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90)화 (190/303)

190화 #34 – 할리우드 (3)

“아악, X발!”

쾅-!

신민영은 자신의 앞에 있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벽에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내 손으로 댓글 좀 썼는데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쿵.

퍽-.

자신의 앞에 있던 리모컨, 휴대 전화, 컵 등등.

물건을 모두 집히는 대로 던진 그녀는 손으로 소파를 더듬거렸다.

모조리 던져 손에 잡히는 게 없자,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기 시작했다.

“꺄아, 진짜 개 열 받네?”

숨을 헐떡이며 소리치던 그녀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허공을 주시하며 읊조렸다.

“연예인이 댓글 몇 개 가지고 그 난리 치고, 고소하면 누가 연예인 해? 그딴 멘탈로 무슨 배우냐, 진희성 미친….”

신민영은 가쁜 숨을 내뱉었지만.

도저히 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을 빠르게 걸었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불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X발…. 나 진희성 저 자식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내 커리어를 버릴 수는 없는데…?”

신민영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불안함에 시작된 그 행동은 점점 강도가 세져만 갔다.

어느새 그녀의 아랫입술에서는 붉은 피가 새어 나왔고.

피가 맺혔는지도 모르는 신민영은 계속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느새 퉁퉁 붓기 시작한 아랫입술.

“아… 나 이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면 안 되는데….”

신민영의 입술은 파르르 떨려왔다.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쉰 신민영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 이제 어떡해.”

눈물이 그녀의 양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신민영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진이 빠진 얼굴로 머리를 소파에 기대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신민영은 스르르 감은 눈을 떠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손을 더듬어 휴대 전화를 열어 인터넷을 클릭했다.

“설마… 진희성이 기사 낸 건 아니겠지?”

그녀는 재빨리 인터넷에 ‘신민영’, ‘진희성’ 이름을 번갈아 검색했고.

뉴스를 모두 찾아봤지만, 자신과 관련된.

그러니까 악플러와 관련된 기사는 단 하나도 떠 있지 않았다.

“진희성이 기사화시키지는 않았나 보네.”

시곗바늘은 12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고.

신민영은 몇십 분마다 휴대 전화 뉴스 창을 새로 고침하며, 새로 뜬 기사는 없는지.

자신에 대한 내용, 진희성에 대한 기사들이 없는지 계속 살폈다.

한껏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신민영의 얼굴.

그녀는 울다 잠들어 눈이 팅팅 부어 있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딱, 딱.

이번에는 불안에 휩싸여 손톱을 앞니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진희성이 이해해 주겠지?”

딱… 딱.

“그래. 내가 사과한다고까지 말했는데, 사람이 살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사과를 안 받아줄 리가 있겠어?”

신민영은 사과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지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스르르 번졌다.

“뭐, 내가 댓글을 심하게 단 편도 아니고.”

그녀는 자신이 신고 당했던 댓글 캡처 사진을 열어 빤히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다른 악플러보다 심한 것도 아니지. 진희성 인성이 나가리라는 것이 거짓말도 아니고?”

신민영은 자신이 달았던 댓글을 보며 합리화하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게다가 같은 업계 종사하는 사람끼리. 그래, 심지어 진희성이랑 나랑 그렇게 삼총사네 뭐네 했는데, 설마 법적인 조치를 취할 리가 없잖아?”

어느새 그녀의 마음에는 불안함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신민영은 눈을 치켜뜨고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진희성이랑 겹치는 지인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회사 대표님한테 손 좀 써달라고 해야겠다.”

신민영은 자신의 매니저에게로 전화를 걸어 당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그 악플 때문에 진희성 측에서 연락 온 거 말이야. 나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건가?”

그녀는 뻔뻔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

팟-!

나는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다 결국,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손을 더듬어 휴대 전화를 찾아 시간을 확인했고.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40분.

아직 알람이 울리려면 1시간은 족히 넘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시간에 눈을 뜬 이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다.

몇 달 내내 SNS와 인터넷에 악플을 달던 악플러.

몇천 명의 선플이 있었고.

당연히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듯, 수많은 악플러들 또한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 한 명의 악플러만을 고소한 이유.

몇 달 동안 내 기사만을 쫓아다니고, 내 개인 SNS의 모든 사진에 악플을 끈질기게 달았다.

더군다나 그저 내가 싫다는 이유로 악플을 다는 것이 아닌.

나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트리고.

그저 무시할 수 없는.

가족을 건드리는 선을 그 악플러가 넘고 만 것이지.

그 한 명의 악플러 때문에 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고소를 한 뒤.

그 악플러를 잡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했다.

인터넷이나 주변 지인들을 보면, 그런 악플러를 고소했더니 초등학생이더라.

중·고등학생이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미성년자임을 확인하고, 벌을 내리지 못한 채 사과만 받고 돌려보냈다는 후기를 들었기에.

나 역시 그런 학생일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했다.

내 악플러 또한 학생이라면, 내가 어떤 벌을 내려야 할까?

그저 선처를 하고 돌려보내는 게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일인 걸까?

어떻게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다.

그래도 그 악플러와 대면을 해 공인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따끔하게 한마디라도 일침을 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악플러의 정체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인물.

그 사람이 함께 작품을 하며, 연예계에서 가장 가까워질 수도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신민영이 내게 그 몹쓸 말을 한 악플러라는 사실에 충격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아… 말도 안 돼.”

어제 김 실장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후.

여전히 그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생각 정리를 한답시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기는커녕, 잠조차 이룰 수가 없었다.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대체… 어떻게 나에 대해 그런 악플들을 남길 수가 있는지 말이다.

눈을 질끈 감고, 신민영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이른 아침, 김 실장과의 약속으로 차에 올라탔다.

“희성아, 왔어?”

차에 타는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김 실장의 눈빛.

그 역시 악플러가 신민영이라는 사실에 꽤 놀랐다.

하지만 자신보다 내가 더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전날부터 내 걱정을 하는 김 실장이었다.

“응.”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야, 눈이 왜 이렇게 충혈되어 있어? 핏줄도 다 터진 거 같은데?”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잠을 좀 못 자서 그런가 봐.”

“하아, 신민영 때문이지?”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긴 한데. 괜찮아.”

김 실장은 내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말했다.

“아침이니까 오늘은 커피 말고, 카모마일 한잔 마셔.”

“고마워.”

“출발할게.”

그는 몸을 돌려 운전대를 잡았고.

내가 의자에 등을 기대자 곧장 입을 열었다.

“희성아, 경찰서 가면서 이야기할 건 아닌데. 그래도 좋은 소식이니까, 빨리 말해주려고.”

“뭔데?”

그는 룸 미러를 통해 나와 눈을 잠시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할리우드에서 네가 원하면 출연은 확정이라고 답변 받았어.”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들이밀었다.

“정말?”

“어, 아침에 메일 확인했어.”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휴, 다행이다!”

최서빈과의 술자리 이후,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열심히 공부하며 연습하고 있지만.

정말 최서빈의 말대로 그저 오디션이면 어쩌지?

내가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가?

그래도 이렇게 공부해두면 언젠가는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 도움이 될 테니까, 라며 집중을 했다.

그런데 그의 걱정과는 달리, 내가 오케이만 하면 된다는 말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최서빈도 내게 저주를 걸듯 말했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서 알려준 것이었을 터.

“진짜… 다행이다.”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다시 차 안은 고요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김 실장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희성아, 그래서 지금 경찰서 가면 신민영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음… 모르겠어.”

“아직 생각 정리를 못 한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용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오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고.

솔직히 점점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신민영이 나에 대한 악플을 썼다는 것.

그건 감출 수 없는 진실이고, 그녀가 악플을 단 심정 같은 건 솔직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촬영하는 동안 그녀와의 친분이 있었고.

물론 촬영 이후 그녀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건 사실이지만.

그전의 친분, 그녀와 작은 오해로 깊어진 갈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그냥 사과를 받고 넘어가는 게 나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때.

지이잉.

[발신인: 신민영]

마침 신민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김 실장에게 발신인을 보여준 뒤,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신민영인데요.

“알아요. 곧 경찰서에서 볼 건데, 무슨 일이세요?”

-희성 씨… 내가 진짜 미안해요.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요.

갑자기 목을 놓아 우는 신민영의 목소리.

나는 그녀의 울음에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정신이 어떻게 됐나 봐요. 처음부터 희성 씨한테 악감정을 가지고 그랬던 건 아니고….

신민영은 연신 우는 소리를 내며 꾸역꾸역 말을 이어갔고.

구구절절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게 몇십 분 동안 사과를 이어갔다.

-…그래서 정말 희성 씨한테 상처를 준 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희성 씨 마음이 풀릴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우선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요. 우선 곧 경찰서에서 만나니까, 그때 이야기해요.”

-진짜 죄송해요.

“네, 일단은 전화 끊겠습니다. 이따 봬요.”

나는 서둘러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고.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같은 업계 사람인데, 내가 그녀에게 법적 대응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까지 울며 사과하는데….

사실 그녀와의 통화로 너무나 마음이 약해져 버렸고.

차가 경찰에 도착할 동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

“곧 도착한다고 하니까,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 나와 김 실장은 자리에 앉았고.

“네.”

그는 한숨을 삼켜내며 우리에게 파일 하나를 건넸다.

“저… 어제 매니저분께는 통화로 말씀드렸던 건데요.”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추가 악플 내용 말씀이시죠?”

“네, 여기 파일 정리해 뒀습니다.”

내가 캡처해서 신고한 내용 이외에도.

신민영이 내게 단 악플을 경찰 측에서 모두 조사했고.

그 모든 댓글을 우리에게 건넸다.

김 실장 앞에 놓인 파일.

나는 서둘러 그 파일을 당겨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진희성 부모 인성 쓰레기라고 동네에 소문났다던데?ㅋㅋ

-그거 알아? 진희성 아빠 무정자증이라는 거?

└그럼 당연히 진희성 엄마는 딴 놈이랑 바람피워서 임신한 거ㅋㅋㅋㅋ. 개 더러워.

└그럼 진희성은 바람피운 남자의 자식이쥬?

└개콩가루 집안이다, 이겁니다!

“…미친.”

댓글을 읽던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파일을 덮어버렸다.

나에 대한 악플은 물론, 부모님에 대한 거짓들.

패드립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업계 사람이라 어지간하면 봐주려고 경찰서에 왔건만.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때.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민영의 모습.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내게 저런 더러운 악플을 달고도 뻔뻔하게 눈을 마주치고 들어오는 저 모습이 말이다.

그녀는 내게로 다가오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정말 죄송해요, 희성 씨.”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경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둘이 이야기 나누면 되는 거죠, 경찰관님?”

사근사근 말하는 그녀였지만.

그 말속에는 ‘진희성이 나 봐준다고 했는데?’라는 듯한 당당한 느낌이 풍겨왔고.

나는 도저히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네,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셔서 합의하시면 고소가 취하….”

난 신민영에게 대답하던 경찰의 말을 잘라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 고소 취하 절대 안 합니다.”

내 말에 신민영은 물론 경찰과 김 실장까지 나를 바라보았다.

가장 놀란 얼굴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신민영.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고 외쳤다.

“이 악플러, 콩밥 좀 꼭 먹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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