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28 – 1만 년의 벌(6)
“악플?”
최서빈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갑자기 얼마 전부터 저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분별하게 퍼지더라고요.”
“뭐라고 달리는데?”
“그냥 딱 악플이요. 뭐 성격이 안 좋다느니, 인성이 쓰레기라느니. 현장에서 욕을 하고, 매일 지각을 한다는 둥.”
내 말에 최서빈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고.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지라시도 많아요. 이거 뭐 하나하나 일일이 기자 회견으로 해명을 하기도 애매하고요.”
최서빈이 공감한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답했다.
“그렇지. 그렇다고 해명을 안 하자니 인정하는 것 같고?”
그의 말에 나는 손뼉을 부딪치며 소리쳤다.
“네, 딱 그거예요. 이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괜히 가만히 있으면 인정하는 꼴 되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최서빈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휴대 전화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냥 악플도 달리는구나 싶었는데, 계속 말도 안 되는 댓글들을 다니까 열 받더라고요.”
최서빈이 입술을 움찔거리며 내게 말했다.
“너도 이제 악플로 스트레스받기 시작하는구나?”
그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어느 정도 배우, 그러니까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거야.”
“그게 무슨….”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뭐 이런 말도 있잖아. 그렇다고 악플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닌데. 그만큼 잘나가는 너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생겼다는 거지.”
최서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합니까. 이걸 대응해야 할까요?”
“아니, 그냥 무시해. 괜히 세상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저러는 거야. 화풀이할 대상을 찾은 거지. 자기보다 잘나가서 부러우니까, 배 아파서 그러는 거라고.”
“그래도 가만히 놔두면 괜히 제 실력이 어쨌다는 둥, 인성이 어쨌다는 둥. 자꾸 헛소리들을 올려 대니까요.”
그러자 최서빈이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 휘이 저었다.
“어차피 네 실력이 좋으면, 악플들은 다 들어가게 되어 있어. 실력 없다, 인기는 거품이다 욕했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했다.
애초에 내게 달리는 악플들은 모두 거짓 이야기였고.
하나같이 나를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를 느끼는 말투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거.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저는 악플에 상처를 안 받을 줄 알았어요.”
내 말에 최서빈은 내가 아닌 허공을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막상 모든 기사마다 악플이 달리니까, 안 봐야지 하면서도 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보고 나면 상처 받고, 안 보면 신경 쓰이고요.”
“그래서 악플은 보면 안 돼. 악플을 보면서 멘탈이 강해지는 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최서빈이 한숨을 참아내며 말을 이었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멘탈을 탄탄하게 만들 필요가 어디 있어. 내 팬들도 챙기기 바쁜 시간에.”
“맞아요. 연습하고 당장 잠 한숨 자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말입니다.”
“그래. 악플, 절대 신경 쓰지 마. 보지도 말고.”
최서빈이 내게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말.
사실 악플에 대한 이야기라면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이, 또 실제로 그가 겪은 이야기들이었기에.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가고 있는 선배의 말이라 퍽 가슴에 와닿았다.
그리고 이 고통을 먼저 느끼고, 나보다 더 단단해져 있을 최서빈의 모습을 보며.
한쪽 마음이 찡해져만 오는 것 같았다.
“네, 저도 안 보려고 해볼게요.”
최서빈은 내 휴대 전화를 다시 내게 내밀었고.
나는 서둘러 댓글 창을 닫으며 미소를 지었다.
***
고요한 차 안.
뒷자리에 앉아 양반다리를 한 채, 그 위로 노트북을 올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긴 머리를 휘날리는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움직여 기사를 클릭했다.
[영화 ‘장물아비’의 주연 진희성. 이번에도 어김없이 흥행 이어가나….]
기사 제목을 보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난 듯 일그러져 있었고.
그녀는 마우스로 기사를 본체만체 내려버렸다.
그러고는 가장 아래에 있는 댓글 창으로 다가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진희성… 흥행은 개뿔.”
손은 키보드에 올라가 쓸 말을 고민했다.
“오늘은 무슨 댓글을 써볼까?”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타이핑을 시작했다.
“진희성 인기 거품이잖아. 흥행도 다 다른 배우빨이었지. 연기도 못해, 인성도 나가리에, 솔직히 지금까지 잘된 거 이해 안 돼.”
세차게 엔터를 쳤고.
그대로 그녀의 댓글이 기사에 달렸다.
그러고는 사악한 얼굴로 입꼬리를 길게 찢었고.
다시 마우스에 손을 올려 진희성에 관한 기사를 찾고 있었다.
“또 올라온 거 없나?”
♪♬.
악플을 달며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어깨까지 들썩이고 있었다.
그녀는 진희성에 관련된 기사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링크를 클릭했고.
순간 그녀의 노트북 화면에 가득 뜬 진희성의 얼굴.
“아이씨….”
그녀는 진희성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화가 난 얼굴로 방언이 터진 듯 입을 열었다.
“진희성 얘는 절대 잘되면 안 돼. 나보다 잘나가는 꼴, 절대 볼 수 없지.”
타닥타닥-.
그녀의 손은 빠르게 댓글을 쓰고 있었다.
-진희성 드라마 들어간 것도 최서빈빨이지 않음?ㅋㅋ
-쟤 거품 언제 사라질지 눈에 뻔히 보인다ㅋㅋ
-진희성 남자 좋아한다는 거 사실이라던데, 다들 모름?
-진희성 현장에서 맨날 욕하고 툭하면 매니저 폭행한대. 진짜 인성 나가리.
그녀는 댓글을 남기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악플을 남기며 희열을 느끼는 듯 보였다.
“크으, 스트레스 확 가시네. 진희성 언제 망하나 두고 보자.”
그때.
띠링-.
그녀가 단 악플에 댓글이 달렸고.
순간 그녀는 욕을 내뱉었다.
“X발, 이게 뭐야.”
곧장 댓글을 클릭하니, 그녀의 댓글 밑으로는 잔뜩 진희성을 옹호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진희성 현장에서 맨날 욕하고 툭하면 매니저 폭행한대. 진짜 인성 나가리.
└엥? 진희성 매니저랑 엄청 친한 거 팬들도 다 아는데, 뭔 개소리?
└현장에서 매니저 욕하고 폭행한 거 영상 있음?ㅋㅋ
└아무 증거도 없이 싸잡네ㅋㅋ 진희성이 왜 싫어? 이유나 좀 들어보자.
여러 개의 댓글을 보며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서둘러 자신의 댓글을 삭제했다.
그러고는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 다시 한번 진희성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됐어. 내가 진희성 욕할 곳이 뭐 여기뿐인 줄 알아?”
그녀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찢으며 또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진희성.”
몇십 분 동안 그녀는 앉은 자세에서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진희성과 관련된 기사와 게시물에 악플을 달았고.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푹 기대었다.
“하아,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지?”
그때.
똑똑.
오른쪽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화들짝 놀라 노트북을 황급히 닫았다.
그리고 창문을 스르르 열며 눈썹을 들썩였다.
“왜?”
“민영아, 곧 촬영 들어간대. 대본 다 봤지?”
“아, 벌써?”
“어, 곧 시작….”
그녀와 매니저 사이로 달려오던 스태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신민영 님, 바로 나오셔야 합니다!”
스태프의 말에 신민영은 그제야 노트북이 아닌, 대본을 집어 들며 말했다.
“대본 한 번만 더 보고 들어갈게.”
신민영의 말에 매니저가 다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 하고 있었어. 시간 많았는데….”
“있어. 스트레스 해소.”
매니저에게 답한 신민영의 입꼬리는 옅게 올라가 있었다.
***
“컷!”
강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희성 씨, 좋았는데, 거기서 조금 더 아련한 눈빛을 보내봐.”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좋아. 바로 다시 갈게요.”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카메라 밖으로 향했고.
나는 서둘러 그의 디렉팅에 따라 표정을 지었다.
“레디, 액션!”
촉촉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잖아.”
잘근 깨문 입술은 어느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강 감독은 모니터의 내 표정 연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내 내 눈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대로 눈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스르르 눈을 감았고.
침을 삼키는 내 목과 떨리는 입술, 눈.
모든 장면을 담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가 내 얼굴을 가득 담아냈다.
“컷, 오케이!”
이내 떨어진 오케이 사인.
강 감독이 흐뭇한 얼굴로 소리쳤다.
“희성 씨, 연기 좋았어!”
“…감사합니다.”
나는 두 뺨 가득 흐른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인사를 보냈고.
“고생하셨습니다.”
곧장 현장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건물 뒤편으로 걸어가 바닥에 몸을 기대앉았다.
“하아….”
촬영이 길어질수록 강 감독은 내 연기에 만족해했지만.
언젠가부터 공허한 마음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항상 대본을 받으면, 작품에 대한 공부와 캐릭터 분석으로만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가 해석한 배역에 몰입했고.
인물과 나 자신이 하나 되어 연기를 펼쳤지.
그 결과, 지금까지 맡은 배역을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고.
나 역시 몰입한 배역에서 빠져나올 때가 가장 아쉽고 힘든 순간이었다.
적어도 몇 개월 동안 그 캐릭터를 연기하며 내가 그 인물이 되었으니까.
촬영할 때, 감독의 디렉팅은 항상 있어왔다.
당연히 감독이 원하는 방향대로 촬영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디렉팅에 내 의견이 추가되기도 했고, 내가 생각한 캐릭터의 성향을 맘껏 표출하며 연기를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너무나도 달랐다.
강 감독이 원하는 작품.
그가 생각하는 장면들로만 끌고 가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그저 꼭두각시가 되어 강 감독이 원하는 대로 대사를 내뱉기만 하는 것 같았다.
강 감독이 화난 표정을 지으라고 하면, 그 표정을 연기했고.
눈물을 흘리라면, 눈물을 흘렸지.
그저 대본 그대로를 읽으며 연기하는 기계가 된 느낌.
대본을 보고 연기를 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지만.
배우의 생각과 느낌이 담기지 않으니, 언젠가부터 연기를 하고 난 뒤에 느껴지는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배우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작품’을 하고 싶어졌다.
꿈을 꾸고 난 뒤.
두통에 시달리던 중, 최서빈의 제안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이 작품에 들어왔기에.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더욱 내가 고른 작품.
내가 하고자 하는 작품에 대한 갈망이 커져만 갔다.
단순히 상업만을 위한 작품, 일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원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
그런 작품을 선택하고 싶어진 것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작품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결정한 작품이기에, 최선을 다해 마무리는 지어야 했다.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읊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플까지 달려서 더 머리 아프네….”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다잡았고.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촬영하러 가보자.”
나는 의지를 다잡아, 입가에 미소를 띠며 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