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49)화 (149/303)

149화 #27 – 연말의 온도 (7)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들. 신인상까지 만나 봤습니다.

박순희는 머리를 질끈 묶고, TV 앞에 앉아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우리 희성 오빠도 솔직히 PBC에서 신인상도 받아야 하는데.”

그녀는 소파에 쭉 뻗은 다리 위로 노트북을 올리고 있었고.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인기상은 당연한 거고, PBC는 왜 우리 오빠한테 신인상 안 주냐? 어이없어.”

박순희는 인터넷을 열어 PBC 생방송 너튜브를 보며 댓글을 바라보았다.

“봐봐, 여기도 우리 희성 오빠 팬 많네.”

그녀는 언제 화가 났냐는 듯 금세 진희성 댓글을 보며 헤실거렸다.

그러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진희성수기’ 카페에 접속했다.

“오늘 우리 오빠 인기상 받는 날이니까, 다들 접속해 있겠지?”

박순희의 예상대로 현재 접속자는 천 명 가까이 카페에 접속해 있었고.

손으로는 노트북에 켜진 진희성 팬 카페를.

눈으로는 휴대 전화에 열린 진희성 관련 커뮤니티를.

그리고 귀로는 TV의 PBC 연기 대상을 들으며 모든 매체를 보고 있었다.

박순희의 손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연기 대상에 잠깐잠깐 비치는 진희성을 찰나에 캡처하기 바빴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진희성에 대한 이야기들에 댓글을 남기며, 시간을 보냈다.

“하아… 우리 오빠 인기상 수상이나 빨리 시작하지.”

그때.

TV에서는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진희성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어? 오빠다!”

그녀는 재빨리 휴대 전화를 들어 카메라 어플을 열었다.

그러고는 TV 속 진희성의 모습을 재차 카메라에 담아냈다.

-진희성 배우님, 이번 블랙맨에서 최서빈 배우와의 찰떡 케미를 보여 주셨는데요. 이번 연기 대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자의 질문에 진희성 옆에 있던 최서빈이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마이크는 진희성에게 전달되었고, 진희성은 기다렸다는 듯 곧장 입을 열었다.

-네, 사실 최서빈 선배와는 블랙맨 이전부터 케미가 좋다고 팬 여러분께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래서 더욱 블랙맨에서 최고조를 찍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이번 연기 대상 후보에 오른 최서빈 배우를 응원하시겠네요?

-당연하죠.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이 후보에 오르셨지만, 저는 최서빈 선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평소 서빈 배우님과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으신가요?

사회자의 질문에 진희성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고.

그 모습을 본 박순희는 입을 틀어막았다.

“꺄아, 오빠 너무 잘생겼잖아!”

진희성이 곧장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고.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으며 이어질 진희성의 멘트에 집중했다.

-그럼요. 더군다나 서빈 선배가 연기 대상을 타면, 제게 크게 한턱 쏘시지 않겠습니까? 하하, 저는 서빈 선배의 연기 대상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진희성의 말에 현장은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고.

옆에 있는 최서빈은 진희성의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박순희는 그 장면을 서둘러 촬영했고.

화면이 전환되자마자 저장된 파일을 팬 카페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우리 오빠 센스 좀 봐. 미쳤다, 진짜로!”

진희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하트가 쏟아질 듯했고.

박순희의 방 안에서는 그녀가 진희성에 대한 내용을 올리는 타자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올해가 진짜 끝나가네….”

박순희는 짧은 숨을 내쉬며 다시 업로드를 이어갔고.

그때.

TV에서는 당찬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이제 올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에게 주는 영광의 상이죠?

-맞습니다. 저도 같은 배우로서 탐나는 상 중 하나입니다. 인기상. 이건 연기를 잘하거나, 시청률이 좋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죠. 그야말로 시청자분들에게 인기 몰이를 한 배우에게 주는 상이 바로 인기상이니까요.

-올해는 과연, 어떤 드라마가. 그리고 어떤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에게 돌아갈지 기대가 됩니다.

두 남녀 배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고.

그들의 쉴 새 없는 티키타카에 박순희는 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숨을 죽인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바로 후보들 먼저 만나보시죠!

그리고 화면은 인기상 후보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PBC 드라마에서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배우가 10명이 소개되었고.

그러던 중 마지막 후보에 진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오! 우리 희성 오빠다!”

그녀는 다시금 휴대 전화를 들고 그 모든 순간을 포착했다.

-와아! 올해는 인기상 후보가 무려 10명이나 되는데요. 과연 누가 이 영광의 상을 받게 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올해 특히나 사랑을 받았던 배역이 많았던 만큼, 인기상을 받게 될 배우는 정말 감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이 모든 드라마를 시청했는데… 아휴, 정말 하나도 감이 안 오네요.

-맞아요. 제가 올해 후보로 나왔다면, 아마 상을 못 받았을 것 같아요. 작년에 받길 천만다행입니다. 하하.

-그럼 발표할까요?

-네, 올해 PBC를 뜨겁게 달궜던 배우에게 주어지는 ‘인기상’.

BGM이 고조되고, 카메라는 잘게 쪼개져 10명의 후보를 나란히 비췄다.

화면에 가득 찬 10명의 배우.

그 모습을 보는 박순희는 양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곧장 인기상이 발표되었다.

-축하드립니다. ‘블랙맨’의 ‘진희성’ 배우님!

“와아아아!”

박순희는 집이 울리도록 소리쳤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흐어, 우리 오빠. 당연히 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너무 감동이잖아.”

박순희는 눈물을 훔치며, 소리를 겨우 삼켜냈다.

“오빠의 수상 소감을 들어야 해…. 흑.”

어느새 쥐 죽은 듯 고요해진 집 안.

박순희는 숨소리조차 참아가며, 진희성의 수상 소감에 집중했다.

수상 소감이 끝나고, 진희성이 무대를 내려가자마자.

박순희는 곧바로 SNS와 팬 카페, 커뮤니티를 모두 켜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쏟아지는 댓글들.

-ㅠㅠ우리 희성 오빠 올해 너무 고생 많았지!

-희성 오빠가 인기상 안 받으면 누가 받아. 축하해.

-블랙맨이 솔직히 PBC 시청률 살렸지. 진희성 인기상 이어서, 최서빈 대상 가즈아!

-희성 오빠 인기상 받을 때, 나만 울었어?ㅠㅠㅠ.

└나도나도. 우리 오빠도 눈물 참는데, 왜 내가 울어.

└진희성수기라면, 당연히 눈물 나지. 우리 오빠 고생한 거 다 알아ㅠㅠ. 오빠 사랑해.

-내년도 우리 희성 오빠 해야. 내년에 오빠 대상 후보 올라가보자.

***

최서빈이 자리로 돌아오는 나를 보며, 나보다 기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야, 희성아. 진짜 축하해.”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를 포함해 우리 줄에 앉은 블랙맨 팀 배우들이 내게 축하한다는 말을 한마디씩 던졌다.

“하하, 감사합니다.”

서둘러 자리에 앉았고.

바로 옆에 앉은 최서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내 덕분은 무슨. 네가 안 왔으면, 블랙맨 마지막까지 가지도 못했어. 네가 잘해서 받은 거야.”

내 어깨를 토닥이는 최서빈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상.

연기 대상의 마지막 상, 대상이었다.

최서빈이 그 대상 후보에 올랐기에, 시간이 다가올수록 말은 하지 않지만 떨리는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떨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상이 소중하고 대단하지만, 대상은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상이니까.

꿈을 꾼다고 해서 모두 받을 수도, 후보에조차 오를 수 없는 그런 상이지.

순간 최서빈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금세 다가온 대상 발표 시간.

“영예의 대상, 대상 시상은 PBC 방송국 임종혁 사장님과 작년 대상 수상자이셨던 김순자 배우님께서 해 주시겠습니다.”

우리는 사회자의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시상자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PBC 임종혁 사장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김순자입니다.”

그들은 시상에 앞서 대본을 보며 말을 이어갔고.

나는 옆에 있는 최서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팔을 붙잡았다.

그는 내 손짓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내 손을 툭툭 치는 최서빈의 손끝은 꽤나 긴장한 듯,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최서빈이 대상 받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팬들이 관중석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연신 최서빈을 외치고 있었고.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최서빈이었기에.

그의 대상을 응원하고 바라는 배우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최서빈을 보고 있었다.

-두구두구두구.

긴장감이 넘치는 BGM이 이곳에 울려 퍼졌고.

나는 인기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양손을 마주 잡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임종혁 사장의 발표를 기다리던 그때.

그가 대본을 내려놓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올해 PBC를 빛내준, 영예의 대상은!”

임종혁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소리쳤다.

“최서빈!”

그의 발표가 끝나자 나는 최서빈보다 빠르게 고함을 질렀다.

“와아!”

최서빈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발표를 듣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발표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손뼉을 부딪치며 최서빈을 바라보았다.

그는 커진 눈과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나를 꽈악 껴안았고.

나는 그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선배님, 정말 축하드려요.”

그와 포옹을 한 채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고.

최서빈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빼,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한 걸음씩 무대로 향했다.

그가 무대 중앙에 올라서는 내내 이곳의 함성과 박수는 끊이지 않았고.

최서빈의 대상에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겨우 쓸어내리며 그의 수상 소감을 듣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커다란 대상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은 최서빈은 긴 심호흡을 끝으로 마이크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아아.”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함성이 끊이지 않던 이곳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먼저 부족한 제게, 이런 크고 영광스러운 대상이라는 상을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관중석에 있는 팬들이 아니라며 소리쳤고.

최서빈은 팬들의 소리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블랙맨이라는 작품을 제게 믿고 맡겨주신 차현종 감독님….”

그는 감독과 몇몇 스태프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그런 후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블랙맨이 시청률도 잘 나왔고, 시청자분들에게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사실…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힘들었어요.”

최서빈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눈물을 삼켜내는 듯 보였다.

“이렇게 좋은 마무리로, 제 대상까지 오게 될 줄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드라마가 힘들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 일으켜 주었던 사람이 바로 진희성 배우였습니다.”

그의 말에 카메라는 순간 내 얼굴을 잡았고.

화면에 내 얼굴이 크게 나오자, 팬들은 손뼉을 부딪치며 환호했다.

“우리 희성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진희성 배우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내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고.

최서빈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아, 저도 모르게 우리 희성이라고 했는데… 저희 또 커플이라고 열애설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최서빈은 밝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모두 올해도 고생 많으셨고, 내년에는 더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저는 앞으로도 좋은 연기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최서빈이 허리를 깊게 접으며 인사를 보냈고.

PBC 연기 대상 사회자들은 무대 중앙으로 다가왔다.

“오늘 PBC 연기 대상의 시상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다시 한번 대상을 수상하신 최서빈 배우님께 축하의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죠?”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올해의 끝, 그리고 내년을 맞이하기 위해서인데요.”

“올 한 해도 PBC에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고, 내년에도 저희 PBC 드라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스태프들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로 발길을 옮겼고.

어느새 무대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배우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의 뒤에 있는 화면에 시계가 켜졌고.

12:59:30

화면을 보며, 사회자들은 말을 이어갔다.

“새해까지 30초, 29초를 앞두고 있습니다.”

최서빈과 나는 나란히 서서 무대 앞을 바라보며 서 있었고.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올해 같이해줘서 고마웠다.”

최서빈의 말에 나 역시 시선은 앞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내년에도 선배님과 같이하고 싶습니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사회자들과 함께 카운팅을 시작했다.

“10, 9, 8, 7.”

신인상과 인기상을 받았던 올해.

내년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고 싶다.

“6, 5, 4.”

카메라에는 시간과 함께 나와 최서빈의 얼굴이 비쳤고.

우리는 활짝 웃음을 보이며 소리쳤다.

“3, 2, 1. 해피 뉴 이어!”

화면에는 폭죽이 터지는 효과가 틀어졌고.

최서빈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올해도 나 잘 부탁한다.”

“저도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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