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32 – 한솥밥 먹는 사이 (2)
집에 들어오자마자 운동복을 갈아입고, 소파에 널브러져 휴식을 만끽했다.
“하아… 오늘도 힘들었다.”
어둑해지는 하늘.
꼬르륵-.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당연하다는 듯 배에서는 배꼽시계가 울렸고.
지이잉.
동시에 휴대 전화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바라보니, 김하나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고.
곧장 그녀의 문자를 클릭했다.
-희성 씨, 오늘 저녁 식사 약속 있으세요?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그녀.
함께 밥 한 끼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당장일 줄이야.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나 역시 저녁 약속이 없었던 터라 곧장 그녀에게 답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니요. 같이 식사하실까요?
답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김하나에게서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좋아요. 그럼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저희 둘이 나가서 먹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을 것 같은데.
-네, 그럼 하나 씨 집으로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한 시간 뒤에 뵐까요?
-네, 8시까지 가겠습니다.
-이따 봬요^^.
그녀와 약속을 잡은 뒤.
나는 입고 있던 잠옷을 외출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그녀의 집에 가기 1시간 전.
서둘러 집에서 나와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김하나의 집에 초대를 받은 건,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물론 여자의 집에서 단둘이 식사를 한다는 게 불편하거나 어색할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녀와 둘이서 식당에 간다는 게, 더 이슈가 될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가끔 최서빈을 만나거나 다른 연예인들과 자리를 가질 때.
어디선가 나타난 기자들이 나를 찍고는 했다.
분명 김하나와 함께 집 바로 앞에 있는 조용한 식당에 간다고 하더라도, 내일이면 바로 스캔들이 퍼질 터.
다른 아파트에 살았다면, 그것도 문제가 됐을 것이다.
내 차량이 그녀의 아파트 주차장에 가는 것이 기자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그 역시 스캔들로 이어질 테니까.
지금은 그녀와 같은 건물.
게다가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주민이니 전혀 기자들에게 노출될 일이 없겠지.
그래도 처음으로 방문하는 김하나의 집이었기에, 빈손으로 갈 수 없던 나는 짧은 시간 내에 서둘러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딩동.
“네!”
김하나는 인터폰을 통해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곧장 문을 열었다.
철컥-.
“실례합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고.
현관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앞치마를 풀며 미소로 나를 반겼다.
“와아, 저랑 같은 곳에 사시는데, 이 집은 확실히 저희 집이랑 분위기가 다르네요.”
나는 감탄을 쏟아내며 빠르게 눈을 돌려 집을 구경했다.
“정말요? 하하.”
“네, 저희 집은 뭔가 어두운 기운이 풍기는 것 같은데, 하나 씨 집은 역시 밝네요.”
그녀는 입을 가리고 빙그레 웃으며 식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코너를 돌자 보이는 식탁.
그 위에는 그녀가 준비한 요리가 세팅되어 있었고.
그 광경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린 채 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이거 하나 씨가 다 준비하신 거예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바질 향이 듬뿍 나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잘 익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안심 스테이크.
그 옆에는 연어를 비스킷에 올린 카나페까지.
고급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 들 정도.
눈이 휘둥그레진 내가 음식을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시간이 부족해서 급하게 준비한 거라,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어휴, 맛이 없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나는 음식을 보며 군침을 삼켰고.
그럴 수밖에 없는 비주얼과 냄새였다.
“어서 앉으세요.”
그녀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고.
“아, 이거!”
자리에 앉기 전, 그녀에게 선물을 건네며 말했다.
“갑자기 초대받을 줄 몰라서 급하게 준비했어요.”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뭘 이런 거까지 준비하셨어요.”
“별거 아닙니다. 다음에 미리 약속 잡고 오게 되면, 좋은 거로 사올게요.”
그녀는 내가 건넨 쇼핑백을 받아들며 안을 살폈다.
“이게 다 뭐예요?”
“꽃 좋아하신다고 예전에 기사에서 본 것 같아서요. 꽃은 집에 꽂아두실 수 있게 사왔고.”
나는 그 옆에 작은 상자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접시랑 잔 세트예요.”
그녀는 내 말에 자신의 손을 맞잡고 소리쳤다.
“우와, 저 여기 접시랑 잔 브랜드 진짜 좋아해요!”
“정말요?”
“네!”
그녀는 신이 난 아이처럼 선물을 받고 말했다.
“너무 감사해요. 근데 다음에는 부담 없이 오세요. 같은 회사 식구에, 이웃사촌인데 이렇게 사오시면, 제가 죄송해서 또 초대 못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럴게요.”
“아무튼, 꽃부터 접시랑 잔까지. 완전 취향 저격이에요. 정말 잘 쓸게요.”
그녀는 활짝 미소 짓다가, 이내 손뼉을 부딪치며 말했다.
“아, 음식 식겠다. 얼른 앉으세요.”
“예, 잘 먹겠습니다. 근데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운데요?”
내 말에 김하나는 뿌듯하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고.
“그럼 혹시 저 희성 씨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SNS를 내게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요리하고 친구들 불러서 대접하는 게 취미라, 항상 이렇게 인증 샷을 SNS에 올리고는 하거든요.”
김하나는 자신의 SNS가 켜진 휴대 전화를 내게 내밀었고.
그녀의 SNS에는 자신의 집에 초대해 음식을 먹은 연예인들의 인증 샷이 셀 수 없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여자 연예인, 남자 연예인, 그리고 함께 작품을 했던 배우들까지.
이렇게 많은 배우와 독대를 가진 자리가 많았고.
그렇다면, 나와 단둘이 한 식사가 올라가도 스캔들에는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답했다.
“네, 당연히 가능하죠.”
우리는 곧장 그녀의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했고.
김하나는 사진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희성 씨 태그해서 이따가 SNS 올릴게요.”
“네.”
“이제 얼른 드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서둘러 포크를 들어 음식을 한 입 먹었고.
“우와, 하나 씨, 진짜 맛있어요!”
내 말에 그녀는 수줍게 입꼬리를 올렸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정말 맛있어요.”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희성 씨는 그럼 다음 작품 고르셨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하나 씨는요?”
그녀는 내 물음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사실… 저 희성 씨랑 같이하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김하나의 말에 나는 눈썹을 늘어트린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어떤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하나 씨랑 작품을 같이하고 싶기는 한데, 제가 한동안 운동 좀 하면서 쉬고 싶어서요.”
“하긴, 작품도 이제 막 끝나셨죠?”
“네, 이번 작품이 내내 지방 촬영이라 조금 힘들었거든요. 너무 죄송해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니에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이 작품이….”
김하나는 내 거절에도 전혀 서운해하는 기색 없이, 그저 아쉬움을 표했고.
그 작품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그녀는 대화의 주제를 환기시켰다.
“그럼 희성 씨는 쉬는 동안 운동 말고 또 뭐 하실 거예요?”
“저는 부모님이랑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우와! 좋겠다.”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부모님께서 해외를 가보신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완전 효자신데요?”
“하하, 아닙니다.”
우리는 가볍게 와인을 한 잔씩 주고받으며 음식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하나 씨는 바로 작품 준비하시는 거예요?”
“네, 저는 지난 작품 끝나고 좀 쉬었거든요. 그리고 길게 쉴 짬도 아닌 것 같고요.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 저어야죠.”
그녀의 말에 나는 공감하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아요. 저희 직업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원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요.”
김하나는 의지에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고.
그녀가 평소 연습하는 것을 몇 번 봤던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응원을 보냈다.
“하나 씨는 잘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연기도 잘하시지만, 그만큼 연습도 끊임없이 하시잖아요.”
“항상 부족해요. 더 열심히 해야 오를 수 있죠.”
김하나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며, 건전하고 훈훈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
송유나는 틀어져 있는 TV를 끄며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
“아,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피부까지 예민하네.”
그녀는 화장품 냉장고를 열어 마스크 팩을 꺼내 얼굴에 올렸다.
“앗, 차가워.”
살짝 찌푸려진 얼굴을 서둘러 펴낸 뒤.
손에 묻은 에센스를 팔에 쓰윽 닦아냈다.
그러고는 화장대에 놓인 휴대 전화를 집어 들고 침대로 발길을 옮겼다.
“하아… 피곤하다.”
소속사를 옮긴 후.
그녀에게 아직 큰 스케줄은 없었지만.
쏟아지는 인터뷰.
그리고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을 위해 바삐 움직였고.
결국 송유나는 지친 몸을 쿠션에 푸욱 기대었다.
“집에서까지 생각하지 말고, 아무 걱정 없이 놀다가 자야지.”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SNS를 클릭했다.
송유나가 팔로우한 사람들의 게시물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얼굴의 표정 변화도 없이 게시물을 살펴갔다.
그러던 중.
“이게 뭐야?”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시물 하나.
김하나의 SNS였다.
김하나가 예전에 송유나의 팬이라며 SNS 팔로우를 요청했고.
송유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와 서로 팔로우를 했다.
김하나가 올린 게시물.
진희성과 함께 셀카를 찍은 사진과 음식이 가득 담긴 식탁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이었다.
송유나는 서둘러 그녀가 남긴 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 집 이웃사촌은 슈퍼스타… 오늘은 진희성 배우님과 함께…?”
김하나가 적은 글씨를 읽던 송유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갔고.
“하, 참나.”
그녀는 마스크 팩이 걸리적거리는지 손으로 떼어 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뭐야, 김하나 얘는 대체… 왜 진희성을 집에 초대하고 난리야?”
송유나는 숨을 씩씩 내뱉었고.
“아니지. 진희성은 그 집에 왜 가는 거야!”
그러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송유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나 지금 질투… 아니지. 내가 지금 김하나한테 질투 그런 걸 할 리가 없지. 그냥 둘 사이가 꼴불견이라 그런 거야!”
송유나는 눈을 질끈 감고, 김하나의 SNS를 꺼버렸다.
그렇게 몇 초간 눈을 감았던 송유나는 이내 눈을 뜨고.
다른 SNS를 클릭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는 글 하나.
진희성의 SNS였고.
오늘 낮, 그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와, 살 엄청 뺐네?”
송유나는 이내 게시물의 댓글을 클릭했고.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극혐. 얘네 엄마는 진희성을 낳고 미역국 먹었겠지? ㅉㅉ.
“뭐야? 이 근본 없는 악플은?”
송유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악플을 단 계정을 클릭했다.
“참나, 역시 유령 계정이네.”
악플을 단 사람은 실제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계정이었다.
즉, 그저 악플을 달기 위해 만든 아이디였고.
그걸 확인한 송유나는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서 악플러만큼 한심한 게 없어. 얘는 대체 뭐 하는 앤데, 진희성한테 이렇게 욕을 해?”
송유나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내며 진희성의 SNS를 계속해서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