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39)화 (139/303)

139화 #26 – 넘치는 보답 (1)

항상 휴식기마다 하는 첫 번째는.

본가에 내려가는 일이었다.

평소 부모님과 통화를 자주 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 통화하기가 힘들어진다.

부모님과의 통화가 잠깐이면 되는 것을 알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 마련이었지.

그래서인지 더더욱 작품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직 휴식기에 무엇을 할지 정해지지 않았고.

집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본가로 향했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를 하자마자 내게로 달려오는 부모님의 모습.

“희성아!”

“아들, 왔어?”

늘 그렇듯 나를 반겨주시는 부모님.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환하게 나를 맞이하셨다.

“추운데, 뭐 하러 나와 계셨어요. 안에서 기다리시지.”

내 말에 어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답했다.

“우리 대스타가 오는데, 어떻게 집에서 기다려.”

“아유, 엄마도 참. 대스타라니, 누가 듣겠어.”

“내가 뭐 틀린 말 한 건가? 얼른 들어가자, 춥지?”

“아니. 나는 차 타고 와서 괜찮지. 엄마, 아빠가 춥겠다, 얼른 들어가요.”

아버지는 묵묵히 내 짐을 받으시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나를 보고 짧은 반김을 한 뒤에 다시금 딱딱한 말투로 돌아갔지만.

여태껏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아버지가 지금 나를 반기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저 겉으로 티를 안 내는 것일 뿐.

“아니에요. 고생은 무슨.”

“얼른 들어와서 밥 먹어. 엄마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반찬 잔뜩 해놨어.”

“에이, 엄마 그냥 편하게 나가서 먹지.”

아버지가 우리의 대화에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 서울에서 일하느라 맨날 나가서 먹고, 시켜 먹을 텐데. 집에 오면 엄마 밥 먹고 좋지, 뭐.”

“그렇긴 한데, 엄마가 힘드니까….”

어머니는 내게로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 위해 밥할 때가 제일 행복하던데?”

“그래도 너무 고생하지는 마. 맨날 올 때마다 한 상 차림하면 힘들잖아.”

“괜찮아. 아들이 맛있게만 먹으면 좋지.”

집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음식 냄새.

코를 킁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야! 냄새 죽인다.”

어머니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밥을 푸기 시작했다.

“네가 잡채랑 갈비찜 좋아하잖아. 거기에 된장찌개에 닭볶음탕에….”

“엄마, 무슨 잔치하는 거야?”

눈앞에 펼쳐진 식탁을 가득 메운 음식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머니는 호호 웃으며 답했다.

“그럼. 우리 아들이 오는 게, 잔치지.”

아버지는 늘 앉는 자리에 착석해 내게 손짓했다.

“얼른 앉아 먹어라. 음식 식겠다.”

“네, 잘 먹겠습니다.”

나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젓가락과 수저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우와, 엄마, 진짜 맛있다.”

“호호, 다행이네. 이것도 좀 먹어봐.”

“알겠어. 엄마도 좀 먹어. 나만 챙겨주지 말고.”

어머니는 음식을 모조리 내 앞으로 밀어주었고.

아버지는 내가 먹기 편하도록 말없이 생선 가시를 발라,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왔고.

오랜만에 느끼는 부모님의 사랑.

그 행복감에 그동안 바쁘고 지쳤던 마음이 사르르 사라졌고.

가족끼리 먹는 밥 한 끼에도 힐링하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두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고.

“와아- 진짜 배불러.”

의자에 몸을 기대 배를 내밀며 말하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

“아들, 조금 더 먹어.”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 나 고봉밥으로 두 공기나 비웠는데?”

“어휴, 맨날 촬영하느라 고생하는데, 더 먹어.”

“진짜 배불러. 몇 시간 뒤에 또 저녁 먹을 거잖아.”

“그렇긴 하지. 하하.”

그렇게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볼록 튀어나온 배를 꺼트리기 위해 거실부터 집 안을 걷기 시작했다.

“엄마, 집에 바꿀 건 없어?”

오래된 가구를 보며 묻자,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없어. 괜히 돈 쓰지 마라.”

“그래도 오래돼서 불편하면 바꿔야죠.”

“아서라. 오래된 게 다 불편한 건 아니야. 우리는 이게 편해. 그리고 고장 나면 우리가 바꿀 수 있으니까, 괜히 돈 쓰지 마.”

아버지가 단호하게 답하고는 소파에 몸을 기대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찬히 집 안을 살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가구 하나.

집에서 가장 오래된 장식장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오랜 취미나 사진, 기념품을 올려놓은 장식장.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가구이다.

내가 막 태어났을 때, 걸음마를 걷기 시작할 때, 초등학교 입학 때.

그 기념의 순간마다 나를 찍은 사진을 전시해 두셨지.

그리고 부모님이 가끔 여행을 가시면 사오기도 했던 기념품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항상 보던 벽을 가득 메운 장식장이었지만.

어딘가 새로운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채, 장식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

늘 제자리에 있던 앨범들이 아닌, 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첫 번째 단역으로 나왔던 작품부터.

‘시계공과 무희’, ‘연예계 엑스트라’….

그리고 최근에 찍었던 ‘상간녀의 유혹’과 ‘블랙맨’까지.

단 한 작품도 빠지지 않고, 모든 작품에서 나왔던 사진들과.

신문에 나온 것을 스크랩까지 해서 액자에 걸어두셨고.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항상 배우라는 꿈을 반대하셨던 분이 아버지였으니까.

자랑스러워하시며 주변 지인들에게 내 자랑을 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 아버지가 늘 전시해두는 장식장에 내 사진들과 작품 이야기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건 뭐지?”

그리고 옆에 있는 CD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십 장의 CD를 바라보았고.

한 장을 빼서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삐뚤삐뚤 쓴 글자가 적혀 있었다.

‘블랙맨 3화.’

CD 위에 유성 펜으로 적힌 글자를 보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러자 어머니가 옆으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그거 네 아빠가 다 녹화한 거야.”

“뭐?”

내가 놀란 토끼 눈으로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자.

아버지는 당황한 듯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언제….”

그러고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내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아빠, 저번에 지인 모임 하다가도 희성이 너 드라마 본방송 보면서 녹화해야 한다고 밥도 덜 먹고 달려오셨어.”

“아빠가?”

“그렇다니까.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방송 시작 전인 거 확인하고, 어찌나 안도의 숨을 내쉬던지. 참, 툴툴대면서 아들 사랑은 혼자 다 해.”

나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어머니에게 답했다.

“엄마, 이렇게 고생 안 하셔도 돼. 내가 DVD 파일 요청해서 받아다 줄게.”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내 모든 걸 수집하면서도 민망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머니는 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 아들… 배우 하기를 정말 잘했다. 항상 TV에서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

“저녁은 나가서 사먹자니까.”

“아니야. 엄마가 너 해주려고 재료도 사다놨어.”

“그럼 지금 마트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어머니는 내 말에 코를 찡긋거리며 답했다.

“근데 몇 가지가 빠졌어. 엄마만 다녀오면 돼.”

“아니야. 같이 가.”

“네 아빠도 갈 거니까, 피곤할 텐데 쉬고 있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은 뒤, 현관으로 향했고.

나는 서둘러 모자와 마스크를 쓰며 답했다.

“집에서만 가만히 있으면 나도 심심해. 같이 가자. 가서 짐꾼 하지 뭐.”

어머니는 내심 같이 가기를 바랐는지, 내 말에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들이 같이 가면 나야 좋지. 안 그래요, 희성이 아빠?”

“귀찮을 텐데, 집에서 쉬지.”

“에이, 같이 가서 바람이나 쐬려고.”

내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현관문을 잡고 있었다.

잠시 뒤, 도착한 마트.

항상 오던 단골 대형 마트였지만, 꽤나 오랜만에 방문한 곳이었기에.

나는 어색한 자세로 카트를 당겼다.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아들이랑 같이 오니까 너무 좋네.”

마트는 평일이어도 저녁 시간이 다가오니 북적거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다시 한번 모자를 푸욱 눌러썼다.

말하면서 내려간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올린 뒤.

어머니와 아버지 옆으로 카트를 끌고 이동했고.

마트의 커다란 입구를 들어가, 곧장 신선 식품 앞으로 걸어가던 그때.

“야야, 저기 진희성 아님?”

나를 알아보는 듯한 한 여성의 목소리.

그녀의 옆에 있던 남성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나는 서둘러 고개 숙이며 모자를 눌러썼다.

“눈밖에 안 보이는데?”

“맞는 거 같은데… 아닌가?”

“당연하지. 여기에 진희성이 왜 오겠냐.”

그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나를 지나쳤고.

모른 체하며 굳이 숨길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자를 벗으며 저 진희성입니다,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눈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나를 알아봤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많이 얼굴이 알려지기는 했나, 라는 사실에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던 그때.

“희성이 엄마 왔어?”

마트에 온 어머니의 지인이 어머니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응, 찬이 엄마도 장 보러 왔는가?”

“어?”

어머니의 지인은 옆에 서 있던 나를 보고 소리쳤다.

“어머, 희성이 아니야?”

어릴 적부터 보던 어머니의 친구에게 모자를 살짝 올린 뒤,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머어머. 희성아, 나 드라마 너무 잘 봤어.”

“하하, 감사합니다.”

그녀는 허겁지겁 휴대 전화를 꺼내 카메라를 켜며 말했다.

“나 사진 하나만 찍어도 될까?”

옆을 바라보니, 어머니는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서둘러 마스크를 내려 포즈를 취했다.

순간.

“꺄아! 진희성이다.”

“와아, 진짜 진희성인데?”

“저 진짜 팬이에요. 사인 하나만, 아니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될까요?”

“빨리 와봐. 여기 진희성 배우 있어!”

순식간에 모여든 사람들.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팬이라며 다가오는 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나는 밝게 웃으며 감사 인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십 분간 정체됐던 마트 입구.

부모님은 기다리신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 유명하네.”

“하하, 그럼 시청률 높은 드라마 주연인데!”

나는 멋쩍게 웃으며 모자와 마스크를 다시 썼고.

앞으로 걸어 나가던 그때.

“와아! 오빠 진짜 팬인데, 저 사진 하나만 찍어주시면 안 돼요?”

“꺄아아! 희성 오빠가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저 사진 좀….”

“사인 하나만 해주고 가면 안 되나?”

다시금 마트 안은 인산인해가 되었다.

세 걸음도 가지 못해 길이 막혔고.

금세 퇴근 시간이 다다르자, 마트 안의 사람들은 처음 들어올 때보다 배나 되었다.

즉, 내게로 모여든 사람들도 엄청 늘었고.

우리는 카트에 물건 하나를 넣지 못한 채.

그렇게 길이 막혀버렸다.

완전히 앞이 막혀버린 상황.

우리만 문제가 아니라, 마트 내에도 장을 보러 온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인사를 하며 움직이려고 했지만.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꺄야!”

“희성 오빠!”

“진짜 진희성이야, 빨리 여기로 와. 어, 거기 마트 안이야. 얼른 와.”

“야, 여기 진희성 배우 왔어, 빨리 집 앞 마트로 와!”

점점 더 불어나는 인원.

결국….

마트 입구 쪽 도로에 있던 교통경찰이 급히 마트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와 부모님 주변을 감쌌고.

그제야 우리는 마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탄 부모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하아… 희성이 인기, 아주 무서운데?”

아버지는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아이고, 우리 장 하나도 못 봤는데?”

어머니는 손에 들린 텅 빈 장바구니를 보며 손뼉을 부딪쳤다.

그리고 나는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북적이는 마트를 바라보았다.

…나 진짜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

본가에 내려가서 한 일이라고는 부모님과 집에서 식사하기, 그것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너무 좋았지만, 부모님과 집 앞 카페를 간다든지 유명한 식당조차 가지 못했으니까.

인지도가 생겨 너무나 좋고, 뿌듯했지만.

편안하게 어디든 갈 수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저 집 밖에 나오지를 못했으니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던 그때.

지이잉.

[발신인: 최서빈 선배님]

최서빈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희성아. 뭐 해?

“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계속 집에 있었어?

“본가 갔다가 오늘 서울 돌아왔습니다.”

-그럼 이제 뭐 하려고?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선배님은 드라마 끝나고 푹 쉬셨습니까?”

-응, 이제 다 쉬었으니까, 좀 놀아야지?

“오오, 어디 좋은 곳 가십니까?”

-어, 여행 좀 가려고.

“어디로 가세요?”

-여기는 춥잖아. 따뜻한 호주나 갈까 해.

“우와, 혼자 가시는 겁니까?”

-너랑 같이 가야지. 우리도 포상 휴가 가자.

“예?”

최서빈의 말에 나는 놀라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고.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비행기 표 끊어놨어. 너 하와이로 포상 휴가 못 갔다 왔잖아. 대신 호주로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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