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84)화 (184/303)

184화 #33 – 미담 제조기 (2)

휴대 전화 속 영상에서 나오는 김민규의 모습.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방송에서 대신 전한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민규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김민규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지만.

너무나도 좋게 평가해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내 쑥스러움이 내 몸을 감쌌다.

“그래도 후배들이 나를 좋게 봐준 것 같아서… 좋네. 나 제대로 살았구나?”

김민규가 방송에 나와 내 이야기를 한 후.

마치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내 이야기가 많은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닥터’가 올해 너무나 크게 흥행했기에.

출연했던 많은 배우들이 유명해진 것이지.

주연이었던 나와 송유나를 비롯해, 조연 배우들은 물론.

김민규처럼 단역 배우들도 많은 프로그램에 섭외를 받고는 했으니까.

단역 배우들은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라디오를 틀면 심심찮게 등장하고는 했다.

평소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있어 이동하는 스케줄에는 차에서 라디오나 음악도 듣지 않았다.

대본을 보며 연습해야 했기에, 차 안에서는 정적만이 흘렀지.

그러나 대본을 보거나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차 안.

특히나 김 실장이 홀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는 늘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음악보다는 멘트가 있는 라디오가 잠을 달아나게 하고, 집중하기에 더 효과적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평소 라디오를 모두 섭렵하는 김 실장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게 전달을 해주었다.

“희성아, 오늘 아침 라디오 들었어?”

“무슨 라디오?”

“박철민 배우 기억나?”

그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소리쳤다.

“당연하지. 철민이도 라디오 나왔어?”

“응,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라디오 있잖아.”

나는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우리 스케줄 갈 때, 많이 들었잖아.”

“역시 기억하네. 거기에 게스트로 나왔더라고.”

김민규와 함께 촬영한 이후 많은 만남을 가졌던 단역 배우인 박철민.

그가 라디오에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내 일처럼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잘됐다. 나도 라디오 다시 듣기로 들어 봐야겠네.”

“꼭 들어봐. 거기서 희성이 너 언급했거든.”

“그래?”

김 실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네 미담이 쏟아져. 요즘 희성이 너랑 작업했던 배우들이 방송 나오면, 하나같이 미담 풀고 가더라.”

“크으, 나 제대로 살았나 본데? 하하.”

내 말에 김 실장이 엄지를 치켜들며 답했다.

“그럼. 요즘 희성이 너보고 예능에서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를 뭐라고 하는데?”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묻자, 김 실장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답했다.

“미담 제조기.”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내가 미담 제조기야?”

“응, 너랑 작품 찍기만 하면, 다들 희성이 네 미담 이야기하느라 바쁘대.”

“우와, 진짜 다들 고맙네.”

“그래서 요즘 희성이 너랑 작품 같이했던 배우들이 어디 출연하기만 하면, 공식 질문처럼 네 미담은 없는지 물어본다고 하더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읊조렸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들어보면 다들 없는 말이나 부풀린 것도 아니고, 다 사실이던데. 잘살고 있네, 희성이.”

“괜히 쑥스럽네.”

내 말에 김 실장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 요즘에 희성이 네 매니저인 게 더 자랑스럽다니까?”

“아이고, 더 열심히 살아볼게, 형.”

***

늦은 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연기 연습을 하고 온 진희성은 녹초가 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띠리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대로 소파로 직행했다.

“하아… 힘들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리모컨으로 TV를 틀었고.

그때 TV에 나오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어? ‘술 한 잔’이잖아?”

늦은 밤, 핫한 예능 프로그램인 ‘술 한 잔’.

이 프로그램은 매주 바뀌는 게스트들과의 토크쇼 방송이다.

단, 이 방송의 특별한 점은 ‘술’과 함께하는 방송이라는 것.

술을 마시며 연예인들의 진솔한 토크를 이끌어가는 프로그램.

또한 맛있는 안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야식과 술이 당기게 유발하는 방송이기도 하다.

진희성은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광고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술 한 잔, 방송이나 오랜만에 본방 사수해볼까?”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소파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냉장고를 향해 달려갔다.

“나도 같이 맥주나 마시면서 봐야지.”

치이익-.

진희성은 맥주 한 캔을 오픈해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켰다.

“크으, 그래. 이렇게 하루 내내 고생하고 마시는 맥주가 최고지!”

그때.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고.

진희성은 서둘러 맥주를 들고 소파로 직진했다.

“자아, 오랜만에 여유 좀 즐겨볼까?”

그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털썩 기대고 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술 한 잔을 찾아온 게스트 분들을 모시고 바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술 한 잔의 MC 한동동의 활기찬 목소리.

TV를 보는 진희성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게스트는 누구일까, 아는 사람은 아닐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내 화면이 전환되며, 게스트의 모습이 화면에 담겼고.

맥주를 들고 TV를 보던 진희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의 게스트! 어마어마한 분들을 모셨습니다. 배우 송유나 님과 김하나 님 모셔 보겠습니다.”

진희성은 맥주를 서둘러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을 떡 벌렸다.

최근에 자신과 드라마를 찍은 송유나.

그리고 바로 옆집에 사는 김하나가 나왔기 때문이다.

진희성은 이내 맥주의 안주로 TV를 보는 것이 아닌.

맥주도 내려놓은 채,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녕하세요. 술 한 잔 시청자 여러분,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배우 송유나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김하나입니다. 오늘 시청자 여러분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진솔한 토크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녀들의 인사에 패널들은 손뼉을 부딪치며 환호했다.

짝짝짝.

“오늘은 어렵게 모신 배우님들인 만큼, 두 분과 어울릴 만한 술을 준비해 봤습니다.”

한동동은 송유나와 김하나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두 분을 위한, 술 한 잔의 시그니처 칵테일!”

“우와, 색이 진짜 예뻐요.”

“그럼 우선 한 잔 마시면서, 근황 토크부터 이어가 볼까요?”

한참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TV를 보던 진희성 역시 다시금 맥주를 마시며 집중하던 그때.

들고 있던 맥주를 내려놓게 만든 멘트가 TV에서 들려왔다.

“유나 씨는 최근에 엄청난 작품을 마무리하셨잖아요.”

한동동의 말에 송유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네, 생각보다 더 많은 시청자 여러분이 저희 ‘닥터’를 좋아해주신 덕분에 행복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아, 정말 재밌었어요. 거기서 우리의 입꼬리를 올리게 하셨던 러브 라인!”

한동동이 눈썹을 들썩이며 송유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미담 제조기로 핫한 진희성 님과의 진한 러브 라인을 보여 주셨는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두 분 혹시 밖에서도 자주 만나시나요?”

그의 질문에 옆에 있던 패널들도 눈을 반짝이며 송유나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뭐, 사석에서 둘이 만난 적은 없는데….”

송유나는 갑자기 옆에 앉은 김하나를 바라보고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물었다.

“근데 하나 씨는 희성 씨랑 친하세요?”

그녀의 질문에 스튜디오의 모든 시선이 김하나에게로 옮겨갔고.

김하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아, 저는 희성 씨랑 이웃사촌이거든요. 근데 저는 작품을 하나도 못 해봐서요. 유나 씨가 희성 씨랑 여러 작품을 하지 않으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송유나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제가 하나 씨보다는 희성 씨랑 더 많이 본 사이이긴 하네요.”

송유나의 여유 만만한 표정.

한동동이 그녀들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와 입을 열었다.

“근데 최근에 하나 씨 SNS 보니까, 희성 씨와 함께 집에서 찍은 사진이 있던데요?”

그의 말에 스튜디오는 놀란 패널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헐!”

“우와.”

그러자 김하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거요?”

“혹시… 두 분이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

한동동의 의심 가득한 눈빛에 김하나가 피식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그냥 이웃사촌이에요. 아시다시피, 같은 소속사에 이웃사촌이라 자주 마주치거든요.”

김하나와 송유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진 듯했고.

그녀들은 진희성의 이야기로 한참 대화를 이어갔다.

***

“후우… 오랜만에 오니까 또 떨린다.”

나는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래도 작년에 시상식 몇 번 했으니까, 오늘은 더 여유로울 거야.”

“막상 내리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차에서 내리기 전이 제일 떨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기자들.

그리고 길게 늘어선 팬들.

계속해서 터지는 플래시와 환호에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하지만 이 떨림이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에는 이 떨림의 자리를 너무나도 바랐으니까.

작년에 처음으로 참석했던 시상식.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올해의 시상식 시즌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작년보다 조금 더 늦게 들어갈 거야.”

“그래?”

“응, 올해는 너 최우수상 후보잖아.”

드라마 ‘닥터’로 인해 결국 최우수상 후보에 올랐고.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큰 법이기에, 나는 최대한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이곳에 왔다.

“워낙 쟁쟁한 후보가 많으니까, 기대는 안 하려고.”

내 말에 김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긴 한데, 닥터 시청률이 워낙 높았어야지.”

“유나 씨가 대상 후보에 있던데, 유나 씨는 꼭 받았으면 좋겠다.”

함께 촬영을 했던 동료로서, 나는 대상 후보에 오른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작년에도 송유나가 대상 후보에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상을 받지는 못했으니까.

내 말에 김 실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너도, 유나 씨도 받으면 좋지.”

그때.

김 실장에게 사인이 떨어졌고.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희성아, 준비해.”

“응.”

그리고 이내 열리는 차.

찰칵. 찰칵-.

팟-!

터지는 플래시와 카메라 셔터 음.

“꺄아!”

“진희성이다!”

팬들의 환호성에 맞춰 내 심장은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그런 두근거림에도 나는 여유로운 표정과 제스처로 손을 흔들며, 레드 카펫을 사뿐히 밟았다.

“안녕하세요.”

나를 향해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고개도 숙이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냈고.

“희성 오빠, 여기도 봐주세요!”

팬들은 더욱 소리를 내질렀다.

떨림보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레드 카펫을 지나,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왔고.

미리 도착한 배우 동료들을 향해 허리를 접은 뒤.

내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그리고 커다란 화면에 비치는 조금 전 레드 카펫 현장.

우리는 등장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며, 이곳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면 속에서 들리는 환호.

레드 카펫 사회를 보는 MC는 등장하는 배우를 큰 소리로 소개했다.

“WG 엔터의 김하나 배우님과 같은 소속사 식구시죠? 오늘 대상 후보에도 오른 송유나 배우님, 함께 등장하시겠습니다!”

각자의 차로 도착했지만.

연달아 도착한 차량에 그녀들은 함께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왔고.

그녀들의 모습에 우리는 입을 떡 벌리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송유나.

그리고 같은 빨간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김하나까지.

둘의 드레스는 누가 더 화려한가, 누구의 드레스가 더 시선을 강탈하는 것인가를 보여주듯 튀는 모습이었고.

그녀들은 서로의 드레스를 빠르게 힐끔거리며 미소를 지은 채.

레드 카펫을 밟고 있었다.

…뭐야, 둘이 경쟁이라도 하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