하나로 인해, 1시간 만에 신민영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끝이 날 수밖에 없었다.
***
판결문이 세상에 알려지고 고작 3일이 지난 후.
신민영의 SNS 계정은 거짓말쟁이, 악플 여배우라는 댓글이 쏟아진 후에야 계정을 삭제했다.
그리고 신민영은 SNS뿐만이 아니라, 연예계에서도 퇴출이 되고 있었다.
[‘토크 광장’ 신민영 하차 → 하은빈 합류, 신민영 마지막 인사 없이 하차….]
[악플 논란 ‘신민영’… 3개월간 이어가던 토크 광장 하차해….]
[악플 여배우 ‘신민영’, 영화 ‘2월의 어느 날’ 캐스팅과 동시에 하차.]
[신민영 친동생, 개인 SNS 계정에 누나 변호했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어 논란.]
[올해 기대의 드라마 ‘찻잔의 그녀’ 주연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신민영’. 악플과 맞바꾼 그녀의 주연 자리.]
[드라마 ‘제주에서’ 2화 촬영 중, ‘신민영’ 중도 하차….]
[드라마 ‘제주에서’ 제작진 신민영 곧바로 손절, 당연한 결과….]
신민영은 고정으로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하차를 당했고.
영화 캐스팅은 그대로 엎어졌다.
거기에 주연으로 캐스팅될 뻔한 드라마.
이미 2화까지 촬영을 마친 드라마에서도 그녀의 하차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신민영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했던 일을 떠올리면 단 한순간도.
눈곱만큼도 미안함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연예계 퇴출이 당연하고 통쾌하다고 느껴졌다.
연예계에서, 아니 모든 곳에서 단절되어야 할 악플.
그 중심에 있는 연예인인 그녀가 악플을 달았다는 건.
그만큼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신민영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바로 정의지…!”
그제야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캐리어를 펼칠 수 있었다.
“이제 할리우드 갈 짐. 편하게 챙길 수 있겠다.”
***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꼭두새벽.
나는 눈을 비비며 차에 올라탔다.
“희성아, 왔어?”
“응, 형은 잠 좀 자고 왔어?”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럼, 푹 자고 왔지. 비행기에서 안 자고, 놀고먹어야지. 하하.”
“우리 엄청나게 오래 비행기 탈 텐데?”
“어, 그래서 더 오래 비행을 즐겨야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해. 나는 비행기 안에서 잠 좀 푹 자야겠다.”
“그래, 가뜩이나 신민영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제 두 발 뻗고 좀 쉬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얼른 출발해야겠다. 벨트 매.”
“응.”
한참을 달려 공항에 도착한 뒤.
우리는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옆자리에 앉은 김 실장은 잔뜩 설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리우드 가려니까, 떨리는데?”
그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형, 나도….”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주변을 살폈고.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그에게 물었다.
“맞다. 형, 혹시 나 SNS에 LA 가는 거 자랑해도 돼?”
내 말에 김 실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응, 근데 아직 작품 들어간 거 아니니까. 직접적으로만 올리지 마.”
“오케이!”
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서둘러 SNS를 열어 게시물을 작성했다.
“음… 뭐라고 쓰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하던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글자를 써내려갔다.
-To. HOLLY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