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31 – 기회는 운명처럼 (4)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희성 사진을 곳곳에 올린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
“순희야, 밥 먹었어?”
“어, 나 먹고 들어왔어!”
그녀는 어머니의 말에 서둘러 대답하고는 방문을 닫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아… 오늘 너무 힘들었다.”
박순희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고.
손을 더듬거리며 옆에 있던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힘들었으니까, 얼른 우리 오빠 보면서 힐링해야지.”
그녀는 서둘러 SNS를 클릭해 진희성의 계정으로 들어갔고.
진희성이 올린 SNS 게시물을 확인했다.
“오빠, 드라마 촬영 열심히 하네.”
진희성의 계정에는 드라마 ‘닥터’에서 찍은 촬영 현장들이 올라와 있었고.
팬들이 보내준 커피차에서 웃으며 찍은 사진.
대본을 들고 열심히 연습하는 사진 등.
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우리 오빠… SNS 하니까 너무 좋다.”
그녀는 오늘 힘들었던 일을 모두 잊었다는 듯, 어느새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왔고.
누워 있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노트북 앞으로 달려갔다.
“오빠 SNS 업데이트했으니까, 팬 카페에 옮겨 놔야겠다.”
♬♪.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노트북 전원을 켰고.
그사이에 박순희는 SNS를 다시 열어 보기 시작했다.
“희성이 오빠랑 같이 찍는 배우들 SNS 보면, 오빠가 찍힌 사진도 있겠지?”
박순희가 진희성 팬이 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그녀가 진희성의 새로운 사진을 찾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럼… #닥터 #진희성….”
박순희는 SNS에 진희성의 사진이 뜰 만한 검색어를 클릭했고.
그때.
“어? 닥터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김민규의 SNS.
‘배우 김민규’라는 이름의 계정.
그 계정에는 드라마 닥터를 태그한 게시물들이 가득했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우리 희성 오빠랑 같은 드라마 찍는 단역인가 보다.”
박순희는 서둘러 그의 게시물들을 살폈고.
그녀의 눈을 곧장 사로잡는 사진들.
진희성과 송유나, 그리고 단역 배우들 여럿이 모여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오예! 찾았다.”
그 사진 속 진희성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낚싯대를 들고 있었고.
박순희는 그 사진을 곧바로 캡처했다.
그러고는 확대해 진희성의 얼굴을 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오빠 너무 잘생겼잖아!”
확대를 풀자,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주변 인물들.
“뭐야, 송유나가 왜 이렇게 딱 붙어 있어?”
그녀는 곧장 심술 난 얼굴로 송유나를 바라보았다.
“참나, 송유나 밀짚모자 뭐야. 진짜 디자인 촌스럽다. 이 선글라스는 또 뭐고.”
송유나의 패션을 하나하나 꼬투리 잡으며 말하던 박순희는 말을 멈칫거렸다.
“…근데 이런 거 다 했는데도 확실히 송유나라 그런지, 예쁘긴 하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 연예인인데 예쁜 게 당연한 거지. 별로인 여배우가 우리 희성 오빠 상대 배역인 게 더 화날 듯.”
박순희는 곧바로 시선을 옮겨 옆에 있는 단역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어머, 근데 우리 희성 오빠, 이렇게 단역 배우들이랑도 잘 지내네….”
그녀는 진희성에게 눈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 눈에서는 마치 하트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격식 없고….”
박순희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고.
서둘러 댓글을 달았다.
-드라마 닥터 파이팅!
-사진 더 올려주세요.
-희성 오빠랑 찍은 사진 팍팍 올려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휴대 전화를 닫았다.
그리고 켜진 노트북을 보며 팬 카페에 올릴 사진들을 더 모으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새로 올라온 영상과 사진을 보던 그때.
그녀의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온 영상 하나.
“어?”
그녀는 홀린 듯 영상을 클릭했고.
“이거 우리나라 아닌데?”
박순희가 클릭한 영상은 뉴욕에서 찍힌 한 공연장이었다.
“이게 뭐야?”
그녀의 눈이 점점 집중하며 미간이 찌푸려졌고.
영상 속 주인공은 무대 배우가 아닌, 관객이었다.
관객은 배우가 끌고 올라간 무대에서 즉흥 연기를 펼쳤고.
박순희는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진희성이라는 것을.
“어… 이거 우리 희성 오빠잖아?”
***
촬영이 끝나자마자 차에 올라탔고.
김 실장은 뒷자리에 앉은 나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희성아.”
“응?”
“너 그때 뉴욕 갔을 때, 공연장 가서 공연했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야?”
“관객으로 있다가 경찰 연기한 거, 너라고 하던데. 아니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몸을 운전석 가까이 들이댔다.
“뭐야.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헐, 진짜 너 맞구나.”
“뭔데?”
김 실장은 내 말에 자신의 휴대 전화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봐.”
그가 건넨 영상은 내가 뉴욕 공연장에서 친구가 된 배우 브라이언과 연기를 펼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마 그날 관객 중 누군가가 영상을 찍고, 올린 모양이다.
나는 영상이 끝나자마자 커다래진 눈으로 김 실장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찾았어?”
내 말에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이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희성아, 대박이야. 이거 지금 인기 동영상 1위야.”
“헐… 뭐라고?”
“지금 난리 났어.”
그의 말에 나는 벙찐 얼굴로 의자에 몸을 푸욱 기댔다.
“다들 연기 천재라고 난리야. 이거 대본도 없는, 리얼 즉흥이라며.”
“어… 그건 맞지.”
“그래서 저 관객 누구냐고,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국 사람들도 댓글에 난리가 났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와아, 이게 이렇게 퍼질 수가 있는 거구나?”
“그럼. 연기를 좀 잘했어야지. 근데 휴대 전화라 화질이 엄청 좋은 건 아닌데도, 다들 너라는 걸 알아차리긴 했어.”
“나인 게 티가 나나?”
내 말에 김 실장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응, 내가 봐도 티 나는데, 팬들이 보면 단번에 알아차렸을걸?”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이잉.
휴대 전화에 알람이 울렸고.
알림 음은 다름 아닌 메일이었다.
평소 메일을 주고받는 일은 김 실장과 대본 관련된 내용밖에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 전화를 열어 메일 수신함을 클릭했다.
그리고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발신인: 브라이언]
뉴욕에서 친구가 된.
그러니까 조금 전 영상에서 나와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저 배우, 브라이언이었다.
브라이언은 그때, 내 SNS 계정을 물어본 뒤.
연락을 가끔 주고받자며, 메일 주소를 적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SNS로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만 누르며, 친분을 유지했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메일이 온 것이지.
지체할 것 없이 서둘러 메일을 클릭했다.
-안녕, 진.
한국으로 돌아가 잘 지내고 있어요?
진이 생각나서 바로 메일을 보내요.
.
.
.
한국에서도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우리가 그때 즉흥으로 호흡을 맞췄던 연기.
그 영상이 SNS를 타고 소소하게 퍼지다가, 지금은 영상이 여기저기에 다 올라와 있어요.
그 영상 덕에 내 얼굴이 엄청나게 알려졌어요.
이렇게 갑자기 유명해질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워서 매일매일 꿈만 같아요.
진, 당신 덕분에 내 얼굴이 알려져서 할리우드에 진출했습니다.
연극만 하려고 했던 내게, 이런 엄청난 기회가 찾아오니 거부할 수가 없었죠.
이건 모두 진, 당신과 함께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다.
너무 고맙고, 보고 싶어요.
진, 당신의 연기를 그날 이후로 많이 찾아봤어요.
역시 당신의 연기는 나를 매료시키더라고요.
미국에 또 놀러오면, 연락해요.
꼭 대접하고 싶어요.
그럼 또 연락할게요, 안녕.
브라이언의 소식에 나는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나와의 영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진심으로 그를 축복하고, 축하하는 마음뿐이었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이 잘되면, 질투 나고 배가 아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일이 잘 풀리면,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나는 답장 버튼을 눌러, 브라이언에게 축하하는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 시작했다.
***
“출발할게.”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현장으로 출발한 차 안.
나도 모르게 자꾸만 헤실거렸다.
그 모습을 룸 미러로 본 김 실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희성아, 무슨 좋은 일 있어?”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 계속 웃고 있어?”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창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처럼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이번 드라마 촬영이 즐거워서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했던 촬영들 중.
드라마 닥터 촬영 때,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다른 작품보다 대본이 좋아서?
함께하는 배우들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전의 작품들도 매한가지로 모두 좋았으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감독과 충분히 소통하고, 내가 생각한 것을 펼칠 수 있다는 것.
홍 감독은 내가 내는 의견은 100%를 수용해 주었고.
간혹 나와 의견이 다를 때에는 내 생각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에 대한 설명을 하며, 나를 설득시키거나 혹은 나와의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갔다.
덕분에 촬영장에 가는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는 전혀 없는 편이었다.
몇 분 뒤.
촬영장에 도착한 나는 대본에 체크해둔 내용을 홍 감독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고.
서둘러 홍 감독을 찾아 달려갔다.
“감독님!”
내 말에 홍 감독이 밝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어, 희성 씨 왔어?”
“네, 좋은 아침입니다.”
내 손에 들린 대본을 본 홍 감독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오늘 촬영할 대본 이야기 좀 할까?”
그의 말에 나는 활짝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는 그렇게 같은 대본을 바라보며, 토론을 펼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음… 그러네. 희성 씨 말대로 여기서 애드리브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애드리브가….”
나는 밤새 연습하며 적어온 노트를 그에게 보여주었고.
홍 감독은 흡족한 얼굴로 머리를 흔들었다.
“아, 너무 좋아. 내용에 딱 맞아. 이렇게 가자고.”
“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내가 고맙지. 이렇게 항상 열정 넘치는 배우랑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하거든. 오늘도 잘 찍어보자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준비되면 바로 촬영합시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송유나와 둘이서 함께 찍는 감정 신.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감독이 우리를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준비됐으면,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홍 감독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레디, 액션!”
홍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빠르게 몰입해 송유나를 바라보았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잖아요.”
내 말에 송유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입을 열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격양된 마음을 끌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 한숨에 송유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지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이게 전부 제 탓은 아니잖아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당당하게 화를 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대본상에 있던 한숨 지문.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것이었지만.
나는 상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그리고 머리끝까지 화가 남을 표현하기 위해 하늘을 보며 한숨과 함께 외쳤다.
“하아… 진짜…!”
그때.
높은 곳에서 밝게 빛나고 있던 조명.
그 조명이 조명 지지대에서 예고도 없이 삐걱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내 앞에 서 있는 송유나 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