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83)화 (183/303)

183화 #33 – 미담 제조기 (1)

27%.

엄청난 시청률로 마무리를 지은 드라마 ‘닥터’.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광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예능, 라디오, 심지어 교육 방송에서까지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드라마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내 인지도 역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길거리를 지나거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못 알아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형, 진짜 시청률 27% 찍으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매번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로 인해 신기함을 느꼈고.

김 실장은 흐뭇한 미소로 내게 답했다.

“그럼. 요즘 드라마 시청률이 27%라는 건, 예전 같았으면 거의 70% 시청률이나 다름없지. 재방송에 OTT 플랫폼에서도 드라마가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짤이 많이 돌아다니니까.”

“하긴, 진짜 어마어마하다.”

새삼 느끼는 인기에 감탄을 자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어제는 식당에서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이 나를 알아보셨다니까?”

“그래, 그렇게 어르신들이 알아보신다는 게, 바로 인기의 척도지.”

“크으, 진희성, 진짜 성공했다.”

내 너스레에 우리는 차 안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도 예능 섭외 전화가 엄청나게 왔어.”

“그럼 나 예능은 다 안 하는 건가?”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 많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지만.

아직 단 한 프로그램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내 거절이 아닌, 회사의 거절이었지.

드라마 홍보차 나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기였다.

홍보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시청률은 잘 나오고 있으니까.

예전에 예능에서 드라마 때와는 다른 이미지를 풍겼던 내 모습.

물론 그 반전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웃긴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경우, 앞으로 맡게 될 캐릭터가 그런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아직은 예능을 자제하자는 판단을 회사에서 내린 것이다.

내 물음에 김 실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아직은 드라마에서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보고 난 뒤에 예능 프로그램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더라고.”

“어, 나는 상관없어.”

내가 예능에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가기를 무작정 꺼려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항상 짜인 각본대로 연습해 찍는 드라마.

그와는 달리, 애드리브나 상황 판단으로 웃음을 줘야 하는 예능이 내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가야 하면서도 웃음을 주는, 그 중간 사이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지.

그동안은 홍보를 위해 작품 제작진 측에서 요청을 했지만.

지금은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나가겠다고 할 생각도 없었기에.

그저 회사의 의견을 수용할 뿐이었다.

그때.

지이잉.

휴대 전화의 진동이 울려 퍼졌고.

나는 김 실장과의 대화를 멈춘 채,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다.

[발신인: 김민규]

함께 드라마 ‘닥터’를 찍었던 단역 배우 김민규의 전화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수신 버튼을 클릭했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민규입니다.

“알지, 민규.”

-통화 가능하십니까?

“어, 그럼. 밥은 먹었어?”

내 말에 김민규는 공손한 말투로 답했다.

-네, 조금 전에 먹었습니다. 선배님은 식사하셨습니까?

“응, 나도 방금 먹고 나오는 길이야.”

-아, 잘 지내고 계시죠?

“드라마 마무리도 잘됐고, 편하게 지내는 중이지. 민규는 요즘 뭐 하고 지내?”

제작 발표회 이후 간간이 안부 문자만 주고받았기에.

얼굴을 못 본 지는 몇 달이 흘렀다.

-선배님, 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그의 다소 격양된 목소리에, 나는 소식을 듣기도 전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은 소식이 분명한 목소리였으니까.

“뭔데?”

-저 이번에 ‘토크 스타’에 섭외 받았습니다.

“예능 토크 스타?”

-네!

나는 김민규의 말을 듣자마자 입을 떡 벌린 채 전화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허벅지를 연신 내려쳤다.

“야, 민규야. 너무 잘됐다.”

예능 프로그램인 토크 스타.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많은 연예인들이 매주 게스트로 나와 주제에 맞는 토크를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게스트 위주의 방송이기에, 그 방송이 방영되고 나면.

나왔던 게스트들은 곧바로 인터넷과 기사를 장악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런 토크 프로그램에 단역 배우인 김민규가 섭외를 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치 내 일처럼 너무 기쁜 마음을 표출하자, 김민규는 감동을 받은 듯 보였다.

-그러니까요. 이게 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이 어디 있어. 네가 잘해서 섭외 받은 건데.”

-선배님이 열심히 해주셔서 저희 드라마가 대박 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덕분에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까지 받은 거고요.

“아휴, 그런 말 하지 마. 다 네가 잘해서 그런 거야.”

-이번에 신예들 특집으로 하는 거라, 저한테 섭외가 온 것 같더라고요.

“정말 너무 잘됐다. 긴장하지 말고, 에피소드나 할 말들 연습해서 가. 긴장하면, 멋대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는 내 조언에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네, 연습도 열심히 해서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 같이 찍었던 단역 배우들도 다음 작품에서 섭외도 온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잘됐네.”

-네,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철민이랑 성진이도 어제 같이 만났는데, 선배님 뵙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나야 좋지. 조만간 날 잡아서 얼굴 보자.”

-정말요?

“응, 셋이서 편한 날짜 잡아서 말해줘.”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예능도 잘 찍고 오고. 무슨 일 있으면 또 연락해.”

김민규와 전화를 끊은 후.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단역 배우들까지 신스틸러로 확 떴다는 것.

방금 전화가 온 김민규를 포함해, 여러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 등 여러 작품에 섭외가 오기도 하고.

예능이나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끔 이런 식의 연락을 받으면, 마치 내 일이 술술 풀리는 것처럼 너무나 뿌듯하고 흐뭇했다.

그들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가 번져왔다.

***

드라마가 끝난 이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다음 작품을 찾기 위해 온 회의실.

테이블 위에 수십 개의 대본을 깔아놓고, 김 실장과 함께 대본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제 슬슬 작품도 정해야 하는데.”

내 말에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너무 급하게 정할 필요는 없어.”

“그렇긴 하지만….”

그의 말에도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서둘러 대본을 하나하나 넘겼고.

마땅히 마음을 끄는 대본을 찾지 못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전 작품이 너무 대박을 쳐서, 다음 작품을 고르는 게 쉽지가 않네.”

“맞아. 다음 작품이 전작만큼은 잘 돼야 하니까, 굉장히 부담이야.”

나는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람들은 현재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테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작과 비슷한 시청률은 나와야 했지.

그런 작품을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어제도 오늘도, 매일을 새로운 대본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근심 가득한 내 얼굴을 본 김 실장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희성아, 급하게 찾지 않아도 돼.”

“아는데, 마음이 쉽게 편해지지가 않네?”

그러자 김 실장은 한숨을 삼켜내며 달력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머리 좀 식히다가, 시상식 이후에 작품을 고르는 건 어때?”

그의 말에 달력을 바라보니, 벌써 다가오고 있는 연말.

“하긴, 벌써 연말이네.”

“응, 이제 곧 연말 시상식 초대장도 올 거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근심 걱정을 한숨 속에 섞어 내뱉으며 답했다.

“…그래, 천천히 보자.”

“어, 이제 필모그래피 하나하나에 신중해져야 하는 시기잖아.”

“그럴게.”

그때, 김 실장의 휴대 전화에 알람이 울리고.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내게 말했다.

“어? 희성아, 너 갑자기 기사가 올라왔는데?”

“내 기사?”

최근 SNS도, 프로그램도 한 적이 없어 기사가 올라왔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김 실장과 함께 서둘러 올라온 기사를 살폈다.

[‘토크 스타’ 김민규, “저는 아버지보다 진희성이 더 소중해….”]

[‘토크 스타’ 떠오르는 신예, 김민규. 입만 열면 ‘희성 선배’, 그 사연은…?]

***

“자, 다음은 김민규 씨 질문입니다.”

토크 스타의 MC 유민호가 김민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규 씨는 최근에 찍은 드라마 ‘닥터’에서 단역 배우로 나왔지만,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 주셨는데요. 드라마 촬영 당시, 굉장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요?”

그의 말에 김민규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네, 있었습니다.”

“혹시 송유나 배우님과의 일인가요?”

유민호의 물음에 김민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근데 제가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니고, 송유나 선배님과 진희성 선배님의 일이었습니다.”

송유나와 진희성, 두 명의 주연이 언급되자 스튜디오는 술렁이며 김민규를 주목했다.

“무슨 일이었죠?”

“촬영 당시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헐, 사고요?”

“네, 유나 선배님과 희성 선배님이 함께 촬영을 하던 도중, 조명이 떨어지는 사고가….”

김민규는 촬영 당시에 있었던 일을 긴박하게 설명했고.

그의 말에 스튜디오의 모든 게스트는 물론이고 MC까지 덩달아 긴장한 얼굴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순간, 희성 선배님이 슈퍼맨처럼 탁! 유나 선배님을 감싸서 대신 조명을 막아냈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은 개그우먼 홍미나가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어머! 그럼 희성 씨는요?”

“조명이 워낙 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거라, 희성 선배님은 그대로 병원으로 가셨는데. 정말 다행스럽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근데 그 와중에도 선배님이 유나 선배님의 머리가 다칠까 봐 손으로 받치면서 넘어진 게 잊히지가 않습니다.”

김민규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손뼉을 부딪쳤다.

“이야, 희성 씨 진짜 멋진데요?”

“그러니까요. 자신의 몸을 던져서 누구를 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들의 말에 김민규는 뿌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진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내뱉자, 거짓말처럼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었고.

“그리고 민규 씨는 또 희성 씨한테 고마운 일이 있었다던데요?”

유민호가 대본을 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민규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제가 닥터 드라마를 찍으면서 초반에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 제 역할이 잘릴 뻔한 적이 있었어요.”

김민규의 말에 패널들은 입을 떡 벌리고 외쳤다.

“왜요?”

“제가 그때 NG도 너무 잦고, 실수가 많아서 대사가 한순간에 사라졌거든요. 물론 전적으로 제 실수였고요. 근데 그때 희성 선배님이 저한테 애드리브를 던지신 거예요.”

“닥터를 전부 다 봤는데, 어떤 장면이죠?”

유민호의 말에 김민규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2화에 나왔던 장면인데, 제가 인턴으로….”

김민규는 신이 난 얼굴로 당시를 재연했고.

에피소드를 모두 쏟아낸 뒤,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아버지보다 진희성 선배님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하하.”

그의 말에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홍미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민규 씨랑 희성 씨는 촬영 끝나고도 자주 만나세요?”

“음… 사실 며칠 전에도 저 토크 스타에 나온다고 전화 드렸어요.”

“우와! 저 진희성 씨 진짜 팬이에요.”

홍미나는 자신의 손을 맞잡고 소리쳤고.

김민규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근데 사실 연락도 자주 드리고, 얼굴도 자주 뵙고 싶은데. 워낙 선배님이 바쁘시고 유명하시다 보니까, 부담스러우실까 봐 자주는 연락 못 드리고 있어요.”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

“왜냐면 워낙 선배님이 후배들을 잘 챙겨 주시거든요. 제가 연락을 할 때도, 다른 제 주위의 단역 배우들이 연락할 때도. 한 번도 안 받아주신 적이 없고, 촬영장에서도 쉴 때 저희 고민 상담도 다 들어 주셨어요.”

김민규의 말이 끝나자, 홍미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희성 씨는 진짜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신 분인데요?”

“맞아요. 방송에서 비춰지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게 더 멋있는 분이에요. 연예계에서의 제 롤 모델, 아니 제 인생의 롤 모델이십니다.”

김민규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진희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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