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28 – 1만 년의 벌(7)
“오오, 오늘 메이크업 잘됐다.”
김 실장은 차에 올라타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다행이네. 오늘 밖에서 야외 촬영도 있다고 해서 실장님이 아주 세게 해주셨어.”
거울로 비치는 내 얼굴을 보며 말했고.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오늘 예능 촬영 야외에서도 하고, 실내에서도 할 거야. 아예 큰 펜션을 빌려서 그 안에서 전부 촬영한다더라.”
“이번 영화, 예능에서 홍보하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좀 떨리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되는 마음을 생수로 눌러냈다.
김 실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룸 미러로 나를 바라보았다.
“영화 촬영 끝나고 제대로 푹 쉬지도 못했는데, 일정이 바로 잡혀서 걱정이다. 컨디션은 괜찮아?”
걱정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래도 며칠 잠도 푹 자고, 오늘 컨디션 좋아.”
“다행이네. 예능은 좀 보고 왔어?”
“어, 집에서 몇 편 모니터링 했어.”
김 실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물었다.
“맞다. 오늘 같이 나오는 게스트, 송유나인 거 알지?”
“알지. 형이 바로 이야기해 줬잖아.”
나는 몸을 앞으로 당겨 김 실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서빈 선배야 예능에 잘 안 나오니까 뭐 그렇다고 치고. 하나 씨가 나랑 같이 출연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하나 씨가 스케줄이 안 맞나 봐. 그리고 유나 씨도 홍보차 예능 나와야 해서, 그냥 이렇게 묶은 것 같더라고. 둘이 원래 친분이 있기도 하고.”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내가 유나 씨랑 친분이 있었나….”
한참을 달려 도착한 예능 촬영장에 차가 멈춰 섰고.
나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스태프들과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만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진희성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던 중.
저 멀리서 차에서 내리는 송유나를 발견하고,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유나 씨, 안녕하세요.”
작년 연기 대상 시상식 이후, 몇 개월 만에 보는 그녀였고.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입과 눈을 크게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반갑다는 듯한 얼굴 아닌가.
……?
그녀의 모습에 나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를 대하는 송유나의 태도는 늘 한결같이 도도하고 차가운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반기는 그녀의 모습에서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송유나 역시 자신의 표정에 놀란 눈치.
그녀는 황급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내고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오랜만이에요.”
그녀의 인사에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꾸벅 숙였고.
송유나는 황급히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 송유나를 바라보았고.
순간.
그녀 역시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허공에서 우리의 눈빛이 부딪쳤고,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나와 점점 멀어져 갔다.
“…뭐지?”
뭔가 이상했지만, 나는 다시금 스태프들을 향해 걸어가 인사를 보냈다.
***
“자, 이번 코너는 우리 프로그램의 시그니처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시작하겠습니다!”
MC 장석훈의 멘트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부딪쳤다.
“‘그 누구도 믿지 마라’는 상대 팀의 한 명을 지목해, 거짓말 탐지기를 손에 낍니다. 그리고 상대 팀에서 한 질문에 진실을 대답해야 하는 게임입니다.”
우리는 그의 말에 경청했고.
장석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거짓을 말하면 당연히 가벼운 전기가 거짓말 탐지기에서 흐르겠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개그맨 박광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오늘도 거짓을 말하고 전기를 참아내면 성공인 거죠?”
박광명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고.
장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명 씨, 항상 그렇게 말하고 절대 전기 못 참으시잖아요. 하하.”
“제가 오늘은 한 번 팀을 위해 이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희성 씨, 저만 믿으세요!”
그와 같은 팀이었던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도 오늘 광명 씨만 믿고 가 보겠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장석훈이 웃으며 내게 물었다.
“희성 씨는 평소 거짓말 잘하시는 편인가요?”
그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니요. 저는 너무 티가 나서 바로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오늘 게스트인 희성 씨나 유나 씨는 배우분들이시라, 연기를 워낙 잘하셔서 쟁쟁한 게임이 될 것 같은데요?”
그의 말이 끝나자 스태프들은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했고.
그 위에 익숙한 거짓말 탐지기 게임기가 올라와 있었다.
TV에서 자주 보던 거짓말 탐지기.
게다가 보드게임 카페에 항상 있는 게임기였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걱정과 기대감을 가지고 순서를 기다렸다.
“그럼 먼저 희성 씨 팀에서 상대편 선수를 지목해 보실까요?”
장석훈의 말에 나는 고민에 빠진 눈으로 송유나 팀을 훑었고.
그때 박광명이 내게 다가와 귀에다 속삭였다.
“희성 씨, 처음에는 유나 씨로 가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석훈이 박광명을 장난스레 밀치며 소리쳤다.
“누가 귓속말을 그렇게 크게 합니까. 하하.”
그러고는 송유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럼 첫 번째 주자, 송유나 씨! 앞으로 나와주세요!”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고.
송유나가 옅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린 후,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자, 첫 질문 나갑니다. 희성 씨?”
장석훈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눈동자를 굴렸고.
이내 송유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번 드라마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오, 과연 유나 씨의 대답은요?”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송유나를 바라보았지만.
송유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쉽게 입을 열었다.
“네, 당연하죠.”
그녀가 손을 대고 있는 거짓말 탐지기에 비장한 BGM이 흘렀고.
…….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얼굴에 집중했다.
팟-!
거짓말 탐지기는 초록 불.
그러니까 진실을 가리키는 불이 켜졌고.
“이야, 유나 씨 드라마에 확신이 있으시네요.”
그녀와 같은 팀인 서철우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송유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질문이 너무 쉬운데요?”
나는 쓰읍, 소리를 내며 같은 편인 박광명에게 순서를 넘겼고.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송유나를 향해 눈썹을 높이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제 질문 나갑니다.”
그의 말에 송유나는 마른침을 삼켰고.
“나는 진희성 배우랑 로맨스 장르의 작품을 함께 찍고 싶다. 물론 로맨스 상대 배역으로!”
박광명은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만족한 듯 흐뭇한 얼굴로 내게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송유나는 이번에도 전혀 어려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송유나의 대답.
너무 단호하게 잘라내는 말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사람은 나였다.
‘굳이 저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박광명은 시무룩한 얼굴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장석훈은 웃음을 보였고.
그때.
팟-!
“엄마야!”
송유나는 손에 전기가 왔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거짓말 탐지기에서 손을 떼어냈다.
거짓말 탐지기에는 빨간 불.
그러니까 거짓이라는 판명이 났고, 그녀의 손에 전기가 세게 오른 모양이다.
물론 게임기였기에 걱정할 만큼의 세기는 아니었다.
송유나의 반응에 현장은 웃음꽃이 피었고.
박광명은 누구보다 신이 난 얼굴로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거봐, 희성 씨랑 로맨스 찍고 싶으신 거네요, 유나 씨.”
그의 말에 송유나는 박광명을 곁눈질로 쏘아보며 말했다.
“아니거든요?”
팔짱을 낀 송유나에게 박광명이 재차 장난을 걸며 답했다.
“에이, 거짓말 탐지기에 거짓이라고 나왔는데요?”
그러자 송유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작게 읊조렸다.
“아닌데….”
나는 그런 송유나를 흘긋 바라보았고.
그녀는 내 눈을 피해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 시간가량 게임이 이어졌고.
“자, 그럼 쉬었다가 야외에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멘트와 함께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졌다.
몇몇은 화장실로, 몇 명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편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송유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현장을 벗어났고.
나는 박광명, 장석훈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희성 씨, 힘들지는 않으세요?”
장석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혀요. 오랜만에 예능을 하니까 재밌는데요? 하하.”
“역시, 희성 씨는 예능 체질이시네.”
“근데 희성 씨는 유나 씨랑 친해요?”
박광명이 저 멀리 걸어가는 송유나를 보며 내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유, 아니요. 예전에 작품도 같이 찍고, 지금 회사로 오기 전에 같은 회사 소속이기는 했는데. 사적인 친분은… 따로 없어요.”
그러자 박광명이 놀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 저는 두 분이 친하신 줄 알았는데. 배우분들이 같이 작품을 한다고 다 친한 건 아닌가 보네요.”
“네, 워낙 함께하는 인원이 많다 보니까, 끝나고 나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우리는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한참의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편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 걸어갔고.
그때, 문 옆에 서 있는 PD의 뒷모습이 보였다.
‘PD님도 화장실 가시는 건가?’
그를 지나쳐 화장실로 가려던 순간.
“그러니까 딱 저만 편집해 주시면 되는데, 가능할까요?”
송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목소리에 발길을 멈춰 세웠다.
뭐지?
어떤 장면이길래 송유나가 직접 PD를 찾아와 편집을 요청할까 싶었고.
“그래도 그 장면이 재미있는데, 유나 씨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PD는 쓰읍, 소리를 내며 송유나를 설득하는 듯 보였다.
“그럼 거짓말 탐지기 장면은 나와도 되는데. 로맨스 장르를 하고 싶다고 했던 부분만 편집 좀 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PD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말 희성 씨랑 로맨스 찍고 싶은 게 맞았던 거예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얼버무리는 송유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고.
그녀가 나를 보면 민망할 거라 생각해 서둘러 옆문을 향해 걸어갔다.
***
송유나와 찍었던 예능이 방영될 때쯤.
드디어 기다리던 영화 ‘장물아비’가 개봉을 했고.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관객 수는 첫날부터 가히 폭발적이었다.
“와아! 희성아, 이번 작품 대박 치겠는데?”
김 실장은 틈이 날 때마다 올라가는 관객 수를 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이제 개봉한 거니까, 차분히 기다려 봐야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흥분을 감춰내려 애를 쓰고 있었고.
그럼에도 내 손과 눈은 자꾸만 휴대 전화로 향했다.
오전부터 조조로 영화를 본 사람들의 후기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으니까.
어둠이 내린 지금.
인터넷에 ‘장물아비’를 검색하면 꽤 많은 후기가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후기를 보았고.
올라가는 관객 수나 새로 올라오는 관람 후기보다 나를 더 흥분케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그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내 대사 이야기였지.
-영화 조조로 보고 왔는데, 아직도 진희성 대사가 귀에 맴돌아ㅋㅋ.
-솔직히 장물아비에서 진희성 대사가 너무 찰졌다! 사람들 따라 하고 난리 날 듯.
-‘네 마음도 도둑질하고 싶다. 전부 내 거로 만들어 버리게.’ 영화 끝나고 이거 따라 해봤다에 내 손모가지 건다!
└인정이지ㅋㅋ. 영화관 나오자마자 썸녀한테 그 대사 침ㅋㅋ.
└나만 따라 한 줄. 올해 명대사 아니냐?ㅋㅋ.
└맞아. 나도 그거밖에 기억 안 나. 진희성 확실히 연기 잘하더라.
└님들, 저건 진희성 얼굴로 해야 가능한 거 아님?
└진희성이니까 가능한 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입꼬리를 씨익 올려줘야 제 맛!
└대사 잘못 따라 하면 그냥 도둑놈인 거임ㅋㅋ.
수십 개의 댓글을 모두 읽어보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