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40)화 (140/303)

140화 #26 – 넘치는 보답 (2)

포상 휴가.

‘상간녀의 유혹’ 드라마를 성황리에 마친 후.

내 인생 처음으로 포상 휴가라는 이벤트가 생겼지만,

‘블랙맨’에 합류하면서 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해서 포상 휴가를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좋은 걸 얻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있었다.

포상 휴가라는 거, 또 가볼 날이 언제 올까?

의문이 들었지만, 결코 블랙맨에 합류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

그저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게 가끔 생각날 뿐.

그런데 그걸 블랙맨 제작진도 아닌.

최서빈이 내게 제안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라웠다.

PBC 측에서 우리에게 줬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모든 인원이 함께 갔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포상 휴가, 그러니까 말이 포상 휴가였지.

그저 최서빈과 나의 둘만의 여행이었다.

최서빈은 내가 블랙맨에 합류해 줬다는 게 고마웠던 것이고.

그걸 보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 또한 그에게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들어갔던 게 블랙맨이었기에.

그가 쓰는 돈을 사양했지만, 최서빈은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 역시 최서빈과의 여행이라면 함께 가고 싶기도 했지.

별다른 스케줄은 없었지만.

며칠을 한국에서 떠나야 하는 여행.

회사에 보고는 해야 했기에, 서둘러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짧은 신호음이 울린 뒤.

김 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바빠?”

-아, 잠깐 통화 가능해. 안 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뭔데?”

-아니야. 너 먼저 말해. 무슨 일 있어?

김 실장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고.

그에게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함께 고생한 사람이 김 실장인데, 나 홀로 간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 그게, 나 한참 스케줄 없지?”

내 물음에 그는 고민할 틈도 없이 곧장 입을 열었다.

-어,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지 쉬어도 돼. 왜?

“혹시 나 여행 좀 가도 되나 해서.”

김 실장은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당연히 되지. 제발 좀 쉬어, 희성아.

“그래? 나 해외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서빈 씨랑?

김 실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내게 물었고.

그의 물음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형. 어떻게 알았어?”

-너 스케줄에 비행기 표 끊는 거. 그거 서빈 씨가 어떻게 알고 했겠어. 하하.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쩐지. 서빈 선배가 어떻게 날짜랑 내 여권을 알고 끊었나 했네.”

-회사하고도 다 이야기된 거니까, 가서 재밌게 놀고 와. 너 일 시작하고 이렇게 놀러가는 거 처음이잖아.

“그렇긴 하지.”

-가서 일 생각 절대 하지 말고, 그냥 놀기만 해.

“같이 못 가서 아쉽다. 형도 고생했는데, 미안해서.”

-됐어. 나는 가자고 해도 못 가. 알잖아, 지금 나 다른 배우 매니저 하고 있는 거. 오늘도 일 왔어.

내 담당 매니저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참을 쉬는 기간에는 다른 배우나 가수의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내가 언제까지 쉴지, 언제 일이 잡힐지 알 수 없기에.

회사에서는 무작정 매니저를 가만히 둘 수가 없기 때문이지.

“다음에는 회사에 이야기하고, 같이 여행 가자.”

-좋지. 나한테 미안해할 거 전혀 없으니까, 재밌게만 놀고 와.

나를 배려해주는 김 실장의 말에, 가슴속의 미안했던 감정이 풀어졌고.

그제야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형, 근데 형은 할 말이 뭐야?”

-아, 맞다. 오늘 회사 정산 들어갈 거야.

“원래 오늘인가?”

-날짜가 이번 달에 변경됐다고 해서 알려주려고 했거든.

“아… 알겠어.”

-금액 설명을 내가 아직 못 들어서, 혹시 입금 금액 이상 있으면 말해줘.

“응, 근데 형 일하는 거 아니야?”

-맞아. 혹시 급하면, 나 말고 재무팀으로 전화해서 직접 물어봐도 돼.

“그럴게. 뭐, 잘못 들어올 일은 없으니까.”

-그렇긴 하지. 나 촬영 봐주러 가야겠다.

“알겠어. 형, 고생해.”

김 실장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울리는 휴대 전화의 알람.

띵동.

-XX은행 입금 503,180,000원 WG 엔터테인먼트.

김 실장이 말했던 정산 입금이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금액을 확인했다.

“일십백천만, 십만… 억…. 오억?”

휴대 전화를 보며 숫자를 확인하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오억이라고?”

너무나 큰 액수에 당황해 눈을 박박 비빈 후, 재차 숫자를 확인해 보았다.

“일십… 아니, 오억이 왜 들어온 거지?”

김 실장과 통화를 하며 뒹굴던 소파.

그곳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로 향했고.

서둘러 의자를 당겨 앉아 수첩에 글씨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번 정산 금액은 ‘상간녀의 유혹’과 ‘블랙맨’으로 알고 있기에.

각 드라마의 계약 금액을 써내려갔다.

“상간녀의 유혹이 회당 1천이었고, 총 16부작이니까.”

수첩에 써내려간 1억 6천.

“여기에 잘됐다고 받은 보너스가 50%랬으니까, 총 2억 4천만 원.”

아무리 계산해도 2억 4천만 원이 전부였고.

심지어 그 금액에 유류세와 회사와 내가 나누는 7:3이라는 비율을 계산한다면….

아무리 많아도 1억 5천에 그치는 금액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3억 5천인데.”

도저히 알 수 없는 금액에, 나는 김 실장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이미 촬영에 들어간 탓에 김 실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평소 회사에서 1원도 다르게 들어온 적이 없다는 걸 알기에.

김 실장의 전화를 기다릴까 하다가, 참지 못하고 WG 엔터 재무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WG 엔터 재무팀 김시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WG 엔터 배우 진희성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 방금 정산을 받았는데, 문의 좀 드리려고 하는데요.”

-네, 정산된 금액 때문에 그러실까요?

“예, 금액 산출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요.”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타이핑 소리.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고.

짧은 기다림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희성 님. 유선상으로 설명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먼저 ‘상간녀의 유혹’ 드라마의 회당 금액이 1천만 원에….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보너스 50%와 유류비, 7:3의 비율을 설명했고.

그 계산으로 인해, 내게 ‘상간녀의 유혹’ 드라마로 벌어들인 수익이 1억 5천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거기에 가장 의문이었던 나머지 3억 5천.

“예, 그럼 나머지 3억 5천은 어떤 금액인지, 혹시 전부 다음 드라마인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네, 맞습니다. 나머지 3억 5천이 조금 넘는 금액은 드라마 ‘블랙맨’ 정산분이고요.

김시원의 설명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블랙맨에서 3억 5천을 받을 수가 있는 거지?

그렇게 의문을 품기도 잠시.

그녀는 서둘러 정산 금액의 설명을 늘어놓았다.

-PBC 블랙맨의 회당 출연료는 회당 1,500만 원이고, 총 2억 4천만 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계산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시만요.”

-네?

“제가 블랙맨을 총 10회 출연했는데, 그럼 1억 5천 아닌가요?”

-PBC에서 10회 분량이 아니라, 16회 분량으로 계산해서 주셨어요. 거기에 보너스로 들어온 금액이… 2억 6천.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눈을 깜빡거릴 뿐.

총 16부작 중, 내가 대타로 들어간 건 10회가 전부였다.

그런데 16부작 모두 출연료를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거기에 총 출연료인 2억 4천만 원보다 큰 2억 6천만 원이 보너스라니.

그 숫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얼떨떨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시원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총 PBC에서 들어온 금액이 5억이고, 거기에 유류세 금액이….

그녀는 내게 마지막 금액 설명을 한 뒤에야 말을 끝마쳤다.

“저… 근데 원래 이렇게 많이 주는 거예요?”

김시원은 내 물음에 옅은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이번 일 때문에 고생해서 PBC에서 특별히 챙겨줬다고 들었어요. 특별 보너스 같은 느낌인 것 같더라고요.

“아….”

특별 보너스치고 너무나도 큰 금액에 나는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고.

서둘러 그녀에게 인사를 보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또 궁금하신 점 있으실까요?

“아니요. 다 해결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재무팀과 전화를 끊은 뒤.

다시 휴대 전화의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XX은행 입금 503,180,000원 WG 엔터테인먼트.

여전히 떠 있는 5억.

그 숫자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쉬지 않고 달려온 보람이랄까.

고생한 만큼 보상이 확실하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통장 내역을 보며 실감이 났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댔다.

***

“선배님!”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최서빈에게로 향했고.

“희성아, 왔어?”

선글라스를 끼고 손을 흔드는 최서빈의 옆에는 나만큼 커다란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이야, 이렇게 선배님이랑 여행을 가다니, 그것도 해외여행이라니요.”

다소 흥분한 어투로 그에게 말했고.

최서빈 또한 한층 업이 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나 호주에는 촬영밖에 안 가봤는데, 좋더라고. 이렇게 너랑 가게 되니까, 설레긴 한다.”

“하하, 선배님, 호주에 놀러가는 것보다 저랑 가는 게 설레시는 거죠?”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우리는 가기 전부터 웃음을 터트리며 입국장으로 향했다.

비행기 이륙 시각은 점차 가까워져 왔고.

“선배님, 이렇게 여행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다해 인사를 보냈다.

하지만 최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답했다.

“인마, 벌써 인사만 몇 번째냐?”

“에이, 비행기에 숙소까지 다 마련해 주셨는데, 한국 올 때까지 생각날 때마다 인사할 겁니다.”

내 말에 그는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고, 됐어. 나도 혼자 가기 심심해서 너 데리고 가는 거야.”

“그럼 항상 심심해하셨으면 좋겠다. 하하.”

내 너스레에 최서빈은 내 목을 팔로 감싸며 장난을 쳤고.

그때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서둘러 비행기로 걸어갔고.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 순간.

무언가 싸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텅 빈 비행기.

안내가 울리자마자 탔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타지 않는 듯한 느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빨리 탔나, 라는 생각을 삼켜내며.

의자에 기대었지만.

몇 분의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라고는 최서빈과 나.

그리고 몇 명의 승무원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최서빈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왜?”

“저희 비행기… 왜 아무도 안 타죠?”

나는 몸을 일으켜 비행기 안을 살피며 재차 물었다.

“보세요. 아무도 없는데, 호주에 가는 사람이 우리 둘뿐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최서빈에게 묻자.

최서빈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예? 무슨….”

“이거 전세기야.”

최서빈의 말에 나는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탄성을 내지르며 답했다.

“전세기요?”

비행기에 가득 울리는 내 목소리.

최서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답의 의미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