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41)화 (141/303)

141화 #26 – 넘치는 보답 (3)

“전세기로 오니까 너무 좋은데요, 선배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몸이 찌뿌듯하기는커녕.

푹 쉬고 난 듯했고, 최서빈은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호주는 와본 적 있어?”

그의 질문에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호주는 지난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촬영 때 왔었습니다.”

“맞네. 그러면 말을 하지. 다른 나라로 갈걸.”

최서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나는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번에 촬영으로 왔는데, 완전 사막으로 가서 한 달 내내 촬영만 하고 갔거든요. 저도 관광은 하나도 못 했어요.”

“그래?”

“예, 호주에서 관광지 하나도 못 가 봤으니까요. 하하.”

우리는 공항을 나오며 말을 이었다.

“이야, 춥게 있다가 호주 오니까, 따뜻해서 좋다.”

“그러게요. 봄인 것 같아서 더 좋습니다.”

우리는 걸쳤던 재킷을 벗었고.

최서빈은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여행은 어디어디 가봤어?”

그의 질문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입을 열었다.

“호주요.”

“호주는 일 때문에 왔다며. 거기 말고는?”

“…호주가 전부입니다. 하하.”

“뭐?”

내 말에 최서빈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그럼 해외여행을, 아니지. 여행도 아니고, 일로 왔던 게 전부야?”

그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부유하게 자랐던 것도 아니고. 대학도 알바를 하면서 다니고, 배우 준비를 했거든요.”

나는 최서빈을 바라보며 애써 웃음 지었다.

뭐, 그렇다고 씁쓸하거나 스스로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여유롭게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봤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날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까.

그때는 시간보다 돈이 없었다.

금전적인 여유라는 것이 없었지.

배우라는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도 벅찼으니까.

그 당시 해외여행은 사치, 아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며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하는 일상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노력을 해왔기에, 지금 배우로 자리 잡은 내가 있는 것이니까.

최서빈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고생 많았겠네, 희성이. 이번에 내가 해외여행 데려오길 잘했어.”

나를 대견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였고.

어느새부터인가 나를 친동생보다 더 가까운 관계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최서빈의 행동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는 최서빈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강했지.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해외여행으로 놀러온 건 태어나서 처음인데, 그것도 우리나라 톱 배우인 서빈 선배님과 왔다는 게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그런 너스레에 최서빈은 내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듯 문지르며 답했다.

“돈 썼다고 나 띄워주는 거냐. 이 자식이.”

“하하, 아닙니다. 정말 감사해서 그렇죠.”

우리는 금세 공항을 빠져나왔고.

앞에는 커다란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미리 예약해둔 차야.”

“우와, 선배님. 진짜 감동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약했던 차에 몸을 실었다.

최서빈과 함께 도착한 숙소.

호텔이 아닌 펜션 같은 일반 집이었다.

“와아, 여기 너무 좋은데요?”

나는 짐을 풀 정신도 없이 숙소를 둘러보았다.

웅장할 정도로 커다란 거실.

높은 층고에 입이 떡 벌어졌고, 주방 역시 단체로 몰려와 음식을 해도 될 정도로 넓었다.

“선배님, 여기 숙소 너무 비싼 곳 아닙니까?”

걱정하듯 그에게 물었고.

최서빈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희성아, 나 최서빈이야.”

그의 근거 있는 자신감에 나는 웃음이 아닌, 고개를 끄덕이며 자동적으로 수긍했다.

“맞네. 제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하하, 농담이야. 그래도 이왕 놀러오는 거, 좋은 숙소에서 편하게 떠들고 놀아야지. 호텔도 좋긴 한데, 나는 이렇게 그 나라 현지 집 같은 곳에 오는 것도 좋더라고.”

“그러게요. 여기서 요리해 먹어도 되겠는데요?”

최서빈이 주방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호주에 캥거루 고기가 유명한 거 알지?”

“캥거루요?”

“응, 마트에 다 팔아. 사다가 저녁에 구워 먹어보자.”

“오오, 좋아요!”

최서빈은 캐리어를 펼치며 말했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자. 호주 구경해야지.”

“넵!”

숙소에 짐만 풀어둔 채,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이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최서빈은 실소를 터트렸다.

“하하, 희성이 오늘 많이 놀라네.”

“그럼요. 선배님, 저 오페라 하우스 실제로 처음 봐요.”

“그렇겠지. 처음 왔다며.”

“아… 그러네요, 하하. 저기가 하버 브리지죠?”

“응, 맞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그 앞에는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최서빈 역시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지만, 내가 두리번거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구경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보고 있는 모양.

그러더니 천변에 철퍼덕 앉아, 오면서 사온 맥주를 꺼냈다.

나는 최서빈을 따라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최서빈이 건넨 차디찬 캔 맥주를 오픈했다.

치익-.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앞에 보이는 천변, 그리고 저 멀리에 보이는 하버 브리지를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키야아, 너무 좋네요.”

내 말에 최서빈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해외 나오면 이런 게 좋아. 한국에서는 마스크에 모자까지 꾹꾹 눌러쓰고 다녀야 하고, 사람 많은 곳은 가지도 못하잖아.”

그의 말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본가에 갔다가 많은 인파 속에 마트에 갇혔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었으니까.

언젠가부터 사람이 없는 곳만 골라 다녔고.

마스크와 모자 없이는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반갑고 좋았다.

자유를 만끽하는 이 기분, 이게 얼마 만인가.

“사람만큼 갈매기도 진짜 많은데요?”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를 보며 말하자, 최서빈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기는 원래 갈매기가 많아. 우리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을까?”

“좋습니다.”

우리는 휴대 전화 카메라를 열어 기념으로 셀카를 마구 찍었고.

그러다 문득 보이는 우리의 옷.

사진을 보는 순간, 최서빈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님, 저희 너무 커플룩 아닙니까? 하하하.”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같은 하늘색의 티를 입고 있었고.

그 모습에 최서빈이 장난스레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왜, 우리 데이트하는 것 같고 좋네.”

“그러게요. 오늘 코스도 데이트 코스 아닙니까?”

“맞지. 내일은 우리 저기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도 볼 거야.”

“이야, 완벽한데요?”

우리는 눈을 맞춘 채, 맥주를 허공에서 부딪쳤다.

챙-.

***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3박의 여행.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도 되는 겁니까?”

나는 공항 입구로 들어서며 최서빈에게 말했고.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답했다.

“그러게. 앞으로 같은 작품을 안 하면 힘들겠지만, 또 휴식기 맞으면 한 번씩 여행 오자.”

“완전 콜이죠.”

짧았던 3박의 여행이었지만, 최서빈과 내내 붙어 지냈기에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촬영할 때 붙어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니까.

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비행시간이 남아 면세점을 돌기 시작했고.

그러다 앞에 보이는 커다란 명품관.

나는 최서빈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선배님, 저 잠시 저기 좀 구경해도 됩니까?”

“그럼. 같이 가자.”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우리를 반겼고.

나는 물건을 고르며 최서빈에게 물었다.

“선배님, 이거 어때요?”

“오오, 좋은데?”

나는 남성용 클러치를 들었다가, 최서빈의 허리춤에 붙였다.

“선배님도 잘 어울리시는데요?”

“그러네.”

그렇게 나는 선글라스, 벨트, 넥타이까지 여러 명품 매장을 최서빈과 함께 돌며 살펴보았고.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네.”

최서빈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서둘러 그가 괜찮다고 했던 명품들을 모두 구매했다.

그렇게 몇 분 뒤.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최서빈은 내 옆에 놓인 짐들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인마, 뭘 이렇게 많이 샀냐?”

“하하, 아까 선배님이 예쁘다고 하신 것들 사봤습니다.”

“네 마음에 들어야지, 내가 괜찮다고 한 걸 사면 어떡해.”

최서빈은 걱정스레 내게 말했고.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그에게 답했다.

“선배님 마음에 들어야죠. 선배님께 드리는 선물인데요.”

“뭐?”

최서빈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번에 너무 감사해서요. 제 마음이니까 받아주세요.”

“야, 그래도 이건 너무 많잖아.”

“아닙니다. 선배님이 제게 너무 많은 걸 해 주셨잖습니까. 다음에 또 선배님과 여행 갈 땐,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내 눈을 피해 답했다.

“고맙다.”

눈을 바라보며 인사하기는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선물을 건넸고.

고마워하는 최서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긴 시간의 비행이 끝이 나고.

최서빈과 나는 인천 공항에 발을 디뎠다.

호주에서와는 달리, 우리는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올린 뒤에야 공항을 나올 수 있었고.

입구에서 기다리던 최서빈의 매니저, 배 실장의 차에 올랐다.

“배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희성 씨. 오랜만이에요.”

“저까지 데려다주시고 감사합니다.”

“아유, 당연히 같이 가야죠. 김 실장님이 못 와서 미안해하더라고요. 다른 배우 스케줄 갔거든요.”

배 실장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에이, 저는 오늘 스케줄도 아니고, 선배님과 여행 다녀온 거라 괜찮습니다.”

그렇게 차는 금세 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최서빈과 나는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호주가 벌써 또 그립다.”

“그러게요. 이제 왔는데, 또 놀러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있던 호주를 그리워하며 서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몇십 분간 달리던 차 안.

고요해진 분위기에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휴대 전화를 열었고.

자연스레 인터넷 창을 클릭했다.

3일간, 새로 올라온 많은 소식들을 살피기 위해 뉴스를 눌렀고.

제일 위에 뜨는 연예계 기사를 본 순간, 나는 차를 가득 메우도록 소리쳤다.

“이게 뭐야?”

내 목소리에 최서빈이 놀라 나를 바라보았고.

운전을 하던 배 실장은 룸 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요?”

“아….”

말끝을 흐리자, 최서빈은 내가 보던 휴대 전화에 눈길을 돌렸다.

“헐, 저게 뭐야.”

[최서빈♡진희성, 단둘이 떠난 호주 여행… 케미를 넘어 男男 커플로….]

최서빈은 기사 제목을 읽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남남 커플?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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