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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85)화 (185/303)

185화 #33 – 미담 제조기 (3)

시상식의 자리가 거의 만석이 되어갈 때쯤.

또다시 환호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최서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입구에 들어서며 많은 배우들과 인사를 나눴고.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최서빈에게로 향했다.

“선배님!”

시종일관 옅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던 최서빈은 내 부름에 무장 해제를 한 듯.

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로 빠르게 걸어왔다.

“희성아, 왔어?”

“네, 선배님. 오늘도 멋있으십니다.”

내 말에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눈썹을 들썩였다.

“나야 뭐 항상 멋있지. 하하.”

그의 너스레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발길을 옮겼다.

“제 앞줄에 선배님 자리가 있으시더라고요.”

“오오, 내 자리도 봐뒀어?”

“당연하죠. 저 자리에 앉자마자 선배님 자리부터 확인했습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와 자리로 향했다.

머지않아, 레드 카펫 행사가 마무리되었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 이어졌다.

배우들은 시상식이 시작하기 전, 편하게 화장실을 가거나 자리를 이동했고.

나와 최서빈처럼 친한 배우들끼리 뭉쳐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희성아, 너 최우수상 후보에 올랐더라?”

그의 말에 나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헤실거렸다.

“아, 후보에만 오른 건데 다들 언급해 주셔서 부끄럽습니다. 하하.”

“수상 소감은 준비했어?”

“에이, 작년에 신인상이랑 인기상 받았는데요. 사실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엄청나게 영광이죠.”

내 말에 최서빈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답했다.

“그래도 무려 27%의 시청률이 나왔는데. 준비는 해야지.”

나는 양손을 뻗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선배님, 그만 비행기 태워주십쇼. 내년에 열심히 해서 상 받아 보겠습니다. 하하.”

최서빈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음을 보였다.

“너 올해도 열심히 했어, 인마.”

나는 앞에 앉은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살갑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자식,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건 타고났다니까? 하하.”

최서빈은 웃음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정했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못 정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최서빈은 진심으로 놀란 듯한 얼굴로 물었다.

“너 작품 하나 끝나자마자 매번 다음 작품 골랐잖아.”

그의 말대로 나는 늘 작품이 끝나면 휴식 없이 다음 작품을 고르느라 바빴다.

오죽하면 최서빈이 내게 매일같이 전화해서 휴식을 권유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지칠까 걱정하는, 진심 어린 최서빈의 조언이었지.

하지만 이번 역시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작품을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작품을 하며 불렸던 체중,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열심히 운동했고.

그런 와중에도 하루도 빼지 않고 작품을 고르고, 연기 연습에 열중했다.

전 작품에서 워낙 엄청난 시청률이 터졌기에, 바로 다음 작품은 쉽사리 고르지 못했지.

다음 작품이 ‘닥터’만큼의 영향력이 없다면.

닥터에서 보여줬던 시청률은 그저 작품이 좋았다는 평으로 재평가될 테니까.

사람들이 평가한 진희성의 연기력, 내 노력 등이 재조명될 것이 뻔하기에.

더더욱 다음 작품을 고르는 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운이 아니라, 내 노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괜찮다, 싶은 대본이 아닌.

누가 봐도 엄청난 작품을 골라야 했다.

나는 최서빈의 말에 한숨을 짧게 내쉬며 답했다.

“다음 작품 고르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내 말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는지, 최서빈이 쓰읍, 소리를 내며 답했다.

“그렇지. 27%가 얼마나 큰 숫자냐. 그 정도 작품을 또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맞습니다. 괜찮은 작품은 많은데, 이 작품 아니면 안 되겠다, 정도의 작품은 아직 못 찾았어요.”

최서빈은 공감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되니까, 차분히 작품 골라.”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는 입술을 말아 넣은 채 머리를 흔들었고.

눈썹을 들썩이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은 요즘 뭐 하십니까?”

그러자 최서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이번에 영화 들어가기로 했어.”

최서빈의 말에 나는 손뼉을 부딪치며 외쳤다.

“오오! 선배님, 축하드려요.”

“축하는 뭘. 하하.”

“어떤 작품으로 고르셨습니까?”

내 물음에 최서빈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한국 작품이 아니야.”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요?”

최서빈은 주변을 둘러보며, 내게로 가까이 입을 가져와 작게 읊조렸다.

“…일본.”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떡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

“헉, 선배님!”

나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에 놀란 최서빈과 나는 동시에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아, 죄송해요.”

그러고는 최서빈의 얼굴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선배님, 드디어 세계로 나가시는 겁니까?”

최서빈이 피식 웃음을 보이고는 내게 물었다.

“류노스케 감독님 알아?”

그의 말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죠. 최근에 영화제에서 수상하셨잖아요.”

류노스케 감독.

일본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모든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그의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이름을 떨친 감독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모두 유명한 것보다는 그의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지.

“응, 뭐 류노스케 감독 영화가 다 잘된 건 아닌데. 사실 영화가 나오기만 하면, 늘 상이 따라오는 감독이잖아?”

“그렇죠.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요.”

최서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래서 나도 그 작품성으로, 글로벌 시장을 한번 노려보려고.”

최서빈의 포부에 나는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 엄지를 본 최서빈은 피식 웃음을 보였고.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제가 열심히 한국에서 응원할게요.”

“고맙다.”

무대에 올라가 있는 스태프의 신호로 이내 배우들은 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최서빈은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멘트를 건넸다.

“희성이 너도 네 선택을 믿어봐.”

***

연기 대상은 빠르게 1부가 마무리되었다.

신인상부터 시작한 연기 대상을 보며, 나는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웠다.

작년 연기 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인기상까지 수상했지.

불과 1년밖에 흐르지 않은 지금.

우수상을 건너뛰고, 무려 최우수상이라는 큰 상 후보에 올라와 있다.

물론 이번에는 작년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작년에도 지금처럼 쑥스러워했지만, 그때는 상을 너무나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저 시상식에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내심 상도 받아보면 어떨까? 라는 마음이 가득했지.

하지만 올해는 그런 마음보다는 내가 최우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순서대로 신인상, 인기상, 우수상, 최우수상 순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었고.

시기 역시 너무나 짧았기에, 최우수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올해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분들부터 만나볼까요?”

작년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배우 김민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의 말에 함께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백소정이 입을 열었다.

“네, 최우수상 후보는….”

그녀의 말과 함께 VCR에는 내 얼굴이 등장했고.

“무려 27%의 시청률을 달성한, 기적 같은 드라마였죠. ‘닥터’에서 열연을 펼친 진희성 배우님이 첫 번째 후보로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동시에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내 얼굴이 비쳤고.

얼어붙었던 나는 멋쩍은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와아아아!”

관객석에서 내 팬들이 환호를 지르며 플래카드를 들썩였다.

“진희성! 진희성!”

팬들의 소리가 잦아들자, 김민현이 다음 재생된 VCR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다음 최우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배우는요….”

이어서 나를 포함한 4명의 후보가 호명되었고.

마지막 발표 순서를 앞두고 있었다.

♪♬.

긴장감이 넘치는 BGM이 흘러나오고, 무대 위 커다란 화면에는 후보에 오른 4명이 분할 화면으로 보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후보 중.

나만큼 긴장을 하고 있는 배우는 없는 듯 보였다.

이미 최우수상을 한번 수상했던 배우.

그리고 자신이 상을 수상할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 듯한 여유로운 표정의 배우.

자신은 절대 수상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시상식을 즐기는 배우.

마지막으로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나까지.

내 주변에 있는 배우들은 나를 바라보며 눈을 초롱거렸고.

나는 누가 수상을 해도 축하해줄 준비를 하며, 손을 맞잡았다.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상한 배우를 향해 박수를 보낼 것이었으니까.

시상식 무대에서는 두 배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김민현이 손에 든 봉투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올해의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배우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요. 과연…!”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무대 아래를 바라보았고.

이내 몸을 부르르 떨며 백소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휴, 저 너무 떨리는데, 소정 씨가 발표해 주시겠어요?”

“아….”

“빨리요!”

배우를 포함한 관객들까지 김민현에게 장난 섞인 야유를 보냈고.

백소정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요.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그녀는 김민현에게 봉투를 건네받았고.

빙그레 웃으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올해 최우수상을 수상할 배우분은요….”

시상식답게 뜸을 들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리 여유로운 이유는, 이미 나는 수상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긴장했지만.

수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하고 왔기에, 점차 이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지.

그 모습이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겼고.

백소정은 활짝 웃음을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축하드립니다. 올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닥터의 진희성 배우님!”

짝짝짝-.

시상식장이 떠나가라 박수가 울려 퍼졌고.

나 역시 그 소리에 손뼉을 부딪쳤다.

그리고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진희성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모든 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고.

나는 그제야 내 이름을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어?”

그러곤 놀란 눈으로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고.

“희성아, 축하한다.”

내 앞에 앉았던 최서빈이 내게로 다가와 나를 품에 와락 안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최서빈의 품에 안긴 나는, 점차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가는 길.

“하아….”

전혀 상상치도 못한 수상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길을 옮겼다.

김민현이 내게 최우수상 트로피를 건네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소정은 꽃다발을 내게 건넸고.

나는 트로피와 꽃다발을 한 손에 든 채, 긴 심호흡 뒤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진희성입니다.”

“꺄아!”

“진희성, 진희성!”

나를 향한 팬들의 환호성.

그 소리에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고.

떨리는 마음을 꾹 눌러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라, 수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수상 소감도 준비를 해오지 못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연습 좀 할 걸 그랬습니다. 하하.”

내 말에 배우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미소를 지워내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그리고 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해주신 드라마 ‘닥터’의 홍인혁 감독님….”

함께 작품을 하며 감사한 사람들을 호명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진희성수기’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내 말에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항상 부족한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희성의 팬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깊게 접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늘 제 걱정뿐인 부모님, 방송 보고 계시죠? 아들 상 탔어요.”

카메라를 향해 트로피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런 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값진 상,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배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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