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48)화 (148/303)

148화 #27 – 연말의 온도 (6)

MBS 연기 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은 후.

‘상간녀의 유혹’ 팀과 함께 간단한 회식을 했다.

물론 말이 간단한 회식이지, 마신 술의 양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신인상을 받은 나.

작가상을 받은 김한나 작가.

거기에 올해의 인기 드라마상까지.

인기 드라마상은 우리를 포함해 총 5팀이 받았다.

한 해에 나온 드라마만 해도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이니, 5팀 안에 들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그런 행운을 거머쥔 우리 ‘상간녀의 유혹’ 팀은 회식 자리를 안 가질 수가 없었지.

송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한 얼굴로 카드를 마구 긁어댔다.

그리고 그 결과.

“으으, 머리 아파.”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빛.

이미 해가 중천까지 솟은 지 오래였다.

알코올로 인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걸어가 냉수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아….”

벽에 몸을 기대고 있지만.

머리는 핑 돌고 있었고, 어지러움을 떠안은 채 소파로 다가가 몸을 푸욱 기댔다.

지이잉.

지이잉.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 전화.

전화가 아닌, 알림 소리가 연속해서 울렸기에.

눈을 비비며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어젯밤부터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들.

다름 아닌, 인기상 수상 후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들이었다.

쌓인 톡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톡들을 확인하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내가 이렇게 많은 톡을 받아본 적이 있나?

처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 미니시리즈에 출연했을 때도.

주말 핫한 시간대의 예능에 출연했을 때도.

이렇게 휴대 전화가 열이 나도록 울린 적은 없었다.

확실히 상을 받는 게 대단한 일이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전날 너무나 정신이 없어 연락하지 못했던 부모님.

부모님에게도 톡이 와 있었고.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들!

“어, 엄마. 바빠요?”

-아니, 아들 전화 오는데, 바빠도 받아야지. 잘 잤니?

“응, 어제 봤어?”

어머니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네 아버지랑 봤지. 마음 졸이면서 봤는데, 상 받는 거 보고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에이, 그게 울 일인가?”

-그럼. 희성이 네가 고생 많았잖아.

“아버지는요?”

-네 아빠 어제부터 아주 바쁘다. 얼굴을 볼 틈이 없어.

“왜, 무슨 일 있어?”

나는 놀란 목소리로 걱정스레 물었고.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어제 희성이 네가 상 받자마자 나가셨어. 나가서 여기서 한턱 쏘고, 저기서 한턱 쏘고.

“하하, 그러셔?”

-어, 아침부터 또 다른 동네 사람들 만나서 점심 산다고 일찍 나갔어. 내가 진짜 네 아빠 때문에… 어휴.

“우리 아버지 아들 자랑 값 내느라, 허리 휘시겠네.”

-그러게 말이야. 내가 못 살아.

“아빠 나 때문에 돈 쓰느라 정신없을 텐데, 내가 용돈이라도 보내 드려야겠다.”

-아서라. 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좀 사. 우리한테 쓰지 말고.

“엄마, 어제 못 봤어? 나 신인상 받았잖아. 그 정도는 되니까 걱정 마셔. 엄마 아빠나 맛있는 것 좀 잡수고 옷도 좀 사 입고 그래요.”

-우리는 다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알겠어요. 또 연락할게.”

-그래. 어제 피곤했을 텐데, 푹 쉬어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배우의 길을 반대하던 아버지였지만.

결국, 나를 인정하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일보다 뿌듯하고 짜릿했다.

“더… 더 성공하고 싶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쥔 채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아버지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고.

순간 숙취로 고생하던 두통이 말끔하게 씻겨 나아간 듯했다.

그렇게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홀린 듯 SNS를 클릭했고.

SNS에는 전날 연기 대상의 여러 장면이 캡처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수상 소감의 짧은 영상도 있고.

그런 영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며 보던 가운데.

“…어?”

익숙한 다큐멘터리가 연달아 SNS를 도배하고 있었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게시 글을 확인했다.

내가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연예계의 삶’.

‘상간녀의 유혹’ 작품을 진행하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로.

드라마의 1화가 나올 때쯤, 그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미 방영이 끝난 지 몇 개월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이 다큐가 왜 갑자기 뜬 거지?”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터넷 창에 다큐멘터리를 검색했고.

곧 다시 다큐멘터리가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금세 묻혔던 다큐멘터리이지만.

이번에 내가 상을 받으며 다시금 화제가 된 것.

즉, 역주행을 한 것이다.

방영 당시에 다큐멘터리를 보기는 했지만, 나 또한 다시 그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플레이 타임 3시간짜리의 다큐멘터리.

배우인 나, 가수, 희극인, PD, 작가 총 다섯 가지의 직업이 등장했지만.

댓글들은 온통 배우인 나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다.

신민영과의 트러블 장면은 당연히 전부 편집되어 있었고.

그녀와 화기애애하던 시절까지 대부분이 잘려 있었다.

신민영이 내게 저질렀던 만행을 직접 본 PD가 그녀의 내용을 모두 드러낸 모양이다.

영상을 내려, 댓글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 달린 반응은 온통 내 칭찬과 호감의 내용이 가득했고.

미소를 짓던 나는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렇게 나를 아무런 대가 없이 좋아해 준다는 게… 가능한 건가?”

그 고마운 마음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코를 찡긋거렸다.

“너무… 감사하잖아.”

그러고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

소파에 몸을 기댄 채,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

김하나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을 자아내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와… 진희성. 원래 저렇게 연기를 잘했나?”

그녀는 쓰읍, 소리를 내며 앉은 자리에서 벌써 6화째, 연달아 진희성이 출연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장시간 앉은 자세가 불편했는지, 그녀는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리고 리모컨을 클릭해 다음 화를 재생시켰다.

“아, 벌써 7화네.”

그녀의 시선은 TV 옆 시계를 바라보았고.

다시금 눈길은 화면 속에 뜬 진희성에게 고정되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그녀의 집.

김하나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다 봤다.”

TV 속 화면에는 까만 배경에 한 줄의 글씨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상간녀의 유혹’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화가 모두 끝이 나자, 그녀는 주방으로 다가가 음료와 과자 더미를 챙겼다.

“진희성,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연기에… 뭔가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것 같은 느낌?”

김하나는 자꾸만 맴도는 진희성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내일 스케줄 없으니까, 밤새워도 되겠지?”

그녀는 손에 한 아름 담긴 간식을 거실로 가져왔고.

음료를 들이켜며, 휴대 전화로 ‘진희성’을 검색했다.

“이야, 이제 막 신인상 받았으면서, 작품은 왜 이렇게 많아?”

그녀는 진희성의 작품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리모컨을 들고 그의 작품을 찾고 있었다.

“이거 재밌을 거 같은데, 한번 봐볼까?”

김하나는 그렇게 또 다른 진희성의 작품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

“자, 진희성 님, 준비하실게요.”

김 실장은 여전히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준비됐어?”

그의 물음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슈트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리면 되나?”

“어, 잘하고 와. 긴장하지 말고.”

나는 차 문을 손으로 잡은 채 그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긴장은 내가 아니라, 형이 한 것 같은데?”

그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린 후, 그대로 잡은 문을 벌컥 열었다.

찰칵, 찰칵-.

팟-!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셔터 음.

“꺄아!”

“여기 좀 봐주세요!”

“오빠!”

그리고 내 발아래에 길게 깔린 레드 카펫.

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숙이며 팬들과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고.

레드 카펫 끝에 있는 포토 존에 다가가 포즈를 취했다.

‘PBC 연기 대상’.

MBS 연기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후.

불과 4일이 지난 뒤, PBC 연기 대상에 참석했다.

오늘은 신인상이 아닌 인기상 후보에 올랐지만.

신인상 후보 때의 떨림보다는 비교적 편한 마음 상태였다.

신인상과 인기상의 크기에 따른 마음의 무게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내 인생의 시상식이 두 번째라는 것.

한 번 경험해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감은 처음 참석했던 MBS와 사뭇 달랐다.

물론 지금도 긴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날처럼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은 아니라는 것이지.

하지만 여전히 심장은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고.

기분은 날아갈 듯 가볍고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레드 카펫에서 가벼운 인터뷰를 마친 뒤, PBC 방송국 안의 무대로 들어왔고.

순간 절로 터져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자리에 착석했다.

두 번이나 레드 카펫을 밟아봤지만.

여전히 이 기분과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좋았다.

눈앞에 보이는 무대 위 커다란 화면.

이곳에는 조금 전 내가 지나왔던 레드 카펫의 생생한 현장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고.

그 화면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레드 카펫… 중독성 있네. 또 가고 싶다.”

그리고 내년에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내 오른쪽, 그러니까 가장 통로 쪽에 위치한 빈자리.

그곳에는 ‘최서빈’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었고.

최서빈은 아직 PBC 방송국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톱스타인 그는 나처럼 일찍 등장하지 않았지.

급을 나누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는 분명히 급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등장의 순서도 당연하게 급별로 나타났다.

레드 카펫 실시간 방송에서는 이제 주조연급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었고.

그들 중 몇몇은 오늘 PBC 연기 대상에 우수상,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최서빈의 차례는 한참이나 남은 모양이다.

몇십 분의 시간이 흐르고.

이곳의 자리는 어느새 빼곡하게 배우들로 가득 메워졌다.

즉, 대부분의 배우는 모두 다 도착했다는 이야기였지.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화면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었고.

이내 새로운 배우가 레드 카펫을 밟으며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 PBC에서 연기 대상을 수상한, 중년 여배우 김순자 배우.

그녀는 모든 시청자들로 하여금 눈물을 쏙 빼놓게 만들었던 드라마의 주연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 작품 외에도 경력이 이미 정상급에 있는 어마어마한 배우였지.

김순자가 레드 카펫을 지나, PBC 방송국 안으로 등장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기립해 그녀를 박수로 맞이했다.

짝짝짝!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그녀와 친분이 있는 배우들은 단번에 달려가 인사를 하며 맞이했고.

그때.

레드 카펫에 또 다른 배우가 걸어가고 있었다.

팟-!

찰칵, 찰칵-.

찰칵!

“꺄아아!”

“와악!”

화면에 비치는 카메라 플래시들.

연이어 터지는 셔터 음은 지금껏 들었던 소리 중 가장 많이, 그리고 빠르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환호 역시, PBC에 들어온 이후로 제일 큰 함성이었다.

대체 누가 온 거지?

김순자를 포함해 그녀를 맞이하던 이곳의 배우들이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걸어오는 사람.

최서빈이었다.

그의 손짓 하나, 눈길 하나에 팬들은 자지러지듯 소리쳤고.

그의 눈빛과 움직임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기 바쁜 기자들 덕에.

셔터 음은 1초도 끊이지가 않았다.

“역시… 톱스타는 다르긴 하네.”

나는 그의 당당한 모습과 포스를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화면 속 최서빈을 보며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배우들이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최서빈을 보고 있었고.

이내 최서빈은 커다란 문을 통해 이곳으로 입장했다.

김순자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고.

최서빈은 고개를 잘게 숙이고 인사를 보내며 걸어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한 최서빈의 모습.

그때.

“희성아!”

최서빈이 손을 높이 뻗어 흔들며 나를 불렀다.

그의 부름에 모든 배우들의 시선은 그가 바라보는 내게로 향했고.

나는 절로 우쭐해진 어깨로 그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이야, 우리 신인상 받은 배우님 아니야? 축하한다.”

그는 내 어깨에 팔을 올려 손으로 어깨를 쓸어내렸고.

주변의 몇몇 신인 배우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오늘 너 인기상 후보에 있던데?”

“에이, 선배님은 연기 대상 후보에 오르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답했다.

“다 네 덕이지, 인마. 오늘 우리 잘해보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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