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30 – 주연의 무게 (1)
힐링 여행을 떠났을 때.
최대한 인터넷이나 SNS에 내 이름을 검색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난 그 순간만큼은 악플이나 나에 대한 평가를 보고 싶지 않았지.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이름 ‘진희성’에 대해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굳이 악플을 찾아보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떤 기사가 났는지, 나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어떤지 알아야 앞으로의 내 연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이제 악플을 보며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악플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그대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었다.
내가 저렇게 욕먹을 행동을 했나?
나를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어둠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 스스로 고통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일상이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악플을 보며 상처 받았지.
그러나 모든 것을 훌훌 털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기도 했고, 그곳에서 만난 연기하는 친구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점들도 배웠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자유로움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도, 흘깃 쳐다보아도, 숨거나 불쾌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여행객들의 사진 앵글에 들어가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모습은 내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신선하고 좋은 충격이었지.
남의 시선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다해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모습.
그들이 멋있고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들을 보는 눈을 뉴욕 여행에서 배웠다.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하기에.
굳이 내가 하나하나 상처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악플을 보며 상처를 안 받는 강철 멘탈이 되기는 힘들 테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갉아낼 필요는 없게 노력해야 할 터.
그래서 이제는 내 이름을 검색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보며 성장하기도 부족하니까.
오늘도 내 이름 석 자를 검색해 팬들의 반응과 새로운 기사를 보던 그때.
[김지빈, “진희성의 신인상은 부조리….” 때 아닌 저격에 배우계 비상.]
내 눈길을 멈추게 만든 기사 제목.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에는 배우 김지빈이 한 인터뷰를 통해 뜬금없이 나를 저격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배우 김지빈은 한 잡지 인터뷰에서 ‘진희성’의 신인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진희성이 받은 신인상은 부조리했음을 연달아 외쳤고….
.
.
.
때 아닌 저격에 반응은 ‘소신 발언이다.’, ‘실력으로 받은 정정당당한 신인상이다.’라는 식으로 갈리고 있었다.
기사를 읽으며 점점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미친… 이게 뭐야?”
내 말에 앞에 앉아 있던 김 실장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뭔데?”
“형, 이거 2분 전에 올라온 기사인데, 이것 좀 봐봐.”
휴대 전화를 김 실장에게 내밀었고.
기사를 읽는 그의 얼굴 역시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 새끼 뭐야?”
김 실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에게 말했다.
“김지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배우 김지빈.
내가 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분은 전혀 없는 배우였으나, 여러 매체를 통해 얼굴은 알고 있었지.
이 바닥에서 꽤 잘나가는 주연급 배우였으니까.
내가 모를 수가 없었지.
하지만 한 번도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마주친 적 없는 배우였다.
작년 시상식에서도 PBC와 MBS 두 방송사에 초청을 받았고.
그는 KTS 한곳에만 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시상식에서도, 그리고 함께 촬영한 작품도 없으니 그를 만날 기회는 전혀 없었던 것.
나 대신 그가 상을 받지 못했다면, 저런 망언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사실 저런 말은 공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백번 양보해 내게 상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모를까.
김지빈은 나와 사적인 친분도, 악연도 없는 인물인데… 저런 말을 인터뷰에서 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들었는데, 김지빈이랑 박민준이 엄청나게 친하다고 하더라.”
그의 말에 나는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뭐?”
“사실… 박민준 그 자식이 예전부터 안 좋은 소리를 좀 많이 하고 다닌 것 같더라고.”
박민준이야 늘 내게 악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배우였기에 놀랄 것은 없었다.
김 실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굳이 너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따로 전해주지는 않았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 실장이 내게 해가 되라고 말을 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니까.
더군다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나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응, 굳이 박민준 이야기를 전할 필요는 없었을 거니까.”
“아무튼, 박민준이랑 김지빈이 친하니까. 박민준이 희성이 네 이야기로 입 털었겠지.”
“아무리 내 뒷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고.
김 실장 역시 내 말에 공감하며 답했다.
“어, 이건 미친 거지. 희성아, 이거 어떻게 대응할까?”
그는 휴대 전화를 들어 당장이라도 조치를 취하려는 듯 보였고.
나는 손을 허공에 가로저으며 답했다.
“대응하지 말자. 그냥 무시가 답일 것 같아.”
그리고 곧장 휴대 전화에 켜져 있던 기사 화면을 꺼버렸다.
***
챙-.
술잔을 부딪친 후, 술을 입에 털어 넣는 두 사람.
김지빈과 박민준이었다.
둘은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형, 보셨죠, 진희성 그 새끼. 형 인터뷰 기사가 나갔는데도 대응 안 하는 거요.”
“어, 봤지. 자기가 생각해도 신인상 받은 거 아니라고 생각했나 본데? 그러니까 대응이 없지.”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민준이 너랑 같이 작품 할 때, 너 엄청나게 무시했다며.”
박민준은 눈꼬리를 한껏 내리고 자신이 불쌍하다는 듯한 얼굴로 답했다.
“네, 진짜 그 자식 인성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어휴, 그런 인성 파탄자는 연예계에 있으면 안 돼. 완전 다 거짓말인 거잖아.”
그의 말에 박민준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럼요. 다 거짓말인 거죠. 저도 거짓말하는 사람들, 이렇게 TV나 영화에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지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쯧쯧… 인생이 거짓말인가 봐, 진희성은. 그 자식 망하는 거 언제 보나.”
그의 말이 끝나자 박민준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답했다.
“아마 곧 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
“그 자식이랑 어떻게 한 번을 안 마주치냐.”
“형은 진희성을 한 번도 못 보신 겁니까?”
“응, 작년에 연기 대상에서나 한 번 보지 않을까 했는데. 나 작년에 KTS 작품만 했잖아.”
“맞죠. 작년에 형 연기 대박이었는데. 크으으.”
박민준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고.
“에이, 뭘. 하하.”
김지빈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진희성 그 자식은 KTS 드라마만 없었어. 하긴, 그 새끼가 방송 3사 작품 다 하는 게 더 이상하지.”
“맞습니다.”
“걔랑 나랑 한 번만 만났으면 좋겠다….”
김지빈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그의 태도에 박민준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아… 떨린다.”
차에서 내리기 전,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고.
김 실장은 그런 나를 룸 미러로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디션도 아니고 미팅인데, 뭐.”
“그래도 미팅하고 감독님, 작가님이랑 내가 서로 안 맞을 수도 있고….”
걱정 가득한 얼굴임을 알아차린 김 실장은 나를 안심시키듯 부드러운 어조로 답했다.
“또 그래놓고 가면 항상 잘하잖아.”
그때, 주차를 마친 김 실장이 내릴 준비를 하며 말을 이었다.
“갈까?”
“응.”
우리는 곧장 미팅실에 도착했고, 나는 허리를 접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진희성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에 드라마 ‘닥터’의 감독 홍인혁과 작가 박정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가워요, 희성 씨.”
“안녕하세요. 희성 씨, 처음 뵙겠습니다.”
그들의 인사에 나는 자리에 착석했고.
“미팅에 응해주셔서 너무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에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뵐 수 있어서 제가 더 영광이죠.”
초면인 우리는 늘 그렇듯 일상 사담을 나누며 얼어 있는 분위기를 풀어갔다.
“오시는 데 멀지는 않으셨어요?”
“네, 그래도 가까이에 있어서….”
그렇게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저는 ‘닥터’ 대본을 보고, 이 작품을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내 말에 박 작가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대본 내용에 대한 칭찬은 신인 작가인 그녀를 기쁘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다고 없는 말을 거짓으로 지어낸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실제로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건, 대본을 읽고 나서였으니까.
“네, 특히 시한부를 선고하는 신 있잖습니까. 거기서 슬픈 마음을 억제하느라 많이 힘들더라고요.”
내 말에 홍 감독과 박 작가는 더욱 놀란 얼굴로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홍 감독은 그 표정 그대로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억제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처음에 대본을 읽을 때는 환자의 입장에서 함께 슬픔을 나누듯이 눈물을 머금고 읽었는데요. 제가 이 극 중의 의사라면, 오히려 담담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 작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연신 손뼉을 부딪쳤다.
“어머, 맞아요. 제가 생각한 의도가 바로 그거였거든요. 지문에 따로 넣지 않아서 바로 캐치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그녀의 말이 끝나자, 홍 감독이 말을 이었다.
“맞아. 나도 읽고 몰랐는데, 그때 정주 작가님이 의도를 알려주셔서 알았거든요.”
“그런가요? 여러 번 곱씹어 보니, 그런 일을 많이 겪은 의사라면 오히려 덤덤하게 말하는 게 환자를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 감독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걸 고스란히 이해하시다니, 역시 이래서 다들 진희성… 진희성, 하는 거네요.”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너무 극찬이십니다, 감독님.”
“정말이에요. 잘되는 배우들은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홍 감독의 말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와 박 작가는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눈빛 교환을 마친 둘은 다시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좀 문제가 있는 게….”
홍 감독은 말을 망설였고,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작중 설정상, 희성 씨가 맡을 캐릭터가 몸집이 꽤 있는 편이에요.”
“아….”
“그래서 체중을 좀 늘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그의 말에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작품에 따라 움직이는 게 배우죠.”
하지만 내 말에도 홍 감독은 심각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근데 이게 좀….”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얼마나 찌워야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